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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Apr 15. 2022

시어머니와 산후조리원에서

"임신했을 때, 애 낳을 때 서러웠던 일은 평생 간다. 그러니 잘해줘라."


임산부를 주변에  사람들, 특히 남편들이 으레 듣곤 하는 말이다. 나는  '서러웠던 마음이 평생 가기 때문에'라는 이유가 싫었다. 아니 사람에겐 원래 서러울 일이 없어야 하는  아닌가. 임신을 했건  했건, 누구도 서럽게 만들면  되는 거지.


그렇게 삐딱하게 들어왔던 말이건만, 나는 불행하게도 그렇게 되고야 말았다. 아직 평생이라고 할만한 세월을 살지는 않았으니, 벌써 확신할 수는 없으려나? 그래도 그때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힌다.


몇 해 전 더운 여름날,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고 병원에 이틀 밤을 머물렀다. 지방에 계시는 시어머니 영희씨와 시아버지는 마침 급한 회사 일이 생겨 병원에 오시지 못하게 됐더랬다. 그리고 며칠 뒤 산후조리원으로 우리를 찾아오셨다.


두 분을 모시고 온 남편의 연락을 받고 나는 면회실로 나왔다. 시아버지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따뜻한 위로와 축하를 건넸다. 그리고 그는 남편과 함께 신생아실이 보이도록 넓게 뚫린 통창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영희씨가 나에게 다가와 입을 뗐다. 그리고 첫마디를 건넸다.

"아유, 얼굴로 힘주지 말랬잖아! 실핏줄 다 터져서 얼굴이 엉망이 됐네! 그렇게 말했는데도 왜 얼굴로 힘을 줘!"


첫마디가 저랬다.

그녀의 표정과 어조까지 생생히 담아낼 수 없는 내 형편없는 글 실력이 원망스럽다. 저 느낌표들에 그녀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충분히 담겼기를 바라는 수밖에.


백번 돌이켜봐도 그녀가 이해되지 않지만 그래도, 그래도 아주 너그럽게 생각해보자면 며느리가 안타까워 속상한 마음에 나온 말이라 치자. 그러면 적어도 말의 온기 정도는 느껴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녀의 깊은 속내야 어땠을지 알 수 없지만, 나에게 그녀의 말은 따뜻한 말로 와닿을 수 없었다. '대체 너는 왜 내 말을 안 들었니, 왜 내가 하라는 대로 안 해서는.' 나에게는 차갑게만 느껴졌다. 첫인사라도 그럴듯하게 하고서 하고픈 말하시지. 출산 후 처음 만나는 며느리에게 건네는 첫마디로는 제대로 꽝이었다. 영희씨는 어찌 보면 참 요령 따윈 부릴 줄 모르는 사람이다.


만삭이 되어갈 무렵부터 그녀는 '얼굴로 힘주며'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고 자주 말해왔다. 임산부 교실에서 배운 '그냥'힘주는 법도 알쏭달쏭한데, 얼굴로 힘을 주는 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리송했던 그 말에 그때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런데 그 말은 아이를 낳고 보니 더 아리송해지기만 했다.


힘을 어디로 어떻게 줘야 할지 알 수 조차 없을 만큼 아프기만 했는데, 무얼 어떻게 조절하라는 건지. 게다가 나는 지금 그 중요한 '얼굴로 힘주기'를 못했다고 질책받는 것인가. 핏줄이 터진 것은 내 얼굴이고 그녀 말을 빌려 '엉망'이 된 것도 나인데 왜 내가 험한 소리를 듣고 있는 건지. 머리가 하얘졌다.


불행히도, 아주 불행히도 그날 영희씨의 폭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배는 얼마나 들어갔어? 어디 보자."

영희씨는 조리원에서 준 펑퍼짐한 수유 원피스를 입고 있던 나의 배 위로 손을 갖다 댔다. 생각할 새도 제지할 새도 없이 훅 들어온 영희씨의 손은 나의 배 여기저기를 문지르고 눌러대며 어디가 얼마나 들어갔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배를 눌러줘야 배가 원래대로 돌아가지. 하나도 안 들어갔네. 엎드려 있어라. 나는 우리 딸 애 낳고서 계속 배 눌러주고 엎드려있게 했다. 그랬더니 지금 봐라, 걘 애 둘을 낳았는데도 배가 날씬하잖아."


투 스트라이크!

아, 자고로 출산 후 늘어진 배는 꾹꾹 눌러주고 엎드려 지내면 들어가는 것이거늘. 그 쉬운 방법을 두고 나는 내 배를 못 집어넣었구나! 그런데 나 지금 출산한 지 일주일도 안됐는데 배 나왔다고 야단맞는 걸까. 이것은 걱정을 가장한 질책인가, 질책을 가장한 걱정인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녀를 만나고 오분도  되지 않아 나는 졸지에 '어른 말을  새겨듣지 않아, 얼굴은 터진 실핏줄로 엉망이  데다 배도  들어간' 며느리가 되어 있었다.


듣는 이를 배려하지 않는 언어 습관, 상황과 맥락 따위는 개의치 않고 오로지 생각나는 것을 그 자리에서 신속하게 내뱉기 바쁜 영희씨. 지금까지도 나를 힘들게 하는 영희씨의 단면이다. 그날도 그녀는 생각나는 대로, 내키는 대로 나에게 내뱉었다.


고생했다거나 축하한다거나 하는 말들이 오고 가겠거니, 별생각 없이 무장해제 상태로 영희씨를 맞이하러 나선 내가 한심했다. 원래 영희씨는 그런 사람이었다. 출산을 했든 말든 얄짤없는.


나의 험난한 출산 여정 따위는 그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이었건 단지 지나간 이벤트일 뿐이었다. 그때 면회실에서 나를 만난 그 순간 그녀에게 중요했던 것은, 터진 실핏줄로 뒤덮인 얼굴과 볼록한 배였나 보다. 그리고 그녀는 '엉망'이 된 며느리에 대한 자기의 생각, 추궁 혹은 질책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데 충실했다.


두 개의 직구를 연속으로 맞고 어찌어찌 마지막 남은 정신력으로 버티다 보니 드디어 두 분은 나설 준비를 하셨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러 조리원 밖으로 나섰다. 나와 영희씨는 그 둘과 조금 떨어져 뒤에서 걸어 나가던 참이었다. 조리원 입구에 다다르자 그녀는 실내화를 벗고 신발로 갈아 신으려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인 채 신발 뒤축을 잡고 발을 밀어 넣던 그녀는 마지막 말을 한숨처럼 내뱉었다.


"계속 잠이 오나. 뭐해 하루 종일?"

내가 듣길 바라며 하는 말인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나지막이 읊조렸다. 아니 내가 듣길 바랐다기 보단, 그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말이 튀어나온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면 역시나 또 그녀의 입이 문제겠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녀는 멋진 세 개의 스트라이크로 나를 아웃시키고 유유히 마운드에서 사라졌다.




한 시간여의 짧다면 짧은 방문에 너무도 많은 일을 그야말로 '당한' 나는 너덜너덜해졌다.

남편은 뒤늦게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는 나에게 사과했지만 사실 그가 사과할 일은 아니었다. 그의 잘못을 찾아보자면, 모친의 언어 습관이나 인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사고를 예방 못한 것 정도가 되려나. 부족한 상황 파악 능력, 나와 모친을 재빠르게 분리하지 못한 판단 능력 부족도 꼽을 수 있겠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단단히 마음먹었다. 영희씨와 단 둘이 있는 상황은 무조건 피하겠다고.

경악스러운 막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그녀를 경험하고 나니, 그녀는 감히 나 따위의 상대가 아니라 느껴졌다. 나의 세계관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내가 맞설 수도 없는 존재 같았달까. 그래서 영희씨가 나에게 던지는 말과 행동으로부터 나를 지킬 자신이 없었다. 내가 영희씨로부터 나를 못 지킨다면, 나를 지켜줄 혹은 그 만행을 목격할 다른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길 바라게 되었다. 적어도 남편이, 아니면 영희씨의 남편이라도 곁에 있어야 그녀가 나에게 덜 함부로 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과거의 나는 너무 어렸고 어리석었다.


운 좋게도 나는 결혼 전, 30여 년을 살아내며 '서럽다'는 감정을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그 감정은 그저 활자로, 영상 너머로 간접 경험해보는 어렴풋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결혼을 시작으로, 아린 이 마음을 얼마나 자주 절절히 느껴왔는지 모른다.


가족에게 가족으로 대접받지 못하며 가족의 이름으로 당한 며느리들의 설움. 인구의 절반, 여성들이 이렇게 서러울 일을 겪고 대물림하며 지내온 유구한 서러움의 역사에 나도 보탬이 되고 말았다. 전설처럼 듣기로는 영희씨도 시어머니에게 꽤나 당하고 사셨다던데, 이제 이런 폭력의 대물림은 멈출 때도 되지 않았나. 수많은 영희, 당신들이 멈추면 여기서 끝날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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