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 안에서 꿈을 성취한다. 하지만 그 사회 속에서 다양한 커뮤니티에 들어가 본인을 발견하고 드러내야 꿈에 더 가까워진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게 느껴진다.
꿈은 결국 누군가가 점점 두려움에 커뮤니티를 꺼리고, 주변을 의식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자유롭고, 자발적인 삶이라는 꿈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런 젊은이 중 상당수가 머무르는 곳은 어디뿐인가? 전국 팔도 중 겨우 수도권이다.
과연 그들의 꿈을 좁고 빽빽한 수도권이 실현해 주었을까?
2022년 국회미래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 청년들의 행복감은 10점 만점에 평균 6.82점이었으며,
부산이 7.34점으로 가장 높았고, 인천이 6.14점으로 가장 낮았다.
또한 서울 청년들의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는 7점 만점에 4.86점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부산(4.96점)과 대전(4.94점)보다 낮은 수준이다.
젊은이들은 그들의 꿈을 성공과 함께 이루기 위해 수도권으로 갔지만,
수도권은 오히려 그들의 꿈을 파괴하고 있었다.
성공의 기회가 많지만, 행복할 기회는 적은 곳이 되어왔다.
많은 젊은이는 얽매어있고, 비자발적이며 비자주적인 삶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강릉은 이와 대조적이다.
강릉은 강원도를 대표하는 도시이다.
다양한 경험이 있는 이곳은 성공의 기회는 적지만, 행복할 기회는 많은 곳이다.
하지만, 강릉이라는 도시의 이미지를 떠올려본다면, 이곳에 거주하는 것보다, 이곳에 여행하러 온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강릉에 와서 머무른다는 것이 매우 드문 일. 즉, 성공과 거리가 멀어지며 후퇴하는 게 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젊은이들의 꿈은 강릉에서 이룰 수 없을까?
이번 ‘로컬키트 in 강릉’에서 필자는 이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먼지 쌓인 이 질문에 한 문장 적어보고자 한다.
강릉과 젊은이.
여행이라면 모를까, 이 두 단어는 강릉이라는 도시에 머문다는 관점에서는 매우 어색한 조합이다.
대기업의 본사나 공장이 있는 곳도 아니고,
교육적으로 유명한 곳도 아니기 때문에
필자가 청년의 삶을 주제로 강릉을 바라보았을 때
그 주제를 풀어내기 시작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머무름이 후퇴일 수 있는데,
강릉이라는 관광 도시에,
성공의 기회 대신 꿈을 이루기 위해
머무르는 젊은이가 과연 있을까?
필자는 이 고민을 하던 중 이 문구를 우연히 목격했다.
“오늘도 우리는 강릉에 새로운 젊은 물결을 일으킵니다.”
후퇴라고들 말하는 그 머무름을 먼저 실천하고,
그 머무름으로 젊은 물결을 일으키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모인 더웨이브컴퍼니에서는
이 문구를 모토로 그동안 젊은이들의 꿈을 강릉이라는 도시의 색깔을 입혀 실현시켜 주어왔다.
그래서 필자는 강릉에서의 젊음을 공유하고 있는 더웨이브컴퍼니의 이진우 매니저를 만나 보았다.
이진우 매니저는 젊은이들의 강릉 정착을 돕는 프로젝트인 ‘강릉살자’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학창 시절을 강릉에서 보낸 후 서울로 올라갔다 강릉으로 귀환한 이진우 매니저의 경험과 생각은
필자가 글을 완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필자, 그리고 청년 도시를 꿈꾸는 강릉 젊은이가 적은 한 문장. 지금부터 펼쳐본다.
이진우 매니저가 진행 중인 강릉살자 프로젝트는 참여자들이 서로 함께 토의하고, 기획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진다.
또한 이진우 매니저는 프로그램 과정 중에 참여자들로 이루어진 커뮤니티가 친목 도모 목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아무리 작은 성공이라도 같이 조금씩 이루어 나가는 경험을 커뮤니티가 공유하도록 유도하고자 한다고 한다.
그 결과 구성원들은 자신의 비전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서로 생각이 맞으면, 협력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즉, 젊은이들의 꿈을 강릉에서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건강한 강릉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다.
커뮤니티. 필자의 전공인 건축학에서도 강조되는 용어이다. 서울에도 다양한 성격의 커뮤니티가 많다.
하지만, 강릉의 커뮤니티는 서울과 달랐고, 무엇보다도 건강하고 끈끈해 보였다.
강릉살자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 강릉을 경험하는 젊은이들은
이웃 강릉 주민들의 관심과 환대를 경험하며 커뮤니티를 시작하게 되고,
강릉살자 프로젝트를 통해 커뮤니티를 확장하게 되고,
강릉살자 프로젝트를 통해 정착한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기로 정착하게 된 젊은이들까지 서로 알고 지내며
커뮤니티를 만개해 다양한 협동을 만들고 있다.
‘강릉에 와서 새로 시작할 때는 뭔가 서울에서의 익명성을 바란다기보다는
여기서 또 만나는 사람들의 관계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그냥 지나다니면서 이웃으로서 인사도 하고,
자세히는 몰라도 소식을 주고받는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니
강릉시에 사는 어떤 시민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이러한 커뮤니티는 강릉시에서 진행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고,
그 관심과 환대와 참여가 강릉시 하나의 색깔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이진우 매니저의 생각이다.
‘대학교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 경험을 쌓고 커뮤니티를 만드세요’ 필자의 학과 지도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배경과 관심사가 이렇게나 다른 친구들과 어떻게 그렇게 많이 친해지라고 말씀하시는 거지?’
필자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강릉을 경험한 후 생각을 조금 바꿔보았다.
‘그 친구가 꼭 항상 붙어 다니며 같이 웃고 떠드는 친구일까?’.
필자는 이해했고, 떠올렸다. ‘맞네, 나도 강릉의 젊은 물결을 느끼고 있었네.’ 필자의 첫 번째 한 문장이었다.
그동안의 다른 지역의 정착 프로젝트는 대체로 젊은이들의 생각을 바꾸도록 기획됐다.
지자체에서 지역 이미지든, 지역 아이템이든
그 지역의 매력을 참여자에게 주입하면
저절로 지역에 매력을 느껴 정착할 것이라는 의도였을지 모르겠지만
그 결과는 잘해야 관광객 증가 효과 정도겠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가 처음 강릉살자 프로젝트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약간의 의심이었다.
이미 많은 지역 정착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고, 몇몇 다른 지역 정착 프로젝트는 그 내용 또한 유사했기 때문에 실효성에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강릉살자 프로젝트는 그 목적과 과정부터 다른 지역과 달랐다.
강릉이라는 지역의 상품이 아니라 젊은이를 주제로
시즌마다 젊은이의 꿈, 고민, 삶 등 주제를 바꿔가고,
그 주제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강릉의 상품을 참여자들이 경험,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강릉살자 프로젝트는
‘지역이 젊은이를 새로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이룩한 젊은이가 그 지역을 새로이 한다’는 그 의도에 있어
젊은이들의 꿈을 강릉이란 도시 속에 담아내고자 하는 것 같아 필자에게 인상 깊게 다가왔다.
‘제가 누구를 바꿀 수는 없죠. 못 바꿔요. 20년 이상 산 사람 못 바꾸고, 그 사람에게 제안할 수 있겠죠’
생각해 보면 그렇다. 자기 자신을 제일 잘 아는 건 본인 아니겠는가.
젊은이들에게는 삶의 추구도 있지만, 현실적인 조건도 있는데,
단지 서울에는 없는 자연과 강릉의 색깔이 있다는 이유로 어찌 감히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현실적인 기회와 조건, 그리고 인프라의 풍족함을 가지고 있는 수도권에서 강릉으로 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선
그들이 머무를 의지가 생길 여건을 마련할 기회를 먼저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강릉의 젊은이 선배 이진우 매니저의 생각이다.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이 벚꽃이 만개하는 기간인데, 정말 곳곳에 벚꽃이 피고 있다.
우리가 다른 꽃보다도 벚꽃을 사랑하는 이유는 진부해질 정도로 곳곳에 있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충분한 기다림을 가지고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강릉에서는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에게 지역의 장점을 주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기회를 마련해주고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곧 강릉에도 젊음의 벚꽃이 필 수 있을 것 같았다.
필자의 두 번째 한 문장이었다.
이진우 매니저는 서울에서 업무적인 이유로, 강릉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문득 아쉽고 무언가 패배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서울은 현실적 조건인 일과 인프라가 풍부하다는 점이 많은 젊은이들을 얽매이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얽매이는 이유는 젊은이들의 열망뿐만 아니라 두려움도 해당하는 것 같다.
새로운 시작을 강릉에서 하는 것일 뿐인데, 서울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강릉으로 왔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인터뷰를 위해 더웨이브컴퍼니가 운영하는 강릉의 ‘파도 살롱’에 방문했다.
비가 내린 후 개인 청명한 하늘의 빛이 비친 공간에서
무언가에 몰두하는 강릉 젊은이들의 멈춰있는 듯 여유로운 모습은
서울 토박이인 필자에게 되레 부러운 마음이 들게 했다.
마치 서울에 사는 필자는 무빙워크에서도 앞만 보고 걸어가려는 사람이고 강릉에 사는 그들은 무빙워크에서 서서 주변을 바라보는 사람 같았다. 결국 목적지는 같은데 말이다.
‘강릉살자 프로젝트 성과 발표를 했었어요. 지금은 이주하신 분이 했던 말인데
본인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결국에는
강릉으로 도피하는 게 아니라
이 이주를 통해 삶의 확장이 일어났다고 한 그 말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앞서 언급한 것들과 같이, 강릉에는 있지만 서울에는 없는 특성과 모습이 분명 존재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기회가 강릉에서 돼서 살 수 있는 것이고,
자연이 좋아서 살 수 있는 것이고,
관광도시이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살 수 있는 것이고.
사람들의 생각을 확장해 주고 제안하는 역할을 하는 게 맞다는 것이 이진우 매니저의 생각이다.
바라보기 나름인 것 같다. 그저 다양한 자연과 독특한 경험, 끈끈한 커뮤니티와 자아 발달, 여유가 존재하는 강릉으로 가는 것이 ‘서울에서 후퇴한 것이 아니라 내 자리로 귀환이 될 수 있음을 젊은이들이 기억하면 좋겠다.’ 필자의 세 번째 한 문장이었다.
김영하 작가는 자신의 산문 ‘단 한 번의 삶’에서 말한다. ‘인생은 중간에 보게 된 영화와 비슷한 데가 있다. 처음에는 인물도 낯설고, 상황도 이해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그럭저럭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지 조금씩 짐작하게 된다.’
태어나게 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이다.
어쩌다 왜 답답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수 있고,
본인만 이곳에서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이해가 안 될 수 있고,
대도시의 사람들이 낯설고 조급하게 만드는 것 같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짧은 인생에서 자신의 꿈을 결국 찾아 좇는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한 문장 전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잠시 무빙워크에서 걷는 것을 멈추고 이 영화를 잠시 복기해 보자.
‘이곳에서 나는 자유롭고 자주적인 삶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
‘강릉으로 가는 건 내 자리로의 귀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서두에서 밝힌 누군가는 겪을 수밖에 없었던 그 두려움을 강릉은 청소하고 있다.
강릉의 젊은이들은 기꺼이 당신의 귀환을 반길 준비가 되어있다.
어느 곳에서든 젊은 당신의 도전을 마음 깊이 응원한다.
그리고 젊은 그대의 강릉에서의 머무름이 서울에서의 후퇴가 아닌 본인의 자리로의 귀환이 되길 바란다.
글: <local.kit in 강릉> 조정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