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연수 흔적 남기기
토의 주제: 왜 살아가는 데 질문이 필요할까? 질문은 어디까지 우리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나누어준 학습 플래너 귀퉁이에 있던 프랑스 문학가 폴 부르제(1852~1935)의 말이다. 매일 자습시간에 필사해야 했던 수많은 글귀 중 하나였던 이 말은, 생명력이 있는 문장으로 내 마음에 들어와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잠언이 되었다.
교사로서 매해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함께 한해를 일구어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나의 학창시절을 돌아보게 된다. 변화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래서 불안하고 또 흥미진진한 청소년기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끊임없는 질문’이었던 듯하다.
살아가는 데 질문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질문을 해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은 답을 요구한다. 질문을 하면 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고, 공부하고, 탐구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사회적 통념이나 관습도, 질문을 하는 순간 재해석의 여지가 있는 미완의 상태가 된다.
삶에 있어서 질문은 배의 키를 조종하는 조타장치와 비슷하다. 망망대해와 같은 인생에서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개인의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어떤 질문을 얼마나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기도, 오히려 편협해지기도 한다. 깊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평소에 깊이 있는 질문을 하며 살아야 한다.
이번 연수를 통해 아래의 두 가지 질문을 만들었다.
하나는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나는 제대로 알고 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가?’이다.
손가락으로 터치만 하면 전문적인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기술의 진보는 창의적이고 고차원적인 사고 능력을 갖춘 인재를 요구한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생각하는 방법을 모르는 듯하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질문해야 할지를 배운 적이 없어서일까? 아이들은 부모나 어른의 입력값이 없으면 아무것도 산출하지 못하는 기계처럼 교실에 앉아 멍하니 스크린만 바라본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에게 익숙하고 접근하기 쉬운 정보만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과정에 익숙해지며 세상을 보는 시야가 흐릿해진 채로 어른이 되는 아이들을 떠나 보내면서, ‘사는 대로 생각하는’ 성인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