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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Oct 05. 2023

그녀로부터의 택배

시어머니 영희씨는 올해까지도 부단히 택배를 보내왔다. 그 택배 박스 안은 항상 먹거리로 가득 차있었다.


신혼 시절부터 시작된 택배들은 매 개봉 순간마다 뜨악함을 자아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개는 흐려진 기억들로 남아있다. 흐려진 기억의 수면에 떠오르는 몇몇 장면이 있기는 한데, 상자 안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다 짓눌린 귤 몇 알, 어디선지 새어 나와 박스 안을 물들인 빨간 국물 같은 것들. 기억은 흐려졌지만 감정은 생생하다. 언박싱이란 자고로 설레고 행복한 것일진대, 그 언박싱만은 정말로 싫었다.


그녀의 택배 박스를 열어젖히면, 나는 늘 그녀로부터 먹거리를 투척당한 느낌을 받았다. 포장이 다는 아니겠지만, 아무렇게나 욱여넣어지고 쑤셔 넣어져 있는 내용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마구 잡이로 넣어진 음식들이 가득 찬 택배를 겨우 수습해 놓고서는 주신 것들 감사히 잘 먹겠노라 인사해야 하는 내 처지 역시 눈물 날 일이었다.


쌀을 보내주겠다는 연락을 받고 난 다음날이면 현관문 앞으로 포대째 거친 택배가 날아오고는 했다. 우리나라 택배 만세다. 얼기설기 엮어진 '오리지널' 가마니에 배달되어 온 그 쌀을 보관할 곳도, 제대로 소비해 낼 여력도 없었기에 가마니 쌀은 정말로 곤혹스러웠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사정을 영희씨 내외에게 설명했고, 그러니 제발 적당한 양을 보내주십사 애원 아닌 애원도 했었다. 그 애원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택배비, 보내는 일의 수고로움을 들며 한 번에 많-이 받아서 두고두고 먹으라는 말을 가마니 쌀과 함께 전했다. 쌀을 보내주겠노라는 어른들의 말에 저희는 조금씩 사 먹는 게 편해요 말 못 한 탓이다.


후에 집에 들렀던 엄마가 쌀을 보고서는 이렇게 상한 쌀을 여태 먹고 있었냐고 했다. 나는 그게 그런 쌀인 줄도 모르고 열심히 먹었더랬다. 애초에 그런 상태였는지, 아니면 살림을 갓 시작한 내가 가마니 쌀을 감당 못한 탓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딸이 ‘그런’ 쌀을 먹는 것을 보다 못한 엄마는 사돈이 준 그 쌀을 차마 내 눈앞에서 버리지는 못하고 차에 실어 가져가버렸다. 그러고는 맛있는 햅쌀 파는 곳을 안다며, 신선한 쌀을 때마다 조금씩 사 먹으라며 3킬로짜리 햅쌀 하나를 주문해 주었다. 어디로 갔을까 그 ‘못 먹는’ 쌀들은. 필요 이상으로 떠넘겨진 음식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못쓰게 될 때마다 그 죄책감은 내 몫이었다.


해외에서 지내는 동안은 영희씨로부터 택배를 받을 수 없었다. 물론 가능하기는 했지만, 보내는 이와 받는 이의 의지가 그 수고로움을 감내할 만큼은 아니었기에 택배를 주고받는 일은 불가능했다.


묵은 가마니 쌀에서 해방된 나는 소포장된 최신 도정일자의 쌀을 마켓에서 사다 먹었다. 별 거 아닌 그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도정한 지 얼마 안 된 뽀얀 쌀로 만든 쌀밥 냄새가 이토록 좋다니, 자칭 막-입인 나에게도 그 밥맛은 꿀맛이었다. 고작 쌀 한 봉지 사는 일에 때마다 해방감을 느꼈다.



우리 가족의 귀국과 함께 영희씨 역시 분주해진 모양이었다. 그녀의 가장 급한 용건은 자신이 조달해 줄 음식들이 무엇인지 그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바다 건너 남편과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는 연락이 시시때때로 오고 갔다.


그렇게 귀국과 함께 몇 년 만에 다시 시작된 택배는 오랜만이어선지 더욱 뜨악스러운 것이었다. 먹다 남은 듯 뜯어진 포장지의 절반정도 차있던 콩류와 잡곡. 그나마도 포장지에 찍힌 날짜를 보아하니 먹을 시기를 한참 지난 것이었다. 그래도 먹을 수 있으니 보내주셨겠지 싶어 그 먹다 남은 잡곡 봉지 안을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까만 점들이 너무 많아 보여 벌레 먹은 잡곡인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그 점들은 죄다 죽은 벌레였다. 잡곡 사이 곳곳에 무수한 사체들이 박혀있었다. 그 잡곡은 어쩔 도리 없이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포장을 뜯어 쓰고 남은 쥐포는 입구를 봉하지도 않은 채 대충 둘둘 말아져 있었고, 배달 떡볶이 로고가 새겨진 비닐봉지에는 난생처음 보는 사이즈의 왕다시마가 덩그러니 들어있는 식이었다. 손에 잡히는 것을 마구잡이로 때려 넣은 듯한 그녀의 패키지.


먹을거리인데, 택배박스에 넣기 전에 밀봉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밀폐용기나 지퍼백, 아니라면 주방용 위생봉투에 넣어 질끈 묶기라도 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받아먹는 며느리 입장에서 품기에 과한 기대인 것일까. 그녀의 택배를 보고 있자면 그녀는 여기에 일말의 자원조차 낭비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내 마음속에 물음표가 무수히 돋아났다.


일전에 그녀가 음식 포장과 보관에 사용할 가정용 진공포장기계를 주문해 달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심 앞으로의 택배는 좀 더 정갈하게 받아볼 수 있으려나 기대하며 구매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 후로도 진공포장된 음식 따위는 받아볼 수 없었다. 아니 진공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주방용 비닐로 그저 묶기라도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 진공포장기계는 자신과 딸을 위한 것이었을까. 포장비닐 값이 비싸서 아깝다며 그녀가 지나가듯 한 말도 떠올랐다. 그래, 내가 딸은 아니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이해해 보았다. 영희씨가 내게 부러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 믿는다.


다만 나는 내게 필요하지도 않은, 정성 한 톨 느낄 수 없는 택배를 강제로 받고 마음 상하는 일에 지쳤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보내준 이에게 감사하다고 해야 하는 일도. 영희씨는 택배가 도착할 날이면, 택배의 수령여부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래 그것은 당연하다. 내가 느끼기에 대충 혹은 마구잡이식 택배였다 한들 그녀 나름 열-심히 쌌을 택배가 잘 도착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택배의 무사도착을 확인한 그녀는 그것들을 어떻게 손질해 먹어야 하는지 각각의 조리 방법을 읊어주었다. 나는 생전 먹지도 않는, 누가 해준대도 먹어보고 싶지 않을 음식들의 조리법을 들어야 했다. 영희씨는 보내준 재료들의 손질법을 설파하고 내 감사 인사를 받으며 스스로를 좋은 시어머니라고 생각했으려나.


그렇다고 내가 순한 맛 며느리인 양 네네 감사합니다만 외쳤던 것은 아니다. 아니 어머님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먹어요, 저희 이런 거 안 해 먹어요, 저 퇴근하고 이런 거 배워가며 만들어 먹을 체력이 없어요, 남편에게 해 먹으라고 할게요. 외쳐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안 많아 먹어봐, 이렇게 저렇게 하면 금방 해 먹을 수 있어, 이런 것도 안 해 먹으면 평소에 뭐 해 먹니, 자꾸 해봐야 잘하게 돼, 였다. 그녀는 ‘그렇구나’를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택배를 둘러싼 일정한 순서의 의식은 늘 반복되며 치러졌다. 수령 확인, 불필요하고 과다한 음식물에 대한 사소한 언쟁, 조리법 강의, 뜻뜨미지근한 감사인사 순으로. (후에는 이 모든 것을 남편에게 일임하였다. 택배가 감사한 사람이 진심을 담아 감사인사 전하기를 기조로 하여.)


흙이 후두두 떨어지는 채소들이나 통마늘 같은 것들을 씻고 껍질을 까는 등 먹을만한 상태로 다듬어내고 소분해 넣는 일도 내게 부과된 임무였다. 너무 많은 양을 보내주시어 베란다에서,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각종 채소들의 잔해도 열심히 처리해내곤 했다. 그러다 내가 열이 뻗치기라도 하는 날은 남편이 오롯이 그 몫을 해내야 했다.



통마늘 하니 생각나는 여담, 친구네 시어머니가 줄기까지 달린 통마늘을 철마다 한 박스씩 보냈더랬다. 내 친구는 파업을 선언했고, 다섯 살 난 아이와 남편이서 그걸 다 다듬고 알알이 껍질을 벗겨냈단다. 그 소리를 들은 시어머니가 손 매운데 어찌했느냐며 화들짝 놀랐고 다시는 통마늘을 안 보냈다고 한다. 귀한 아들과 손주는 통마늘 따위로 고생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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