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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미 Jan 17. 2020

'잘' 하려는 노력을 때려치우고 싶다

'잘' 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2020년이 되길 바라며! 


 어릴 적에는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일이 많았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대한 칭찬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당연스레 알고 있는 지금과는 달리, 그저 칭찬이라면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겠거니 하고 어른들이 잦은 칭찬 세례를 퍼붓던 날들이었다. 그림을 잘 그린다, 공부를 잘한다, 정리정돈을 잘한다..


 나는 내가 잘하는 것들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다. 내가 못하는 일을 연습해 발전하거나 뛰어넘기보다는 이미 잘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못하는 과목의 과제나 수행평가들은 적당히 해서 넘기고 이미 만점을 맞고 A+를 받은 과목을 더 열심히 공부했다. 점수로는 나의 탁월함을 다 표현하지 못해도 그 과목의 선생님에게 주목과 인정을 받는 건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살다 보니 점점 '잘하기'위한 노력이 버거워졌다. 아니 사실은 '잘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괴롭게 했다. 못하는 것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거라면 그나마 나은데, 내가 잘하게 되지 못할 것은 도전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것을 '하는' 과정이 즐거워야 하는데 '점차 잘하게' 되는 과정만을 즐기니, 뭔가가 늘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자꾸 좌절하거나 슬럼프를 겪는 일이 반복되었다. 


 최근 몇 년간 꾸준히 했다면 꾸준히 해온 클라이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력이 늘고 있다고 생각되면 즐거웠고, 그렇지 않은 기간은 괴로웠지만 다시 실력이 느는 시기가 오기를 기다리며 견뎠다. 못하던 것을 하게 되고 그레이드가 올라야 클라이밍을 하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암장에서 몇 년간 지켜본 사람들 중에는 해온 시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보다 몇 년이나 늦게 클라이밍을 시작한 사람들이 몇 달만에 자신의 실력보다 앞서게 되어도 꾸준히 클라이밍을 즐겼다. 물론 나는 모르는 그들만의 좌절과 슬럼프가 있겠지만, 만약 나라면 진작 그만뒀을 클라이밍을 그들은 여전히 즐긴다. 


 잘하지 못하는데, 심지어 못하는데 즐길 수 있다니!


 내가 그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남편과 생각해보았다. 못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고, 가능하면 나의 안전도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우선 적은 비용으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고, 가능하면 몸으로 하는 일이면 좋겠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이 '춤'이었다.

춤이라는 것이 내가 하는 것을 보지 않아도 할 수 있고(예를 들어 노래나 그림은 내 행동의 결과(?)를 듣거나 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춤을 못 추는 나지만 춤을 남들 앞에서 보여야 하는 것만 아니라면 나도 즐겁거나 부드럽게 몸을 움직이고 싶은 욕구는 있으니까! 그래, 올해는 춤을 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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