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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Apr 05. 2022

며느리, 남김없이 쓰기로 하다.

상처를 명명하고 기록하고 의심하지 말기를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어떤 상처는 금세 아물지만, 아닌 것들도 꽤 많다. 상처 하나 없이 샛말간 사람이 있기는 할까. 그래도 나는 그런 류의 상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 전까지는 말이다.               


결혼 후 시어머니 영희씨와의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나는 작게든 크게든 꽤나 많은 상처를 받았다. 이것을  '상처'라고 인지하고 명명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동안은 그저 일련의 사건, 잇따르는 나의 불편한 감정, 단상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무엇 정도로 여기고 말았다. 그리고 이 정체불명의 것은 해소되지 못한 채 쌓여만 갔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이다. 영희씨를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영희씨는 자꾸만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결국 탈이 났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영희씨가 나에게 했던 말과 행동, 그때의 내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졌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 나 자신에 대한 혐오, 거기에 영희씨에 대한 미움이 더해지면서 마음이 날마다 힘들어졌다.


왜 나는 그녀의 무례한 언행으로부터 자신을 지키지 못했나, 그녀는 나에게 왜 그런 말들을 했을까, 나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인가. 끝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무엇하나 깔끔히 떨어지는 해답은 없었다. 내 마음을 헤집어 놓고서도 마음 편하게 잘만 지내는 그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내 상처를 알 리가 없는 나의 시아버지, 영희씨의 남편은 나에게 종종 "우리는 너를 딸같이 생각한다." 하신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저희 엄마는 저한테 그렇게 안 하셔요."

                 



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이 모든 것이 '상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깨달았다. 영희씨가 나에게 마구 던져놓은 말들에 내 마음에 수많은 상처가 생겼다. 제대로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둔 상처는 덧나고 아물지 않음은 물론이고, 더 큰 상처로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로 마음먹었다.


자기 몫으로 남겨진 상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오롯이 자기만의 숙제다. 모른 척 묻어두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갈지, 시시때때로 꺼내보며 살아갈지, 상처 준 이에게 되갚아 줄지, 아니면 상처를 자기에게서 영영 떠나보낼지. 당연하게도 나는 마지막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이 사실을 깨달은 그날 밤,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영희씨가 나에게 했던 상처 주는 말-혹은 내가 상처받은 말-과 행동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한 것이었다. 한밤 중 메모 앱을 켜고 첫째, 둘째, 셋째... 그녀와의 일들을 쭈욱 적어 내려갔다.


내 기억력은 평소에도 꽤나 좋은 편인데, 덕분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영희씨의 말, 행동, 표정, 그리고 나의 반응까지 모두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비단 좋은 기억력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오래 마음속에 새겨두고 묻어두고 꺼내보았기 때문이겠지. 개조식으로 적어나가는 데도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잠들 시간도 한참 지난 새벽이었건만 이상하게도 나의 머릿속과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간 나는 영희씨와의 일들에 대해 남편에게, 친구에게, 동생에게 하소연해왔다. 그런데 돌아보니, 막상 내 경험을 나에게 설명해본 적은 없었다. 명료한 언어로 나의 경험을 정리하다 보니 그 경험과 나의 감정에 보다 깊이 다가갈 수 있었다. 그렇게 끄집어내고 털어내다 보니 가벼워졌나 보다. 나는 남은 상처를 깔끔히 털어내 버릴 마지막 수단으로 글쓰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지난 몇 년 간의 일들을 써내려 갔다.


'당신도 나에게 나쁜 의도만을 가지고 한 말들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나에겐 꽤나 상처가 되기도 했고, 당신에 대한 기억들이 내가 살아가는 데 짐이 되네요. 나는 내 인생을 지켜낼 의무가 있어요. 그래서 이제 나는 당신이 준 상처에서 벗어나려 해요. 나 자신으로 자유롭게 살아갈 테니 당신도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기를 바라요. 나도 나를 지켜낼 테니.'


되뇌고 되뇌며, 나는 상처로부터 나를 지키기로 선택했다. 



                         

개인이 일생을 살아내며 겪는 모든 경험은 나름대로 의미를 가진다. 경험 자체로도 가치 있는 것일 수 있고, 그로 인한 감정이나 생각 역시 고유한 것이기에 소중하다. 누구도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그런데도 과거의 나는 '나 혼자 불편한 건가, 내가 틀린 건가, 그저 별 일 아닌 건가.'라는 자기 검열에 빠졌던 적이 많다. 내가 느끼는 불편한 감정들의 원인을 내가 예민하다는 데서 찾으려 했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 오로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이 감정은 옳고 그름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둥글지 못해서 어찌 살래, 때때로 볼멘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모난 사람들은 모난 구석이 맞는 사람들이랑 잘 살아진다. 그러니 걱정들 말고, 내 경험과 감정의 정당성을 찾으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면 좋겠다.


말해보려 노력하고, 만약 말이 힘들다면 무엇이든 적어보기라도 하면서 내 언어로 감정과 경험을 설명해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나와 가족이라는 작은 세계에 미묘한 변화를 만들어 낸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더 바라자면, 말하고 적으면서 기억과 상처를 꺼내보는 며느리가 더욱 많아져 그 말과 글들이 세상을 돌고 돌았으면 좋겠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에게 상처 준 그녀 혹은 그들에게도 우리의 메시지가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들이 자신을 돌아보며 부끄러움을 느끼고, 무례한 말과 행동에 상처받았을 가족 누군가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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