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1초가 아까운 세상입니다. 규격화된 시간 속을 사는 우리는 낭비되는 것을 두려워하죠. 그러나 짧은 단어 몇 개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긴긴 이야기가 듣고 싶은 저는, 어느새 이곳을 서성이게 됩니다. 전주 남부시장 2층의 청년몰입니다.
버려진 창고처럼 쓰이던 이 공간은 2011년 문전성시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들을 위한 창업 공간이 되었습니다. 청년몰 4번 출입구 계단 벽엔 이곳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거쳐간 수많은 점포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세월을 눈으로 봅니다. 그들의 오랜 열정이 아직 단단한 이곳에 발 딛고 서 있으니, 순간 감사함이 밀려듭니다. 조금 더 들여다 보겠습니다.
청년몰의 많은 가게 중 두 곳에 방문하였습니다. 마음에 꼭 담아둘 만한 멋진 칵테일을 파는 차가운 새벽(이하 새벽)과 책으로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공간, 책방 토닥토닥(이하 토닥)입니다. 이곳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분명 당신과 공명할 거예요.
토닥:
책방 토닥토닥은 2017년 4월 26일에 입점했어요. 처음 들어올 땐 6대 1정도의 상당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벌써 7년이 다 돼가네요. 저희 부부가 결혼하고 1년 뒤쯤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그때는 그냥 책방을 한다고 하면 책이 들어오는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라는 걸 책을 들이면서 알았어요. 생각보다 상당한 자본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인테리어를 끝내고 매장을 정비하니 수중에 딱 40만원이 남더라고요. 그 돈으로 뭘 할 수 있었을까요, 모두 책을 사고 보니 서른 권 정도였죠. 지금 보이시는 저 매대, 제가 처음 상점 시작할 때부터 있던 매대인데, 저기에 딱 서른 권을 배치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처음 왔을 땐 이곳이 서점이라는 생각을 못 하셨어요.(웃음) 지금은 다양한 책들을 늘려 가며 여기까지 왔어요. 여기 있는 책들은 다 저희가 산 거예요. 그러니까 책이 저희 재산, 저희 돈이죠.
새벽:
저는 2012년에 입점하여 13년째 칵테일 바를 운영하고 있어요. 청년몰의 가게들이 처음으로 문을 열 때 들어 온 열두 가게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가게입니다. 원래는 대학을 다니면서 다양한 일들을 했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졸업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죠. 어떻게 해야 먹고 살 수 있지, 뭘 할 수 있지 고민하던 중 학교에 붙은 포스터를 봤어요. 여기 남부시장에서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 실험을 해볼 사람들을 모집하는 거였죠. 그날이 마감이라고 써 있길래 바로 지원을 해 버렸어요.
-바텐더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제가 술자리는 좋아했는데, 소주나 맥주 같은 술은 영 맛이 없어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깔루아 밀크라는 칵테일을 추천받았고, 그때 처음으로 술이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칵테일의 매력을 알게 되어 자꾸 먹다 보니 무섭더라고요. 칵테일은 다른 술에 비해 비싸기도 하고, 어떤 맛인지 모르며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기도 하고. 어쩌면 메뉴판의 칵테일을 고르는 건 실패할 위험을 고르는 것과 같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만약 그런 칵테일을 누군가 추천해 준다면, 사실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요. 그 때 생각했죠. 이걸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믿을 만한 칵테일을 추천하는 바텐더가 되고 싶어요. 항상 그런 느낌을 가지고 추천하죠. 이 칵테일 너무 맛있는 걸 사장인 제가 아는데, 절 믿고 한 번 드셔보지 않으시겠어요? 기꺼이 이 칵테일을 모험해 보지 않으시겠어요?
토닥:
저희가 책방을 하며 꼭 지키고자 하는 원칙 두 개가 있는데, 하나가 책을 반품하지 않는 거예요. 책을 반품하게 되면 책이 창고에 들어가고, 결국은 버려지거든요. 우리 입장에서는 안 팔리는 책들 반품하고 그만큼 잘 팔리는 책들을 놓으면 편하기야 하겠죠. 근데 그러면 책을 판다는 사람이 결국 정작 책을 버리는 데 일조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합의를 봤어요. 반품하지 말자. 책방 시작할 때 결심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7년 동안 반품을 한 번도 안 하게 되었네요.
두 번째 원칙은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거예요. 책방토닥토닥의 모토가 ‘생각과 가치를 파는 책방’인 것처럼 저희의 활동이 그저 책을 판매하는 일에 머물지 않았으면 해요. 그래서 끊임없이 배제된 것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도움이 필요한 분들과 연대하고 있습니다. 인권 문제나 환경 문제, 국가적 참사에 관한 애도의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며 말이죠.
사실 이런 활동을 하며 책방 일도 함께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저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 존중의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활동을 통해 이 지역이 지켜졌으면 하고요. 지역을 지킨다는 게 꼭 이곳에 빌딩이 늘어나서 부자가 되는 걸 말하지 않아요. 저는 그냥 소시민이잖아요. 저 같은 사람도 아무 생각 없이 잘 살 수 있는, 떠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활동을 계속하고 있어요. 노동자와 전쟁을 겪는 사람들, 인간과 비인간, 여성과 성소수자 모두가 다 함께 살아가려면 지역사회의 존중이 필요해요. 저희의 일이 지역사회의 존중을 도모하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해요.
새벽:
술에 애정이 있는 만큼, 제가 운영하는 바는 기존 칵테일 바의 아쉬운 점을 보완하는 곳이 되었으면 했어요. 제가 술을 먹을 때는, 바텐더가 전문성이 부족하다든지, 공간의 유해한 분위기가 관리되지 않는다든지, 성별에 따라 어울리는 술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든지 하는 요소들이 존재했었어요. 저는 사실 이런 요소들이 진정으로 술을 즐기는 걸 방해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이 공간이 맛있는 술을 먹으면서도 바텐더를 신뢰할 수 있고 과음을 자제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술이 또 사실 도수가 전부가 아닌데, 사람들은 꼭 도수가 낮을 술을 먹으며 스스로를 ‘아기 입맛’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게 너무 아쉬웠어요. 사실 스스로가 즐거울 만큼 먹는 게 술인데. 술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도 즐겁게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어요. 이게 제가 손님들의 취향과 이야기를 더 주의깊게 듣고 칵테일을 만들어 드리는 이유예요. 때로는 제가 취향을 물어보면 어색해하는 분들도 계세요. 저는 오히려 그런 분들의 취향 길잡이가 더 되고 싶어요. 이런 게 사실 바텐더의 역할이 아닐까요?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것들을 좋아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 말이죠.
새벽:
칵테일은 이것을 경험해 봤는지 아닌지로 딱 우열이 나뉘지 않아요. 칵테일은 사람마다 다른 좋은 점을 느끼거든요. 이건 좋은 재료나 돈을 얼마나 많이 썼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 바텐더의 기술과 그 사람의 취향이 만나 맛을 낼 수 있는 분야이거든요. 이렇게 손이 가는 분야를 통해 사람이 연결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요. 좋아하는 것이 칵테일 안에 분명히 있을 거거든요. 꼭 술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좋아하는 음료나 디저트를 말씀해 달라, 혹은 취향을 알 수 있을 만한 단서를 달라고 말씀을 드려요.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저는 그 말 너머를 탐색하려 노력하죠. 그리고 좋아할 만한 잔을 찾아 안내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제가 추천한 칵테일이 입에 안 맞는 경우, 저는 실제로 다시 만들어 드려요. 저는 칵테일을 마시러 온다는 건 그 자체로 맛있는 술을 마시고자 한다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이 심리의 고리를 깨고 싶지 않아요. 칵테일이 보기에만 예쁘고 별로 마음이 가지 않는 술로 남지 않았으면 해요. 이 잔 하나의 효용이 그거보다는 조금 더 오래 갔으면 하는 마음이랄까요. 저에게 칵테일은 일단 맛있는 술, 그리고 연결의 술이에요.
토닥:
글은 소통을 통해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글을 통해 누군가 혼자만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되고, 그걸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소통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완성되는 ‘책’이라는 하나의 경험은 결국 소통과 나눔의 경험이에요. 이런 경험을 통해 답답함을 해소하거나 숨통이 트일 수 있는, 이 책방이 그럴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소통과 나눔의 키워드는 이곳에서 진행되는 여러 책 관련 행사와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저희는 책을 만드는 분들이 너무 고마워요. 편집자나 마케팅을 하시는 모든 분들을 포함하여 출판 노동자들의 노동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출판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고, 책을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같은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듣다 보면, 어느 순간 제가 성장해 있어요. 저는 주로 책 추천할 때 출판사도 한 번 봐 보라고 해요. 좋아하는 작가만큼이나 좋아하는 출판사, 좋아하는 편집자가 생기는 것도 또 다른 맛이 있거든요.
-이곳 책방 서가에 두고 싶은 책은 어떤 책인가요.
저는 편견이나 혐오만 없는 책들은 다 환영해요. 열려 있는 책들이면 전부 좋죠. 저희는 책방에 방문하는 작가님이 있으면 책 추천을 꼭 한 권씩 받아요. 그러면 저희는 이 책을 절판될 때까지 팔겠다고 하거든요. 이렇게 추천을 하나씩 받다 보면 너무 베스트셀러가 아니거나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지 않는 책이더라도 저희가 책임지고 보관할 수 있는 거예요.
토닥:
다른 곳이 아니라 이곳 청년몰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과분한 격려를 받을 때가 있어요. 지금 하는 인터뷰도 그렇고요. 특히 이 지역 주민들이 여기를 꾸준히 찾아주시니 그게 다른 관광객들에게도 좋게 보이는 것 같아요. 청년몰은 그런 공간입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과 책방이 서로의 서포터즈가 되어 줄 수 있는 공간. 손님이면서 친구이면서 지지자로서 시간을 들이고 진심을 나눌 수 있는 공간 말입니다.
새벽:
사실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건 결국 중간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청년몰이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편하고 안전한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비교적 저렴한 청년몰의 임대로 덕분에 적당한 가격에 좋은 칵테일을 팔 수 있어요. 그러면 언젠가 칵테일이 아주 비싸고 가끔 먹는 술이나 아주 싼 맛에 시럽 맛만 잔뜩 느껴지는 술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괜찮을 가격을 내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술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몰은 그게 가능한 공간인 것 같아요. 청년몰이 더 그런 공간이 되어 뾰족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안전한 공간이면 좋겠어요. 그들에게 좋은 경험을 주고 싶어요.
-청년몰이라는 공간에 굉장한 애정이 느껴지는데, 이곳에 대해 더 설명해 주세요.
토닥&새벽:
이곳 청년몰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곳이 아니예요. 여기는 남부시장 상인회와 청년몰 상인들이 협력하여 운영되고 있습니다. 텅 빈 공간에서 시작되어 한때 청년몰 유행의 선도가 되기도 하였으나,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20%대의 공실률을 유지하고 있어요. 꼭 대박나야만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저희는 망했죠, 쇠락 중이고, 사라지는 중이죠. 그런데 15년 운영 동안 살아남은 가게들이 이렇게 분명히 자리를 지키고 있잖아요. 우리는 우리만의 생존 방식이 있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너무나도 잘 이어지고 있는 거예요. 가끔 이곳에 ‘왜 망했냐’라는 질문을 가지고 오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답을 못 들어요. 대신 이렇게 질문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어떻게 15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나요? 사실 저희는 잘 먹기까지는 아니지만 잘 살고 있거든요. 장사도 잘 하고 있고. 인구 흐름이 하나도 없던 곳에 가게가 만들어져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데, 여기는 굉장히 잘 살아남아 있는 편에 가깝거든요. 청년몰은 그 자체로 청년몰이에요. 이곳엔 답을 찾기보다는 이야기를 들으러 와야 해요. 가게와 함께 성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곳은 지속될 거예요. 저희 모두 가게에 애정을 가지고 있거든요.
새벽:
저는 이 말을 항상 이렇게 이해를 하고 있는데요,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가, 조금만 벌어도 행복해요는 아니에요. 적당히 번다는 건 그래도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제가 종신보험 넣고 아버지 병원비도 좀 내고, 고양이 아프면 병원 보낼 만큼은 저축해 놓고, 그리고 또 집세도 내고, 약간은 또 쌓아 두고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만큼, 그만큼은 살 수 있으면 아주 잘 사는 것 같아요. 사실 이건 좀 같이 잘 사는 거에 가깝긴 한데요.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만큼 벌어도 아주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토닥:
저는 잘 살자라는게 쉼과 일, 놀이와 노동이 조화를 이루며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일에만 몰두하지 않고 사는 것. 조금만 벌고 잘 살자는게 아니라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는 거잖아요. 아주 잘 살자라는 건 결국 행복하자는 것이거든요. 삶이 그렇고 사회가 그렇고 일이나 돈이 모두 여유가 사라지고 주변 챙기기도 어렵고 소통하기도 어렵고, 점점 그렇게 변해가지만 우리는 아주 잘 살자는 거예요. 저 말이 지키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요. 저 말이 가끔 우리가 어디 떠내려가지 않게 묶어 준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제가 너무 돈에 몰입하고 그러지 않게.
새벽:
사실 처음에는 제가 이 가게를 이렇게 오래 할 줄도 몰랐어요. 그냥 이런저런 경험들과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이렇게 됐는데요, 지금까지 엄청 많은 장면들이 있었고, 어쩌다 보니까 전 그 장면들에 가 있기는 하더라고요. 삶이 뭐냐. 이런 건 너무 커서 저에겐 아직 삶이 뭔지는 모르지만 아직 삶이라는 전체가 되기는 쉽지 않은 것인데 뭔가 계속 쌓여오고 있는 것 같거든요. 즉흥적인 결정들을 저지르고 수습하며 살아왔던 것 같지만, 그냥 그게 쌓여서 삶이 된 것 같아요. 조바심 안 내도 돼요. 두껍게 두껍게 쌓을 필요는 없고 천천히 천천히 조금 조금 쌓을 수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10년 하다 보면 그냥 되어 있더라고요. 뭐든. 차가운 새벽은 제가 사람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바텐더는 제 직업이기도 하고, 뭔가 그런지만 저는 처음부터 되게 좋은 바텐더라기 보다는 그냥 계속 되는 중인 것 같거든요. 저는 항상 어떤 경로에 있고. 그냥 그 과정을 지나는 중이라는 걸 인정하고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거나 손님들에게 주고 싶은 경험과 맞지 않는 것들은 정리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좀 더 노련해지기도 하며 아주 조금씩 더 만족스러워지는 장소예요. 아무래도 옛날의 저보다는 지금의 제가 칵테일을 더 잘 만들죠. (웃음) 장비도 점점 좋아져요. 원심분리기 같은 거 샀다 신난다.
토닥:
이 서점은 저에겐 예기치 않은 충돌 같은 거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동네 서점을 좋아했고, 서점에 대한 추억도 많지만 그래도 제가 책방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지금은 그냥 이 신기한 걸 좀 오래 붙잡아 보고 싶어져요. 아 근데 또 너무 바라면 안 이루어지는데, 사람이라 뜻대로 안 될 때도 있고. 사실 대박나지 않는 한 경제적인 부분은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항상. 저는 가끔 독일의 작은 마을에 150년 된 서점을 3대째 물려 받아 운영하시던 헬가 바이헤라는 할머니를 떠올려요. 할머니가 세계 2차대전쯤 돌아가시고 그 서점은 사라졌지만, 서점이 운영되던 150년의 시간 동안 책방은 마을 안에서 어떤 공간이었을지 궁금하곤 해요. 그런 공간에 서점이 존재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주었을지 생각하면 저분의 삶은 정말 결코 헛되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저분을 만나 뵌 적은 없지만 관련 인터뷰나 글을 보면서 많이 공감이 되었어요. 나의 존재 이유란 거창한 게 아니라 그정도면 되지 않을까. 사실 되게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거죠.
각자의 길을 오래 걸어간 사람들의 단단함이 이곳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또한 아득히 스스로의 역사를 만들어 왔을 것입니다. 덕분에 삶은 너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지고, 나는 너무 모르는 사이에 내가 되곤 합니다.
지금까지 욕망해 온 모든 것들이 나를 정말로 더 나아지게 했는가.
청년몰에서 만난 사람들은 거기에 작은 질문을 던진 것 뿐.
이제, 마음껏 부풀어 볼까요. 여기는 그래도 되는 공간입니다.
글: <local.kit in 전북> 산업팀 이다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