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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로플 Nov 18. 2021

겨울을 나는 동생에게 보냈던 편지

매년 수능 때가 되면 떠오르는 이야기

수능 감독관 회의 끝자락에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감독에 임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들었다.

아직 부모도 아니거니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기에, 언니(누나)의 마음으로 감독을 했다.


2021년 11월 18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일.

정해진 목표가 있든 없든, 대한민국 수험생으로서 꾸역꾸역 달려온 최소 1년의 결실이 결정되는 날이다.


시험 시작 전, 적막한 교실에서 수험생들은 저마다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모의고사 등으로 예행연습을 충분히 했거니와, 전혀 의심할 여지없는 휴대 가능 물품을 소지하고 있음에도

고사장의 수험생 중 몇몇은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까지 놓치지 않고 감독관에게 물어보았다.

1교시 종료 10분 전이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 황급히 답안지를 마킹하는 수험생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측은했다.

4교시 탐구영역 시험을 모두 마치고 답안지와 문제지를 모두 제출한 수험생들의 눈빛은 지쳐 있었다.

대학 입시를 위해 달려온 3년이라는 시간의 결실은 수험표 뒷면에 붙인 가채점표 스티커에만 남아 있었다.

퇴실 안내 방송과 동시에 수험생은 모두 자리를 떠났다.


살면서 무언가를 치열하게 몰두해서 해야만 하는 순간이 여럿 있는데, 수능은 아마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정도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경험하게 되는 '몰두'의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히고, 그 결과가 하루만에 증명되는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수능일에 몰려오는 그 헛헛한 기분을 헤아리리라 생각한다.




2018년 서울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2018년 1월 16일, 서울의 최저 기온은 영하 18도였다.

'모스크바보다 추운 날씨'라는 헤드라인이 뉴스를 장식하던 시기에 우리 집 막둥이는 재수학원을 갔다.


막둥이도 대학 진학의 꿈을 남몰래 가지고는 있었다. 하지만 앞선 3남매 언니 오빠의 대학 진학 과정을 보며 등록금을 포함한 부대비용의 무게를 체감한 동생은, 고등학교 졸업 후 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을 다녔다.


그리고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하며 느낀 삶의 무게와 서러움을 바꾼 돈으로 동생은 재수학원을 등록했다.


 서 있기도 힘든 그 추운 날씨에 새벽같이 가방을 이고 학원까지 걸어가는 동생은 오롯이 모든 추위를 견뎌야만 했을 것이다. 남들보다 늦은 공부를, 자신이 모은 돈을 써가며, 1년 안에 3년 치 공부를 해야 하는데,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그 추위를 말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한겨울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꾸준히 걸어가야 할 동생에게

단단한 자신감을 주고 싶어 썼던 편지를 아래에 옮겨 본다.




겨울을 나는 너에게


겨울을 나는 너에게

모스크바보다 추운 서울이

사실은 봄보다 따뜻하다고 하면

너는 믿을 수 있을까?


봄에는 새싹 같은 마음으로 사과나무가 될 미래를 그리고

여름에는 울창한 나무가 되어 모진 비바람을 견뎌낸 너

하지만 가을이 되어도 사과가 열리지 않아 슬픈 너는

바싹 마른 채로 힘없이 바스라졌다.



겨울은 다가올 봄을 준비하는 인고의 시간이라는데



사실 너는 가을부터 겨울을 나고 있었단다.

어쩌면 네가 견딘 여름 비바람도

사실은 눈 섞인 겨울비였을지도 모르지.


모든 계절은 겨울과 맞닿아 있다.

그러니 너는

겨울에 싹을 틔우고

겨울에 비바람을 버티고

겨울에 열매를 맺을 사람이다.


그러니 지금의 너는,

지금 너의 겨울은

조금만 지나면 곧 사과가 열릴

봄보다 따뜻한 시간이다.


겨울을 버티는 너는

겨울에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그만큼 단단한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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