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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Apr 05. 2022

지금, 둘째라고 하셨나요?

자녀 계획은 우리가 하겠습니다.

첫 아이가 첫 생일을 맞이하기도 전에 처음 그 말을 들었다.

"얼른 둘째도 가져야지."

나의 시어머니 영희씨는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에 이토록 많은 인적, 물적, 정신적 자원이 필요한 지 미처 몰랐던 나는 육아가 너무도 벅찼다.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고, 하나뿐인 내 아이 예쁜 것조차 모르고 지나갈 만큼 힘들었다.

그런데 둘째라고? 영희씨는 내가 처한 어려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몇 번 영희씨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설마 계속 그러시기야 할까 싶어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분명하게 '더 이상의 출산은 없습니다.' 강하게 말했어야 했을까? 아이가 커 갈수록 영희씨의 둘째 타령은 그 빈도가 잦아졌다. 일상 곳곳 전혀 상관없는 맥락에서도 영희씨의 둘째 바람은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이가 엄마만 찾아서 힘들다고 말하면 영희씨는 '같이 놀 동생이 없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이가 조금만 지루해하는 기색이 보이면 '저것 봐라, 혼자라 심심하다. 동생이 있으면 안 심심하지.'라고 나름의 분석을 마치고 결론 내리시곤 했다. 그 밖에도 '딸 하나 있어야 엄마가 좋지.', '둘이 있어야 서로 의지한다.' 등 그 변주는 다양했다.


영희씨의 딸, 나의 시누이는 아들만 둘이다. 때로 영희씨는 외손주들을 예로 들며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걔네들은 둘이라 알아서 잘 놀아. 둘이 노니까 엄마, 아빠가 놀아줄 필요도 없고 편하지."

"너희는 앞으로 계속 끼고 다니며 놀아줘야 할 텐데."

이렇게 말하나 저렇게 말하나 대개 부모가 덜 힘들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모로 가도 결국 '둘째 낳아라.'였고.


여담이지만, 영희씨는 딸네가 아들만 둘이라 정신없다고 혀를 내두르시기도 했다. 하나면 나을 텐데 둘이라 못 돌봐주시겠단다. 어느 장단에 맞춰드려야 할지 며느리인 나는 혼란스럽다. 어쨌든 영희씨는 둘째 손주가 필요했고 더 정확하게는 예쁘장한 데다 애교도 많을 손녀가 필요했다.


영희씨는 손주에게까지 직접 바람을 넣기 시작하셨다. 엄마, 아빠에게 동생 만들어 달라 해라, 동생이 필요하지 않냐고 시시때때로 외치셨다. 그때마다 우리 기특한 아들 녀석은 동생은 필요 없고 형이 필요하다, 나는 형도 오빠도 되기 싫다를 강력 주장하며 할머니의 입을 봉인시켰다.


한 번은 영희씨에게 무척 황당한 말을 듣기도 했다.

"하나 더 낳으면 우리가 보태서 집도 넓혀줄 텐데."

그렇다. 영희씨가 보기에 나는 아이가 하나라서 넓은 집에 살 자격이 안 되는 것이었다. 아이가 하나뿐이니 좁은 평수에 살아도 괜찮았고, 아이가 둘이면 넓은 평수로 입성할 수 있었다!

누가 보태달라고 했나. 태어나지도 않은 둘째 아이와 넓은 평형 대 아파트를 등가 교환하겠다는 생각은 경멸스러웠다. 60이 다 된 어른이 저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한다는 데 진절머리가 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의 엄마에게도 저 말씀 그대로를 직접 하셨다고 한다.


그때마다 나는 하고픈 날 것의 말들을 얼마나 삼켰는지 모른다.

하나 있는 아이마저 단 하루도 맡아준 적 없으면서 둘째는 누구더러 키우라는 건지, 그럼 나는 또 육아휴직을 하라는 건지, 둘째는 첫째와 놀아주려고 태어나야만 하는 건지, 둘째 낳으면 둘이 '알아서' 놀 때까지는 누가 키우는 건지, 만약 둘째가 딸이 아니라면 또 한 명 더 낳으라 하실 건지.

하고픈 말이야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K-며느리의 대표주자였던 나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알아서 할게요.' 한마디 짧게 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말은 영희씨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자녀 계획은 자고로 집안의 어른이 나서야 할 그 무엇쯤이었을 것이다. '살아보니 자식 둘이 좋더라, 딸 하나는 있어야 좋더라.' 류의 훈수를 두며 자식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우리 세대 또한 알고 있다. 윗 세대의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 때로는 요즘을 사는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부부의 사회 경제적 상황, 커리어, 건강, 지향하는 라이프 스타일, 육아관.

자녀 계획 시 고려해봄직한 굵직한 주제들만 해도 영 간단치 않다. 부부가 아닌 제삼자가 여기에 참견하고 훈수를 둘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니다. 임신•출산 과정은 부부의 신체 결정권과 관련한 문제이기도 하다. 자녀를 가지고 말고의 문제는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키워갈 부부끼리 고민하고 의논하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해야 할 문제다. 그런데 영희씨는 왜 이토록 쉽게 게다가 자주, 개입하고 강요하며 본인에게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겼던 걸까? 쉽게 말해, 낳아주고 키워 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흔히들 사랑하면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어진다 하지 않나. 영희씨는 첫째 아이를 낳고 고군분투하는 나의 삶이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영희씨에게 며느리는 아마도 사랑할 존재가 아니었겠지. 진정 사랑했다면, 너 힘드니 둘째 낳지 말고 셋이서 오손도손 편하게 살아라 했을 것이다. 우리 엄마처럼.

 



놀랍지도 않은 사실이지만, 영희씨의 둘째 타령을 멈추게 한 것은 바로 그녀의 아들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퇴근길 그는 영희씨와 통화하게 되었고, 그녀는 여느 때처럼 "둘째 낳아라. 언제 가질 거니?" 했으며 남편은 "나는 육아가 버겁다. 너무 힘들어서 둘째는 낳고 싶지 않으니 더 이상 이야기 말라."선전 포고했단다.


그러자 영희씨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 네가 낳기 싫은 거였어? 난 또 며느리가 낳기 싫어하는 줄 알고, 엄한 애 붙잡고 맨날 낳으라고 했네. 번지수 잘못 찾았었네. 그래, 알겠다."

힘들어서 더는 못 낳겠다는 아들의 말 한마디에 지난 몇 년간의 둘째 타령은 드디어 멈췄다.

역시 영희씨의 특효약은 아들인가 싶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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