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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컬키트 localkit Nov 29. 2024

서울 촌놈의 군산 한달살이

지역에서의 디지털노마드를 꿈꾸는 이에게


들어가며


당신은 지방에 내려가 살 수 있는가?


필자의 글은 위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지역 소멸이 심각하다는데, 이 위기에 대응할 방법은 둘이다. 하나는 지역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를 붙잡는 것. 또 하나는 지역 밖에 있던 새로운 사람을 들여오는 것. 원래 있던 사람을 붙잡는 것만으로는 지역 소멸을 막을 수 없다. 새로운 사람의 유입이 필요하다. 그런데 과연 누가 선뜻 내려가겠다고 답할 수 있을까.


필자는 ‘도시 촌놈’이다. 서울에서 나고, 경기도에서 자랐으며, 다시 서울로 돌아와 대학 생활을 한 지 5년이 되었다. 그런 필자의 대답은 NO다. 지역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에게 지역 소멸 이야기를 해봤자 썩 와닿지 않는다. 지역에서 평생을 나고 자란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봐도 남 이야기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떠났다. 오늘 만난 채민 씨는 평생을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그리고 올해 9월 군산 한달살이를 시작했다. 채민 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마음 한편에 새로운 생각이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어, 나도 한 달 정도는 살아볼 수 있겠는데?’




Chapter 1. 왜 군산인가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평생 서울에만 살았던 이채민입니다. 9월 27일부터 군산에 살기 시작했어요. 사실 군산에 내려오기 전까지는 되게 지친 상태였어요. 그래서 잠시 한적한 곳에서 일하면서 물리적, 정신적인 균형을 맞추고 싶었습니다.


Q. 왜 군산에 오게 되었나요?

군산에 한달살이 지원 사업이 있어요. 한달살러라는 플랫폼을 통해 여러 한달살이 프로그램을 검색해 봤는데요. 숙박비를 다 제공해 주는 경우는 별로 없더라고요. 그런데 군산 말랭이마을은 숙소를 하나 내어준다고 하니까, 숙박비만 절감되어도 부담이 많이 줄겠다는 생각에 군산행을 결정했죠.


Q. 원래는 군산이 아니라 ‘지역 한달살이’에서 출발한 건가요?

맞아요. 군산이 좋아서 군산을 선택한 건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출발했죠. 막상 와보니 너무 좋더라고요. 여기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원래 일정상 9월 27일부터 10월 6일까지만 군산에 있기로 했는데, 너무 좋아서 10월 31일까지로 연장했어요. 어쩌다 보니 한달살이가 됐네요.




Chapter 2. 군산에서의 삶


Q. 와보니 어떤 점이 제일 좋았나요?

‘거리’가 생겼어요. 제가 묵고 있는 숙소가 진짜 조용하거든요. 주위에 아무것도 없어요. 근데 숙소에서 1분만 걸어가면 카페가 있고, 5분만 걸어가면 문화 체험 공간이 있어요. 사람과 멀어지고 싶을 때는 거리를 둘 수 있고, 가까워지고 싶을 때는 한 발짝 다가가면 언제든 접점을 만들 수 있죠. 서울에서는 거리를 자유롭게 조절하기 어려웠는데, 군산에서는 온전히 제 마음대로 거리를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아요.


Q. 입주한 첫날은 어땠나요?

방 안에 앉아서 울었어요. 군산에 내려오기 직전까지 하루에 15시간씩 중노동을 할 정도로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거든요. 누구를 원망할 시간도, 힘들어할 시간도, 밥 먹을 시간도 없었어요. 당연히 울 시간도 없었죠. 그러다 군산 내려와서 짐을 풀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제 벌레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안 들리네. 나한테 뭐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 드디어 울 시간이 생겼구나 싶어서 혼자 펑펑 울었어요. 그러고 나니 후련하더라고요.


Q. 군산에서 가장 좋은 건 ‘사람’이라고요.

네. 확실히 사람이 좋아요. 군산 오자마자 평행주차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세 분이 서서 제가 주차하는 걸 지켜보고 있는데, 그날따라 주차를 너무 못 하겠는 거예요. 괜히 긴장도 되고. 근데 그때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안 되면 저기 널찍한 주차장도 있어요.” 그 괜찮다는 말이 너무 듣고 싶었나 봐요. 사실 서울에서는 아무도 괜찮다고 안 하잖아요. 앞사람이 조금만 늦어도 화내고, 다들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고. 그래서 따듯한 말 한마디가 계속 맴돌더라고요.


Q. 덕분에 채민 씨도 사람에게 애정을 나누기 시작했다고요.

왜, 외국 나가면 스몰 토크 하잖아요. 우리나라에도 원래 그런 문화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첫날 회 포장해서 먹으려고 저녁 8시쯤 회 센터에 갔거든요. 이미 다 문을 닫았더라고요. 편의점 빼고. 그래서 편의점 사장님한테 가서 이것저것 물어봤어요. 사장님이 엄청 사람 좋은 미소로 대해주니 저도 허물없이 다가가게 됐죠. 우리나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던 시절이 있었겠구나. 수도권을 벗어나 지역에만 가도 이런 정이 남아 있는 걸 보면. 덕분에 군산에서는 저도 애정을 더 나누게 되는 것 같아요.


Q. 군산에서 기억에 남는 공간이 궁금해요.

첼로네시아라는 카페가 있어요. 사장님이 첼로를 했던 사람이라 공간이 되게 우아하고, 클래식 음악이 나와요. 건물도 여러 채인데 건물마다 컨셉이 있어요. 일반 카페 공간, 디지털노마드를 위한 공간, 식물을 기르는 공간, 이런 식으로요. 여기서 햇살 맞으면서 노트북 하니까 행복하더라고요.




Chapter 3. 디지털노마드를 꿈꾸는 이에게


Q. 막상 떠나긴 어려울 것 같아요. 군산에 오기 전까지 결단이 어렵지 않았나요?

어려웠죠. 가기 직전까지도 고민했어요. 군산시청에 지원사업 신청서를 제출할 때까지만 해도 한가했는데, 막상 사업 선발된 직후 일이 바빠져서 몸이 아팠거든요. 지금 가는 게 맞는 걸까 싶었죠. 그래도 당장 닥친 문제 때문에 기회를 버리기 아쉬웠어요. 나에게 또 다른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거든요. 일단 큰일이 나더라도 가서 생각하자 하고 내려왔죠.


Q. 군산에 오기 전의 채민 씨와 군산에 온 후 채민 씨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여유가 생겼어요. 일에 몰입하면 착각하게 되잖아요. 내가 없으면 일이 다 안 돌아갈 것 같다는 느낌. 근데 그런 거 없어요. 내 조급함이 만들어낸 착각 때문에 괜히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200km 떨어진 데에서 일을 바라보니까 여유를 갖고 차분하게 일을 풀어나갈 수 있게 되었어요. 워케이션(Workation)이라는 단어처럼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동시에 즐기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점도 좋아요. 물론 아직은 ‘워’가 더 많지만(웃음).


Q. 앞으로도 계속 워케이션 형태로 일을 할 예정인가요?

네. 제가 항상 바랐던 게 있어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되기. 사실 사람이 다 그렇잖아요. 출근했다고 일만 하지도 않고, 퇴근했다고 일을 안 하지도 않잖아요. 그럴 거면 제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해야 가장 능률도 좋고 행복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아마 계속 워케이션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다른 지역도 도전해 볼 생각이지만, 지금으로서는 군산이 1순위고요.


Q. 군산 혹은 워케이션을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군산에 오기 전까지 제가 지역에 대해 어렴풋이 갖고 있던 이미지는, ‘심심하고 한적한 동네’였어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지내기 정말 좋아요. 우선 낮에는 작업하기 좋은 카페가 많아요. 대형 카페도 되게 많고요. 주차 걱정 없이 이곳저곳 다니면서 일하기 좋아요. 밤에는 즐길 거리가 많아요. 불꽃축제도 하고, 야시장을 열어서 음식도 팔더라고요. 한강이랑 놀거리는 비슷한데, 서울과 달리 테이블 간 거리도 널찍하니 편안했어요. 낮에는 업무에 집중하고, 밤에는 즐길 게 많으니 워케이션 하기 굉장히 좋은 위치 아닐까 싶어요. 군산을 추천하고 싶다는 의미입니다(웃음).




마치며


당신은 지방에 내려가 살 수 있는가?


채민 씨를 만난 후 필자의 대답은 YES로 바뀌었다. 일에 잡아먹힐 듯한 순간이 온다면 한 달가량 지역에서 여유를 되찾고 돌아올 생각이다. 경험은 곧 디딤돌이 된다. 한 달은 작아 보이지만 그 한 달의 기억을 지닌 사람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 경험을 토대로 본인의 세계를 이곳저곳으로 확장할 수도, 다른 사람에게 출발의 원동력이 되어줄 수도 있다. 오늘의 채민 씨처럼 말이다.


지역 소멸이 심각하다는데, 이 위기에 대응할 새 방법이 있다. 지역 경험이 전무한 이에게 따스한 경험 한 줄기를 심어주는 것.


이제 지역에서의 삶이 주는 여유와 정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글: <local.kit in 전북> 생활팀 고진영 에디터 

사진: <local.kit in 전북> 생활팀 정회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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