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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Aug 28. 2023

돈 주면 더 낳을 거니?

나의 시어머니 영희씨는 말문을 턱 막히게 하는 기습 공격의 귀재다. 훌륭한 급습 능력을 자랑하던 그녀는 과거의 영광을 사알-짝 뒤로 하고 근래에는 지지부진 중이다. 그리된 데까지는 여러 사연이 있었으나, 각설하고. 그 부진한 실적에 방심하다 맞은, 그녀의 카운터 펀치를 풀어놓으려 한다.


그녀는 내가 첫 아이이자 마지막 아이일 추피를 출산한 이후, 꾸준히 둘째 손주를 바라왔다. 

마음속으로 바라기만 한 것이 아니고, 입 밖으로도 열심히 바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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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둘째와 관련한 각종 질문, 잔소리, 혹은 걱정을 빙자한 임신 압박으로부터 벗어났다 자신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고, 영희씨의 가슴속에는 아직도 둘째 손주를 향한 열망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영희씨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냈다. 


"지인이는 이제 둘째 안 낳을 거지?"


두 해정도 듣지 않던 말을 뜻밖의 상황에 듣고 있자니 현실감이 떨어졌다. 와 아직도 둘째라고? 실화?

그녀의 사그라들지 않는 열망이 놀라웠다. 내가 잘못들은 것은 아닐까, 네?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상대가 스스로의 질문이 부적절함을 알아차리기를 바라며, 일부러 과장되게 눈을 떴다. 


"너 아들만 있어서 나중에 후회할 거다. 딸이 있어야 해. 딸이 있어야 늙어서 좋지."

줄줄이 아들만 손주로 둔 그녀는 내심 딸을 바라왔는데, 그날은 나의 노후를 특히 걱정하셨다. 딸이 없는 노년 여성 모두는 후회하며 사는 걸까. 그녀의 말대로라면 아들 하나뿐인 내 노후는 망했다. 


껍데기는 가라. 예의 웃어넘기며 무례한 말들을 애써 수습하던 지인이는 가라. 

나는 그 동그랗던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아니, 요즘은 눈을 세모나게 뜬다던데 어쨌든 누가 봐도 그때 내 눈 모양은 어이없다는 감정을 닮은 눈 모양이었을 테다. 


"제가 후회한다고요? 아니요. 저희는 지금 정말 딱 좋고요 절대 더 안 낳을 거예요. 얼마나 힘들게 이만큼 키웠는데 또 낳아요. 어우"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나는 일부러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영희씨는 말했다. 

"나는 아들, 딸 하나씩 있는데도 그때 더 낳을 걸 하고 후회하는데. 너도 분명히 딸 하나 안 낳은 걸 후회할 거야."


예언일까 저주일까. 내 미래를 아찔하게 점치는 그녀의 말은 나의 전투력을 끌어올렸다. 나는 젓가락을 놓고 대답했다.

"어머님 제가 추피를 키워보니 부부 둘이서 바둥대며 애 하나 키우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에요. 힘든 건 둘째 치고, 이만큼 키워놓으니 요즘은 추피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도 만만찮아요. 저희 수입으로 애 둘 낳았다가는 하고 싶은 것 다 시키면서 못 키워요. 옛날이랑 다르거든요."


그녀는 웃기는 소리라도 들은 양 콧방귀를 뀌며 지지 않고 받아쳤다. 

"그러면 낳고부터 내가 돈 다 대줄게. 그러면 하나 더 낳나?"


와. 말문이 턱 막혔다. 상스럽게도 그때 머릿속에 든 생각은 지금 저게 말이야 방구야였고, 아! 방귀는 제 기능이라도 하지 저건 방귀조차도 안되겠구나 싶었다. 방귀도 못될 저 말에 나는 뭐라고 해야 하나. 말문이 막혀 아, 하는 외마디 신음 소리만 내뱉었다.


옆에서 바삐 젓가락을 움직이고 있던 영희씨의 아들, 내편인 남편이 듣다 못해 화를 냈다.

"아니 어머니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라고요. 그만 좀 하세요 정말."


역시 나의 잽, 잽보다는 아들의 묵직한 한 방이 영희씨에게는 특효약이다. 싸늘해진 식사자리는 쩝쩝거리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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