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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컬키트 localkit Dec 15. 2023

행정도시 세종 그리고 행복도시


세종시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보통은 여러 정부 부처가 모여있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세종시가 행정도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백지계획으로 시작된 행정도시 구상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다른 신도시와 달리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이라는 별도의 기관에서 건설을 주도한 세종의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행복도시)는 오늘날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계획도시다.



로컬키트는 세종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채수정 도시해설사(시티텔러)님을 찾아갔다. 금강보행교에서 만나 뵌 채수정 도시해설사님은 본업에서 은퇴하시고 세종시에 견학 오는 외부 단체를 안내해 주는 일을 주로 한다고 하셨다. 해설사님은 금강보행교를 돌아보며 세종시의 과거, 현재와 미래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마침 인근 공군 부대, 필자가 군복무를 한 17 비행단에서 에어쇼 연습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보기 드문 광경을 바라보며 세종시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다.


행복도시의 구조와 특징


행복도시의 구조는 건축가 안드레스 페레아 오르테가(Andres Perea Ortega)의 설계안 "천 개 도시의 도시"를 모티브로 한다. 통상적으로 도시의 중심에는 철도역, 대규모 상권, 행정시설이 들어온다. 하지만 행복도시는 중간이 뻥 뚫린 도넛 모양으로 그 자리를 녹지공간이 대신한다. 해설사님은 이를 뉴 어바니즘(New Urbanism)이라 설명하셨다. 뉴 어바니즘은 도시를 인간과 자연 중심의 공간으로 되돌리는 운동을 말한다. 실제로 세종의 중앙에 위치한 녹지공간은 시민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행복도시의 특이한 도시구조는 타도시와 구별되는 행복도시만의 방향성을 보여줬다.



행복도시는 녹지공간을 중심으로 여섯 개 구역으로 나뉜다. 1 생활권은 중앙행정기관, 2 생활권은 상업지구, 3 생활권은 지방자치 행정기능을 맡는 부서들, 4 생활권은 산업시설 및 종합대단지, 5 생활권은 세종충남대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의료복지시설, 6 생활권은 첨단지식기반시설을 조성하고자 했다. 위의 행복도시 개발구획도 두 장을 유심히 살펴보면 차이점이 보일 것이다. 오른쪽 지도가 나중에 만들어진 건데, 기존 2 생활권의 기능인 상업지구가 없어지고 박물관단지, 도시광장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정부가 공공 측면에서 행복도시에 대규모 상권이 들어오게 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행복도의 또 다른 구조적 특징은 워싱턴 DC, 캔버라와 같이 저층건물이 많다는 점이다. 고층건물인 정부서울청사와 대조되는 저층구조의 정부세종청사가 이를 방증한다. 다만 금강보행교에서 바라본 세종은 여느 도시와 같이 고층건물이 드문드문 보였다. 고층건물 사이로 아직 개발되지 않은 녹지와 허허벌판의 모습도 보였다. 이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기존의 저층중심 건설계획이 흐트러진 결과다. 기존계획이 플랫(flat)한 도시구조를 통해 하늘길이 통하게 하는 것이었다면, 현재는 용적률을 높여 건물높이가 올라가게 되었다.


행복도시의 교통



행복도시는 기존의 도시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인도를 크게 확충하여 자동차 중심의 도시구조를 탈피하고자 했다. 자동차 중심의 도시구조는 도시가 교외로 팽창하는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또 차도를 4차선 이내로 좁게 짓고 도심 전체 차량 통행속도를 시속 50km, 생활권은 시속 40km로 제한했다. 자전거 기반시설은 자전거도로를 인도 옆에 설치해 안전성을 높였다. 대중교통은 간선급행버스체계(BRT), 일명 "바로타"가 있다. 땅 위의 지하철이란 별명을 가진 바로타는 기존 버스와 달리 전용 차선이 있어 교통체증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바로타를 이용하면 내부 순환도로를 따라 도시 내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행복도시 주민들이 교통의 불편함을 호소한다. 먼저 좁은 차도와 차량 속도제한은 자가용 이용자들에게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또 행복도시는 인도가 잘 갖춰져 있지만 도시 내를 걸어서 이동하기엔 상당한 부담이 있다. 특히 도시 중앙에 위치한 녹지공간은 도보로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대중교통의 경우 도시 내를 이동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타 도시로 이동할 때 자가용에 비해 시간 소요가 지나치게 크다. 결국 시외로 이동할 때는 자가용을 이용하게 된다. 이는 보행친화도시를 표방한 행복도시의 취지에 어긋난다.


세종시의 유일한 기차역인 조치원역은 행복도시와 거리가 멀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조치원역은 고속철도가 정차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고속철도 이용을 위해서는 청주의 오송역과 공주의 공주역까지 가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두 역 모두 개설 당시 입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행복도시 남쪽으로 걸어 내려가면 호남고속선이 지나가는 모습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 세종역을 지었으면 어땠을지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바로타 노선과 차량 수 확대를 통해 오송역까지 20분, 대전역까지 50분 내로 이동할 수 있도록 개선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또 2034년 개통을 목표로 대전-세종-충북 광역철도를 계획, 대전 1호선이 연장되는 계획 등이 있다.


행복도시의 산업


행복도시의 산업을 논하자면, 우선 상업공간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행복도시에는 대규모 상업공간이 많지 않다. 생필품을 판매하는 이마트와 코스트코가 있지만, 더 큰 규모의 쇼핑몰은 자가용으로 30분 거리의 대전까지 가야 한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행복도시는 이미 건설된 상가도 공실이 넘쳐나는 등 상권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종시가 대전의 베드타운으로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자리의 경우 정부청사에서 1만 5천 명에 가까운 막대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하지만 세종시가 베드타운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숫자가 행복도시 또는 인근 충청권에서만 고용효과를 낸다고 보기엔 어렵다. 세종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줄 대기업과 산업단지가 입주하지 않으면 행복도시의 베드타운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이를 의식한 정부는 뒤늦게 세종에 스마트 국가산업단지, 이하 스마트 산업단지의 개발계획을 세워 국토부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스마트 산업단지의 주요 산업은 AI와 자율주행 모빌리티, 바이오 헬스케어, 스마트 시티 등으로 데이터 기반 산업이다. 인근의 대덕연구개발특구, 오송 바이오단지 등 충청권의 우수한 R&D 역량과 시너지를 일으켜 행복도시가 자족기능을 갖춘 중추도시로 발전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행복도시의 박물관단지 조감도


마지막으로 행복도시의 중앙에는 국립박물관 단지의 건설이 진행 중이다. 이곳은 국가기록박물관, 국립어린이박물관, 국립도시건축발물관, 국립디지털문화유산센터, 국립디자인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하지만 국립박물관 단지는 이른바 "속 빈 강정"으로 전락할 거란 우려가 있다. 예산과 인력 부족이 주된 문제고, 콘텐츠의 경쟁력 역시 우려된다. 비교적 최근 개관한 수원의 국립농업박물관, 김포의 국립항공박물관, 서울의 국립공예박물관은 수장품 확보와 예산부족으로 여러 차례 골머리를 앓았다. 결국 실제 수장품보다 미디어 체험식 관람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게 됐다. 하물며 역대 최대 규모라는 세종박물관 단지 설립도 곤경을 겪지 않을 거라 보긴 어렵다. 다만 정부의 노력이 있다면 미국의 내셔널몰과 스미소니언 박물관 단지처럼 관광수요를 만들어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마무리하며


해설사님은 행복도시 개발에 아쉬움을 가지고 계셨지만 그만큼 세종 시민으로서 자부심도 커 보이셨다. 행복도시 개발이 충청권의 표심을 얻기 위한 여의도 정치권의 일회성 공약에 그치지 않고, 500만 광역도시권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답사를 하는 동안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분의 애향심이 가장 강한 것만 같았다. 직업정신 때문일까, 아니면 본인이 나고 자란 땅이 전국에서 손꼽히게 발전한다는 자긍심 때문일까? 해설사님처럼 애향심을 가진 행복시민들의 자발적 노력이 뒤따른다면 정부의 기대를 넘어서는 발전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 행복도시의 입지를 다지는 데 민간의 역할을 기대해 보며 글을 마친다.


글·사진: <local.kit in 충청> 행정팀 김종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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