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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Sep 25. 2023

어머님, 조금만 주세요

안주시면 더 좋고요

결혼으로 인한 삶의 변화는 좋고 싫음으로 무 자르듯 가를 수 없는 모호한 것들이 많았다. 남편이라는 새 가족이 생겨 좋다가도 그의 가족이 내 가족이 되는 일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거나 하는 식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모호한 것들은 점차 싫음의 영역으로 기세를 넓혔다. 결혼으로 생긴 새 가족 때문에 여러 깊이의 싫음을 느꼈던 날들이 잦아졌다. 내 마음에 부대낌을 느끼게 한 것은 주로 시어머니 영희씨와 관련한 것들이었다. 안부 전화와 방문, 음식 이 세 가지가 새아기였던 나에게 가장 고달팠다.


영희씨에게 있어 우리집 냉장고를 관할하는 자는 아들이 아닌 며느리인 나였다. 새아기였던 나는 부단히 목소리를 내보았다. 나도 일하고 당신의 아들도 일하는 마당에 우리집 살림은 둘 모두에게 책임이 있노라고. 그러니 냉장고 사정을 나에게(만) 물어보지 말 것을 함의하는 작고 소중한 나의 목소리들.


그러나 영희씨는 나만큼이나 부단히 냉장고의 안부와 먹고사는 일의 사정을 물어왔다. 신혼 초만 하더라도 퇴근 무렵이면 영희씨가 전화를 걸어오곤 했는데, 모든 통화는 냉장고님의 안부를 여쭈시는 것으로 이어졌다. 가족들의 끼니가 중요했던 그 시절의 주부로 살아왔던 영희씨는 그 역할을 나에게도 기대했다. 오늘 저녁은 무얼 해먹니, 먹을 것은 있니, 두부랑 감자 숭덩숭덩 넣어 된장찌개를 끓여 먹거라. 그 뚝딱하면 되는데, 자꾸 사먹으면 안돼, 해먹어야 실력이 는다로 이어지는 말들은 나에게는 멜로디 없는 장송곡과 같았다. 자연인 지인이의 삶에 종결을- 며느리 지인이로서의 시작을 엄숙하게 고하는.


영희씨네를 방문할 때면 그녀는 먹을 것들을 바리바리 싸주고는 했다. 못 먹고사는 시대는 흘러갔건만. 장황한 설명을 곁들이며 선심쓰듯 주는 음식들을 나는 있는 힘껏 감사하며 받아야 했다. 아이고, 이렇게나 많이. 이 귀한 것을!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가 건네는 대부분의 음식은 식재료와 김치, 혹은 장류였다. 밥 '사먹는' 삶을 사는 바쁘고 피곤한 우리 부부에게는 그다지 효용이 없는 것들이었다. 안타깝고 유감스럽게도 그녀의 호의는 점차 나에게 부담과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막 관계의 포문을 연 따끈따끈한 고부관계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완곡한 거절의 말로 '조금만 주세요.'를 선택했다. 그것은 '우린 필요 없지만, 주신다니 조금만 받아 먹어 볼게요.'의 의미였다. 새아기였던 나는 조금만 달라고 하는 말조차 행여 시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싶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 말을 내뱉곤 했다. 조금만 주세요, 아니요 더 조금이요. 더, 더, 더 조금.


어른이 음식을 싸준다는데 옆에서 '조금만'을 외치는 일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참 버겁다. 상대의 호의를 거절하는 일이 즐거운 사람이 있으랴. 그런 '조금만'을 계속 듣던 영희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부부를 탓하기 시작했다. 혼수로 김치냉장고를 사지 않은 잘못을 탓하였고, 부모의 성의를 거절하는 되바라짐을 탓하였다.


김치 냉장고가 있으면 온 김에 더 줄 수 있었을텐데, 이렇게 조금 가져가다니, 이걸 누구 코에 붙이니. 그 말을 듣는 나는 지금도 충분하다고 되뇌었다. 김치만을 위한 냉장고까지 마련한다면 영희씨는 틈나는대로 그 냉장고를 채우려 들 테였다. 그때마다 나와 남편은 김치냉장고가 없어서 다행이라 여겼고, 앞으로의 삶에도 김치 냉장고는 '없을 무'임을 다짐했다. 나도 아삭아삭한 김치가 가-끔 먹고 싶다. 그렇지만 그 가-끔을 위한 김치를 싸주기에는 영희씨의 손이 너무 크다.


그녀는 내 말을 못 들은 건지, 아니면 그저 '조금'의 기준이 달랐던 것인지 매번 그야말로 무자비한 양의 음식들을 건네주었다. 한 손으로 들지도 못할 커다란 통을 가득 채운 김치, 된장, 고추장, 간장 그리고 또 김치, 김치, 김치. 결혼 첫 해의 냉장고는 그야말로 각종 장과 김치의 무덤이 되었다. 이전에 받아온 것들을 채 처리하기도 전에 다시 밀어닥치는 김치와 장들 덕에 냉장고는 늘 만원이었고 그럴 때면 오래 냉장고를 차지한 녀석들이 자리를 내어주곤 했다. 그리고 그 '처리'는 늘 내가 도맡곤 했다.


아직 덜 먹었으니 이번엔 안가져 갈게요,는 영희씨에게 통하지 않았다. 일전에 가져간 김치가 남아있다고 말했다가는 밥을 얼마나 안해먹길래 아직도 그게 있느냐는 힐난이 날아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희씨의 말은 틀렸다. 매일 저녁 집밥을 먹었다 한들, 성인 둘이서 그 많은 양의 김치를 해치울 수는 없었다. 이상한 셈법이었지만 어쨌든 모든 잘못은 김치를 제때 먹지 않은 우리에게 있었고 영희씨는 새 김치를 할당해주었다.


김치나 장뿐만 아니라 그녀는 이름도 처음 들어본 각종 나물이나 채소, 고기, 생선 등 날것의 식자재를 그대로 챙겨주곤 했다. 요리를 즐기지 않던 나에게 그녀가 건네는 그 꾸러미들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거절의 손사래가 제아무리 거세어도 영희씨는 깡그리 무시한 채 꾸역꾸역 보따리를 싸주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는 이 정도면 분명 며느리를 고생시키려고 하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못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숨이 푹푹 나오는 양의 푸성귀들과 고깃덩어리들은 우리집 냉장고로 자리를 비집고 들어갔다. 나눠먹을 곳도 없고 손질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재료들은 냉장고에 들어가면 결국 명을 다해 꺼내지곤 했다.


늘 대조되었던 것은 엄마가 싸주는 음식들이었다. 직장 다니느라 바쁜데 무슨 밥까지 해먹니를 기조로 한 엄마의 음식보따리에 손질이 필요한 식자재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데워먹기만 하면 되는 것들 뿐. 나는 영희씨의 딸이 아니니까 그런가 보다, 씁쓸하지만 그렇게라도 그녀를 이해해보려 했다.


우리가 기차를 타고 지방으로 향하는 것을 그녀는 꽤 아쉬워하기도 했는데 그 또한 음식을 싣고 갈 차가 없어서였다. 너네 차를 타고 왔으면 더 많이 줬을 텐데, 이것도 저것도. 그럴 때면 나는 서울에 두고 온 차가 그렇게 다행스러울 수 없었다. 나에게 다행이지 않았던 것은 대한민국의 택배시스템이 지나치게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이제 음식들은 우리가 그녀의 집에 가지 않을 때도 시시때때로 택배로 전해졌다. 현관에서 현관으로. 박스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어진 식재료들과 먼 길을 오느라 시들해진 정체불명의 야채들, 냉동고에서 오래 묵은 꽝꽝 언 덩어리 같은 것들이 우리집으로 배송되기 시작했다.


*어른이 주시는 음식 감사히 받을 것이지 요즘 것들 못돼먹었다고 생각하실 거라면, 반박 시 당신이 모두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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