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산업, 문화, 인프라, 랜드마크 등 많은 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공간을 완성하는 것은 단연코 사람이다.
공간이란, 빌 공(空)과 사이 간(間)을 써, 비어 있는 곳을 의미한다. 물리적인 의미의 공간은 사실 그 자체로 아무런 힘이 없는 무의 상태이다. 이를 채워줄 사람의 존재가 전제되는 순간 공간은 비로소 실존한다.
그렇다면 사람을 완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교육이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책임을 부여한다. 따라서 무엇을 배우고 가르치는 지를 보면 그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를 파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교육은 곧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교육의 중요성은 도시 재생에 있어서도 부각된다. 국가에서 제시한 도시재생의 목표인 기존 도시의 정주여건/매력 극대화, 주민 역량 강화, 그리고 공동체 활성화를 달성하기 위해서 교육은 빼놓을 수 없는 고려 대상이기 때문이다.
교육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로컬키트는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은 대덕연구단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위치해 있고, QS 교육 도시 랭킹에서 서울 다음으로 높은 순위를 기록한 교육의 도시다. 그렇다면 현재 대전에서는 교육을 통해 무엇을 이루어 내고 있는가?
“대전은 어떤 곳이야?”
답사를 준비하며 스스로, 또 주변인들에게 대전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너네 이번에 대전 가? 좋겠다! 올 때 빵 사 와~”
외부인들이 대전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성심당 빵이다. 반면 대전이 고향인 동기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대전에 온다고? 왜? 여기 연구단지밖에 없어. 진짜 할 거 없는데?”
답사를 가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에도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다. 대전에 거주하는 고등학교 선생님, 학생 모두 대전의 첫 이미지에 대해 입을 모아 연구단지라고 답변했다.
“제가 볼 때는 일단 대전하면 딱 떠오르는 게 대덕연구단지. 그리고 인근에 있는 세종시의 정부청사가 있어요. 그래서 교육자의 입장에서 보면 연구원 자녀분들하고 공무원 자녀분들이 꽤 있고, 또 그러면서 다른 시도에 비해 공교육과 공립학교가 좀 전통이 있고 강한 편이에요.”
– 대전 노은고등학교 선생님 인터뷰 中
대전에는 정부기관과 연구단지가 있어 공무원과 연구원들이 많이 거주한다. 이 덕분에 자연스럽게 이 정부 친화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교육과 대학 진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 이들이 거주하는 대덕연구단지와 신도심인 서부를 중심으로 교육이 활성화되었다.
“대전은 연구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기본적으로 교육에 열의가 있는 학부모님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대전은 구 별로 발전 정도의 차이가 큰데, 특히 서구, 그리고 그중에서도 둔산동을 기준으로 학군이 좋다는 평을 받아요. 그렇기 때문에 학구열이 높은 학부모나 학생들이 둔산동으로 이사를 오거나 학원을 위해 둔산동을 오가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중학교 때까지 둔산동에서 살았는데, 학생으로서 대전의 교육 환경이 괜찮다고 생각해요. 서울과의 거리가 가까워 서울 학원가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이 왔다 갔다 하기 용이해 대전 학원가에서도 수업을 열기도 해서, 대전에서만 교육을 받아도 입시를 충분히 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대전 괴정고등학교 졸업생 인터뷰 中
또한 대전은 국토 중앙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서울의 스타 강사가 쉽게 대전으로 이동해 강의를 진행하기도 하면서, 서울과의 교육 격차도 체감되지 않는 편이다. 이렇듯 대전은 거주민과 지리적 특징에서 기반한 교육을 중심으로 성장해 나갔다.
“그렇다면 대전이 이렇게 교육이 잘 발달해 있고, 연구 단지가 많은데 이러한 특성이 대전이라는 지역에 거주를 고려할 때 많은 매력 포인트가 된다고 생각을 하시나요?"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 대전이라는 도시가 만들어지는 데 연구단지와 공공기관에서 비롯된 교육열이 많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교육이라는 정체성이 현재에는 대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 궁금증을 가지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전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 대전은 유입 인구가 많지 않고 오히려 빠져나가고 있는 추세이죠. 대전을 딱 보면 정적이에요. 말했다시피 직업군도 대개 연구원, 전문직, 공무원 분들 이렇게 되어 있어서 대전으로 일부러 오지 않을 것 같은데. 다른 지역은 지역마다 무슨 산업이 좀 발달되어 있잖아요. 울산을 봐요. 울산에 근무하는 선생님한테 내가 듣기로 학생들이 대학을 별로 안 가고 싶어 한대요. 진학률이 그렇게 높지 않아. 왜냐하면 거기는 현대자동차에 바로 취업하면 되니까. 근데 우리는 그런 게 없죠. 취업 환경이 공교육 기관, 연구기관 외에는 없어서 인재들이 다른 지방으로 많이 이동하죠."
– 대전 노은고등학교 선생님 인터뷰 中
그러나 대전의 교육이 지역의 매력 포인트가 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런 특성이 대전을 정적인 ‘노잼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했다. 또 대전의 교육으로 성장한 인재를 수용할 만한 산업이 뒷받침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도 한몫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대전으로 이사를 와도 충분히 자식이 좋은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기 때문에 대전으로 이사를 오는 것을 꺼려하지 않을 것 같지만, 도시 내에 존재하는 직업군이 너무나도 제한된 도시라고 생각해서 그 외 직업을 꿈꾸는 인재가 대전에 매력을 느끼고 머무르지는 않을 것 같아요.”
– 대전 괴정고등학교 졸업생 인터뷰 中
교육을 통해 소위 말하는 인서울 대학에 많이 입학하는 것, 카이스트를 졸업해 서울/경기권 회사에 입사하는 것 등은 교육을 통한 성과임에는 분명하나, 결국 사람들은 대전을 떠나게 된다. 결국 대전의 교육은 남 좋은 일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건 대전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해당이 되는 사실인 것 같은데, 전반적으로 인서울 대학, 취업에 대한 수요가 급진적으로 늘고 있어 사실상 다시 대전으로 돌아오는 인재는 몇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있다고 해도 대부분 연구원인 경우가 많고 적어도 제 경험상 그 수가 서울보다는 현저히 떨어지며 뒷받침할 인프라도 부족해 보여요.”
– 대전 도안고등학교 졸업생 인터뷰 中
이는 단순히 대전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체적으로도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에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이 더해져, 지방에는 도시를 활성화할 청년 인구가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다. 필자만 해도 고향을 떠나 대학을 다니고 있고, 주변인들도 전문직이 아닌 이상 그대로 서울에서 취업을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울에 비해 작은 취업시장의 규모, 인프라 부족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지방 도시들이 자체적으로 특화된 분야나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도시들은 교육의 질 향상과 함께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과 산업 유망성을 강조해 지역 경제 활성화와 산업의 다양성을 증진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다시 대전으로 돌아오게 할 대전의 매력은 무엇인가? 대전의 교육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나가야 할 것인가.
“대전이 변화하려면 대학 진학만이 목표인 사회가 변화해야 할 것 같아요. 아까 누가 모이느냐가 되게 중요하다 했잖아요. 대전은 지금 좀 고였어요. 나는 세종이 앞으로 조금 더 발전할 것 같아.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와서 학연, 지연도 없고, 젊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아이 키우기도 좋아요. 그래서 교육으로 보면 앞으로 세종이 많이 발전할 것 같고요.
대전은 물론 공교육이 강하고 해서 변화가 조금 어렵지만, 사실 변화할 수 있는 제도는 지금도 충분히 있어요. 창업과 관련된 기술, 예술 교육을 더 지원하거나 기업들하고도 연계를 좀 해서 구도심의 저렴한 상가를 활성화하고 관광산업을 발달시킨다면, 그것이 교육이 대전의 지역 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지 않을까요.”
– 대전 노은고등학교 선생님 인터뷰 中
이제껏 대전의 정체성이 연구단지의 교육열로 형성된 만큼, 대전의 변화를 위해서는 교육의 방향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현재 대전에 필요한 것은 지식만이 아니다. 이제는 누구한테,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칠 것인지 다시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인문계 학생만을 대상으로 한 기존 좁은 의미의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잼 도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할 만한 문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문화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새로운 인재상을 목표로 교육이 변화한다면, 대전의 모습도 서서히 변화하지 않을까.
“코로나를 겪으며 대전의 교육이 자율적으로 많이 변화했어요. 특히 사교육이 많이 발달하고, 학교라는 공간도 많이 변했죠. 이제는 학원에서 다 공부가 되니까. 학교의 공간적 측면이 강해지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학교라는 공간이 대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죠. 그래서 보니까 코로나를 겪으면서 대면 행사를 하고 안 한 세대의 차이 같은 게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원래 학교는 지식만을 얻는 공간이 아니라 양육의 기능도 했잖아요. 그럼 이제 학교는 학생들에게 있어 회복의 공간, 치유의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 대전 노은고등학교 선생님 인터뷰 中
학교 공간의 변화도 대전의 발전을 이끌 한 가지 희망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학교는 ‘지식의 생산’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강했으나, 사교육의 성장으로 인해 ‘공부할 수 있는 공간 제공’이라는 물리적 이미지가 강해졌다. 그렇다면 이 학교 공간을 우리가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해 볼 시점이다.
로컬키트는 지역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공간으로 학교를 제시해 본다. 가뜩이나 학령인구 감소로 빈 교실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학교 공간을 도시 재생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진행될 가능성의 공간으로 보면 어떨까.
“보면 지역과 연계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은 것 같긴 해요. 동아리 행사를 보면 구청과 연계해서 마을 공동체 축제를 학교에서 하면서 부스 운영을 한다든지, 도서관에서 학부모님들 대상으로 다도교육을 하기도 하고. 지역 기관 같이 외부에서 강사를 초청해서 학생들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도 하고요.”
– 대전 노은고등학교 선생님 인터뷰 中
이제 학교는 지식 전달이라는 기존 교육의 경계를 벗어나 지역 사회의 중심으로서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학생들에게 더 넓은 시야와 실전적인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사회에 새로운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local.kit in 충청> 행정팀 오지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