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창밖 풍경을 2시간 보다 보면 도착하는 작은 도시, 남원. 기차는 창밖으로 높은 채도와 여유를 뽐내며 남원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제법 큰 규모임에도 고요한 남원역, 이 고요함은 어쩌면 지방 소멸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는 지금의 지방 도시를 닮았다.
하지만 남원에서 보낸 시간은 나에게 소멸이 아닌 희망을, 고립이 아닌 연결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남원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남원을 생각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오작교다. 오작교는 설화 속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만날 수 있도록 까마귀와 까치가 만든 다리이다. 그러한 설화 속 오작교를 모티브로 광한루원에 실물의 오작교가 만들어졌다. 이 실물의 오작교는 춘향이와 몽룡이가 사랑을 키워나갔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곳으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랑의 매개가 된 곳이다. 다시 말해, 전설이 전설을 만든 신화적인 공간이다.
역시 오작교의 도시 남원답게 남원역을 나와 채 열 걸음도 옮기기 전, 나를 반기는 시내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시외 교통과 시내 교통이 바로 연결되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남원역만이 아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도 시내버스 정류장은 차양을 통해 바로 이어져 있다. 비가 와도 비 한 방울도 맞지 않고 시내로 이동할 수 있는 남원의 작은 배려가 느껴진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는 시대에, 오히려 사람의 발길을 다시 붙잡으려는 이 도시의 세심함에서 나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설화 속 오작교의 의미를 진정으로 느꼈다.
남원시는 국토 지리적으로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사이에 자리 잡고 있고, 대구와 광주 사이에 위치해 많은 교통의 관문이 된다. 동쪽으로는 대구, 서쪽으로는 광주로 뻗어 나가는 대구-광주 고속도로, 남쪽으로는 순천, 북쪽으로는 전주로 뻗어 나가는 순천-완주 고속도로의 분기점인 남원IC가 자리 잡고 있어 동서남북 이동의 십자로 역할을 한다. 남부 지방에서 자가용으로 시외 이동을 할 경우 남원을 경유하지 않고 이동하기가 더 어려울 정도이다. 남원이 도시 간의 오작교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시외-시내 이동만이 부드러운 것이 아니다. 남원의 연결성은 시외간 이동에서 더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도시 내부의 세심한 연결이 사람을 맞이할 준비라면, 도시 밖으로 뻗어 나가는 거대한 연결은 남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가능성 그 자체였다.
자가용 교통만이 아니다. 철도 역시 이미 남원의 중요한 연결축이다. 내가 타고 온 전라선 KTX는 수도권과 전주, 남원을 거쳐 순천, 여수까지 잇는 핵심 종축 노선으로, 남원은 이 남북 철도망의 허리 역할을 굳건히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남원의 잠재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남원은 향후 대한민국 남부 유일의 종/횡축 교통망의 중심이 되어 남부 교통의 요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수도권과 부산을 이어주는 경부고속선, 수도권과 광주를 이어주는 호남고속선을 중심으로 개발되었고, 한반도의 모양상 횡축보다는 종축으로 교통이 발달했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잇는 강릉선은 평창 올림픽을 맞이해 2017년에서야 개통이 되었다. 남부 횡축 교통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한데, 남부에는 현재 횡축 대중교통이 사실상 전무하다.
현재 대중교통으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오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각각 호남선과 경부선을 타고 저 멀리 충청도에 올라가 U턴을 해야 하는 기이한 여정이다. 이 기나긴 단절과 고립은, 비단 교통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사람과 문화의 교류가 단절, 지역 경제의 고립인 소멸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하지만 곧 이런 험난한 여정은 역사 속 이야기가 될 예정이다. 2027년 대구와 광주를 잇는 고속철도인 달빛내륙선이 착공될 것이기 때문이다. 3시간이 넘던 아득한 길이 1시간 30분으로 마음만 먹으면 닿을 수 있는 길이 된다. 그리고 이 획기적인 노선 위, 가장 빛나는 지점에 남원이 있다. 달빛내륙선의 여러 정차역 중, 유일하게 기존의 남북 종축 노선을 이미 품고 있는 곳이 바로 남원이다. 기존의 종축 교통망과 인프라라는 독보적인 유리한 시작점을 갖춘만큼 남원은 동서와 남북이 만나는, 명실상부한 남부 내륙의 중심지이자 심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확정적이다.
물론, 이 거대한 연결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강력한 교통망이 오히려 소멸하는 지방 도시의 인구와 자본, 상권을 대도시로 빨아들이는 빨대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이 새로운 길이 남원의 활력을 채울 수도 있지만, 오히려 남은 남원의 활력을 더욱 빠르게 비워내는 통로가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인 셈이다.
광한루원의 오작교가 설화 속 연인들을 이어주었다면, 남원역에 놓일 이 새로운 교통 오작교는 현실의 동서남북 사람들을 이어줄 것이다. 이는 지방 소멸의 기로에 선 남원에게 주어진 거대한 기회이다. 그 기회를 어떻게 꽃 피워낼지는 앞으로의 숙제로 남는다.
지방 소멸을 걱정하는 시대. 나는 남원역 앞에서 마주했던, 사람의 발길을 어떻게든 붙잡으려던 그 다정한 세심함을 다시 떠올린다. 어쩌면 연결이란 그 자체로 완전한 해답이 아니라, 그 해답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새로운 종이를 건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거대한 종이 위에 어떤 이야기를 채워 넣을지는 이제 오롯이 남원의 몫으로 남았다. 하지만 나는 그 다정한 세심함에서 이미 그 이야기의 첫 문장을 보았다. 그것은 소멸이 아닌 희망, 고립이 아닌 연결이었다. 이제 이곳의 세심함과 배려를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