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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Aug 10. 2023

어머님은 나이키가 싫다고 하셨어

영희씨는 아동복에 대한 취향이 뚜렷하고 확고했다. 강렬한 원색에 아기자기한 그림이 들어간 옷을 선호하는 그녀가 '극혐'하는 브랜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이키였다. 그녀는 그중에서도 특히 운동화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며느리인 나는 자타공인 나이키 러버였다.  


그렇다보니 아들 추피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무렵부터 나이키를 두고 고부간에 종종 잡음이 일곤 했다. 추피가 신은 나이키 운동화를 두고 영희씨는 '지인이 네 눈에는 저게 예뻐? 나는 나이키를 왜 사서 신기는 지를 모르겠다.'는 거침없는 표현을 내뱉었다. 며느라기였던 나는 그럴 때마다 우물쭈물 난색을 표하며 '네, 저는 나이키를 좋아해서요' 답했다.


어느 날은 영희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백화점인데 추피의 신발을 하나 사주고 싶다고 했다. 사이즈와 원하는 디자인을 묻는 그녀에게 나는 떠오르는대로 대강의 사이즈를 말해주었다. 디자인은 상관없고 다만 나이키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녀는 알겠다 하시더니 잠시 후 카톡으로 몇 개의 신발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그중 한 가지를 골라 답장을 보냈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또다시 전화가 울렸다. 이 신발은 어떻고 저 신발은 어떠하다를 한참 혼잣말처럼 말씀하시더니 자기 생각에는 가격이 너무 비싼 것 같다고 하셨다.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나는 '그중 아무거나 상관이 없다, 고르라고 하시기에 골랐을 뿐이지 나이키면 다 좋다, 싼 걸로 사시라.' 답했다. 평소 그녀의 씀씀이에 비해 그리 비쌀 것도 없는 가격이었는데. 전화기 너머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가 탐탁지 않았고, 나는 찜찜할 뿐이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자 다시 전화가 울렸다. 또 영희씨였다. 이번에는 사이즈 때문이었다. 직원이 말하길 내가 알려준 사이즈가 추피의 나이에 비해 크다고 했단다. 나는 그때 요가 수업에 들어가기 직전이었고 사실 계속 울리는 영희씨의 전화를 받느라 수업에 못 들어가고 있었다. 영희씨에게 추피의 신발이 당장은 없어 확인을 못하겠지만 아마 맞을 거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이 해외에 있을 때라 교환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이즈가 작아 못 신기게 될 것이 걱정되었던 나는 만약 크다면 뒀다가 신기면 되니 상관없다고 말했다. 영희씨는 또 떼잉, 쯧하는 못마땅한 추임새를 넣더니 알아서 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수업을 듣고 나서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영희씨로부터 부재중 전화와 카톡이 와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나이키에서 다른 저렴한 것으로 하나 샀다가 도저히 마음에 안 들어서 환불하고 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아침부터 계속되는 통화로 지치기도 했던 나는 여러 가지로 부글부글 속이 끓었지만, 선물은 사주는 사람 마음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애써 이해해 넘기려 했다.


그날 저녁 시가 단체 카톡방에 영희씨가 사진 두 장을 올렸다. 유아 신발 두 켤레였다. 영희씨가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영희씨가 좋아하는 취향으로 사 온 신발이었다. 나는 보자마자 헉소리를 외쳤고 남편은 난감해했다.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브랜드에다 우리의 취향과 너무도 동떨어진, 난감한 디자인이었다. 처음부터 묻지나 말지 싶은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고집대로 사 온 그 두 켤레의 신발은 그녀가 우리 집을 방문할 때 캐리어에 소중히 담겨와 전달되었다. 나는 고맙습니다, 하고는 넙죽 받았다. 거기까지야 그런대로 오케이였다. 남편 말대로 선물은 사주는 사람 마음이니까, 사주는 사람이 그렇게 싫다는데 어쩌겠어 하면서.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영희씨는 냉큼 추피의 발에 신발을 신겨주었는데 사이즈가 커서 당장은 신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사이즈를 잘못 알려줬다며 내 탓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구나 싶었는지 그녀의 공격은 얼토당토않게 흘러갔다.


'내가 여러 번 물었는데, 지인이가 맞다고 해서 그 사이즈대로 샀더니 이렇게 크잖냐. 당장 못 신기겠다. 애한테 자꾸 큰 신발을 신기면 발이 자꾸 크는데 왜 자꾸 크게 신기냐. 신발을 안 신고 넣어두면 다 삭아버려 못 신는다. 아까워서 어쩌나.' 이런 식이었다.


나와 남편은 열심히 대꾸했다.

나이키와 어머님이 사 오신 브랜드의 신발 사이즈가 같을 수는 없다. 그리고 작으면 한국에서 교환하고 받고 하기가 어려우니 큰 게 낫다. 새 신발을 보관해 두면 삭는다니 말도 안 된다. 큰 신발을 신겨서 발이 큰다니 그것도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그녀의 궤변에 열심히 응했으나 그녀에게 들릴 리 없었다.


그녀가 우리집에 일주일 머무는 동안 그 신발 이야기는 수시로 화두에 올랐다. 영희씨는 신발을 당장 신길 수 없음이 그렇게 분했던 것일까.


'지인이는 왜 그렇게 큰 사이즈로 말해서는, 아니 세 살배기가 그 사이즈라길래 이상하다 싶었다, 저렇게 신발을 안 신고 두면 신발이 삭는다, 아깝게 사서는 삭히고 있다. 지금 신기면 딱 예쁠 텐데, 앞으로 그렇게 크게 사서 두지 마 신발 삭는다, 애 발 자꾸 키우지 마라. 지금 신고 있는 것보다 내가 사 온 게 훨씬 참한데.'


한 건 잡았다 싶었는지 그녀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이야기를 꺼냈다. 한 번은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또 그 이야기를 꺼내자 내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화가 나기도 하고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일주일째 듣고 있어야 하는 내 처지가 한심하기도 해서 눈물이 왈칵 나왔다. 화장실로 급하게 가서 세면대 앞에서 엉엉 울었다. 이국의 청소 아주머니가 울고 있는 나에게 휴지를 건네주었다.


그날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나에게 사과하며 영희씨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말이 안 통하는 영희씨 때문에, 영희씨는 자신에게 훈계하는 아들 때문에 씩씩대었다. 영희씨의 입은 그 저녁 이후로 한국으로 떠나는 날까지 뾰로통하니 튀어나와 있었다.


무슨 김치도 아니고, 신발이 그것도 새 신발이 삭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녀의 말대로 신발이 삭는 일 따위는 역시나 일어나지 않았고, 이듬해 그 두 켤레의 신발은 무사히 추피의 발에 신겨졌더랬다.


여기까지야 내가 듣고 겪으며 감내하면 되는 일이다. 심지어 영희씨는 사돈에게까지 추피의 행색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불만을 쏟아놓은 모양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통화 도중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너희 시어머니는 나이키를 엄청 싫어하시는 것 같더라.'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했는데,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는 경악스러웠다.


그녀는 그동안 엄마에게 자신은 나이키가 싫은데 애들은 그걸 왜 자꾸 사서 신기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걔네'가 해놓은 추피의 머리 스타일, 옷차림이 마음에 안 든다고 싫은 내색을 한 적도 여러 번인 듯했다. 특히 추피에게 쫄바지를 입히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고 했다. 엄마는 나에게 지인이 네가 이해하라고 말했다. 싫어하시는 것에 비해 아마 덜 말씀하신 것일테니 한귀로 듣고 넘기라며.


내가 나이키를 좋아하니 백화점에 가서 나이키 셋업을 사주고는 했던 엄마는 영희씨의 말들을 무슨 마음으로 들었을까. '걔네'로 싸잡혔지만 사실상 추피의 주양육자였던 나에 대한 그 비난을,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며 들었을까. 사돈에게 할 수 있는 말 목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테지만, 영희씨의 말은 늘 ’굳이?‘싶은 구석이 있다. 영희씨의 됨됨이에 대한 의구심이 일었던 적이 적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일이었다. 영희씨의 저의가 궁금했다. 그저 네 딸이 내 손주를 이렇게 입혀놨다, 나는 마음에 안 든다 알고 있으시라는 표현이었을까.


어쨌든 그녀가 나이키를 혐오하는 만큼 나는 나이키를 너무도 사랑했다. 그리고 그런 취향의 차이만큼 영희씨와 나의 면면은 양극단에서 대치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이런 일들이 일어났던 그 해까지만 해도 나는 그 차이가 좁혀질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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