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서울 리뷰오브북스』15호의 특집리뷰(윤주선, 2024)를 옮긴 글이다.『마을 만들기 환상』 (기노시타 히토시 지음, 윤정구·조희정 옮김)에 대한 리뷰 서평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책과 관련된 얘기보다는 평소 하고 다니던 술자리 썰들을 잔뜩 풀어놓은 잡글에 가깝다. 페이지 직접 인용이 없는 대부분의 글은 평소의 생각들이다.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진의 다정하고 집요한 피드백과 SoA 강예린 소장님의 추천·격려에 다시 한번 존경과 감사인사를!
지역재생은 최선을 다해 지는 게임이다.
인구 급감이 확정된 상황에서 지역의 활력을 예전처럼 다시(再) 살린다(生)는 건 불가능하다. 패전 마무리 역인 전문가, 활동가는 최선을 다해 지역재생에 도전하지만 대부분 실패로 귀결된다. 성공 확률이 극도로 낮은 이 게임에서 외부 컨설턴트는 주로 두 방향으로 움직인다. 특정 지역에서만 유효하거나 운이 덧대진 소수의 성공 사례를 신화화해 전국으로 확산시키거나, 검증이 어려운 실패 이유를 사이다 발언으로 꼬집는 것이다. 도시는 변수의 통제가 불가능하므로 성공의 요인도 실패의 요인도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다. 새로 지은 도시가 아닌 이미 작동하고 있는 도시에 개입하는 지역재생은 한층 성공과 실패의 요인을 잘 발라 내기 힘들다. 때문에 소수의 성공 신화는 엄정한 연구 대상에서 벗어나 쉽게 부풀려지고, 다수의 실패 사례는 잘잘못이 뭉개져 전방위로 마녀사냥을 당한다. 지역재생을 다루는 여러 책과 각종 교육 프로그램 역시 이 메시아식 환상 심기와 마녀사냥식 모두 까기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을 만들기 환상』은 진단과 처방으로 구성돼 있다. 책의 전반부는 주로 마녀사냥류의 진단이다. 관계인구, 지방창생, 외지인·청년·괴짜론, 지방이주 Turn족, 인바운드 관광 등 현재 일본에서 활발히 펼쳐지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재생 시도에 딴지를 건다. 시작이 지는 게임인 지역재생 비판은 과녁이 넓은지라 어디에 쏴도 웬만큼 맞아떨어진다. 악플은 강도가 높을수록 효과적이므로 각 소제목 역시 어그로를 끄는 자극적 표현이 많다. 천하의 역적인 지역재생의 실패 사례에 누군가 속 시원히 침을 뱉어 주길 기다리는 사람들은 “맞아 맞아! 내 말이!” 박수를 치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고약한 톤으로 강하게 비판을 하는 부분도 많아 역자는 “모든 주장이 그러하듯이 ㅡ자세히 살펴보면 논쟁의 여지는 있다. 강한 주장일수록 강한 반동이 있을 수도 있다”(196쪽)고 역자 후기에 적어 뒀다.
이 책에서 흥미를 끄는 건 진단보다는 처방 부분이다. 한마디로 메시아는 없다이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대신 사고방식을 전환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지역재생 방법론은 지역마다 제 각각이다. 방법론은 각기 마을과 참여 주체들의 특징을 반영해 맞춤형으로 발전하는 것이 옳다. 프랜차이즈처럼 전국에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할 마법 같은 정책이나 방법론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대신 지역재생에 대한 사고방식을 어떻게 바꿀지는 지역에 무관하게 적용할 수 있다. 각 주제들에 대해 저자가 어떤 사고방식의 방향성을 제안하는지를 살펴보고 그에 대한 나의 경험을 덧붙이는 식으로 책에 대한 감상을 써보려 한다.
바란다면 슈퍼맨이 아닌 슈퍼공무원을
저자가 처음으로 짚는 환상은 대기업이 지역을 구원하리라 믿는 것이다.(21쪽) 여전히 대기업 유치와 대규모 개발을 지역재생의 메시아로 보는 지역 정치, 행정가들이 선거철마다 고개를 든다. 하지만 위기에 빠진 지방도시를 한 방에 구원하는 슈퍼맨같은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기업 본사를 서울에 둔 상태에서 지방도시에 공장을 낸다 해도 법인세는 서울로 흘러가게 되며, 더 좋은 인센티브, 더 저렴한 인건비의 도시로 사업지 이전이 결정되면 지역은 걷잡을 수 없이 쇠퇴하기도 한다. 2018년 GM대우와 현대조선소가 폐쇄되며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과 고용위기지역으로 동시에 선정되어 원룸의 70퍼센트가 공실이 되어 버린 군산 오식도동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22년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는 다시 문을 열었지만 연간 100억원 이상의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지원금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고용 인력은 폐쇄 시점의 5분의 1 수준이다. 현대중공업이 돌아왔다는 상징성은 있으나 실리적으로 보면 고용 효과보다 세금 투입이 더 많다. 군산을 대기업 유치(실질적으로는 조립 하청업체 유치)로 재생시키려는 전략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2015년부터 10여년간 군산 지역재생에 관여한 경험을 토대로 상상해 본다면, 군산에 폭넓게 등장하고 있는 창조적 소상인과 소공인이 만드는 흥미로운 제조업, 관광 생태계와 이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라이프스타일 스타트업 유치를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속설이 있다.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비단 대학만이 아니다. “지자체의 인재 쟁탈전, 공무원 전국시대”(61쪽) 에서는 공무원의 변화를 촉구한다. 앞으로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지자체와 그렇지 않은 지자체 간 차이가 커질 것이라 예상한다. 관성적으로 일을 하는 공무원들과 그런 공무원들을 방치하는 지자체는 존재 가치가 사라질 것이다. 이 문장을 읽으니 유바리시가 떠올랐다. 2007년 일본 유바리 시의 파산은 일본 공무원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지자체의 방만 경영으로 사실상 파산에 이른 유바리 시는 지자체 과장급 이상 공무원 55명 중 52명이 퇴직하고, 남은 공무원들은 연봉이 40퍼센트 삭감됐다. 시청은 경비 절감을 위해 겨울철에도 오후 5시가 넘으면 난방을 끊어 실내 온도가 영하 5도에 이르러 스키복을 입고 근무한다. 7개였던 초등학교와 4개였던 중학교는 각 1개로 통합됐다. 시 의원도 절반 이상 퇴직해야 했고 임기도 절반으로 줄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일본의 젊은 공무원들은 복지부동에서 일어나 스스로 혁신을 만들어 갔다. 소위 ‘슈퍼 공무원’이 출현한 것이다. 자발적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공무원, 먼저 민간을 찾아와 사업을 제안하는 공무원, 적극적으로 제도와 법률을 해석하는 슈퍼 공무원들이 지방도시 곳곳에서 나타났다. 지방재생을 진두지휘하는 일본 공무원들의 활약상은 〈나폴레옹의 마을〉, 〈한계취락주식회사〉 등 공중파 드라마 주인공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한국의 공무원들이 지역재생을 위한 방법을 몰라서 시도를 안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도전해서 칭찬받기보다 안하고 욕 안 먹는 편이 낫다”는 속설처럼 아직은 위기의식이 없는 탓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복지부동 공무원들이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이다.
슈퍼 공무원은 매일 관청 밖으로 나가 지역 내 민간 주체들을 만나고 이들과 지역의 매력을 끌어올릴 작당을 한다. 민관 협력(Public-Private Partnership, PPP)의 기획자가 되는 것이다. 민관 협력은 문법과 작동 원리가 극명히 다른 공공과 민간의 이인삼각이므로 아무리 치밀하게 기획을 하더라도 수많은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관청 밖으로 나간 공무원이 매일 지역에 얼굴을 비치고 적극적으로 마을 일을 만들려 할 때 그 우정자산이 쌓여 “당신이 한다면 도와줄게요” 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매일매일 쌓아 온 공무원의 ‘얼굴’에 의해 모두가 움직이게 된다.(170-171쪽) 민관협력 과정의 수많은 빈틈은 이렇게 쌓은 우정자본으로 메워진다. 일본은 지자체의 실무진뿐만 아니라 시장, 부시장 등의 의사결정권자 역시 연공서열에 의한 ‘늘공(늘 공무원)’이 아닌 민간의 젊은 혁신가들의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대체되고 있고, 이 역시 머지않은 한국의 미래가 될 것이다.. 오사카의 시죠나와테 시는 2017년 여성부시장을 공모했고 《스모크 매거진(Smoke Magazine)》 전(前) 편집장 하야시 유리가 채용돼 대활약했다.(61쪽) 점차 시간이 흐르면 공무원이 지자체 의사결정자가 되는 시대가 끝나고 외부 실력자와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한국의 공무원들도 이제 외부 주체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정책을 만들고 지역 내 민간 주체들과 의기투합해 성과를 만드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재주는 넘었는데 돈은 누구 손에?
투자와 투자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최근 지방도시에 벤처 캐피털(venture capital, VC)들이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자본과 네트워크가 부족한 청년층이 지방도시에 물보라를 일으키려면 예산이 필요하다. 사업을 일으키기 위한 큰 규모의 예산은 공공의 보조금, 민간의 투자금이 주요 출처가 된다. 지역 사업의 성과가 지역 내로 돌아오는 순환 경제가 되기 위해서는 역외수지가 마이너스가 되면 안 된다. 지역 사업에서 소득은 크게 노동소득(월급)과 자본소득(부동산 투자, 배당, 임대료 등)으로 구분된다. 공공 사업은 지역 일자리를 만들어 노동소득을 올리는 데 치중해 왔다. 하지만 자본소득을 끌어올리는 방안은 아직 논의된 바가 없다. “가능하면 지역자본을 기초로 생산하여 적절하게 자본소득도 얻을 수 있으면 최상의 상태이다. (……) 지역 외 자본을 끌어와 생산하는 방식이 되어 버리면 결국 역외수지는 악화하고 만다.”(125쪽) 이는 지역에서 부가 점점 대도시로 유출되어 쇠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 외 VC들의 투자로 지역 회사가 성장하더라도 지역 입장에서 기쁘게만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지역이 재생되어도 그 열매는 다른 지역의 투자자들 손에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하와이 주민들은 관광 산업에서 세탁 일만 하는데 부동산은 폭등하여 홈리스 문제 등 사회 격차 문제가 심각하다. 오키나와도 도쿄 자본과 외자에 의한 개발이 진행되는 관광 산업은 성장하지만 주민 평균 소득은 그다지 늘지 않았다”(126쪽)는 책 내용처럼 사람들이 지역에 많이 오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자본소득이 지역에 쌓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이유로 한국에서 성공 사례로 유명한 다케오 도서관 등의 츠타야 도서관 프로젝트에 대한 유치 반대 운동이 일본 지방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관광객은 늘지만 지역에 남는 것은 쓰레기, 주차 문제, 소음뿐인 큰 규모의 ‘벽화마을’로 읽히는 것이다.
지방도시마다 손꼽히는 유지들이 있다. 이들이 지역에서 돈을 벌어 지역 내로 투자를 하지 않고 돈을 모아 놓기만 하면 그 지역은 위기에 빠진다는 얘기도 울림이 있다. “지역에서 나름의 신용과 투자력이 있는 회사인데 투자를 하지 않고 지지리 궁상떠는 일도 있다. 돈을 모아놓기만 하고 무위도식하는 지주가 있는 마을은 망한다.”(107쪽)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사회적 역할이 지역민 고용 확대나 봉사 활동에 그치면 안되고, 지역 내 잠재력 있는 소상공인, 예술가,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성장시켜 그 성과를 나눠가져야 지역력이 단단해 진다는 얘기다. 자본소득을 높이는 안으로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도입한 민간투자 연계형 매칭융자(Licorn Incubator Program for Small brand, LIPS)는 바람직한 정책 방향으로 보인다. LIPS는 지역 내 주체들이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을 동시에 올릴 수 있도록 부동산 등 자산 취득 비용을 특정 조건하에서 장기 저리 융자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잘난 사람을 부르지 말고 잘난 사람을 키우자
이 책의 백미는 ‘제4장 환상에 기반한 외지인 의존, 그 종말’이다. 4장의 내용은 서문 ‘시작하며’에 힌트가 나온다. 이 문장이 본 책의 가장 중요한 한 문장이다. “지역재생사업에서 자주 듣는 질문은 ‘뭘 하면 좋을까요?’이다. 이렇게 질문하는 이유는 어디엔가 ‘답’이 존재하고 소위 잘난 사람만 그 답을 알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실패의 시작이다.”(12쪽)
“뭘 하면 좋을까요?” 나 역시 지역재생 컨설팅을 하는 자리에 가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앞에 여전히 머리가 새하얘진다. 열정이 그득했던 현업 초기에는 그간의 경험과 학업에서 얻은 정보를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조합해 최선의 답을 쥐어짜고는 했다. 질문한 이들에게 ‘소위 잘난 사람’으로 기대받고 자리한 지역재생 박사학위자이자 ‘답’을 알고 있을 것 같은 환상의 존재로 자문비까지 받고 불려 왔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컨설팅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시기에는 확신에 가득 차 꾸짖듯 지자체를 몰아붙였던 때도 있었다. 수년 후 컨설팅의 결과가 내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간 사례를 몇 차례 지켜본 후 섣부른 컨설팅은 그만두었다.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은 (……) 목적도 공유하지 않은 채 잘난 사람과 유명한 사람을 끌어오는 것이다.”(90쪽) 답답해도 답은 지역 안에서 찾아야 한다. 지역재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멋진 건물을 세우는 것도 화려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아닌 지역에 뿌리내린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다. 지역에 뿌리내린 인재에게 기획과 운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주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 모든 결정을 “잘난” 혹은 “잘나 보이는” 외지 유명 인사, 유력 업체에게 맡기는 일이 반복되면 지역 재생은 불가능해진다. 당장 외지 업체에 비해 부족해 보여도 계속 기회를 주어 지역 팀을 성장시키는 것이 지역재생에 가장 중요한 중심점이다. 대전의 충남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지 2년이 됐다. 인구 144만의 광역시임에도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연구 용역을 외지 업체에게 맡기는 일이 습관이 된 지자체의 의사결정을 자주 본다. 안타까운 일이다. “모두 외주를 주고 시킨다면 지역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만 남게 되고 외지인과의 소통조차 불가능해지고 만다.(137쪽)
책에 따르면 2017년 조사 결과 지방창생 계획을 수립한 일본의 1,342개 지자체 중 80퍼센트가 지역 외 컨설팅 업체에 계획 수립 외주를 줬다. 대도시 집중을 완화하려 지방도시에 세금을 내려 보냈지만 지방도시에서는 자발적으로 그 돈을 다시 대도시 컨설턴트에게 돌려주는 격이다. 한국의 지역재생 계획 외주 현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보다 심각한 것은 지방도시의 인재들이 성장할 기회가 차단된다는 것이다. 자기 도시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외주를 주니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되어 (……) 결과물의 장단점을 판단하는 능력도 사라진다. (……) 정작 중요할 때 ‘그렇다면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할 수조차 없게 된다. (……) 상담을 들어주던 기업도 ‘돈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라며 사라져 버린다. (……) 답은 외주보다 (지역) 인재에 투자하는 것이다.”(139-140쪽) 저자는 그럼에도 외지인에게 외주를 줄 경우에는 지역 내에서 소수 정예팀으로 한 바퀴 돈 다음 실행하기를 권한다. 외지인은 지역의 리스크를 공유하고 자기 자본을 투자할 정도의 진심이 있는 경우에 한해 받아들이기를 추천하기도 한다.
환상속의 그대들
이 책에서는 지역의 다섯 활동 주체로 공공의 의사결정권자, 민간의 의사결정권자, 공공의 구성원, 민간의 구성원, 외부인을 꼽는다. 여기서 빠져 있는 지방도시의 가장 주요한 주체는 지방 대학이다. 가장 전문성이 있는 지역 인재인 교수들과 지역 인재 발굴, 교육, 육성에 투자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플랫폼인 지방 대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방 대학이 상아탑 안에 머물지 않고 지역과 적극적으로 연계해서 지방 문제를 해결하려 힘을 기울이고, 지방 대학 졸업생들이 수도권으로 올라가지 않고 지방도시에 머물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인구 감소 시기에 대응하는 대학의 새로운 비전일 것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중요한 것은 대체로 귀찮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지역 역시 마찬가지다”(188쪽)라는 말처럼 누구보다 귀찮기 싫어하는 교수와 대학을 움직이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지역의 자본소득에 투자할 수 있고 야간 대학원 과정을 통해 슈퍼 공무원을 기를 수 있고 지역 인재를 교육할 수 있는 지역 대학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2년 미국 포틀랜드 출장길에 포틀랜드 주립대학교 지역연계교육 (Place-Based Leaning, PBL) 담당자를 만나고 온 적이 있다. 지금은 창조적 소상공인의 성지인 포틀랜드의 창조인력을 다수 배출하는 포틀랜드 주립대학이지만 1990년대 말 포틀랜드 주립대학도 지금 한국의 지방대학처럼 인구감소, 재정악화로 위기를 맞이한 적이 있다 한다. 이 때 대학이 선택한 방법이 지역연계 강화이다. 지역과 대학의 동반성장을 통한 위기 극복이다. 지금 한국의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RISE)와 같은 맥락이다. 포틀랜드 주립대학은 이후 ‘Let Knowledge Serve The City’라는 슬로건 하에 모든 학과에 지역연계교육을 전공필수로 만들었다. 대전의 충남대학교 건축학과에 2022년 9월 부임하며 최근 졸업생들 중 대전에 취업한 학생의 비율이 5% 내외라는 점이 놀라웠다. 당분간의 고육 목표를 ‘충남대학교를 졸업한 후 대전에 머물기 위하여’로 잡았다. 지역연계교육 비중을 늘려 학생들이 지역에 관심을 갖게 유도했다. 지난 달 여름방학에는 ‘동네 건축가’개념을 고안해 계절학기를 개설했다. 건축가라는 개념이 처음 발명된 근대초기에는 인구 급증과 도시화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건물을 지어야 했으므로 건축설계업이 역사상 처음 전문영역으로 독립돼 나왔다. 신축 건물 수요가 적은 지방도시에 필요한 동네 건축가는 이미 지어진 건물과 도시를 매력있게 만들 수 있는 조사-기획-콘텐츠-브랜딩-설계-시공-운영 일체형 건축가를 말한다. 현재 지방도시에는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르네상스맨형 건축가가 필요하다. 지방도시에서 건축가는 건축설계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어렵고, 건물주는 기획, 설계, 시공, 운영 과정의 전문가를 각각 고용할 재정상황이 안된다. 때문에 건축설계에 특화되어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근대 건축가 모델이 아닌,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대신 활동범위를 동네로 한정시키는 동네건축가 모델이 지방도시에 적합할 수 있다. 활동범위를 대전으로 한정한다면 지역의 정보, 역사, 콘텐츠 메이커 네트워크, 시공업체 정보 등이 누적되고 지역민의 정서에 가까워지므로 외지인 컨설턴트에 대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의〈환상 속의 그대(1992)>의 노랫말들이 떠올랐다.
결코 시간이 멈추어질 순 없다 Yo! (인구 감소의 시계는 멈출 수 없는 정해진 미래이다.)
무엇을 망설이나? 되는 것은 단지 하나뿐인데 (방법론이 아닌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이며 외부 메시아를 기다리지 말고 각자의 동네 안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
그대는 새로워야 한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고 새롭게 도전하자. (할 수 있죠?)
환상 속엔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지방도시의 부귀영화가 무너지고 있어도 아직 환상 속에 빠져 있는 지역 유지, 공무원, 연구자)
사람들은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다니고 그대는 방 한구석에 앉아 쉽게 인생을 얘기하려 한다. (Stop Talking, Start Ma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