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공방에 가는 길, 베니스 길에서 우회전을 하기 전 지나가게 되는 고가도로 아래.
가능하면 신호에 걸리지 않고 달리고 싶지만 이 횡당보도 앞은 뜨거운 햇살을 피해 신호를 기다릴 수 있는 곳이라 신호에 걸려도 그러려니 하고 멈춰서 잠시 쉰다.
버스나 자전거, 우회전 차량을 위한 차선이라 조금은 한적한 그 곳에, 작은 쥐 한 마리가 누워있다.
처음에는 그 뒷모습을 보고 부디 누군가 돌돌 말아서 버린 아기양말 같은 것 이기를 바랬다.
요즘 들어 유난히 버려진 쓰레기가 많아진 길이므로. 충분히 그럴 법 했다.
하지만 정말 한 마리의 쥐가 누워있는 거였다. 누워있달까, 죽어있달까. 죽은 채로 누워있었다.
차선의 한복판이 아니어서 그런지 형태는 온전했다. 다만 쥐의 얼굴 앞쪽에 자그마한 핏자국이 있었다.
이토록 작은 쥐가, 이렇게 큰 차들이 다니는 길에서 그냥 톡, 차에 부딪혀 온전한 형태로 죽을 수도 있는 건가, 아니면 애초부터 아팠던 쥐가 길 위를 지나가다 피를 뱉고 죽었나.
이대로 길 위에 있다면 언젠가는 차에 밟히게 될 텐데. 아니 그건 이제 세상을 떠난 쥐가 아니라, 그 모습을 볼 사람들에게 더 나쁜 일이려나. 생명을 잃은 몸이 훼손되고 험한 꼴을 당하는 게 자연에서는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차에 밟히고 뭉개지고 그러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인가.
결국 나는 그 쥐를 다른 곳에 옮겨주지 못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신호가 바뀌었고, 나는 다시 가던 길을 갔다. 가면서 생각했다. 한달 쯤 전에 본, 공방에서 돌아오는 길 자전거 도로가 없고 인도에 인적도 드문 길에 있던. 많이 훼손된 라쿤 한 마리의 시체에 대해서.
그 길에는 유난히 자잘하게 떨어진, 버려진 쓰레기들이 많아서 처음에 멀리서 볼 때는 역시 떨어진 옷가지 같은 거겠거니 싶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조금 떨어져 자전거를 타며 본 모습은, 털이 있고 피가 있고 그 외의 다른 몸 안에 있어야 할 것들이 몸 밖에 있었다. 일이 있은 후로 시작이 좀 지난 듯 했다. 작은 쥐는 그나마 평안한 모습으로 누워있었지만, 이 라쿤은 누워있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 뒤로 한참동안 자전거로 그 곳을 지나쳐 갈 때마다 잠시 숨 들이마시기를 멈추고 미안해, 하고 작게 말하며 인도 위로 달렸다.
인간이 도시를 만들었지만 도시에 인간만 살지 않는다.
이 큰 엘에이라는 도시에도, 생각보다 정말 많은 야생동물들이 산다. 작은 쥐들과 다람쥐들이 많이 살고, 한국 만큼은 아니지만 바깥에서 생활을 하는 고양이들도 있고 주택가에는 심심찮게 라쿤이나 코요테도 다닌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 안에서도 라쿤을 본 적이 있고, 한동안 우리 베란다에서 고양이 사료를 먹고 가던 포섬도 있었다. 베니스 카날에는 야생 공작이 돌아다닌다고도 했고.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도시에 산다는 일이 얼마나 무정하고 끔찍한가에 대해 떠올린다. 그렇다면 시골에 산다는 건 어떤 일인가.
누군가 잘 살고 있던 땅을 내 집 만들겠다고 온통 갈아엎고 차지해 몰아낸 뒤, 그렇게 만든 공간에 침입하는 동물은 최소 쫒아내거나 죽이게 된다. 예쁘고 작은 소동물이라면 가끔 놀러오길 바라기까지 하며 대우하지만 징그러운 벌레이거나, 내 텃밭 농사에 해를 주는 동물이거나(예를 들어 두더지), 혐오스럽고 때로 위험하기까지 한 뱀 같은 동물의 경우에는 실제로 누가 누구의 주거지에 먼저 침입했는지에 관계없이 사람이 생존에 우위를 점한다.
시골에서는 로드킬도 더 흔하다. 시골의 도로는 주로 어둡고, 도시보다는 차들의 통행이 적은데 비해 동물의 통행은 빈번하고, 차량의 속도는 빠르기 때문에 상황이 더 나쁘다. 지리산에 살 때에도 길에 누운 동물들을 종종 보곤 했다. 집까지 닿아있는 비포장 도로에서는 그런 일이 드물었지만 그 바로 아래, 마을 길에서는 길에 누운 고양이나 개, 고라니를 보는 일이 결코 드물지 않았다. 그래도 그 곳은 엄연히 마을에서 관리되고 있는 길이라 그런 일을 겪은 동물들이 오래 방치되지는 않았다. 비록 모두가 곱게 묻히지는 못했을지라도, 마냥 치이고 또 치여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지는 않았다. 그게 그나마 나은 거라면 나은 일이었다.
연초에는 나와 친구가 타던 차에 사슴이 치여 죽었다. 차에 사슴이 치였다고 쓰니 이상하다. 차가 사슴을 치었다. 하지만 정말 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저녁도 아닌 한 낮의 도로에, 심지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앞 차가 주행하고 있었으니 길 위의 사슴을 못 보고 달렸을 리 없다.
나는 그저 조수석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내 눈 앞 유리창에 나타난 큰 덩어리를 보았고 바로 차에 큰 충격이 전해졌다. 나와 친구는 '뭐야? 이거 뭐야?' 하며 우선 직진을 계속했다. 그러다 뒤에 달려오고 있던 다른 일행들과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 갓길에 차를 세운 뒤, 정확한 상황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동물을 친 것이 맞았고, 다른 일행이 나와서 차를 한번 봐야겠다고 해 나가보니 생각보다 차가 많이 부서져 있었다. 길에 차가 줄줄이 서 있으니 근처에 있던 경찰차가 와 상황에 대해 물었다. 내가 탄 차를 운전하고 있던 친구를 비롯해 뒤에서 차를 운전하던 다른 친구들 모두 차에 부딪힌 후 부서져서 날아가는 사슴의 몸을, 우리 반대 차선에서 달려오던 차에 다시 부딪히며 그 차의 범퍼가 날아가는 것 까지 보았다고 했지만 경찰은 우리가 지나온 길에서 별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저 악몽처럼 여기기엔 우리 차 범퍼가 부서지고, 엔진룸에서 연기가 나고, 무엇보다도 동물의 털이 부서진 범퍼 주변에 붙어 있었다.
경찰에게 어떻게 신고를 해야 하냐고 물으니 도로 통행에 방해가 될 만한 것이 남겨져 있는 것은 아니기에, 신고를 할 것은 없다고 했다. 그렇구나. 차량 통행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동물이 차에 치여 죽어도 별달리 해야 할 일은 없는거구나. 그렇게 한 마리의 사슴의 삶이, 아무런 기록도 남길 필요 없이 도로 위에서 사라졌다.
차를 길에 세워두고 다른 차를 타고 타운에 내려온 뒤 우리 다섯은 스타벅스에 잠시 앉아있었다. 대체 무슨 상황이 일어난 건지 묻고, 뭔가를 본 친구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위로하고 위로받고, 사고처리를 위한 전화통화를 계속 하던 그 와중에 창 밖으로 '펫 호텔 / 펫 그루밍' 광고판이 보였다.
어떤 동물은 길에서 차에 치여 죽어도 리포트 할 필요도 없이, 그저 잊혀진다.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다.
어떤 동물은 집에 혼자 있을 수 없어서 호텔에 맡겨지고 미용과 관리를 받는다.
어떤 삶이 행복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마음이 복잡했다. 숨비의 '어떤이는 사랑하고 어떤이는 삼켰네' 가 떠올랐다. 나는 비건이 아니고 오히려 육식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자주 마음이 복잡한 사람이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한 동물의 삶이 끝나는 순간을 목도하고, 심지어 그 사건의 중심에 있게 되다보니 이게 맞나, 정말 이거면 되는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하이킹을 갔던 날이었다. 눈 쌓인 산과 나무, 그런 것들을 보겠다고 두시간 가까이 차를 달려 간 길에 그 사달이 났다. 차라리 도시에서 가만히 있을걸. 쓸데없이 길에 탄소 뿌리지 말고, 길에서 차로 동물 죽이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는거야 말로 자연과 환경에 기여하는 일이었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눈 앞을 가리던 갈색 덩어리. 그 순간까지만 해도 생명이 있는 사슴이었을, 부딪히는 순간 온 차를 흔들고 범퍼를 부술 만큼 크고 무거웠던. 확실한 그 몸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평생 못 잊을 것 같았던 그 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생의 일처럼 무뎌졌다. 내 삶에서 가장 오래 함께한 고양이 보리가 투병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로드킬과 펫호텔의 한 가운데서 마음이 복잡하던 사람은 어디가고, 어떻게든 내 고양이를 살려내고 싶은 이기적인 반려인만 남았다. 나와 함께 사는 고양이의 건강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내가 잘 모르는 얼굴들을 수천수만 제물로 갖다 바칠 수 있는 독한 사람만 남았다.
보리가 떠나고 보리가 다니던 병원에서, 응급실에서, 보험회사에서 애도한다며 카드 몇 장이 집으로 왔다. 비록 상투적인 문구이지만, 당신이 함께해줘서 보리는 행복했을거라고. 꼭 다시 만날거라고 손 글씨로 쓰인 카드는 마음이 아픈 와중에도 위로가 되었다. 분명 직원으로서 해야하는 업무의 일환에 불과했을테지만, 이상하게도 그 카드들은 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가 차로 친 사슴은 누가 기억해주고 있을까.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으니 사고 리포트를 할 필요도 없던, 그냥 잊혀진 죽음이었지만 누군가는 그 사슴을 기억해줄까. 어떤 사슴이었을까. 가족들이 남아있을까 .
가족들이 그리워할까, 내가 보리와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 처럼.
정말 모두 미안해. 그럼에도 결국 내 새끼가 가장 중요해서, 정말 많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