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갑 주책공사 대표님
부산 중앙동, 낮엔 직장인들로 북적이다 해가 질 때에는 한산해지는 곳. 중앙동의 한 골목에 들어서면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책’ 간판이 우리를 맞이한다. 책을 향한 믿음이 가득한 독립서점, 주책공사다. 중앙동은 특이하게도 상업지구로만 이루어져 있어 동네 주민을 보기 어려운 곳이다. 그럼에도, 중앙동을 특별히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발걸음은 주책공사로 향한다. 따뜻한 불빛을 밝히고 있는 이곳에서는 책의 정적인 향기와 사람들의 은은한 온기가 스며 나온다. 책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주책공사. 로컬키트는 이곳에서 이성갑 대표님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주책공사에서 책을 읽고, 책을 쓰고, 책을 팔고 있는 이성갑입니다.
찾아오면서 주책공사라는 이름이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책공사는 무슨 뜻인가요?
주책공사의 ‘주’는 제가 믿고 있는 신의 그 ‘주(主)’입니다. 그래서 메일 주소랑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보면 ‘lordbook’으로 되어 있어요. 주님 안에서, 책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을 공사 지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 주(酒)라느니, 사장님이 너무 주책 맞아서 주책공사라느니 하는데, 본래 뜻을 이야기해주면 웃고 있다가 갑자기 숙연해질 때가 있죠. (웃음) 어쨌든 주책공사의 뜻은 그렇습니다.
이렇게 책방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서점은 제 인생의 마지막 버킷리스트였습니다. 원래는 목사가 되려고 했다가, 그만두고 취업을 했어요. 그런데 마음속에는 늘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죠. 은퇴 후에 제가 읽었던 책들을 가지고 동네에 조그마한 서점을 하고 싶었어요.
저도 원래는 일반 독자였어요. 저는 동네 서점을 좋아했고, 사랑했고, 쉬는 날마다 다니면서 책을 사고, 소통했거든요. 그렇게 애정을 쏟았는데, 정말 좋아하던 동네 서점이 문을 닫더라고요. 속상했죠. 다른 서점에도 애정을 쏟으면 또 그곳이 문을 닫고. 계속 사랑했다가 실연당하는 느낌이었어요. 독자인 저에게는 상처 아닌 상처가 되었죠. 그래서 안 되겠다, 이제 짝사랑을 그만하고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직접 서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생 마지막 버킷리스트였지만 생각보다 빨리 이뤄버렸죠.
주책공사는 중앙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에 자리잡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서점을 오랫동안 하고 싶어서 4년 넘게 준비를 했어요.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니까, 중앙동은 절대 서점이 잘 될 수 없는 곳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제일 안 되는 동네가 어디인지를 찾은 거죠. 바로 여기였어요. 중앙동은 주거지구도 아니고, 지나가다 편하게 들를 수 있는 동네도 아니에요. 근처에도 뭐가 많이 없어요. 여기에 서점을 차리면 부산 사람들도 온전히 이것 때문에 와야 되는 위치인 거죠.
보통은 잘 되는 위치를 찾아가기 마련인데, 서점을 하기 어려운 동네를 찾으신 건가요?
네. 중앙동이 제일 안 되는 동네라면, 그럼 여기서 해야 된다. 원래부터 잘 되는 동네에 가서 성과를 내면, 사람들이 ‘저기 있으니까 잘 되지’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예 말도 안 되는 곳에서 시작한 거죠. 핑계 대지 않고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어요. 여기서 망하면 내가 실력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조금 힘들더라도 뿌리를 깊게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이곳에서 결과를 낸다면, 전국 어디를 가서도 책을 팔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결국 결과를 냈죠. 지금은 아직 워밍업이고, 이제 더 나아갈 겁니다.
다른 부산 분과 인터뷰를 해보니까, 중앙동이 ‘정이 없는 동네’라고 하시더라고요.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중앙동, 정이 없는 동네라고들 하죠. 직장인들이 왔다가 또 흩어지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원리대로, 왔으면 다시 흘려 보내면 된다고 생각해요. 품으려고 하거나, 뭔가 돌려받으려고 하지 않고요. 척박하고 정 없다고 말하는 동네에 상징적으로 서점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중앙동에 일하러 오는 직장인들도 힘들 텐데, 여기 와서 책 한 권 사고, 힘듦을 같이 흘려 보내면 좋은 거죠. 나 떠나면 힘들 거야, 중앙동. (웃음)
주책공사 운영이 4년차신데, 그동안 중앙동에 변화가 있었나요?
코로나가 있었죠. 옛날이랑 많이 달라졌어요. 원래는 직장인들이 많았어요. 여기에 금융업계 본사나 여행사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니폼 입고 점심 먹으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그 사이에 사람들이 많이 없어졌죠. 여행사들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되고요. 점심 때 다니는 사람들이 체감상 네다섯 배는 줄어든 것 같아요.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잘 버티고 있죠.
책방에 작가님들이 쓰신 감사 편지가 많이 보이네요. 책을 입고할 때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저는 모든 작가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보다시피 매대가 제한적이라, 입고 요청이 와도 다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한 번 입고를 하고 나서, 이 책이 다 팔리면 다시 그 책을 입고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책이 A, B, C, D, E가 있는데 A책이 정말 잘 나가요. 그러면 보통은 A를 계속 재입고하게 되죠. 하지만 저는 미련없이 그냥 넣고, 새로운 책을 받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죠.
어떤 독립서점은 그 지역 작가들 책을 위주로 두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지역을 고려하기 보다는, 온전히 책만 봅니다. 책을 보고 충분한 기획력과 소통 능력이 있으면 받는 거죠. 저는 사업하는 사람이고, 책을 팔아야지 먹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냉철해야 합니다. 부산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책을 우선적으로 두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더 세밀하게 봅니다. 모두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만, 서점의 공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요즘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많아졌고, 책에 담긴 내용을 쉽게 풀어서 전달하는 영상 매체도 많아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독서만이 가진 매력은 어떤 게 있을까요?
책이 주는 힘이 있습니다. 책은 분명히 놀라운 일을 하게 만들어요. 책은 인생에서 선택을 잘하게 해줍니다. 홍진경 씨가 말하길,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이래요. 그런 인생에서 책은 사람의 시야를 확장해주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의 선택지를 넓혀주고, 거기서 좋은 옥석을 가리게 해주죠. 책을 통해서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고, 남들이 하지 못했던 선택을 할 수 있어요.
사실 그게 당장 눈앞에 보이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술을 마시고 금방 취하고, 인생네컷을 찍고 바로 사진을 받는 것처럼 결과물이 빠르게 나오는 것엔 익숙하지만, 책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미디어에 노출되고, 바로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빨리빨리’ 시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책을 안 읽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책은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건 사금을 캐는 것과 같아요. 열심히 일해도 아무것도 안 나올 것 같지만, 몇 번을 하고, 또 몇 천 번을 하고 나면 결국 사금이 남아있어요. 독서도 그런 거예요.
또 책을 읽으면 계속 사람을 만나고, 생각을 하고, 마음을 공유하게 돼요. 그러면 사유가 깊어지고, 언어능력과 공감능력이 향상되죠. 그럼 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기도 해요. 책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사람의 이야기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 이웃을 더 품어주게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독서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어떤 작용을 할 수 있을까요?
독서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에서 우리의 호흡을 늦춰줍니다. 삶을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화제 같은 존재예요. 깊은 생각으로 정성스럽게 삶을 다려 나가는 다리미 같은 것이기도 하죠. 책은 긴 호흡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저는 그런 것 같아요. 삶에 있어서 독서는 꼭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책과 영화의 비교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책과 영화의 공통점이 어떤 메시지를 마음에 와닿게 전달하는 것이라면, 이 둘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영화는 모든 걸 보여주죠. 반면 책은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자극해요. 주인공 얼굴을 상상하게 하고, 주인공 목소리를 상상하게 하고, 내가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책을 읽으면 계속 생각하고 상상하게 돼요. 영상은 극본이 있고 연출까지 완성된 것이지만, 책은 극본만 존재하고, 연출은 내가 하는 거예요.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책공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지역 주민, 관광객, 작가, 그리고 독자들. 서로 다른 인생을 살던 이들이 ‘책’이라는 하나의 문화를 중심으로 만나는 이곳. 주책공사는 단순 서점을 뛰어넘어 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보통 주책공사를 어떻게 알고 찾아오나요?
소문이죠. 어떻게 보면 서점은 맛집과도 같아서, 맛집이라는 소문이 나면 산꼭대기에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와요. 저는 이곳에서 계속 책을 논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셨어요. 항상 감사하죠. 여기 오려면 큰 맘 먹고 와야 되거든요.
오시는 분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합니다. 여행객들도 많이 오고, 지역 주민들도 많이 찾아와요. 저는 방문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걸 좋아해서, 나이 신분 관계없이 모두가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습니다. 올해로 4년차다보니 단골들도 생겼습니다.
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계신데, 주책공사만의 독서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세요.
‘주책꽂이’라고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독서 모임이 있고, ‘주책야(夜)독’이라고 9시간 동안 책을 읽는 밤샘 독서 모임도 있어요. 또 ‘주책극장’이라고 해서 같이 영화 보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책방에 있는 스크린을 내려서 함께 영화 감상을 해요. 음향을 위해 스피커도 준비되어 있고요.
그 외에도 ‘주책산행’이라고, 환경 관련된 프로그램도 있어요. 우선 참가자들은 환경에 관련된 책을 미리 읽고 옵니다. 그리고 당일에는 다같이 플로깅을 해요. 쓰레기를 주우면서 산행을 하는 거죠. 그러면서 책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식사도 같이 합니다. 또 그날만큼은 일회용품을 최소화하는 것이 규칙이에요. 일회용 용기가 아닌 각자 준비한 그릇에 도시락을 담아오고, 나무젓가락이나 페트병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책도 읽고, 환경도 생각하고, 건강도 찾고. 정말 재밌어요.
주책공사는 서점이라는 본분에도 충실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모으는 구심점 역할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주책공사처럼 지역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커뮤니티가 부산에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독서 모임이나, 동호회 같은 커뮤니티는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커뮤니티를 운영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커뮤니티는 결국 새로운 소속감을 가지고 싶을 때 형성되는 것인데, 부산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새로운 소속감을 추구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부산에서 태어나고, 부산에서 자라서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이미 많기 때문이죠.
그래도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간다고 하잖아요.
부산은 정말 심각해요. 괜히 부산을 ‘노인과 바다’라고 하겠어요. 무언가를 배우고 싶으면 서울로 가는 걸 선호하죠. 저희 독서 모임 참가자 중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진을 정말 좋아해서 그 분야로 진학까지 고려한 분이 있었어요. 사진을 배우고 싶어서 학원을 다니려고 하니까, 그 당시 부산에 딱 한 군데가 있었대요. 그래서 그 학원에 가서 사진을 배웠는데, 자신과 너무 안 맞았던 거예요. 그래서 본인에게 재능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꿈을 포기하고 아예 다른 학과를 갔어요. 그렇지만 그 분은 사진을 좋아했던 걸 잊을 수가 없었대요. 그래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사진 동아리도 들어가고, 아르바이트 해서 카메라 렌즈도 사고, 그랬대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본인이 사진에 소질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그냥 그 학원과 스타일이 안 맞았던 거예요. 그 분이 사진을 서울에서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면 그 분의 인생은 달라졌을 수도 있겠죠. 서울에는 선택지가 훨씬 많으니까요.
이렇게 모임을 운영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최근에 취업했다고 찾아오신 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분이 첫 번째 모임에서도, 두 번째 모임에서도 취업 때문에 힘들어하셨어요. 그래서 다같이 응원해주고, 잘될 거라고 위로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취업에 성공했다고 찾아오셨습니다. 여태까지 그분을 만나면서 본 모습 중에 가장 밝은 모습이었어요. 독서 모임을 통해 모인 사람들이 같이 격려하고, 위로하고, 잘 될 거라고 빌어주었던 마음이 그 분에게 힘이 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들이 바쁘게 흘러가던 동네, 중앙동. 하지만 주책공사가 불을 밝히자, 사람들은 한곳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수많은 책들이 쌓여있는 이곳에서는 사람의 이야기가 들려오고, 사람의 온정이 느껴진다.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안고 오는 이들에게 책은 따스한 위로가 되어준다. 그들은 책 한 권으로 같은 마음을 공유하며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다.
독서는 분주한 삶 속 한 줄기 쉼이 되고, 미래를 가늠하기 어려운 인생에서 현명한 선택지를 늘려준다. 주책공사는 책이 지닌 이 강력한 힘을 믿는다. 그렇기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책장이 만들어낸 작은 바람으로도 인생의 태풍을 맞이했을지 모른다. 책을 통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그들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불어넣고, 고유의 문화를 만들어낸 주책공사. 앞으로도 이 자리에서 중앙동의 골목을 환하게 비추길 바란다.
글·사진: <local.kit in 부산> 문화팀 최현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