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춘향과 이몽룡의 이야기가 깊숙이 뿌리내린 이곳에서, 나는 사랑에 대해 다시 묻는다. 그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광한루를 걷다 보면, 문득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지 궁금해진다.
광한루는 그저 관광 명소가 아니다. 이곳은 사랑의 상징, 그리고 한 시대의 이야기의 중심이다. 춘향과 이몽룡이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장소에서, 우리는 과거의 사랑을 되새긴다. 그들의 사랑이 이곳에서 어떻게 싹텄고, 깊어졌는지를 상상하며 그 순간의 감정을 되살려 본다. 신분을 뛰어넘고, 어떤 시련이 와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 시대의 사랑은 순수하고도 간절했다. 아마도 그때의 사랑은 지금 우리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그런 무언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가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발견했다. 다른 시간, 같은 장소에서 비눗방울을 날리며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오는 부부의 표정에서 여전히 사랑을 발견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랑. 과거의 사랑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공간에 남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문득, 사랑이 궁금해졌다. 남원이라는 도시에 새겨진 사랑과 낭만을 탐구하고 싶어졌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 왜, 그리고 어떻게 이 도시를 사랑하고 있을까? 나도 이 도시를 사랑하고 싶다. 과거에 춘향과 이몽룡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이 도시를.
남원의 살아있는 과거를 찾아 헤맸다. 정처 없이 찾아간 노인회관에서 할머니 한 분과 두유를 나눠마시며 첫사랑에 대해 여쭈어보았다. 사랑에 대해, 남원에 대해, 남원에서의 사랑에 대해.
과거의 사랑을 기억하며, 남원에서 58년째 살고 계신다는 할머니는 한참 말이 없으셨다. 추억을 그리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춘향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삶이 팍팍해 가족 나들이는 꿈도 못꾸던 시절, 사랑은 사치라 생각하던 그 시절, 축제에서 남편이 자신을 업어주던 기억.
"영감이 내 첫사랑이지. 춘향제에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서로 꼭 붙들고 있었어."
할머니는 그때의 기억을 이야기하며 눈을 빛내셨다. 눈동자 속에 스치는 감정은 아마 그리움, 아련함, 젊은 날에 대한 향수. 그 눈동자 속에는 먼저 떠난 그리운 남편에게 업혀 부끄러워하는 색시가, 두 아들을 잃어버리지 않으려 두 손을 꽉 쥔 강인한 엄마가 있었다. 할머니는 잠시 눈시울을 붉히셨다.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신지 12년, 아직도 그리워 눈물지으시는 할머니께 삶의 여유가 없었던 그 시절 가족과 함께 나눈 소소한 시간이 얼마나 큰 의미였을까. 그 시간과 그 시간이 담긴 남원이.
말끝에 눈물이 고이신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남원이라는 도시에 대해 깊은 감정을 느꼈다. 그곳은 단순히 지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추억이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이 도시가 바로 '삶 그 자체' 였다. 스쳐갈 수 있었던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말 속에서, 나는 본다.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그저 평범한 장소들이 누군가에게는 누구보다 소중한 기억을 품고 있음을 본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고등학생들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의 웃음은 마치 서울의 거리에는 없는,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은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이들에게 남원은,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그들에게 물어본다.
"요즘 사랑은 어떤 모습인가요?"
부끄러워하면서 조금씩 웃으며 대답한다.
"첫 고백을 했던 광한루원이 기억에 남아요. 어두운 밤, 노란 불빛 아래에서 산책을 하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어요 ."
“광한루 쪽 개울가에서 함께 산책하다가 실수로 여자친구를 밀어버려서 빠진 적이 있어요. 그때 둘이 함께 엄청 웃었죠.”
풋풋한 사랑, 남원의 작은 골목들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모습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순수한 감정을 되살려준다. 그들이 사랑을 꽃피우고, 가슴 떨리는 첫사랑을 시작하는 장소는 순수하다. 계절마다 다른 꽃을 피워내는 천변을 함께 거닐며 밤산책을 하고, 남원중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장난을 치다가
넘어져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신선하다, 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순수한 설렘 그 자체.
그들이 이야기하던 사랑의 장소들은 내가 남원고등학교로 오는 차 안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곳들이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 천변으로, 광한루로 향했다.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에 천변의 산책로 옆에 핀 작은 풀꽃들이 흔들리고 조용히 개울물이 일렁인다.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산책하고 있는 주민들이 있는 그 풍경은 뭔가 특별하다. 이곳은 내가 모르는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품고 있을 것이다. 이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소박한 하천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들에게 남원은 사랑의 도시였다. 풋풋하게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는 연인과,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맑게 부서지던 웃음을 간직한, 사랑이 살아 숨 쉬는 도시였다. 남원의 골목, 그곳을 걷는 사람들,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다양한 사랑을 발견했다.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 오늘날의 사랑으로 이어지고, 그 사랑이 도시 곳곳에 남아 사람들의 삶을 비추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랑은 보편적인 것이다.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 시작된 그 광한루에서, 오늘날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속에서, 과거의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할머니들의 기억 속에서, 사랑은 시대를 넘어, 장소를 넘어 이어진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이 도시를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 속에도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이 사랑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 기억의 장소들에 담긴 이야기가 나는 궁금하다. 이 도시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을 이어가고 있을까? 그들의 사랑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남원에서의 사랑, 그 사랑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랑을, 남원의 그 기억을, 계속해서 묻고 싶다.
-<local.kit> 에디터 이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