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보이는 것들 (4)

풀리지 않는 문제를 반려자와 진득하게 버텨 나가는 것

by 크로플

우리 부부는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난임부부도 많고 난임치료 자체가 일상화된 덕분에(?) 아마도 과거에 비해 난임진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정보를 얻기도 쉽고, 정서적인 지지를 얻을 동지들도 아주 많다. (단톡방도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자녀를 가지기를 원한다면, 난임은 자녀가 생기기 전까지는 풀리지 않는 숙제이기에

얼마나 걸릴지, 내 인생에서 이 숙제가 풀리기는 할지 막연한 걱정과 불안함 속에서 하루하루 나의 일과를 해내야 한다.


그리고 다들 겪는 문제라고는 하지만 난임은 굉장히 개인적인 영역의 문제이다 보니,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생기는 자존감 스크래치가 의외로 묵직하다.


성경 인물 중에 '라헬'과 '레아'가 있는데,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잔뜩 받았지만 자녀를 가지지 못했고, '레아'는 자녀는 많았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레아'가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자녀는 언젠가는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하는데,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무슨 소용일까? 하며 레아를 동정했다.


하지만 요즘은 라헬의 괴로움을 아주 조금이나마 헤아릴 듯하다.


작년 8월부터 설렁설렁 시작한 우리의 준비는 올해 3월부터 배란유도제를 먹고 주사를 맞으며 적극진료를 받았고, 6월에는 서울에 있는 유명한 난임병원에 가서 한나절을 대기하고 진료를 받는 일을 계속하며 '원인불명의 난임' 판정을 받았다.


그 동안 나의 친구들과 벗들은 하나 둘 임신에 성공하여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어디다가 말은 못하지만 참 많이 울었다. 부러워서.


용기 내어 감정을 털어놓으면서, 그런걸 왜 부러워 하느냐, 육아는 고생 시작이다와 같은 따뜻하지만 씁쓸한 위로와 충고를 먹으며 내 마음도 배가 부르었다. 그렇게 여름이 왔다.


계획되어 있던 여행 일정으로 인공수정을 한 번 건너 뛰고, 그래도 시술을 받기 전에 아가가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희망으로 한 달을 즐겁게 보냈지만 우리가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아이를 기다리면서 제일 괴로운 것은 기대와 실망의 반복이다.

여자 입장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달거리를 하기 전에 신체 변화와 감정 변화가 뚜렷해진다. 문제는 이것이 임신 초기 증상과 매우 비슷하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내가 모르고 싶어도 알게되는 신체의 변화를 감지하면 혹시 기다리던 임신은 아닐까 계속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주변의 후기들을 찾고, 후기와 나의 상황을 견주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몸을 조심하고 사리게 된다.



기대와 실망의 반복이 누적되면서 자괴감도 많이 들고, 원인을 끊임없이 나에게서 찾는 과정을 겪고, 새로운 주기에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자녀를 만날 준비를 하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감정 소모의 과정을 내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이 참 힘들다.




이번 달은 다행히도 내가 많이 지쳐서 기대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만,

막상 주치의가 임신 여부를 확인해보라고 지정해준 날짜까지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나 테스트를 하고 늘상 있는 결과를 마주했고, 화장실에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반복된 실패 덕분에 감정 기복은 덜해져서, 이번에는 울지 않고 하루를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침대로 돌아오니 남편이 자다 깬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고는 매우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울지 말라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누가 미안할 일이 아닌데도 결혼을 하고 나면 반려자의 슬픔에 내가 미안해질 때가 있다.

미안할 일이 아닌데 미안하다고 말하는 남편의 말에 눈물이 났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해하며

풀리지 않는 문제를 나름대로 열심히 풀어가며

올해를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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