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청년들이라면, 많은 또래들처럼 대학을 진학한 청년이라면, 누구나 들었을 질문.
부산의 한 섬에서 살던 필자는 하고 싶은 게 많아 서울에 왔다. 이따금 묻어 나오는 부산 사투리를 빼고는 너무나도 익숙한 서울 사람이 되었다. 서울에서 공부하고, 서울에서 사람을 만나고, 서울에서 꿈을 찾아 서울에서의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부산에 남았다. 그들 또한 꿈을 꿨고, 삶을 설계했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고 서울에 오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있다. 지역의 청년이 겪는 구조적인 단절, 기회의 수도권 집중, 그리고 해가 갈수록 더해지는 청년 인구의 유출. 마치, 고요한 해변에서 하나둘 빠져나가는 파도처럼.
누구도 자신의 출발지를 선택하지 못한다. 어딘가는 바다 옆일 수도, 산 너머일 수도, 혹은 인구 몇만의 소도시일 수도 있다. 다만, 삶의 궤적은 그 우연 위에 그려진다. 그리고 때로는 그 우연이 우리를 떠나게 만든다. 더 많은 기회를 좇아, 더 큰 무대를 찾아, 마치 떠날 수밖에 없다는 듯이.
우연은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취업일 수도, 창업일 수도, 공부일 수도 있다. 우연이라는 파도는 늘 수도권을 향해 가고 있다. 수많은 청년이 파도를 타고 떠나는 동안, 남겨진 곳은 조금씩 메말라가고 있다. 활기를 잃은 골목, 문 닫은 상점, 매해 정원 미달로 허덕이는 대학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중심에는,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이야기가 있다.
강릉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름다운 해변들과 특별한 자연환경, 문화유산. 그러나 강릉의 일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 해봤을 것이다. 울산의 자동차, 거제의 조선소처럼 강릉 하면 떠오르는 기술과 산업이 있는가? 서비스업이 약 84%를 차지하는 강릉의 기형적인 산업 구조는 지역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을 보여준다.
강원도의 중심도시인 강릉, 그럼 강원도의 인재들은 강릉에 모여들고 있을까? 방학 때마다 수많은 청춘들로 북적이는 강릉이지만, 그 곳의 인재들은 기회를 찾아 서울로 흘러들고 있다. 강릉이 최전선을 달린다고, 강릉에서만 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연구와 산업이 우리의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그 현실이다.
강릉원주대학교의 최기영 교수님은 말한다. 강릉의 미래 먹거리는 ‘해양바이오 산업’이라고. 이곳에는 풍부한 자원이 있고, 연구에 적합한 자연환경이 있으며, 이제 막 그 가능성을 열어가는 연구자들이 있다. 단순한 생존이 아닌, 지역만의 정체성과 자생력을 갖춘 미래. 그 한가운데에 지역 대학이 있다. 그런데, 서울 말고 강릉에서 무슨 연구를 한다는 것인가?
생각보다는 강릉에 우연히 오게 되었어요.
박사 학위를 따고 미국에서 박사후과정을 하다가 각 분야에서 한 명에게만 수여하는 대통령 포스트닥 펠로우십이라는 걸 받았는데, 그 과제를 받으면 반드시 한국에 들어와야 해요.
한국으로 돌아온 후 성균관대와 서울대에서 잠깐 있는 도중에 강릉에 계신 연구자분이 전화를 주셔서 강릉의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연구 활동을 시작하였어요. 그러다 지역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창업에 대한 의지로 강릉원주대학교에 왔습니다.
저는 해양바이오 전공 연구자입니다. 바다에서 얻어야 하는 소재, 산에서 채취할 수 있는 소재는 서울에서 일하면 접근하기 힘들어요. 강릉은 해양바이오 원재료에 대한 접근성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KIST 내에 천연물 연구소가 있습니다. 해양 미생물의 소포체 연구나 관련 소재 연구를 수행했었습니다. 지금도 해양 분야 연구를 이어가며, 지역 벤처기업과의 협력을 진행 중입니다.
강릉과학산업단지에 위치한 신성바이오팜, 한국식품연구원, 파마리서치 등의 기업들과 과제를 수행하고 있고, KIST 창업회사들과도 앞으로 연구를 이어 나가려고 해요.
가장 어려운 점은 인력 확보입니다. 강릉에 있는 인재들도 대부분 다 서울로 떠나고 싶어 하니 강릉에 남는 고급 인력들이 많지 않아요. 그리고 서울이나 광역시에 살던 사람들은 강릉으로 오려고 시도할 용기가 없기에 고급 인력들을 뽑기 쉽지 않은 게 가장 큰 단점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강릉은 여행 오는 사람들은 많은데 거주 인구는 줄고 있어요.
국가과학산업단지와 천연물 산업단지, 그리고 해양바이오 및 천연물 관련 기업들을 강릉에 유치해서 강릉의 정주 여건을 만들어주려고 합니다.
훌륭한 과학자들이 강릉에 모여들고, 산업의 성장과 함께 양질의 일자리들이 생기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의 인력들이 남게 되어 연구자들이 더 모여드는 선순환 체계를 만들려고 하는 거죠.
캘리포니아주 라호야의 스크립스 연구소는 해양 분야 최고를 달리고 있고, 뉴욕 쪽에 콜드스프링 하버 연구소는 최정상급 생명과학 연구소입니다. 굉장히 외딴곳에도 그 지역에 특화된 정상급 연구소들이 많이 있고 잘나가는 과학자들이 자기 분야를 찾아 많이 가고 있어요. 학생들도 관심 있는 분야의 특화 지역과 학교로 찾아가서 학업과 연구를 이어가는 거죠.
종합대학은 강릉 같은 소도시에서 유지하기 쉽지 않을 수 있어요. 특화된 연구 분야를 강하게 키워서 국내외의 석학들도 유치한다면 미국의 여러 지방 연구소처럼 ‘바이오의 메카’로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각 지방이 산업과 연구의 거점이 되고, 인재들이 몰려드는 미래가 펼쳐지기를 희망합니다.
빡빡한 대도시에서 살기에는 연구자들의 창의성이 잘 발휘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한적하고 여유롭기도 하고, 출퇴근에 쓰는 시간도 적고, 언제든지 나가서 힐링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많이 있어서 스트레스 지수가 낮은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연구자들이 살기에 최적이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여기는 자연환경도 깨끗하고 예쁜 바다 경치도 있고, 놀기도 좋고 맛있는 음식들도 많아 연구자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기에 굉장히 좋은 지역인 것 같습니다.
교통 측면에서도 지방 도시 치고는 굉장히 우수한 편이에요. 서울과 부산 모두 철도로 연결된 곳은 흔치 않죠. 학문적인 연구와 산업적인 인프라 구축이 모두 수월한 잠재력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모두가 서울에서 공부하고 일해야 한다는 강박이 남아있는 우리나라지만, ‘해양과 바이오를 공부하고 싶으면 강릉으로 가라’는 말이 현실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이 매력적인 강릉. 뜻 있는 이공계 인재들이 모여 우리나라의 산업 또한 이끄는, 하루이틀의 관광이 아닌 진짜로 일하며 살고자 하는 청년들이 가득한 도시가 되기를 소망한다.
지역 대학은 단지 학위 수여 기관이 아니라, 지역을 살리는 엔진이 될 수 있다. 특화된 산업과 연계된 연구, 그 연구에 이끌려 모이는 인재들, 이를 따라 탄탄하게 쌓아가는 지역 산업, 그리고 지역과 함께 살아가는 삶. 어쩌면 그것이, 청년이 다시 머물고 싶은 도시의 조건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태어난 곳이, 더 이상 '떠나야만 했던 곳'이 아니라
'돌아오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이 되기를.
이제, 다시 묻는다.
글: <local.kit in 강릉> 이준형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