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 갯벌에서
새만금 개발청에서 남북도로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다 잠시 멈춰, 군산공항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면 넓게 펼쳐진 황갈색 들이 보입니다. 수라입니다. 그곳은 수천 년 전부터 우리가 딛고 사는 땅과 그 너머의 바다를 이어 주던 갯벌입니다.
갯벌은 관계를 보여줍니다. 중력과 시간의 관계, 생존과 공존의 관계, 사람과 바다의 관계. 많은 생명이 이 관계를 기반으로 살아갑니다. 해홍나물은 육상식물이 바다와 관계 맺은 결과 염생식물로 출현했습니다. 게와 조개도 육지와 바다의 관계 맺은 틈 속에서 조심스럽게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갯벌은 말합니다.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고, 그러한 연결에 뚜렷한 경계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아주 먼 옛날 서해안에서는, 물 때에 맞춰 배를 타고 나가 닻을 내리고 가만히 기다리면 갯벌 한가운데였습니다. 딱딱한 모래로 되어 있던 땅에 경운기를 타고 아무리 오래 들어가도 갯벌의 끝이 보이지 않던 때도 있었죠. 그때 갯벌은 늘 제자리였습니다.
그러나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광활하고 다채롭다는 서해안 갯벌생태계의 지형이 달라집니다. 농업이 곧 국가 경쟁력이었던 80년대 초, 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갯벌 간척은 국책 사업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새만금엔 갯벌을 매립하여 농경지를 만들고 방조제 안의 물을 담수화할 계획이 들어섭니다.
개발은 진행되었습니다. 1981년에 만경·동진강 유역 농업종합개발계획 기본조사가 실시되어 새만금 지역의 간척 가능 면적을 파악하였고, 1987년에는 이를 바탕으로 한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이 발표되었습니다. 1991년 11월 28일엔 방조제 사업 기공을 거쳐 1998년 12월 30일엔 제 1호 방조제 공사가 준공되었습니다. 이후 새만금방조제 물막이공사의 환경 영향을 조사하기 위한 민간공동조사단이 1995년 5월부터 구성되었고, 2001년엔 환경단체와 시민들에 의해 매립 면허 취소 행정소송이 제기되었습니다. 새만금 개발 최후의 보루였던 해당 소송에서 정부가 승소하며, 2006년 4월 21일에 방조제 끝막이 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때 서해안 갯벌에 머물렀던 수많은 생명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갯벌을 기억할 겁니다. 누군가에겐 한 번도 닿은 적 없는 고향이고 누군가에겐 그저 텅 빈 기표로 기억될 테지만 적어도 제가 본 갯벌은, 그리고 이다운 씨의 목소리에는 갯벌이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오늘 황새 열네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걸 봤어요. 보통은 한 마리나 두 마리씩 보이는데, 저도 처음 봤어요."
10월 5일 방문한 수라 갯벌에서 만난 이다운 씨가 말합니다. 이다운 씨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에서 새를 관찰합니다. 황새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1급에 해당하는 물새로, 현재 전 세계에서 삼천여 마리만 남아 있습니다.
수라 갯벌은 삼십 년 넘게 진행된 새만금 간척사업에도 원형의 모습을 간직한 만경강 수역 마지막 갯벌입니다. 수라는 전라북도 군산시 옥서면 남수라 마을 옆의 이름 없던 갯벌에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이 붙인 이름으로, ‘수 놓은 비단’처럼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그 이름을 닮은 이곳을, 이다운 씨와 함께 걸으며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우리는 군산공항을 지나 남수라 마을로 향합니다. 마을 입구와 멀지 않은 곳에 수라 갯벌이 보입니다. 우리가 처음 들어선 곳은 해홍나물과 갈대가 시야를 가득 메우는 넓은 평지였습니다.
Q: 이곳은 현재 어떤 모습인가요?
A: 원래는 여기까지가 바닷물이 들어왔던 곳이에요. 그러나 방조제를 막고 나서, 현재는 평균 해수면의 1.5m아래로 물이 빠져 땅이 많이 드러나 보이는 상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가 밟고 있는 이 땅에 살고 있는 갯벌생물은 거의 없습니다. 이곳은 더 이상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염습지와 초지로 천이된 곳이에요.
우리는 걷는 동안 너구리와 멧돼지, 삵과 새 발자국을 봅니다. 발자국은 깊진 않았으나 선명했습니다.
Q: 그렇다면 현재 수라 갯벌엔 어떤 생물들이 서식하고, 찾아오고 있나요?
A: 새만금호 바닥은 현재 바닷물이 원활하게 들어오지 않아 썩어 있는 상태입니다. 물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물 속에 살아 있는 생물은 숭어뿐이에요. 여기서 일 킬로미터 가량 더 걸어가면 멸종위기종 2급인 흰발농게가 사는 곳이 나와요. 흰발농게는 원래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땅속에 사는데, 방조제 건설 후 빠져나가는 바닷물을 따라가지 못해 현재는 번식하지 않고 겨우 살고 있어요. 흰발농게, 참게, 칠게와 같은 게류는 조금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나, 갯지렁이와 조개류 등의 저서 생물은 거의 멸종한 상태입니다. 다행히도 여전히 새들은 많이 관찰돼요.
Q: 이곳은 갯벌과 염습지, 초지가 섞인 공간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럼에도 여전히 수라 ‘갯벌’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현재는 수문이 하루에 두 번, 한 달에 20일 정도 개방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는 사실 갯벌 생태계가 원활히 유지되긴 어려워요. 원래 갯벌에 살던 생물들이 90% 이상 멸종한 상태이고, 남아 있는 개체들도 멸종 직전에 있으니까요. 그러나 수문이 열리고 해수가 원활히 유통된다면 3년 이내에 개발 이전의 생물 다양성을 거의 회복할 수 있기에, 우리는 아직 이곳을 갯벌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Q: 갯벌은 어떤 생태적 가치를 지니고 있나요?
A: 이곳 갯벌이 생기는 데 8천 년이 걸렸다고 해요. 그동안 수많은 미세생물, 염생식물, 수조류, 저서생물과 동물들이 상호작용하며 생태계를 구성해 왔을 텐데, 생물 다양성이 높을 수밖에 없지요. 또 갯벌과 그 주위의 염습지는 기후 위기 시대 탄소를 흡수하는 속도와 양이 아마존 열대우림보다 빨라요. 이런 시대에는 더욱더 갯벌이 소중하지 않을까요.
Q: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동진강 수역의 해창 갯벌에 장승을 세우는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이 장승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해창 갯벌의 장승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뿐만 아니라 갯벌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함께 세우고 있습니다. 장승은 갯벌에 있는 생명들을 지킨다는 의미가 있죠. 오래되거나 바람으로 장승이 쓰러지면 또 세우고 세우며, 현재는 서른 개 정도의 장승이 서 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며 갯벌을 둘러보았습니다. 갯벌은 더 이상 옛날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수라갯벌과 방조제 사이 만경수역은 여전히 검은머리흰죽지의 월동지였습니다. 갯벌의 면적은 축소되었지만 수라 갯벌에도 보호종인 금개구리, 흰발농게가 아직 서식하고 있었고 여전히 도요새와 저어새, 황새가 드나들었습니다. 민물가마우지는 지금도 수라갯벌을 최대 서식지로 삼고 있습니다. 개발이 더딘 곳은 사주와 염습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매립이 일부 이루어진 지역 또한 물새들의 휴식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멈춰 생각합니다. 흰발농게가 축축한 땅 위를 지나는 소리, 금개구리가 습지의 나뭇잎 위로 착지하는 소리, 숭어가 물속에서 튀어 오르는 소리, 황새와 두루미가 물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오늘 처음 본 수라와 어느새 비슷한 숨을 내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하는 미래를 그리고 손으로 만져보기 위해 어떤 시간을 반복해야 할까? 나는 그것을 우선 어딘가에 써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득 한 작가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과연 이곳에 머무는 수많은 도요새와 물떼새, 갈대와 해홍나물, 조개와 게들에게 아무 죄책감 없이 아름답다고 말해도 되는 순간이 올까요.** 그래서 저는 우선 이곳에 써 둡니다. 사람과 갯벌이 함께 영원할 미래를 적어 둡니다.
*박솔뫼, 『미래 산책 연습』, 문학동네, 2021, 18쪽
**안희연, 『당근밭 걷기』 중 <야광운>의 문장을 참고함
글: <local.kit in 전북> 산업팀 이다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