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담임 이야기
2020년 코로나19가 교육 현장을 뒤흔들었을 때, 교무기획을 하면서 지난해를 돌아본 글이다.
어느 부장님이 나더러 '담임을 하면 유난히 골치 아픈 아이를 맡을 상'이고, 담임을 안 해도 '일이 몰릴 상'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비담임으로 행정업무를 하면 업무에 마음을 덜 써도 죄책감이 크지 않다. 하지만 담임은 다르다. 내가 아이들에게 마음을 덜 쓰겠다고 결심할 수는 있지만, 담임 맡은 반 아이들에게 막상 그러려고 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아이들을 챙기다가 지쳐서 나를 챙겨야겠다는 생존을 향한 몸부림을 치다가도, 결국에는 없는 마음을 쥐어 짜내서라도 아이들에게 마음을 내어 주고 1년을 마무리하는 게 나의 담임 생활이었다.
2019년은 정말 힘든 해였다. 반에 힘든 아이들이 많았다. 소위 말하는 '힘든' 아이, 또는 '골칫덩이' 아이 한 명은 다른 아이보다 3~4배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남아나지를 않았다. 단순히 아이들이 나와 안 맞아서 힘들었다기보다는, 어려운 경제적•정서적 환경에서 본의 아니게 방치되어 온 아이들을 찬찬히 마주하는 시간이 힘들었다. 문제행동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어른인 나조차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를 아이들이 어깨에 짊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기억나는 아이가 있다. 1학년 때 학급 회장도 하고 공부도 잘할뿐더러 교우 관계도 좋은 아이였다. 그러나 2학기에 갑작스레 가정에 안 좋은 일이 생겼고, 이 아이는 뜨거운 열을 받아 운동하는 분자마냥 이리 튀고 저리 튀기 시작했다.
1학기 때 학급 뮤지컬 주연 배우까지 하던 이 친구는 2학기 들어서부터 출결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학교를 아예 안 올 배짱도, 그렇다고 성실하게 등교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담임에게 못 온다고 연락을 했고, 담임이 잠깐이라도 좋으니 학교에 오라고 하면 오후에 잠깐 등교는 했지만 교실에 들어가기 싫어하며 매시간 교무실에서 담임선생님이랑 상담을 요청했다. 8월 말부터 종업식 전날까지, 출석을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은 계속되었다.
분자운동을 열심히 하던 그 아이는 종업식에도 오지 않았다. 학기 내내 그랬듯 미인정 결석이었다. 마지막 날은 그래도 담임 얼굴이라도 보러 올 줄 알았다. 학교 가기가 싫어서 떼쓰고 싶은 마음, 그 아이가 느끼는 답답함과 슬픔보다는 그래도 1년을 보낸 담임에 대한 예의가 앞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종업식 날 학교에 온 것은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가 아니라 '죄송합니다'라는 문자 한 통이었고,
이때 처음으로 담임을 하며 무력감을 느꼈다.
그래서 다음 학기에는 기필코 비담임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듬해 봄, 온라인 개학을 준비하면서 계속되는 회의에 지칠 때 즈음, 분자운동을 하던 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겨울 방학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이후 나에게 안부를 묻는 연락이었다.
그 아이는 분자운동이 끝난 듯 평온한 목소리로 전학 간 학교 일상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나서 살짝 쭈뼛거리더니 ‘사실은 선생님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는’ 말을 했다. 반갑고 참 기뻤다. '내가 한 고생이 쓸모없지는 않았나 보다' 하는 생각과 함께 뿌듯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한 치 앞을 모르고 질주하는 아이들이지만, 주변에 부모님이든 아는 언니 오빠든 선생님이든 '자기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어른이 있는 아이들은 그런대로 잘 큰다. 한부모 가정이든 경제 형편이 안 좋든 간에 이리저리 튀는 감정을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믿을 만한 어른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아이들은 걱정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어른이 없는 아이들은 마음속에서 들끓는 에너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끙끙 앓다가 그대로 터뜨린다. 부모님이 상담도 받고 학원도 보내고 하고 싶은 건 다 지원해주겠다고 해도 아이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어른이 없다고 생각하고,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동년배 친구들을 찾아 집을 나선다.
비슷한 환경에서 어른들에게 외면당한 아픔이 있는 친구들을 학교 밖에서 만나고, 현실적인 대책 없이 끈끈한 우정만 믿으며, 이들은 힘든 인생을 헤쳐 나갈 궁리를 한다.
어른의 경험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살길을 찾지만,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세상과 부딪치며 가족과 학교와 멀어지고, ‘힘든’ 아이들이 된다.
내가 있는 학교는 ‘힘든’ 아이들이 종종 생기는, 그래서 더욱 '믿을 만한 어른'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다.
튀는 행동과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며 '인생을 잘못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실제로 그렇다 할지라도, 이들에게 언제든지 자기 말을 들어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어른이 곁에 있다면 금세 스스로를 고쳐 나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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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 가르치는 과목은 국어이지만, 국어를 잘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남기보다는 '어쨌든 끝까지 나를 믿고 기다려 준 선생님'으로 기억에 남고 싶다.
학창 시절에는 스쳐 지나가는 여러 선생님 중 한 명일 지라도, 나중에 성인이 되고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다 지쳐 학창 시절을 떠올릴 때, 철없던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기다려 준 선생님으로 내가 잠깐이라도 떠오른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