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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플 Apr 09. 2021

꽃이 떨어져도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면


3월과 4월은 아이들과 선생님 사이의 탐색전이 고요하면서도 치열하게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선생님은 선생님 나름대로, 작년과 올해를 비교하면서 나름의 견적을 낸다.


중학교 2학년이 된 우리 반 아이들은 학교생활 경력 7년 차인 베테랑 학생으로서 담임선생님인 나에 대한 견적서를 마음속에 품고 있을 듯하다.  이번 담임은 어떤 성향의 사람이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어리광 또는 장난을 어디까지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며 '자유'와 '통제'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한 교사인지 제 나름대로 판단을 했지 싶다.


3월 꽃샘추위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찬바람에 웅크린 채 언제 꽃망울을 터뜨릴까 눈치 보며 초록 이파리를 먼저 돋우는 꽃나무처럼, 보통 3월에는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가 따스한 봄바람이 느껴진다 싶으면 사방에서 서로 경쟁하듯 꽃망울을 터뜨린다.


아이들 역시 교실의 공기가 익숙해질 때 즈음 각자의 개성을 마구 뽐내기 시작한다. 장난기가 심한 아이, 수줍음을 타는 아이, 사춘기의 절정에 다다른 아이들이 제 목소리를 내며 저마다 어른이 되기 위한 발돋움을 한다. 교정 너머 뒷산에 매화, 벚꽃, 개나리, 철쭉이 흐드러지는 것처럼, 우리 교실에서는 25명의 아이들과 한 명의 선생님이 왁자지껄 떠들며 꽃을 피우고 새싹을 틔우고 있다.



담임교사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이들이 저마다 피워내는 꽃을 '개성'으로 볼 것인지, 조경을 해치는 '잔가지'로 볼 것인지 교육적인 감식안으로 판단하고, 아이의 특정 행동이 정리해야 할 잔가지라고 느껴진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지치기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직업이 그러하듯, 경험이 쌓이면 견적이 나온다.


아이들도 조금씩은 차이가 있지만 학년 전체의 관점으로 보면 사고의 유형과 발생 시기, 빈도는 일정한 흐름을 탄다. 그러다 보니 각 반에서 어떤 성향을 가진 아이들은 언제쯤 어떤 행동을 할지, 이것이 어떤 문제행동으로 규정될지 어림잡을 수 있게 된다.


교내 흡연으로 적발된 아이를 두고 신규교사와 나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올해  담임을 맡은 선생님은 자기  아이가 조사를 받는 대상이라는 것만으로도 화가 난다며 속상해했고, 나는 화를 내기보다는 그저 ‘ 것이 왔구나' 하며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지도할까 대책을 강구했다.


신규 선생님을 보고 있자니 교내 방송으로 우리  아이들이 생활지도부에 불려 가는 소리만 들어도 명치가 답답해졌던, 그래서 아이들에게 "누가 가슴을 꼬챙이로 쑤시는 것처럼 아프니 제발 불려 가지 말아라"라고 신신당부했던 나의  담임 시절이 떠올랐다.


동시에 '아까 나는 화가 나지 않았을까?' 고민하다가 깨달은 것은,  역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월별로 사고(?) 치거나 문제가   있겠다 싶은 아이들을 미리 예측해 보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예전과 달리 아이들을 나의 감정과 분리해서 객관화할  있었기에  명치는 아프지 않고 편안했던 것이었다.


동시에 내가 예전처럼 온몸을 다해 아이들을 대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의 모든 마음과 체력을 다해 아이들을 챙길 수는 있겠지만, 나도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간인지라 내 몸과 마음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공교육의 주요 목적  하나가 사회화이기 때문에, 교사는 아이들을 대할  어떤 부분에서만큼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축적된 나만의 경험과 공교육의 목적을 근거로 아이들을 조각하고 재단하는 나의 단면을 보니,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담임교사가 되어야 할까?”라는 묵직한 물음이 수면 위로 올랐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통제되어야 하는 아이들의 잔가지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잔가지를 쳐내는 과정에서 어떤 꽃망울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잘려나가기도 하고,

정말 예쁘게   있는 꽃봉오리가 앞서 잘려나가는 잔가지에 부딪혀 땅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떨쳐내야 하는 꽃잎을 보면서 마음 아팠던 예전과는 달리

'이 꽃은 어쩔 수 없이 떨어지겠구나' 하며 아이들의 잔가지를 먼저 쳐내려고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나는 어떤 담임선생님이었을지, 올해는 어떤 담임선생님일지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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