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인터뷰 #7: 청춘작당 프로젝트 민찬양 대표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 리듬을 알 수 없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날들, 그 속에서 새로운 항해를 준비하는 사람을 만났다. 곡성에서 100일 동안 살아보며 청년이 귀촌할 수 있는 터전과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젝트, ‘청춘작당’의 두 번째 항해다. 청춘작당을 이끄는 것은 귀촌 3년 차가 된 민찬양 대표. 청춘작당 참가자들이 100일 동안 지낼 숙소로 입주를 시작한 날, 그와 함께 죽곡면 강빛마을로 향했다. 사람들을 안내하고, 짐을 나르고, 스태프들과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 바쁜 하루지만 짬을 내어 청춘작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청춘작당 프로젝트의 지향과 현재의 고민을 묻고 답하는 자리였다.
안녕하세요, 찬양 씨. 폭염이니 코로나니, 뭐 하나 쉬운 게 없는 시작입니다. 준비하는 마음이 많이 분주할 것 같아요.
네. 수도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서 긴급하게 결정해야 할 것도, 통제해야 할 것도 많아 정신없네요. 그래도 시작만 넘기면 다시 원래 리듬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정신 차리고 해보려고요.
청춘작당은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한마디로 하면 '청년 귀촌 프로젝트'에요. 귀촌에 관해 관심은 있지만 현실적인 장벽이 높다고 느끼는 청년들이 많은데요, 100일 동안 직접 살아보면서 그다음 스텝을 귀촌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디딤돌이 되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찬양 씨는 이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가요?
저는 현재 청춘작당 협동조합의 대표로 있어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참가자를 모집하고, 홍보하는 일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서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죠.
귀촌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느끼는 현실적인 장벽이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말하나요?
아무래도 지역엔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문제죠. 청년이 정착하기에 일자리나 거주지가 현저히 부족해요. 정보도 입소문을 통해서만 전달되고, 공유가 잘 안 돼요. 이런 부분이 정착에 있어 어렵게 다가올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해요. 또 서울 같은 대도시는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만, 지방은 공동체적인 성향이 강한 곳이니 개인으로 왔을 때는 아무래도 적응하기 힘든 환경이에요.
그렇다면 찬양 씨의 귀촌은 어땠나요? 이런 어려움을 찬양 씨도 느꼈던 건가요.
저는 함께 일하는 친구 부부가 먼저 귀촌하고,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귀촌하게 된 케이스에요. 저는 여기서 산 지 이제 3년 차가 되었는데, 얼마 전에 지금 사는 집을 다 짓고 입주했어요. 언급했던 문제들은 모두 제가 느끼고 겪었던 건데, 집도, 일자리도, 공동체에 스며드는 것도 혼자 힘으로는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찬양 씨가 겪었던 어려움을 덜어내고, 먼저 귀촌한 사람의 노하우를 전달하려는 프로그램이 바로 ‘청춘작당’이 되었군요.
그렇죠.
그렇다면 처음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이 낯선 지역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었어요. 이런 환경이 정리돼야, 100일 이후에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역을 알아가고, 적응해가고, 여기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경험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100일을 처음 20일, 중간 50일, 마지막 30일로 나눠서 총 3개 구간으로 운영해요. 제가 처음 귀촌했을 때는 오자마자 분주하게 일을 시작해서 아쉬웠거든요. 그래서 처음 20일을 따로 빼서,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고 지역을 알아가는 시간으로 잡았어요. 중간 50일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기간이에요. 농업 외에도 다양한 영역의 프로젝트를 준비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두루두루 알아볼 수 있게 했어요. 마지막 30일 기간은 지금까지 달려온 시간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으로 정했어요.
청춘작당 프로젝트는 경험은 실제로 지역에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100일 이후의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해요.
숫자만 보면 충분히 성공적이죠. 처음 시작할 때는 곡성에 1명만 정착해도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8명이 정착해서 지내고 있거든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느끼는 것과 수치는 차이가 있어요. 일자리나 주거지를 마련하는데 운영진이 최선을 다해서 개입하고 연계하지만, 개개인에게 100% 맞는 환경을 조성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더라고요. 아직 결과를 판단하기보다는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라 보면 될 것 같아요.
청춘작당 1기는 작년 9월에 시작해서 12월에 끝났어요. 처음 시작할 때 예상한 것과 실제로 진행했을 때 가장 달랐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참가자들끼리 이렇게까지 끈끈한 관계를 만드실지 정말 예상하지 못했어요. 물론 싸우기도 하고, 사이가 안 좋아진 경우도 있지만 100일을 끝까지 함께 한 사람들끼리는 분명한 연결고리가 생긴 것 같아요. 지금도 쉼이 필요할 때면 곡성에 놀러 오세요. 그런 식으로 곡성이라는 지역이 그분들께 자리 잡을 거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죠. 사실 개인에게는 이미 존재하는 저마다의 삶이 있는데, 허물없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반전이었어요. 그런 게 청춘작당 1기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해요.
물리적인 환경을 조성하지 않아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하나의 거점이 된 거네요.
네. 사실 곡성에 남은 1기 친구들도 인프라가 좋거나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남았다기보다 여기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남은 경우가 많아요. 물론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해서 취업이나 창업을 하기에 이곳이 알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사람 때문에 어려운 점이 생기지만, 사람 때문에 또 다른 시작도 가능해요.
청춘작당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처음 홍보를 시작하고 가장 처음 문의 전화를 주신 분이 1기에 참여하셨어요. 그분 별명이 ‘인간 중에서 가장 차가운 인간’이에요. 말을 길게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감정 표현도 잘 하지 않는 분이었거든요. 근데 그분이 마지막 날에 저한테 오셔서 고맙다고 하며 우시는 거예요. 그때 정말 눈물이 나더라고요. 처음 통화했던 것부터 생각나면서 고생했던 게 다 보상받는 기분이었어요.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요.
혹시 왜 고맙다고 했는지도 물어보셨나요?
아뇨. 그때도 별말 안 했는데(웃음). 고생했다고, 애써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그럼 아쉬운 순간도 있으세요?
참여자들과 원하는 만큼 친해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 많이 아쉽고 후회도 돼요. 허물없이 지내고 싶은데 대표라는 역할을 맡고 있다 보니 참여자분들도 저를 배려해서 사소한 어려움이나 사적인 것들은 말씀을 잘 안 하세요. 저 또한 모두와의 관계를 고르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느라 마음껏 표현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요. 대표라는 역할이 있고요. 제가 원하는 만큼의 친밀한 관계는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청춘작당 프로젝트가 꿈꾸는 목표가 있나요?
또래 청년들이 모여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요. 사실 인구 불균형은 나라의 전반적인 문제잖아요. 수도권에만 인구가 집중되고 다른 지역은 쇠퇴하는 거요. 골고루 분포되어 살 수 있다면 다양한 문제들이 해결될 텐데, 그런 것들이 순환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을 만드는 게 청춘작당의 현재 목표에요. 지금 할 수 있는 건 청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모델을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고요. 물론 청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가 어울려 사는 게 가장 좋은데, 지금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청년층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거라 여기에 집중하고 있어요.
지역의 원주민들도 청춘작당 프로젝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편인가요? 아니면 아직 가까워져야 할 사이인가요.
사실 여러 시선이 있는 듯해요. 청춘작당 참가자들을 환영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함께 무언가를 하자고 제안해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언젠가는 빠져나갈 거라고 사람들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전체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것 또한 청춘작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청년과 지역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게 우리 몫인 거죠. 지역에 어떤 유익이 가는지 지속해서 보여드려야 이런 인식들이 개선되지 않을까 싶어요.
여러모로 부담되는 일일 것 같아요. 인구수도 적은 지역이고, 말씀하신 것처럼 새로운 변화를 만들려는 것에 누군가는 반감을 품을 수도 있으니까요.
맞아요. 청춘작당 친구들을 대표해 앞에 나서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사람이 사람과 하는 일이다 보니 제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이런 게 부담이 된다기보다는 ‘내가 감당해야지, 우리가 감당해야지’라는 마음은 있는데 역량이 따라와 주지 않을 때의 스트레스가 있어요.
어깨가 무거울 것 같아요. 그런 책임감을 품을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지역을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만들어야지, 하는 식의 사명감은 별로 없어요. 실질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밑그림을 그리는 건 모두의 일이라 생각해요. 제 개인적인 동력은 사람에 대한 마음이에요. 이 사람이 내가 하는 일을 통해 행복할 수 있다면, 유익함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찬양 씨의 귀촌 생활은 어떤가요? 최근에는 집을 지었다고 들었어요.
네. 이제야 좀 우리 집이다 싶은 마음이 들어요. 집을 짓기까지 어려운 점이 많았는데, 결국 완성해서 입주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있어요.
아까 사명감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직접 집을 짓고 다른 사람을 위한 주거 환경을 마련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정말 어떤 사명감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 같은데요.
처음에는 저도 너무 오기 싫었고, 이런 일들을 감당하기 싫었어요(웃음).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기숙사 학교에 다녀서 공동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어요. 그게 지긋지긋해서 이젠 나만 챙기면 되는 곳에서 살고 싶었는데, 어쩌다 곡성으로 오게 됐고 생각이 점점 바뀌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이런 일을 하고 싶어서 온 건 아니지만, 하다 보니 이 일이 가치 있다는 생각이 제 안에 쌓여가요. 저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이것이 내 능력에 맞거나 발전시킬 수 있는 일인가 보다는 이 일이 가치 있는가가 좀 더 크게 작용하는 사람이에요. 일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계속해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청춘작당 홈페이지에 참가자들을 위한 편지를 올려두셨어요. ‘곡성살이를 함께하며 당신 삶의 중요한 것들을 깨달아가기를 바란다’는 표현이 인상 깊어요. 이제 시작하는 청춘작당 2기 참가자들이 얻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요?
아무래도 사람인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한테 좀 남았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참가자들은 다양한 마음을 가지고 곡성으로 오세요. 예를 들어서 돈 걱정 없이 지낼 시간이 필요했는데 여기 와서 그런 시간을 보내며 마음의 여유가 생겨 앞으로 다양한 것을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는 사람도 있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삶을 이어가는데 원동력이 됐다는 사람도 있어요. 저마다 계획하던 것들을 얻어 가겠지만, 사람을 얻어가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서로가 서로한테 좋은 친구가 되고, 좋은 원동력이 될 수 있게요.
청춘작당 2기를 통해 가장 중요하게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청촌’이라는 마을을 조성하려고 해요. 청년들이 거주하는 공간도 만들고 일자리를 연계하는 등 다양한 분야를 통해 마을에 정착할 수 있게 시스템화하려고 사업을 지원받아 준비하고 있어요. 청춘작당 2기를 경험한 뒤, 귀촌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청촌으로 무사히 연결하는 것이 2기 프로젝트의 목표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민찬양이라는 개인이 청춘작당 2기를 통해 얻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요?
저 역시 사람을 얻어가면 좋겠어요. 계속 같이 갈 수 있는 사람. 저는 여기서 계속 살아갈 테니 함께할 사람이 있다면 좋겠죠.
찬양 씨는 귀촌 생활 대부분을 청춘작당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운영하며 보냈잖아요. 이 일 말고 다른 걸 할 수 있다면 곡성에서 어떤 일을 해보고 싶으세요?
저는 동화를 진짜 좋아해요. 동화는 전달하는 메시지가 굉장히 직설적이라, 그런 점이 안전하다고 느껴져서 좋아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책방을 만드는 게 제 오랜 꿈이에요. 도시에 가면 없는 게 없잖아요. 근데 여기는 상대적으로 공백이 많아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기에 좋은 환경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어떤 한계는 분명히 있겠지만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이 셋만 모여도 ‘사회생활’이 시작된다고 하는데, 서른 명이 넘는 다 큰 성인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꾸리고 100일을 부대낀다니. 그리고 그동안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을 책임진다고 생각하니 찬양 씨의 도전이 참으로 ‘무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것은 언제나 근사한 일,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시작되기에 참으로 두근거리는 일이다. 그 연결의 장을 만들고,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지역이, 지역과 사람이 연결될 수 있도록 힘써 돕는 찬양 씨의 존재가 그래서 빛난다. 더운 여름날, 강빛마을을 부지런히 누비며 땀 흘리는 그 얼굴에서 어떤 만남이 시작되고 또 퍼져나갈지. 그 사랑의 힘으로 100일 중 첫 번째 날이 무사히 지나간다.
글 | 제소윤
사진 | 송광호
본 콘텐츠는 웹매거진 농담(nongdam.kr) 7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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