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사랑받기 위해 바뀌어야 할 의무

by 로컬키트 localkit


지역이 있는 그대로 사랑받기 위해서는


로컬키트가 세종에서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가 위치하기도 한 조치원이었다. 이곳에서 청년 창업가들을 만나 세종시의 “조치원 살리기 프로젝트”와 조치원, 더 나아가 세종, 대전과 충청이 더 매력적인 지역이 되기 위해선 어떤 문제점들과 변화가 있어야 하는지 인터뷰를 나눌 예정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도자기 공방 스틸마스프링의 대표님께서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으셨다.


“굳이 서울을 따라가야 하나요? 서울이 흔히 말하는 불닭과 같은 도시라면 대전, 충청은 북엇국 같은 도시인데 맨날 자극적인 이벤트만 있는 불닭만 먹을 수는 없잖아요. 다들 대전 가면 뭐 하니, 충청 가면 뭐하니, 하는데 사실 뭘 해야만 하루가 즐거운 건 아니거든요. 그 동네가 가지고 있는 각자의 바이브가 있고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마신 것만으로도 그 하루가 행복할 수 있는데 굳이 무언가를 찾아가서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저는 오히려 네 맛 내 맛도 아닌 도시라서 여기가 좋은 것 같아요.”


로컬키트 활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진행했던 인터뷰들에서는 항상 자신이 속한 지역의 매력과 그럼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의 아쉬운 점을 대조적으로 물어봤었는데, 다른 지역을 왜 닮아가야 하냐는 창업가분의 질문이 새롭게 다가왔다. 애초에 질문의 전제부터가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정말 변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괜찮은 걸까? 한편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대전에서 올라오는 KTX에서 부산대 학생분과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우리가 지방에도 이런저런 정책을 해달라 요구하면 본인의 지역에 만족하면서 살아라, 이런 얘기를 듣게 되는데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을 좋아하고 삶을 만족하라는 얘기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럼 너희는 서울의 인프라를 부러워하지 말고 부산에서 만족하는 데에 그쳐라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런 생각 때문에 저희끼리 안분지족이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하는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의 미학과 발전의 미학. 서로 상충하는 것 같은 두 가치에서 진정으로 바람직한 있는 그대로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로컬키트 활동을 통해 내놓은 답변은 이것이었다. 바로 그 지역 사람들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것. 지역 사람들의 요구들을 충족하지 못한 채 편리하게 다른 지역으로 가라고 하는 이야기나 지역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하는 것은 편리한 변명에 불과하다. 지역 사람들의 다양한 진로와 요구를 충족하고 지원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미학이 시작된다. 좋은 직장에 입사하고 싶은 꿈을, 아이를 더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소망을 이룰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역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 사랑받기 위해서는


요즘 들어 부쩍 베스트셀러의 자기 계발서에 대한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있는 그대로도 괜찮아”, “변하지 않아도 돼” 같은 책들은 진부한 변명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그대로도 괜찮다는 말을 방패 삼아 스스로의 단점을 변명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가 아닐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정작 타인들은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는 경우를 우린 너무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베스트셀러의 한켠에서는 또 다른 서적들이 우리에게 변화를 강요하고 있다. 더 우위를 점하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인 걸 입증하기 위해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고 독촉하고 있다. 경쟁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고 성취해야 자신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다. 많은 것을 이뤄내지 못한 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달라는 말은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아우성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경쟁 사회라는 것은 항상 나보다 나은 누군가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노력을 통해 발전하더라도 나의 부족함을 채운 누군가가 항상 존재할 텐데, 그저 노력의 부족을 탓하기에 이 세상은 너무 크다. 실수를 저지르거나 자신의 한계를 느꼈을 때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세상 또한 크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 사랑받기 위한, 그대로도 괜찮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은 바로 타인 또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흔히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타인의 모습조차 제대로 바라봐 주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까. 객관적인 눈으로 타인의 모습을 바라봐 줄 때 비로소 나에 대한 성찰도 시작된다. 이때 타인을 받아들이라는 말은, 타인의 단점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나의 주관, 편견, 정의로 포장된 불편함에서 벗어난 그 사람의 모습 그대로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결국 타인과 타인이기에, 온전히 타인을 바라보기가 어렵다. 나의 눈을 통해 들어오는 순간 나의 경험이, 가치관이, 생각들이 타인에게 엉겨 붙는다. ‘00한 사람’이라는 라벨이 그 사람의 진정한 장점과 단점을 바라보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한 필터 없이 타인을 그대로 바라볼 때야 비로소 나에 대한 구원도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관대함 없이 스스로의 단점을 직시할 수 있을 때, 자신에게 지나치게 박하지 않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 그대로가 될 수 있다. 고쳐야 하는 나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아도 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선택하는 것이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조건이라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의 미학


그래서 결국 지방의 미래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주민들과 소통하고 개선하려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보았기에, 각 지역들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되면 지방도 어제보다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우리 또한 나의 못난 모습과 부족한 점을 그대로 인식할 때, 그럼에도 굳이 바뀌거나 성취하지 않아도 되는 나의 모습을 선택할 때 그대로의 미학이 시작된다. 단점을 변명하고 핑계 대며 나의 모습을 수용해 줄 누군가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 대신 그대로인 나의 모습을 인정할 때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여러분들도 로컬키트가 만난 지역을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처럼 나다워지기 위한 노력에 게을러지지 않기를, 그대로의 내가 되기 위해 역설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미학을 찾을 수 있기를.


글·사진: <local.kit in 충청> 혁신팀 차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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