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보이는 것들 (3)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것

by 크로플

결혼을 하고 싶었던 여러 이유들 중에는 자녀를 가지고 싶은 것도 있었다. 부모님이 주신 사랑이 감사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닮은, 그리고 나와 남편의 가족들을 닮은 작은 생명체를 키우면서 척박한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행복을 나누고 싶었다.


신혼 기간을 1년 정도 보내고, 작년 8월쯤부터 자녀를 가질 준비를 하고 있다. 워낙 힘들게 아이를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만 들었지 직접 체감해 보지는 못했다. 지금도 사실 나는 난임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니고 시험관을 시작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난임부부들이 느끼는 고충을 헤아리기에는 턱없이 경력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전에는 큰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꼈는데, 결혼을 하고 규칙적으로 돌아온 월경주기가 돌연 바뀌어서는 3개월이 넘게 생리가 지연된 적이 있었다. 임신을 기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흘려보내며 시간을 보냈고, 생리가 시작된 것을 확인한 이후부터는 배란유도제와 난포주사를 병행하며 자녀를 기다렸다. 배란 초음파로 양껏 자란 난포를 직접 보니 막연한 기다림이 기대감으로 바뀌었고, 그동안 의무감과 강박으로 해 오던 '커피 줄이기', '운동하기'와 같은 자기 관리를 기껍게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동기가 생겼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걷고, 뛰고, 덜 먹고, 즐겁게 보냈다.


배란이 임박했음을 확인하고 아이가 생기기를 기다리는 2주 동안은 행복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라는 미완의 무언가를 기다리며 기대하는 과정은 즐거웠다. 남편과 함께 나누는 미래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도 예전보다 현실감이 있게 느껴졌다. 수정이 되지 않았을 때의 상실감을 걱정할 겨를도 없이 즐거운 상상만으로 가득했던 시간이다.


자연임신의 확률이 20~25%라는데, 자연스러운 임신도 성공률이 높지 않은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임신이 아님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상실감이 느껴졌고 그날 하루 종일 내내 울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난임 기간을 1년 넘게 보내는 부부들은 매달 이런 슬픔을 마주하는 것인지, 난임 진단을 받으러 가는 그 과정은 얼마나 괴로웠을지, 그리고 번번이 시험관을 실패하는 부부들은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있을지, 마지막으로 나는 이 슬픔의 과정을 지속하는 일이 있더라도 자녀를 가지기를 원하는지.


아침에 운동을 하고 집에 온 남편은 하염없이 울고 있는 나를 보면서 무척 당황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는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위로의 말을 쏟아 냈다. 우리는 이제 자녀 준비를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았고, 자기 친구는 7년을 넘게 기다렸고, 이번에 안 되었으면 다음에 또 도전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리고 자기는 자녀 없이 둘이 살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머리로는 다 아는 말이었다. 백 퍼센트 타당하며 나도 동의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나 보다. 그날은 아무런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고, 내가 느끼는 감정은 성별의 차이로 인해 남편이 공감하기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공감대를 가진 친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문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날은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다니며 숨죽여 슬픔을 달랬다.


슬픔이 조금 지나가니 나도 모르게 원인을 찾게 되는 것이었다. 원인을 찾으려고 하면 찾을수록 나에 대한 죄책감만 늘어났다.교무실 옆자리 선생님이 주신 초콜릿을 받아서 먹으려다가도 '초콜릿 때문에? 군것질을 너무 좋아해서?'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마신 커피가 부족해서 스틱커피를 뜯을까 하는 순간에도 '혹시 카페인 때문에?'하는 생각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운동복으로 갈아입으면서는 '운동량이 부족했나?' 하는 생각이, 그리고 이런 의문들로 머리가 복잡해지자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나?'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내가 싫어졌다. 결국 수업을 하고 교무실에 와서도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남몰래 닦아냈다.


임신을 준비하면서 수없이 많이 읽은 '충분한 수면', '적당한 운동', '건강한 식단', '최소한의 스트레스'와 같은 조언들은, 적어도 아이를 기다리는 2주 동안 만큼은 가슴 깊숙이 새겨 듣고 싶은 좋은 말들이었다. 그러나 비임신을 확인한 이후에는 그 조언들이 모두 나를 겨누는 날카로운 칼처럼 느껴졌다. 소소한 즐거움이라 생각했던 커피 한 잔도 못 참고 마시니까 그렇지. 일하다 받은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그새를 못 참고 초콜릿을 먹으니까 그렇지. 집에 와서 피곤하다고 운동량을 줄이니까 그렇지. 육아에는 희생이 따르는 데 고작 이런 것도 못 해내니까 '아직 엄마가 될 준비가 안 된 것' 아니겠니? 라며 누군가가 나를 다그치는 것만 같았다.


생물학적 노산의 기준에 가까워지면서 나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조바심을 느끼게 되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어쩌면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까지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더한 난임의 시간으로 좌절한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마음을 편히 먹고 임신을 포기할 때 비로소 임신이 되더라는 임신 선배들의 조언도 셀 수 없이 눈에 담았다. 나의 삶을 오롯이 살아갈 수 있어야 나중에 아이가 생겨도 제대로 키울 수 있다는 말도. 너무나도 많이 들었다. 너무나도 많이 가슴에 새겼다. 가슴에 새긴 말들의 깊이 만큼 허탈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거의 없음을 받아들이고도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해야 득도의 경지에 이르는 걸까?


어쨌든 이런 사색과 좌절의 과정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가 아직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래서 다시 나의 삶을 살아갈 힘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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