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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컬키트 localkit Dec 07. 2024

사라짐, 그 너머의 이야기. Episode. 2

노년의 시작: 군산 시니어클럽에서

Prologue.


입시, 대학, 졸업, 취준, 취업, 결혼, 육아.


사회가 정해준 인생의 진로를 숨가삐 밟아나가다 보면, 어느새 내 나이의 앞자리는 여러 번 바뀌어있다. 어느덧 여섯 번째 앞 글자, 이제야 세상을 조금 알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이 말을 내뱉기가 무섭게 사회는 ‘노년’의 이름으로 나를 배터리가 다 된 부품마냥 버린다. “이만했으면 됐다”라며 “적당히 빠질 것”을 요구한다.


“에이, 이제 나이가 몇인데,” “나잇값 해야지.”


생일 케이크 위 초의 개수가 늘수록 사회 속 나의 위치는 점점 쪼그라든다. 뭣 모르던 학창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된 순간부터 요구받던 ‘노동력’은 더 이상 나를 짓누르는 의무가 아니라 다음 세대로 순순히 내어줘야 할 것이 된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한없이 나약한 존재가 된다.




[군산시니어클럽: 노년의 시작]


소멸 지역 인구의 대부분은 지방에서 노년기를 보내는 이들이다. 청년층의 대거 유출과 굳어진 지역발전의 현실 속, 남은 노년층은 노동력을 반납한 채 사라져가는 지방을 먼발치에서 쳐다본다.


군산시는 인구 소멸 위험지역임과 동시에 43만 명의 노인을 보유한 고령사회이다. 전국에서 네 번째로 높은 노인 인구 비율을 자랑하는 군산, 이 위협적인 통계를 뛰어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을까?



꽁보리식당은 군산시니어클럽 노인 일자리 사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이다. 군산공설시장 2층 청년몰에 위치한 꽁보리식당은 현재 12명의 노인이 운영하며, 군산 특산물인 찹쌀보리를 활용한 보리밥을 판매한다. 여름에는 열무국수, 겨울에는 닭칼국수, 간절기에는 잔치국수. 어르신들의 깊은 내공을 살려 다양한 계절 음식도 선보인다.


“일상의 활력소”

저희 식당의 가장 큰 목적은 어르신 개개인께 의미를 부여하는거예요. 어르신들께서는 혼자 집에 있으면 무료하고 적적한데, 꽁보리식당에 나오면 사람들도 만나고 젊어지는 기분이라고 말씀하세요. 식당에 오면 또래 친구분들도 많이 사귈 수 있고, 일상 속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하세요.


수익 창출은 정말 부가적인 것이에요. 꽁보리식당은 삶의 에너지를 되찾고, 공동체로서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곳입니다.


“노인의 힘없고 약한 이미지의 틀을 깨고 싶어요.”

군산시니어클럽 시장형사업 꽁보리사업단 김선경 담당자는 말한다. 


고령화 시대에 60, 70대는 전혀 늙은 나이가 아니에요. 충분히 하고 싶은 일을 쟁취하고, 성공할 수 있는 나이에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끝없이 퇴직을 한 노인에 대해 힘없고 약한 프레임을 씌우는 것 같아요. 


전국적으로 많은 노인 일자리 창출 사업이 시행되고 있죠. 하지만, 대부분 어르신들께 ‘풀베기 봉사’처럼 수동적이고 미미한 역할만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때문에 어르신 본인들도 비중이 큰 역할을 대할 때 “내가 나이가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 라는 인식이 있고요.


저는 꽁보리식당을 통해 이러한 어르신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어요. 어르신 한분 한분께 적극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내가 이런 면도 있었어?”를 느끼도록 하고, 본인에 대한 한계를 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거죠.



“나눌 수 있는 능력”

작년, 꽁보리식당 어르신들과 함께 소외 이웃을 위한 동지팥죽 기부 행사를 진행했어요. 어르신들께서 본인이 쌓아온 실력을 바탕으로 나눔을 실천하신 거죠. 자신의 능력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해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본인의 일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는 데 정말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인 중심 창업”

저희 사업이 전국의 많은 노인 사업의 본보기가 되었으면 해요. 특히 ‘노인 중심 창업’이라는 게 가능하다는 점, 또 어르신들도 우리 사회의 주요한 역할을 맡고, 지역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노인은 단순노동밖에 하지 못한다”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나이에 편견을 가지지 않는 사고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노인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개선하는 거죠. 또, 어르신들께서 본인의 한계를 스스로 정해놓지 않고, 도전 의식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꽁보리식당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Epilogue.


“다시, 청춘!”

군산시니어클럽은 고령화사회의 대안을 적극적인 노인 인력 양성 및 재생산에서 찾는다. 노인의 노동력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노인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무시당하지 않고, 자신의 노동력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때. 진정한 지역 활성화는 그제서야 시작될 것이다.



지역이 소멸된다고 한다.

청년이 지방을 떠난다고 한다.

고독사하는 노인이 많아진다고 한다.


이 “문제투성이 현실”은 특정한 누군가의 탓이 아니다. 

우리 손으로 직접 빚은 우리의 삶이다.

우리 모두 어느 순간 청년이었고, 어느 순간 노년이 된다.


나를 위해, 너를 위해, ‘우리’를 위해.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노력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사회가 정의한 그 어떤 기준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 노력하는 아름다움이기에.


때로는 철없는 투정을 부리더라도, 무모한 새로운 시작을 바라더라도. 

기꺼이 의지할 곳을 내어준다.


그렇게 “버틸 수 있는 힘” 한 줄기를 선사해 줄 때.

끝내 로컬을, 지방을, ‘우리’를 지킨다.


사라짐, 그 너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







글: <local.kit in 전북> 산업팀 이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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