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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Apr 07. 2022

필요 없다고 막 주지 마세요.

왜냐면 저도 필요 없거든요.

영희씨 집을 방문한 어느 주말.

영희씨와 남편, 나 셋이 둘러앉아 차를 마시던 한적한 오후였다. 식탁에 앉아있던 영희씨가 불현듯 벌떡 일어나더니 밝은 표정으로 찬장을 열었다.


"이것 봐라. 예쁘지? 어제 백화점에서 샀어. 이렇게 두 개가 세트야."


영희씨의 손에 조심스럽게 들린 것은 찻잔 세트였다. 명품 그릇에 별 관심이 없던 나도 꽤나 익숙했던 생김새의 찻잔이었다. 어느 브랜드인지, 가격대는 어느 정도인지 대충은 짐작 가는 그런 류의 찻잔. 이어 영희씨는 함께 쓸만한 같은 디자인의 접시까지도 하나 꺼내 들었다. 영희씨의 말대로 그 녀석들은 값어치를 하듯 아름다웠다. 영희씨의 소비에 나는 요란한 찬사를 보냈다.


"여기에 커피 담고 이 접시에는 먹을 거 조금 담고, 이렇게 해서 두고 먹으면 예쁘겠지?"

영희씨는 그 찬사에 답이라도 하듯 요리조리 찻잔을 돌려 보이고는 찬장에 다시 넣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다른 쪽 찬장을 열었다.


"자. 이거 어디서 받은 건데, 너네 줄게. 들고 가서 써라."


영희씨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머그컵 두 개였다. 방금 전 영희씨의 손에 소중하게 들려있던 찻잔 세트와는 너무도 대조되었다. 영희씨의 두 손가락에 대충 걸려있던 손잡이가 맞닿으며 머그컵이 짤랑 소리를 내었다.


아! 순간 머리가 지끈했다. 영희씨 손에 덜렁 들려있는 두 개의 머그컵이 너무도 시의적절하지 못하게 느껴졌다. 값비싼 찻잔 세트를 뽐내고 나니, 처분해야 할 머그컵이 생각나기라도 했던 걸까. 명품 그릇만 고집하는 것도 아니었건만, 이상하게도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내 탓을 조금 해보자면, 그날까지도 나는 영희씨가 나누어 주려는 물건은 무엇이든 넙죽 받아오는 '착한' 며느리였다. 필요한 지 아닌 지 따질 것도 없이 그저 '네. 주세요.'만 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거절 않고 받아왔다. 그랬기에, 어디선가 굴러들어 온 싸구려 머그컵 두 개를 나에게 건넨 것이 영희씨에겐 그리 이상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다 영희씨의 집을 방문하는 날이면, 영희씨는 찬장과 창고를 열고 그간 묵혀둔 각종 물건들을 꺼내어 가져 갈지 말 지 우리의 의사를 확인하곤 했다. 영희씨가 그동안 나에게 준 물건들은 다양했다. 오랜 시간 열심히 사용해 온 물건, 시간이 지나 사용하지 않는 물건, 혹은 그저 쓰지 않고 묵혀둔 물건들까지.


남편이 초등학생 시절 쓰던 플라스틱 컵, 오래된 멜라민 수지 그릇, 날짜가 떡하니 적힌 행사 기념품 컵, 텀블러, 반찬 냄새가 밴 플라스틱 찬통. 그녀가 찬장을 열어젖힐 때면 각양각색의 중고 주방용품들이 줄지어 나왔다.

주방용품뿐만 아니라 행사 기념 수건, 사은품으로 받은 캠핑용품, 집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십여 년도 훨씬   봉제 인형들까지 가히 만물상이었다.


한 번은 영희씨가 낡은 도마 하나를 꺼내며 선심 쓰듯 말했다.

"이 도마가 오래된 거긴 한데, 쓰기 좋다. 딸한테도 안주는 건데 너 가져가라."

'안 주셔도 되는데요. 저희 집에 도마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오래된 꽃무늬 도마는 더더욱 필요 없는데요. 차라리 딸에게 주셔요.' 역시나 말 못 하고 삼켰다.


영희씨는 쓰기 편한 오래된 도마는 딸보다 며느리에게 선심을 쓰셨지만, 정작 밖에서 마음에 드는 주방용품이나 생활용품을 마주할 때면 딸에게 곧장 사다 주곤 했다.

"이거 좋아 보이네. 딸 하나 사다 줘야겠다. 걘 살림에 관심도 없고 잘 못하기도 해서, 내가 이런 거 안 사다 주면 살 생각을 안 하더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필요 없다고 하면 그만이었을 것을, 그때의 나는 물건에 대한 거절을 영희 씨에 대한 거절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싫다는 한 마디가 그렇게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거절을 아예 안 해본 것도 아니다. 사실 나나 남편이 몇 번이고 안 가져가겠노라 거절한 물건들도 있었다. 그래도 영희씨는 이런저런 유용성을 대며 가져가길 권했고 그러면서 언짢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니 가뜩이나 거절 못하던 나는 그 후로도 쭉 그렇게 넙죽 받아 올 수밖에. 그렇게 우리 집으로 온 물건들은 다시 우리 집 수납장 구석으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중고물품 수거, 처리해드립니다.' 푯말이라도 걸어야 할 판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는 영희씨가 주는 물건들의 종류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영희씨는 무엇이든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인데, 그래서인지 영희씨의 집에는 외손주들이 쓰던 물건들이 많았다. 영희씨의 외손주들은 내 아이와 5년 이상의 나이 터울이 있는데, 그 말인즉슨 그 물건들은 대개 5년이 넘는 세월을 묵혀둔 것들인 셈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은 물건은, 두 아이가 썼던 유아용 대소변기다. 영희씨가 너희가 가져가서 쓰라며 어디에선가 꺼내온 소변기 하나, 대변기 하나의 모습은 처참했다.

단순히 '변기라서 더러워서 싫다.'가 아니었다. 소변기의 소변이 닿는 부분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고, 대변기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대변기는 아이가 앉자마자 와르르 무너져 내렸는데, 플라스틱 다리 하나가 부러져 있었던 탓이었다.

 

"다리만 붙여서 쓰면 될 것 같네. 그리고 잘만 앉으면 안 무너진다."


두 돌 갓 지난 아이에게 대변기 다리가 부서질 수도 있으니 '잘' 앉아서 균형 잡으며 용변을 보거라 하라는 건가. 지금 같으면 어차피 못 쓸 물건이니 가져가지 않겠다고, 알아서 버리시라 하겠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받아왔더랬다.


영희씨의 딸도 이런 면에서 비슷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영희씨의 집에 모였던 어느 주말이었다. 영희씨의 딸은 커다란 쇼핑백 몇 무더기를 들고 왔다. 아이들 어릴 때 입혔던 옷인데, 정리를 못하고 그대로 넣어두었으니 가져가서 골라 입히라고 했다. 열어본 쇼핑백 안의 모습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구멍 난 옷, 정체모를 오염이 묻어있는 옷, 곰팡이가 생겨난 부분도 있었다. 대체 이걸 그동안 왜 보관했을까 의구심이 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상태는 좋지 않았다.


눅눅하고 낡은 옷들 사이에서 입을 만한 것을 골라내고 버려내는 일은 내 몫이었다. 좀 너무하다 싶었다. 그러나 영희씨의 딸은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영희씨는 딸이 물건을 잘 버리지 않고 보관을 잘한다며 그 알뜰함을 칭찬했다. 이게 알뜰한 건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 많던 옷 중에서 집에서 한 철 입힐만한 옷 몇 가지를 건져냈으니 고맙다고 해야 했던 걸까? 그래도 나는 차마 고맙다고 말할 수 없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결코 중고물품에 야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중고물품에 아주 후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첫 아이라고 무조건 값 비싼 물건, 새 물건만을 고집하는 '요즘 젊은 애 엄마'가 아니라는 거다. 출산 전부터 직장 동료, 선배들의 육아 용품, 옷, 도서들을 받아두기도 했고, 중고 거래 플랫폼을 애용하기도 했다. 그러니 '애 엄마가 까탈스러워서 그렇네.'로 본질이 흐려지지 않길 바란다.


아이가 꽤나 자란 지금, 내 아이가 쓰던 물건을 다른 이에게 물려줄 일들이 생긴다. 나누어 주기 전에는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해보고 깨끗한 것, 필요할 것만 골라내기도 하면서 나름의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그때의 일이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스스로 반문해본다. 과연 영희씨 그리고 영희씨의 딸이 나 아닌 다른 지인이었더라도 그렇게 했을까? 단지 내가 며느리라는 이유에서? 무얼 줘도 넙죽 잘 받아가는 며느리였기에 '아무거나' 다 준 걸까? 나는 안 쓰는 물건 처분해주는 사람이 아닌데. 우리 집은 쓰레기장이 아닌데. 어떤 물건을 줘도 싫은 내색 없이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하며 받아가는 며느리라서 그랬던 걸까? 그 답은 내 몫이 아니겠지.

 

지금에야 떠올려보니, 결혼 후 영희씨가 중고 아닌 새 물건을 무려 '나를 위해' 구매해서 건네어준 적은 단 한 번이었다. 이마트에서 세일하길래 만 얼마인가를 주고 사 왔다던 덴비 접시 하나.

그래도 하나라도 있다는 데 감사해야겠지.


어머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참에 말해두자면, 저도 남이 쓰던 낡은 거, 처박아둔 사은품 이런 거말고 새 거, 좋은 거 쓸 줄 아는데 말이죠.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되바라진 며느리라 하시려나.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제대로 못 해내니 나는 갈 길이 멀었다.




요즘 나는 영희씨가 주섬주섬 구석에서 뭔가를 찾아 꺼내들 기색이 보이면 먼저 말한다.

우리 집에 필요 없는 물건이다. 놓을 데가 마땅치 않다. 집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냥 두시라. 가져가지 않겠노라. 그래도 영희씨는 쇼호스트처럼 물건을 꺼내 들어 설명하신다.

'이 제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러저러한 장점이 있고 나는 이러저러해서 안 쓰니 너네가 가져가서 이렇게 저렇게 쓴다면 아주 유용할 것이니라.'  


그렇게 좋은 물건이라면 아끼지 말고 직접 쓰시고,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가까이 사는 소중한 따님에게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쓰레기 처리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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