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화를 향유하다

모퉁이극장 김현수 대표님

by 로컬키트 localkit

Intro - 영화 좋아하시나요?


저는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키오스크에서 티켓을 뽑고, 설레는 마음에 팝콘을 사든 채 상영관에 들어서면 2시간 반 남짓의 독립된 세상이 펼쳐집니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만큼은 자신을 잊고, 주인공 옆의 보이지 않는 관찰자가 되어 영화에 빠져듭니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 문을 나서서 옥수수 알맹이만 남은 팝콘통을 버리기까지의 짧은 길목에서 우리는 가장 생생한 후유증을 겪습니다. 누군가는 함께 영화를 본 사람과 날것의 소감을 여과없이 나누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깔끔하게 정리하기엔 차마 버거운 생각과 감정들을 곱씹기도 합니다.


이처럼 영화는 단순히 그것을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충격’을 나눕니다. 영화를 비롯한 예술은 그것을 향유하는 이가 없다면 존재부터가 성립하기 쉽지 않습니다. 문화를 생산하는 이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문화를 소비하는 이의 역할도 생산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3월 31일, 문화라는 두 글자를 품은 채 부산역에 내렸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무역항구로, 1950년대 이후에는 피란수도로 사람들이 북적였던 부산은 계획도시와는 거리가 멉니다. 짧은 시간 안에 급속도로 발전해온 부산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부산의 문화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문화가 어떻게 소비될 수 있는지,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 단순한 개인의 만족에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부산의 문화를 떠올렸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키워드는 영화였습니다.


매해 가을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부산이 ‘영화의 도시’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1996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 10월, 28회를 맞게 되는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을 영화의 도시로 리브랜딩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기도 합니다. 매 회가 거듭됨에 따라 부산국제영화제는 동아시아 중심의 작은 영화제에서 범아시아 규모의 국제 영화제로 확장되어왔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부산시는 영화의전당을 2011년 개관하며 영화와 부산을 연결지었으며, 국내외의 영화인들을 초청하며 영화제를 더욱 화려하게 꾸며냈습니다.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했어도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영화제의 본질은 관객에 있습니다. 21년간 부산국제영화제에 몸담으며 BIFF 수석 프로그래머이자 부집행위원장으로 자리했던 故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는 지난 2007년, 부산 영화제의 기본정신을 ‘관객 중심의 영화제’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앞으로도 관객을 중심에 놓는 영화제 본래의 모습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하였습니다.


서론이 길어졌지만, 부산이 영화의 도시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어 냄에 있어서 관객의 역할은 필수적이라는 것이 본 에디터의 결론이었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이뿐만 아니라 영화를 소비하고 향유하는 이의 역할 또한 본질적으로 필요하니까요. 결국 ‘관객’ 중심의 영화 문화가 유지되어야 부산의 영화 산업 또한 부흥할 수 있으니까요. 그 끝에 도달한 질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부산에서 영화를 향유하는 것이 어떻게 부산의 영화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거듭되는 질문의 끝에 저희는 ‘모퉁이극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모퉁이극장은 지난 2012년 문을 연 ‘관객 중심’ 영화관입니다. 영화를 향유하는 관객들이 중심이 되어, 하나의 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매년 ‘관객 영화제’를 열어 관객들이 각자의 인생 영화를 나누고, 영화를 본 관객들이 전시 / 공연 / 독서모임 등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사람들이 영화를 향유하는 방식은 모두 제각각입니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합니다. 모퉁이극장은 영화를 향유하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감상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을 추구합니다.


4월 1일 오후, 모퉁이극장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계신 김현수 대표님을 근처 카페에서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음료와 작은 조각케이크 하나를 시키고, 저희는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0. 모퉁이극장, 그리고 김현수 대표님

모퉁이극장_김현수대표_02.jpg 모퉁이극장 김현수 대표님

대표님 소개, 한 번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모퉁이극장의 김현수 대표고요, 저는 관객 문화 운동, 관객 중심의 영화 문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취지로 활동을 2011년도에 시작을 했습니다. 지금 10년이 넘었고, 40계단 쪽에 모퉁이극장을 운영을 해왔죠. 지금은 BNK부산은행 아트시네마 공간에서 관객 문화 운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모퉁이극장이 일반적인 영화관과 다른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 저부터가 관객이기 때문에, 모퉁이극장은 관객들에게는 어떤 영화 문화가 필요할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했어요. 10년 전에 관객 문화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관객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같이 만들고 개척해 나가자 라는 취지로 영화 시민운동 단체로 시작했다는 점이 다른 지점인 거죠. 저희가 해결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은 영화의 도시라고 불리는 부산에서 향유 주체인 관객들이 뛰어놀 수 있는 플레이그라운드나 콘텐츠가 너무 없다고 느낀 거죠. 예를 들면 이제 부산국제영화제에 시민 평론단이 있는데, 영화제 외의 기간에는 활동할 수 있는 콘텐츠나 기획이 없어요. 더 역량을 심화시키고 싶어도 그런 장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죠. 내가 그런 걸 좀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고, 그래서 다양한 영화를 좋아하는 시민들이 접속할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활동들을 지금 10년간 해온 것입니다.


저도 (모퉁이극장을) 시작할 때 잡지로 시작했거든요. 그 다음엔 포지셔닝을 고민했어요. 저는 영화를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영화를 찍을까도 했지만 경쟁력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럼 나는 그 당시엔 소외되어 있던 관객 중심의 영화 문화의 깃발을 꽂아야겠다라고 생각했죠. 극장과 관객이라는 말은 보통명사잖아요. 누군가의 소유도 아니고요. 하지만 애플이라는 단어에서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떠오르는 것처럼, 저도 관객이라는 말을 계속 강조했어요. 포스터를 만들 때도 관객이란 말을 크게 강조하고, 영화교육프로그램인 관객 문화 교실에서도 관객을 강조하고요. 모퉁이극장이 하는 모든 활동이 관객 중심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시각적으로 노출시켰어요. 관객이라는 말은 누구의 말도 아니지만, 우리가 이렇게 포지셔닝을 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관객이라는 말을 쓰면 모퉁이극장 행사 같이 보이기도 하죠.


모퉁이극장에서, 나아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양한 관객 문화 운동을 운영하시면서 겪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영화제는 출판과도 비슷해요. 알려지지 않았던 것들이 처음 소개되는 거죠. 하지만 영화제가 끝나고 나면 상업성이 담보된 영화들 외에는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 수입이 안 되는 거죠. 만약 남미에 있는 좋은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섹션에서 보더라도, 서울의 친구들과는 내가 본 그 좋은 영화를 나눌 수 없는 거예요. 그런 측면에서 좋은 콘텐츠를 어떻게 더 연결시킬까를 고민했어요.


전 영화에 더 마이크로한(세분화된) 기획과 구분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다양한 영화들을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활동을 이어가는 방향으로 저희는 계속 해왔죠. 다양한 시민단체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마이크로한 영화를 매칭해 주길 원해요. 예를 들면 로컬키트만을 위한 영화 추천이 이루어질 수 있겠죠. 기업가 정신이라든지, 지역 문화를 어떻게 접근해야 되는지에 대한 영화들이요. 매칭을 시켜줬을 때 다들 너무나 만족해 하거든요. 저희한테 요청해서 우리 단체가 이런 단체인데, 우리에게 어울리는 이런 영화를 찾아 달라는 경우도 많아요. 두 번째는 영화를 가지고 무언가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제가 컨설팅을 해주거나 워크숍을 해줘요. 우리가 영화에서 어떤 것을 필요로 할지 고민도 해보고, 우리에게 맞는 영화를 매칭해서 한번 보고, 그 영화를 가지고 이제 또 토론도 해보는 거죠. 지역사회에 있는 수많은 커뮤니티들이 그런 경험을 하며 만족하고, 지속적으로 이걸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을 발견할 때 보람을 많이 느끼죠.


영화제에서 영화 프로그램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그 자체로 좋은 영화를 갖고 오는 것이 중심적인 역할이고 그 영화를 어떤 시민사회에 어떤 분들과 연결시킬지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저희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의 기획은 사람과 커뮤니티를 놓고 이루어집니다. 영화에 해시태그를 단다고 했을 때 저희는 구체적으로 부산에 있는 어떤 환경단체를 태그로 단다거나, 사람 이름을 다는 거죠.


관객 중심의 영화 문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희는 영화에 대해 토크할 때 크게 세 가지 토크를 합니다. ‘소감 한 토막’이 있고, 그 다음엔 ‘명장면 명대사’가 있고, 마지막은 ‘이런 관객에게 추천해요’가 있어요. ‘소감 한 토막’은 내가 영화를 보고 느낀, 시간이 지나 잔여물이 제거된 객관적인 글 같은 방식이 아닌 지금 올라오는 뜨거운 것을 나누는 시간이에요. 저희는 그걸 ‘혈중 영화 농도가 아직 남아 있을 때’라고 불러요. 우리는 사실은 그런 발화 방식을 잃어버렸어요. 울림을 말하는 방식을요. 눈치 보고, 막 그럴싸한 말을 하려고 하잖아요. 저희는 그런 사라진 발화 방식을 되살려 보려고 합니다. 몸에 힘을 빼고, 지식의 힘을 빼고 말할 수 있는 힘이요. 두 번째 ‘명장면 명대사’를 이야기할 때는 영화 미학과 관련된 얘기를 하게 돼 있거든요. 카메라가 이제 줌인되면서, 순간 음악이 나오면서, 화면이 이렇게 바뀌면서처럼 카메라 앵글이나 음악의 타이밍같은 것들을 언급하게 되는 거거든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영화의 미학적인 면을 건드리게 되는 것이고요. 세 번째가 이제 ‘이런 관객에게 추천해요’라고 하는 것은 영화의 사회성, 공공성에 대한 거에요. 내게 의미 없는 영화가 어떤 관객에게는 되게 중요한 영화일 수가 있죠. 영화라는 매체는 누군가에게 너무나 중요한 자료와 아카이빙이 될 수 있어요.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누는 것은 이 중요한 정보를 선물처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프로세스를 아카이빙해나가자는 게 10년간 지속해온 활동이죠.



1. 영화에 대해 논하다


영화라는 매체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최근에 제가 들었던 비유 중에 가장 설득력 있었던 것이, 소설가이기도 하고 작가이시기도 하고 문학계의 거장이신 장정일 작가님이 하신 말씀인데요. 영화는 교통사고 같다고 하셨어요. 영화를 이제 다시 돌려보는 것은 CCTV를 확인하는 것이고요. 그것이 영화가 갖고 있는 특징을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는 2시간의 시간이 장치되어 있잖아요. 그 시간에 관객이 경험할 수 있는 화학 작용을 예상해서 만든 예술이라는 거죠. 그것을 온전하게 즐길 때 그 영화의 교통사고와 같은 충격을 맛볼 수 있고요. 근데 만약에 그걸 돌려보거나, 띄엄띄엄 볼 때는 그걸 맛볼 수가 없는 거죠.


제가 인문학 서점 같은 데서 강의할 때가 있거든요. 신뢰할 수 있는 곳이면 제가 요구를 해요. 아예 영화 제목을 알려주지 않고, 해설 자료도 없이 영화를 틀어주겠다고요. 그 순도 높은 체험 후에 관성적으로 영화에 접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영화 예술을 가장 발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주인공, 줄거리, 감독을 알게 되거나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면 그 순도 높은 체험을 못하는 거죠. 한 번 그런 순도 높은 체험 후에 얼마든지 우리는 정보를 찾아볼 수 있잖아요.


영화를 본다는 건 하나의 훈련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인문학적인 활동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가치 매김을 다르게 접근을 해봐야 되지 않는가라고 생각해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은 이 시대에서 사라져가는 집중력을 방부제처럼 유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활동이지 않을까 라는 점에서 영화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OTT 산업이 발전해오고 있는데, 이에 영화관의 입지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극장의 장점이 많이 사라지고 있고, ‘극장을 왜 가야 되느냐 ‘라는 질문들이 생겨나는 그런 시대죠. 이젠 우리 극장에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콘텐츠나 스토리텔링도 필요하고, 그런 준비가 돼야지만 지속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의 예술 영화관들, 독립 영화관들은 그런 질문을 하게 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다 같이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이 문화가 너무 소중할 수 있다는 걸 체험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다음에 극장은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전략이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 부분을 조금만 심화해서 말하자면, 저희가 커뮤니티시네마네트워크사회적협동조합에 소속 단체로 활동하고 있고 금지옥엽이라는 영화 굿즈샵을 하고 있어요. 그런 것도 극장과 새로운 영화 문화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내가 영화를 좋아해서 극장에 가는 것이 영화를 보는 것 이상의 플러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거죠.



2. '영화의 도시' 부산에 대하여

김현수대표사진_01.jpg 모퉁이극장 김현수 대표님

모퉁이극장은 ‘영화의 도시 부산’이라는 주제에 있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미술이나 음악들이 귀족들의 예술로 시작해서 이어져왔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영화는 대중예술이라고 하죠. 깊이 들어가면 또 여러 논의가 있겠지만 이 말은 무엇이나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초기 영화는 미국의 5센트 극장이라고 칭하는 극장들에서 시작됐어요. 다양한 인종, 계층들이 다 같이 영화를 보면서 똑같이 웃고 울고 할 때 서로가 낯선 이들 사이의 공감력이 생기잖아요. 영화를 보고 “여주인공 너무 아름답지 않았어?” 하며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친화성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데면데면한 사람들이 만나서 대뜸 이야기 나누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미디어가 필요하고, 영화는 탁월한 소통의 매체가 될 수 있어요. 영화 얘기를 하지만, 자기 자신에 관해서 얘기하는 얘기일 수가 있잖아요. 저는 영화를 아메리카노 같은, 공기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내 삶에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것이요. 그렇기에 저는 영화를 어떻게 향유하고 살아야 될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정답은 아닐지라도 그 질문에 대해 무언가 모색해보는 자리가 제가 만든 관객 문화교실이라는 수업이에요. 20명 정도의 온갖 관객들이 연초에 모여서 자기 방식으로 좋아하는 영화를 얘기하고, 자기가 어떤 장면에서 감동받았는지, 나는 영화 속에서 무엇에 주목하는지 이야기 나눠요. 우리는 DNA가 다르듯 가치관도, 감각도 다르거든요. 그런 것들을 나누는 활동들을 이어가면서 마지막 시간에 이런 걸 알아보는 거죠. 가령 사진을 좋아하기 때문에 영화를 본 후의 감정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일을 지속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씨네포토(scene의 photo)'라고 하는 에세이를 연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죠.


소설가는 영화를 보고 어떤 소설을 쓸 수도 있고, 시인은 시를 쓸 수도 있고요. 전 모든 개인이 각자만이 가질 수 있는 ‘영화와 나의 화학 작용’을 가장 재미있고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생산자라 생각해요. 저희 모퉁이극장이 그걸 유도하죠. 당신이 영화를 본 당신의 방식으로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는 걸 하게 만들어줘요. 저희는 그걸 관객 문화 운동이라고 해요. 그걸 10년 동안 해왔어요.


영화 문화와 영화 산업이 부산의 원도심 개발이나 문화 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부산에 영화 관련 기관들이나 허브 산업들이 들어서고, 영화 관련 대학들이 들어서는 것들이 부산에 활력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요. 부산은 인구가 아주 작지도 않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1시간 이내로 해결이 되는 너무 멀지도 않은 도시에요. 이는 그러한 네트워크들이 순환이 될 수 있는 조건이고, 좋은 영화 도시라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도시 부산에서는 영화영상 콘텐츠와 연계한 창업 활동, 스타트업 활동의 가능성도 있죠. 모퉁이극장도 이 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런 예시라고 볼 수 있고요 모퉁이극장도 시작은 영화 동아리고, 영화 모임이죠. 영화 모임으로 시작했는데, 이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제 이걸로 밥을 먹으면서 살고 있잖아요. 부산은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 영화계에 활력을 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모니터링을 활발히 할 수 있는 지역인거죠.


경쟁력 있는 큰 곳들은 다 서울에 많이 있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부산 같은 경우는 아시아 영화학교같은 영화 학교들이 있고, 영화인들을 많이 배출할 수 있어요. 젊은 영화인들이 스튜디오를 차린다든지, 단편 작업을 한다든지 하는 식의 활동들이 계속 생겨나고도 있어요. 독립 영화인들이 다양한 활동들도 전개해 나가고 있어요.


모퉁이극장과 같은 영화 문화 활동을 하는 그룹들이 저희 말고도 있어요. 다른 지역들은 이렇게 꾸준히 지속되는 활동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요. 부산에 이런 것들이 많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영화 생태계가 어느 정도 건강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영화를 만드는 독립 영화인들이 영화과를 졸업하고, 첫 작품을 만들면 모퉁이극장 같은 극장이 필요한 거죠. (단순히 상영할) 극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퉁이극장처럼 영화를 주의 깊게 보려고 하는 관객들과 함께하는 모임도 필요하고요. 내 영화를 보고 같이 얘기를 나누고. 또 관객들도 지역에서 새로운 독립영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도 필요하고요. 부산에서 열리는 크고작은 다양한 영화제들 역시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생태계의 어떤 요소들이에요. 각 요소들이 서로가 왜 필요한지를 확인해 나가며 서로 연결하려는 작업들도 점점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조금 더 밀도 있게 이루어지고 있죠. 스킨십이라고 할까요. 영화 제작자 그룹들이 관객 그룹들과 네트워킹하는 활동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모퉁이극장도 그런 역할에 참여하고 있어요.


저는 이 영화 산업 자체의 데이터보다는, 커뮤니티 시네마라는 ‘활동 상영회’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당장의 수익이 발생하는 건 아니지만 일종의 R&D 같은 것이에요. 청년들이 계속해서 영화를 가지고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는 즐거움을 체험하면 이들이 미래의 영화제를 만드는 주역이 될 수 있고,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주역이 될 수 있어요. 이런 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영화진흥위원회이나 문화재단 같은 곳에서 좀 더 많은 지원이 있다면 여기서 무언가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더 활발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화 관련 직업을 갖고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에게 부산은 좋은 배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산업이 서울로 집중돼 있잖아요. 그것을 뒤로 하고서라도요.

사실은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봐요. 취업 자리들이 부산에 이렇게 많이 있냐고 한다면 저도 이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기가 어렵네요. 하지만 내가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보거나, 직접 창업을 하는 등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은 충분하다고 봐요. 영화 문화나 영화 산업이라든지 두루 경험할 수 있는 인프라들이 있기 때문에요.


영화 쪽에서 어떤 일을 해야 될지에 대한 모색을 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저는 요즘 청년분들이 전통주 시장에 많이 뛰어드는 걸 재밌게 보거든요. 전통주를 로컬 브랜딩 해서 멋지게 브랜드 가치를 올려서 프랜차이징 술집들도 만들고, 해외 진출까지도 하죠. 그런 대표님들하고도 얘기도 많이 해요. 그런 문화 혁신가들이 영화 쪽에 뛰어들 수 있는 거죠. 영화는 조금 느린 매체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조금 더 젊고 빠르게, 공격적으로 할 수 있는 분들이 부산을 거점으로 새로운 혁신형 영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새로운 걸 시작할 때 실패하든 뭘 하든 도와줄 수 있는 인프라들도 굉장히 많고요. 그런 부분에서 충분히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는 좋은 곳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서울은 이미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런 지원도 이제 좀 어려울 수도 있는데, 부산에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다면 가능해요. 모퉁이극장도 민간 차원에서 도와줄 수도 있고요. 컨설팅을 해드릴 수도 있고요. 예를 들면 B급 영화, 컬트영화 같은 마이너한 영화들을 전문으로 배급하는 배급사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혹은 영화 포스터만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회사를 만들거나요. 이런 것들이 아직은 포지셔닝이 안되어 있어요. 그 분야를 선점하고,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를 시키면 충분히 어느 정도의 시장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영역들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런 부분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의 부산과 영화 속 나타나는 부산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부산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 되게 많잖아요. 대표적으로 <국제시장>도 있고, 부산은 단편적으로도 많이 등장하니까요. 그런 모습들이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부산의 모습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부산에서 만들어진 독립영화들이 부산을 많이들 다루고 있죠. 그 영화들이 나름대로 부산의 장소성을 현재형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수많은 젊은 현재형의 청년 감독들이 수많은 독립영화에서 부산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어요. 그런 작품들이 매년 11월에 부산독립영화제에서 출품되고, 상영이 되고 있습니다.


2030년 부산 엑스포 홍보가 한창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부산 엑스포가 유치되어 준비 과정을 거치면 그게 부산의 영화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엑스포가 만약에 유치가 된다면 훨씬 더 많은 교류나 산업이 생겨날 수 있어요. 지금 부산에는 유네스코 영화창의도시 사무국이 있어요. 부산이 또 영화 창의 도시이기도 하거든요. 이런 다양한 교류 활동들, 연대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부산은 이제 영화 도시이기도 하고, 영화 창의 도시이기도 해요. 계속해서 영화 도시로서의 위상과 인프라들을 쌓아나가고 있습니다. 엑스포를 통해서 그런 문화적인 교류나 활동이 증폭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면 아카이빙 결과물이 나온다든지, 활동들이 다큐로 만들어진다든지. 좀 더 국제사회에서 영화도시 부산이 하나의 브랜드로서 소개되고 알려지는 거죠. 또 대만 같은 인접한 지역에 영화 도시를 꿈꾸는 도시들이 있잖아요. 엑스포를 계기로 그런 교류들의 물꼬를 더 많이 틀 수 있고, 그것을 가시화시킬 수 있는 흐름 같은 게 마련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모통이극장과 필리핀의 어떤 극장과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도 있는 거죠. 부산의 국제교류 도시로서의 방향들이 조금 더 촉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3. 맺으며


1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가 끝나고, 저는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습니다. 자신의 분야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이 진정 향유될 수 있도록 헌신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드문 경험이니까요. 그런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었습니다. 로컬키트는 어떻게 도시가 되살아날 수 있는지, 한 단계 더하여 그 발전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을지 고민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질문은 “그 산업/활동/문화가 그 도시에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는가"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예술이나 기호로 간주되는 것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가볍게 즐기는 취미 생활이나 문화가 그 도시를 되살리는 원동력이 되기는 힘들지 않을까라고 무심코 생각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문화는 ‘글월 문’자에 ‘될 화’자를 씁니다. 구성원들이 모여 '그렇게 만든' 생활 양식이고, 그들이 공유하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문화가 그 도시에 돈을 벌어다주고, 도시를 다시 활성화시킨다는 이야기는 추상적으로만 들립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그 도시의 경제활동을 활성화하고, 그 도시만의 특색사업이 될 수 있다니요. 결국에 그것은 그 도시가 가진 하나의 특색 정도일 뿐이지, 실질적인 도시의 경제 성장은 대기업의 입주와 행정부처의 이전으로 이루어지지 않냐는 의견들도 많습니다.


‘문화’가 ‘산업’이 되기 위해 필요한 징검다리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모퉁이극장과의 조우는 ‘어떻게 문화가 그 도시를 되살릴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하나의 해결책으로 다가왔습니다. 모퉁이극장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나의 작은 광장을 만든 셈입니다. 구도심의 중심지, 중앙동 40계단에 위치한 작은 독립극장은 그 곳의 시민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꿈꿀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관객 중심의 영화 문화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커뮤니티비프’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모퉁이극장은 하나의 영화 문화를 넘어서 하나의 영화 산업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일조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 못지 않게 영화를 보는 이들 또한 중요합니다. 따라서 그들이 영화를 향유하는 것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는 부산은 진정 ‘영화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글을 마치며,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부산에서는 사뭇 다르게 다가올 질문입니다. 적어도 ‘영화의 도시' 부산에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사소한 대화 소재로 그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산은 영화를 나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영화 좋아하시나요?


글: <local.kit in 부산> 문화팀 배승민 에디터

참고 문헌: 김인태(2013). "부산국제영화제의 글로컬 도시 영화 이벤트로서의 정체성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이테르: 예술인의 이상을 현실로 연결하는 제5의 원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