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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Jan 17. 2021

아이와 유튜브 전투에서 승리하기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전면전으로 붙는 전쟁은 아니어도 국지적인 '전투'가 곳곳에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유튜브 전투다. 첫째를 키우면서 자연스레 유튜브를 보여줬는데, 어린이집 선생님이 미디어 노출은 최대한 늦게 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너무 생각 없이 보여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그 이후로는 유튜브를 보여주지 않았다. 아이도 안 보다 보니 점점 찾지 않았다. 






둘째를 낳고 주말에 남편이 일을 하러 가면 혼자서 두 아이를 보기에 손이 모자랐다. 둘째가 울면 분유를 먹여야 하는데, 첫째는 분유 주지 말라고 자기도 안아달라고 떼를 쓰며 울었다. 우는 두 아이를 붙잡고 나도 울고 싶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튜브를 다시 보여주기 시작했다. 마법 같이 아이는 우는 떼를 멈추고 태블릿 앞에 얌전히 앉아서 눈과 귀를 고정했다. 잠시 평화가 찾아왔다. 


이 평화는 너무나 달콤해서 하루 동안 일과 육아에 지치고 나면 이 유혹에 넘어가버린다. "엄마가 힘드니까 잠깐 유튜브 보고 있어"하며 유튜브를 보여줬다. 다음 날 아이는 내게 오더니 묻는다. 

"엄마 힘들어?"

"(엄마 생각하는 딸이 기특해서) 응~ 엄마 조금 힘들어. 괜찮아.^^"

"유튜브 보여줘."


아이는 본색을 드러냈다. 엄마가 힘들 때 유튜브를 보여준다는 걸 파악한 것이다. 나는 돌변해서 "아니야, 하나도 안 힘들어"라고 뒤로 물러섰지만 아이는 고집을 놓지 않는다. 한동안 아이는 내가 힘든지를 물어보고 안 힘들다고 하면 떼를 쓰며 힘들라고 유튜브를 보여달라고 했다.(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유튜브를 적당히 보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엄마, 아빠도 좀 쉴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아이가 더 보여달라고 떼를 쓰면서 시작한다. 아이가 큰 소리로 울면서 떼를 쓰면 둘째가 깰까 봐 몇 번은 더 보여줬다.(유튜브 키즈는 타이머를 설정할 수 있다) 그런데 한없이 보여줄 수만은 없다. 더 이상 안 된다고 할 때 아이는 바닥에 뒤집어지며 울었다. 평소에 많이 우는 아이는 아닌데 이렇게까지 우는 걸 보니 미디어의 힘이 새삼 무섭다고 느꼈다. 


남편이 혼내고 장난감을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아이는 날뛰면서 안 된다고 울었다. 결국 울다 지쳐서 내 품에서 잠들기도 하고, 언제 울었냐는 듯 다른 관심사를 찾아서 재밌게 놀기도 했다.(아이의 적응력은 놀랍다) 처음엔 아이를 엄하게 혼내는 게 싫어서 남편에게 뭐라 했지만, 나도 언제까지 방관하면서 아이가 바뀌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소아과 샘이 훈육을 할 때는 부모가 같은 입장인 게 좋다고 했다. 한쪽은 훈육하는데 한쪽은 달래주면 아이도 헷갈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눈 딱 감고 남편과 한 편에 서서 아이를 훈육했다. 아이는 혼나면서 엄마 눈치를 살피며 엄마가 도와달라는 눈짓을 보낸다. 그럴 때 마음이 아프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가르치니 아이도 나중에는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는 걸 눈치챈 듯하다. 






이 전투는 언제 끝날까 싶게 유튜브를 보고 아이가 울고 혼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아이는 안 울겠다고 약속을 몇 번이나 하고 유튜브를 보지만 어김없이 시간이 끝났다는 화면이 나오면 울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울음은 예전보다 점점 줄어들었다. 지인은 아이가 직접 태블릿PC를 조작하면서 보게 하면 끝날 때 더 심하게 운다고 아예 TV로 뽀로로 극장판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자막이 올라갈 때 아이는 끝났다는 걸 인지하고 다른 놀이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기가 심하게 운 다음 날 나도 TV를 연결해 뽀로로를 보여줬다. 아이는 얌점히 잘 보더니 묻는다. "엄마, 재밌는 건 언제 봐?" 아이는 스스로 보고 싶은 걸 고르면서 보고 싶었나 보다. 아이의 애교에 마음이 약해진 날, 다시 태블릿PC를 보여줬다. 그리고 아이에게 유튜뷰를 보여주면서 딱 두 가지만 계속 인지시켰다. 다 보고 울지 말고 '더 보여 달라'고 말을 하기, 한 번 더 보여준 후 그만 보고 다음 날 볼 것. 처음엔 많이 울었지만 점점 울지 않고 말했다. "쪼끔만 더 보여줘."란 말과 함께. 


이젠 예전처럼 심하게 울지 않는다.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걸 인지한 듯 다른 놀이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곤 엄마, 아빠한테 와서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 안 울었어!!" 





아직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유튜브 전투에서 이겼다. 내가 이긴 게 아니라 아이가 이겼다. 정해진 만큼만 봐야 한다는 규칙을 익혔고, 울지 않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지키면서 그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아이는 한 뼘 더 성장했다. 아직 머리 감기 전투, 밥 먹기 전투 등이 남아 있지만 아이는 이 전투에서도 이길 것이다. 부모가 따뜻한 관심과 지속적인 가르침과 인내만 있다면 말이다. 



가르칠 때는 언제나 기회를 또 주어야 해요. 기회를 주면 아이는 결국 배워냅니다. 누구도 한 번에 못 배워요. 아이라서 더 그렇습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떤 분이 도대체 기회를 몇 번이나 줘야 하느냐고 물었어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천 번, 만 번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그 꼴을 좀 견뎌내야 합니다.
오은영,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김영사, pp.10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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