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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근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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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Jan 11. 2021

아이가 잠들면 시작되는 일들

육아근육 1

아기가 태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데, 새롭게 얻는 능력도 있다. 육아근육.

화장실 가고 싶을 때가 아니면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드는데, 새벽녘 아기가 몸을 꿈틀거리기만 해도 눈이 번쩍 떠진다. 몸을 일으키는 데까지 로딩이 좀 걸리긴 하지만,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아이가 울기 전에 재빠르게 분유를 타는 능력은 엄마가 얻고 나서 생긴 근육이다.


아이를 보면서 일까지 하려면 두 배의 튼튼한 근육이 필요하다.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서 중요한 일부터 해야 한다. 그날 해야 할 일을 미리 정리해두거나 머릿속으로 그려놓지 않으면 아까운 시간을 놓치기 때문에 미리 생각해두고 시간이 생기면 재빠르게 처리한다. 그날 할 일을 딱 한두 개만 정하고 그마저도 아기가 낮잠을 안 자는 등의 변수가 생기면 포기할 수 있는 건 빠르게 포기한다.


포기를 빨리 하지 않으면 일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를 보면서도 일 생각이 나고 아이가 빨리 자지 않으면 감정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힘들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사는 거지?'라는 자괴감까지 생기기 때문에 오늘 못할 것 같으면 빠르게 포기하거나 다음으로 미룬다. 아니면 새벽에 일어났을 때 밀린 일을 한다.







바쁘고 부지런하게 사는 성격은 아닌데, 아이를 낳고 사용 가능한 시간이 제한적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일을 취사선택하고, 빠르게 일하는 능력이 생겼다. 하루 걸려서 할 일도 한두 시간 빠르게 집중해서 끝낸다. 나에게 어디서 이런 능력이 생겼지? 가끔은 신기하다.



(물통을 보여주며) 이 물이 투명한 게 목표가 아니라 일단 물을 채우는 게 목표인 거예요. 마감 전에 물을 채워서 일단 뚜껑을 닫는 게 중요한 거죠. 퀄리티에 집중하기보다는 끝내는 데 집중하려고 했어요.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그렇게 하다 보면 그 다음번에는 완성도가 점점 높아지더라고요.

조현주, <내 일을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안내서>, 마티포포, 92쪽







둘째를 출산한 후 (아직은) 몸이 건강해서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 그래도 욕심 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선까지만 하기로 했다. 아직은 아이를 돌보고 눈 마주칠 시간이 더 필요할 때니까.


임신과 육아를 하는 시간이 엄마에게는 희생하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예전만큼 자유롭게 일할 수 없는 대신 아이를 보면서 생각하는 시간이 생겼다. 아이를 안고 먹이고 재우면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할까, 어떤 걸 배울까 등을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것이다.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예전처럼 앞만 보고 눈앞에 닥친 일들에만 급급해 살지 않았을까 싶다.


갓 태어난 아기도 쑥쑥 크지만, 엄마도 함께 자란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일까 답답한 적이 있었는데, 환경이 바뀌니 살아남기 위해 뭐든 해내는 것을 보며 아직 파내지 못한 능력들이 많은 것 같다. 변화를 즐기는 성격은 아닌데 새로운 길을 가는 게 설렌다. 나에게 새로운 눈을 열어준 아이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나의 이쁜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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