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결혼을 하고 지역을 옮겨야 한다면
애지중지 기르던 로즈마리가 있었다. 향이 좋다는 이유로 덜컥 사 와서 기르던 로즈마리는 분갈이를 세 번이나 해야 할 만큼 무럭무럭 자랐다. 세 번의 분갈이에도 쑥쑥 자라주었기에 당연히 네 번째 분갈이에도 잘 자라 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네 번째 흙에 로즈마리는 적응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 수명을 다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로즈마리는 생각보다 섬세한 식물이었고 겨울보다는 봄가을에 분갈이하는 게 좋았다고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주인은 단순히 화분이 작아서 힘들 것이라는 이유로 한겨울에 분갈이를 했었다. 화분이 더 커지고 채워놓은 흙이 좋아진다고 해서 식물이 더 좋아할 것이고 잘 자랄 것이라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식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성질을 무시한다면 아무리 좋은 화분에 좋은 흙이라 하더라도 생장하며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잘 자라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버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혼을 해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 분갈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사를 자주 해 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배우자가 자신을 섬세히 신경 써줄 것을 기대하며 지역을 옮기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연애 초기만큼 섬세히 신경 쓰는 것이 불가능할뿐더러 결국 적응은 지역을 옮긴 당사자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지역을 옮기는 일에 있어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걸림돌은 아마도 직장일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직장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공무원이기에 지역을 옮긴다고 해서 당장 밥줄이 끊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 후 지역을 옮기고 전업주부가 되어야 하거나 직종을 바꿔야 되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삶에서 본인의 직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숙고해 보았으면 한다. 만약 직업이 본인의 자아실현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이사 후 적응하는 동안 괴로울 수 있다.
그리고 본인이 이사를 간 후 무엇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지 미리 생각해 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기를 바란다. 나의 경우 어릴 적부터 사람이 드글거리는 서울이 너무나도 싫었고 자연을 좋아하기 때문에 강원도살이가 힘들기는 해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동안 내가 서울에 살면서 즐겼던 것은 ‘바쁨 속 한가함’이었지 ‘끊임없는 한가함’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이사 후 문화생활이 어렵다거나 편의시설이 부족한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은 가만히 있어도 이미 많은 것들을 하게 되지만, 한적한 시골은 가만히 있으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가 마음을 먹고 찾아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이사 온 당사자를 배우자가 배려해 줄 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배우자가 나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결혼 후 일상에 배우자가 추가된 사람과, 결혼으로 배우자가 추가되며 일상이 바뀐 사람의 삶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이사 후 지역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대방이 내가 적응할 때까지 배려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배우자의 도움 없이도 본인이 적응할 수 있겠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향수병이 왔을 때 배우자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도 이해하려고 노력할 사람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