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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Apr 18. 2022

산후조리원이 싫은 거예요, 제가 싫은 거예요?

임신 중기 무렵, 나와 남편은 산후조리원을 미리 예약해두었다. 그간 영희씨의 성정을 대충은 파악한 터라, 나는 예약 사실을 굳이 미리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역시나 나의 직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어쩌다 그 소식을 들은 영희씨는 다짜고짜 나와 남편에게 그 비용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면 영희씨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이렇다 할 대처가 가능했을 텐데, 그때만 해도 내공이 부족했다. 굳이 속일 것도 없었던 우리는 곧이곧대로 금액을 알려드렸다. 그녀를 얕잡아 본 우리의 불찰이었다. 액수를 들은 그녀는 단박에 너무 비싸다고 외쳤다.


"2주에 몇백만 원 돈을 쓴다고? 대체 거기서 뭘 해주길래?"

"삼시 세 끼 밥 나오고, 간식 주고, 24시간 아기도 케어해주면서 산후조리를 도와주니 그만큼씩 받죠. 저희가 예약한 데는 비싼 축에도 못 껴요. 저희 동네에서 거기가 제일 가격이 합리적인 거예요. 더 비싼데도 얼마나 많은데요."


남편과 그의 모친은 설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는 죄인 마냥 옆에 앉아 멀뚱히 거실 바닥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영희씨는 우스갯소리 하듯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 돈으로 차라리 자신이 나의 산후조리를 해주겠노라고. 농담조로 건넨 말이었건만, 그녀의 진심을 느낀 나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자신의 딸, 나의 시누이의 산후조리를 두 번 다 도맡았었다. 전에도 이 사실을 몇 번 얘기한 적이 있었기에 나는 그녀가 그것을 꽤나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녀의 말이 더 진심으로 와닿았다. 아! 까딱하다간 시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해주게 되겠군.


영희씨는 이때다 싶었는지 사족을 붙이기 시작했다.

"남들은 갓난아기 돌보기가 힘들다고들 하던데. 나는 손주 둘을 내 손으로 봐줘서 그런가 갓난쟁이도 잘 돌본다. 난 안 힘들던데."

"왜? 시어머니가 산후조리해주면 지인이가 불편해?"


네. 당연히 불편하죠. 불편하면 안 되나요?

산후조리는 말 그대로 몸도 마음도 회복하는 쉼의 시간이 아닌가. 그런데, 고작 만난 지 일이 년 된 남편의 어머니와 그 시간을 보내라고? 그것도 언제 무슨 말을 내뱉을지 시한폭탄 같은 영희씨랑? 아기를 맡겨두고 내 끼니를 부탁하며 편히 누워서 쉬어라?

누군가에겐 기적처럼 가능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와 영희씨에게는 안될 일이었다. 불 보듯 뻔했다.


머릿속으로 잠깐 그려 본 그녀와의 산후조리 장면은 끔찍했다. 그녀는 분명 말로 나를 아프게 할 테고 나는 무슨 잘못이라도 한 냥 좌불안석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겠지. 그녀는 아기 보는 법을 가르친다며 훈수를 둘 테고, 직접 해봐야 느는 법이라며 아기를 나에게 토스하겠지. 그녀는 무조건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며 삼시세끼 미역국을 대령할 테고 나는 반찬 투정은커녕 찍소리 없이 받아먹어야겠지. 샤워 자주 하면 안 된다, 에어컨 켜지 말어라, 분유 먹일 생각 말고 모유를 먹여라...... 어마어마한 잔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오는 듯했다.


나의 자유는 없을 게 분명했다. 아이 돌보기는 덤으로 따라올 터였고. 섭섭지 않을 만큼의 비용까지 드려가며 내 손으로 고생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며느리의 산후조리를 도와준 최고의 시어머니로 평생을 자화자찬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우리 딸 두 번에 며느리까지 세 번을 산후조리해줬단 거 아니냐." 그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안돼요. 친정에서도 산후조리 안 하는 세상인데, 시어머니가 해준다니요! 제발 멈춰요, 영희씨.

오빠, 어머님 입 좀 어떻게 해봐.


"지인이네 엄마가 조리해주신다고 안 해? 나는 내 딸 다 내 손으로 해줬는데. 딸내미 밥도 해주고 아기도 봐주고."

우리 엄마까지 들먹일 건 뭐람. 엄마는 내게 조리원에서 마사지나 받으며 푹 쉬다 나오라고 하던데. 아마 영희씨는 마사지까지 받는 줄 알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지도 모르겠다.


넌지시 엄마를 걸고넘어지니 약이 올랐다.

"저희 엄마는 편하게 조리원 가라고 하셨어요. 조리해줄 생각도 없으시지만, 저도 엄마 힘들게 하고 싶지 않고요." 그날 유일하게 한마디 했던 기억이 난다. 무슨 권리를 가졌기에 남의 딸의 산후조리를 해줘라 말아라 강요하는 건지.


영희씨는 조리원을 주제로 대화하는 내내 적잖이 언짢아했다. 미리내 둔 예약금 덕에, 아들의 만류 덕에 그날은 다행히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조리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불편한 기색을 비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아마도 산후조리원에 몇백만 원의 돈을 써가며 이주씩이나 머무르는 내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본인 세대에 누리지 못한 호사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자기 딸이 누리지 못한 호사라고 여겼던 걸까. 고작 남들 다 가는 조리원을 대단한 호사라고 여긴다면 그것대로 답답한 일이었다. 내가 번 돈, 내가 쓰면서 왜 저런 말들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지 모르겠다. 과거의 나를 자책하지 않기로 했건만, 글로 써 내려가다 보면 그 옛날의 내 등짝을 한대 세게 때려줘야 할 것만 같다. 정신 차리라고.


"제가 어머한테 비용을  달라고  것도 아니고, 임신한 몸으로 힘들게 일해서   내가 쓰겠다는데 그것마저 못하게 하시려고요?"

속 시원하게 말했어야 했다.

 


그렇게도 마뜩잖아했던 조리원을 처음 방문한 그날, 그녀의 짜증 섞인 불평이 터져 나왔다.

손주 보러 기껏 먼 길을 왔는데 한 번 안아보지도 못하게 한다며 영희씨는 불만을 쏟아냈다. 알다시피, 조리원의 신생아실은 감염에 취약하기에 각별히 위생에 주의를 기울인다. 당연히 외부인은 신생아실 출입 금지였고, 아기 또한 산모 방을 제외하고는 신생아실 밖으로 나갈 수 없게끔 되어있었다. 그렇지만 나의 영희씨는 역시나 자기의 욕구와 감정이 최우선이었다. 손주 한 번 못 안아봤는데 눈으로 보기만 해야 하나, 그런 법이 대체 어딨냐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게 여기 법이에요. 어머님이야말로 막무가내로 그런 법이 어딨어요.'


남편이 설명을 충분히 했지만 그녀는 수긍하지 않았다. 안아만 보겠다는데 왜 잘못됐냐는 거다. 그 '안아만'보는 게 문제인데 말이다. 나중에는 급기야 이 모든 것이 집에서 산후조리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며 그 화살을 엄한 데로 돌렸다.

"조리원 말고 집에서 몸풀었으면 아기도 마음껏 보고 안을 수도 있었지. 쯧."


이제 그녀는 본격적으로 산후 조리원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통창 너머로 보이는 신생아실을 가리키며, 저렇게 여러 명의 아기가 모여있으면 뭐라도 전염되기 십상이라고 했다.

"저렇게 모아두니 한 명이 아프면 다 아프다. 뉴스 보니까 단체로 뭐에 걸리고 그러기도 하더라. 한 데 모여있으니 그렇지."

이런들 저런들 결국 그녀의 불평들이 모이는 곳은 '조리원에 왜 갔니'였다.


덧붙이자면, 출산 당일 병원에서부터 조리원 입소까지 줄곧 함께 했던 나의 부모님은 아이에게 혹여 뭐라도 옮을까, 부서질까 한사코 품에 안기를 마다하셨었다. 그랬기에 나는 영희씨의 말과 행동이 더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뒤늦게 와서는 아이를 안겠다고 생떼까지 부리니 말이다.


결국 영희씨에다, 손주를 너무도 안고 싶었던 그녀의 남편까지 합세했다. 그들은 지나가던 조리원 직원에게 한 번만 아기를 안아보게 해 달라며, 본인들이 얼마나 먼 길을 왔는지 읍소했다. 물론 직원은 난처해하며 원장에게 바통터치를 했다. 아기들의 건강을 이유로 완곡히 거절하는 조리원 원장의 말에도 그들의 매달리기는 계속됐다. 남편은 내 눈치, 원장의 눈치를 번갈아 보며 부모님을 말렸다. 하지만 두 분은 막무가내로 졸라댔고 결국 원장이 두 손을 들었다.

원장이 신생아실로 들어서며 신생아 돌보미분들께 무어라 말하는 모습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그러자 그분들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창 밖에 서있는 우리들을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 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기를 안겠다고 하네.

뭐라고요? 아기를 데리고 나오라고 해요?

말이 안 통해.


표정과 분위기로 짐작컨대 대충 이런 말이 오갔을 테다.


부부는 잔뜩 들떠 온 몸에 소독제를 뿌리고, 면회실로 옮겨진 갓난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아들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며 사진을 찍어 달라 했다.


막무가내로 우기는 사람은 못 이기는 법이지. 두 사람을 말리기도 벅찼던 나는 멀찍이 떨어져 황망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너무 부끄러웠다. 복도를 오가던 다른 산모들이 멈춰 서서 이 희한한 광경을 불쾌한 눈빛으로 훑었다.


후에 나와 마주친 조리원 직원 한 명이 시부모님 때문에 힘들겠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전했다. 모든 상황을 창 너머로 지켜본 신생아실 직원들도 두 분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고 했다. 굳이 전해주지 않아도 될, 위로치고는 무례한 말이긴 했지만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 눈에도 두 분이 그렇게 보였구나, 그리고 그분들이 무려 나의 시부모인 거고.



영희씨네는 내가 없는 우리 집에서 며칠이고 묵을 기세였다. 급하게 출산하러 가느라 엉망으로 둔 집도 신경 쓰였지만, 무엇보다 주인 없는 살림살이를 마구 들추는 것이 싫었다. 그들은 내가 없는 집에서 아들 밥을 해준 다는 이유로 며칠을 묵었다. 나는 남편에게 대체 두 분이 언제 댁으로 돌아가시는 거냐며 한바탕 울분을 토해내기도 했다. 남편은 부모님을 챙기느라 그 며칠을 조리원에 자주 들르지 못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아들 끼니를 걱정하는 영희 씨 덕에 꼬박꼬박 집으로 향했다. 나는 식사시간이면 조리원 방에 덩그러니 남아 혼자 밥을 먹었다.


시부모님은 틈만 나면 아이를 보러 조리원에 오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남편은 면회를 너무 자주 가면 조리원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며 부모님을 말렸다. 그들이 두어 번 온 뒤로 나는 더 이상 면회실에서 그들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이전의 일들로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하기도 했고 나는 그저 혼자 쉬고 싶었다. 창문에 붙어 아기 보느라 정신없는 시부모님을 바라보고만 있기도 지쳤었다. 조리원 직원에게 내가 자고 있어 면회실로 부를 수 없다고 전해달라 부탁했다. 남편에게도 통보했다. 나는 더 이상 면회실에서 두 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아기가 보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시되 나는 방에서 쉬겠노라고.


그 무렵은 자연분만 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던 때라, 편하게 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면회실로 나올 때면 꼭 민망하게 생긴 동그란 도넛 방석을 쭈뼛대며 들고 나와 깔고 앉았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서도 영희씨와 시아버지는 나에게 들어가서 편히 쉬거라 하는 말을 인사치레로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일을 기억조차 못할 테다. 며느리의 마중이나 자신들이 아기를 맘껏 보는 동안 면회실에 앉아 기다리는 것이 그들에게는 별 대단한 일이 아니었을 테다.

 

부모님께 이제 그만 댁으로 내려가시라 단호하게 말하지 못했던 나의 남편, 영희씨의 아들은 기차표를 끊어주는 것으로 그 뜻을 넌지시 전했다. 아들이 차표 예약을 도와준다는 이유로 다음날 기차표를 반강제적으로 끊어버리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우리 집을 떠났다. 가기 전에 조리원에 들렀다 가고 싶다는 걸 남편이 겨우 말렸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손주를 보고 싶은 본인들의 마음이 제일 중했고, 며느리는 안중에도 없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조리원 중에 남편 말고는 그 누구도 면회 불가인 곳이 있더란다. 아기 면회도, 산모 면회도 모두 안 되는 곳. 오죽하면 이런 곳이 있을까. 나만 별난 탓에 스트레스받는 게 아니구나 싶어 위로는 됐다. 모두들 비슷한가 보다 싶었다.



"계속 잠이 오나. 뭐해 하루 종일?"

그녀가 조리원을 방문했던 첫날, 나에게 던지고 간 마지막 말.


영희씨는 내가 하루 종일 무얼 하길 바랐던 걸까?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남편 밥도 해먹이며 내 미역국도 손수 끓여먹기라도 바랐던 걸까? 출산한 지 일주일도 안된 나에게 하루 종일 뭐하냐는 말은 너무 가혹하게 들렸다. 하루 종일 쉬기만 해도 모자란 거 아니었나.


조리원 청소 이모님마저 나에게 푹 쉬기만 하라고 했었다. 방에 들를 때마다 내가 책을 읽고 있으니, 그마저도 하지 말고 푹 쉬어야 한다며 책도 못 읽게 하셨었다. 무조건 쉬라며.

생면부지의 남도 나에게 쉬라고 하는데, 영희씨는 대체 왜 나에게 하루 종일 뭐하냐며 못마땅하게 말했던 걸까.


그 질문에 나는 '나를 미워했기 때문에'라는 답을 낼 수밖에 없다. 아마도 내가 몇백의 돈을 써가며 2주의 시간을 '잠만'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튀어나온 말이리라. 나는 잠만 잔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설사 잠만 잔다 한 들 그게 왜 잘못된 건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영희씨가 떠나고, 그 말을 곱씹다 엄마가 떠올랐다. 조리원에서 무조건 많이 자 두거라 했던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딸처럼은 해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적어도 남에게 못할 말은 며느리에게도 해서는 안된다.



세상의 영희씨들이 '가족이니까 편하게 해도 돼'라는 생각은 그만 넣어두면 좋겠다. 당신들이 편하게 막 해도 되는 게 아니고, 새로운 가족이 마음 편하게 지내도록 해줘야 맞는 거다. 애초부터 가족이었던 건 아니기에 더 선을 지키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설사 세상 둘도 없는 최고의 시어머니라 한들, 시어머니가 해주는 산후조리를 달가워할 며느리는 몇 없을 테다. 시어머니라서 싫은 게 맞다. 못해도 20년 이상, 30여 년을 생판 모르는 남으로 살다 가족이 됐는데, 한 순간에 피로 이어진 가족이 된 마냥 모든 면면을 침범해서는 안 되는 거다. 시어머니는 엄마가 될 수 없다. 혹여 이 글을 읽는 예비 시어머니들이 나는 딸처럼 잘해줄 건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안타깝지만 나의 영희씨도 본인이 나에게 '딸처럼' 잘해준다고 생각하신다. 이렇게 생각이 다르다. 그저 한 사람으로서 며느리를 존중해주면 될 일이다.


영희씨는 정말 산후조리원이 싫었던 걸까?

아들이 힘들게 번 돈(며느리가 직장에 다녔음에도 불구하고!)을 조리원에다 쓰는 며느리가 싫었던 걸까?

영희씨도 그 딸도 못 간 혹은 안 간 조리원에 감히 며느리가 가는 것이 싫었던 걸까?

모두 아니라면, 그저 며느리가 싫었던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만약 영희씨 친구의 딸이 조리원에 간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그녀는 뭐라고 말할는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말할 수 있으려나?


"얘, 너는 왜 네 딸 조리를 안 해주니? 몇백만 원이나 주고 조리원을 왜 들어가. 아기들 한 곳에 모아둬서 아프기 딱인 데다 어른들이 면회 가면 아기 안아보지도 못하게 해. 너네 딸은 허구한 날 잠만 잘 텐데 거기에 그 돈을 쓴다니? 걘 거기서 하루 종일 뭐할 거라니? 돈 아깝다 얘. 못 가게 해. 그리고 그 돈 받고 차라리 네가 해줘. 너 딸인데 네가 조리해줘야지."


영희씨는 내게 했던 말 그대로 힘주어 주장할 수 있으려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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