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우 백년어서원 대표님
로컬키트는 3일간 부산에 머무르며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양한 지역들을 돌아다녔지만, 저희는 3일동안 영도구, 중구를 비롯한 원도심에 머물렀습니다. 부산의 정체성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이 곳 원도심이 해답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부산시 중구 중앙동은 원도심의 중심지였던 곳입니다. 대부분의 관공서와 기업, 언론단체가 이 곳에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IMF와 부산 내 타 지역의 발전으로 주요 기업들이 하나둘씩 이전하고, 결국 중앙동은 쇠퇴하게 됩니다. 지금의 중앙동은 주거지구나 생활지구보다는, 단순한 상업지구 정도로 남아있습니다. 평일이나 퇴근시간에만 사람이 북적이고, 그 외 주말이나 이른/늦은 시간대엔 한산합니다. 저희가 답사를 간 날도 토요일과 일요일이었습니다. 닫은 가게가 수두룩하고, 유동인구를 찾아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공실률도 높아, 도시의 슬럼화가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중앙동은 피란도시 부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부산의 문화를 논한다면, 중앙동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생각으로 저희는 4월 2일, 부산 중앙동 40계단길에 위치한 인문학 카페, 백년어서원을 찾아갔습니다.
백년어서원은 지난 2009년 개장한 중앙동 소재 인문학 카페입니다. 백년어서원은 단순한 인문학 카페가 아닌, 중앙동에 다시 사람들이 북적일 수 있도록 노력해온 하나의 구심점이었습니다. 백년어서원 가운데 큰 테이블에 앉아,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해주신 김수우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김수우 대표님에 대해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나는 문학을 하죠. 시를 쓰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한마디로 말하면 뭐라고 하겠느냐” 라고 질문받으면, 저는 “나는 그냥 이상주의자다” 이렇게 말하죠. 저는 이상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이상이 현실을 바꾼다고 믿어요. 현실을 바꾸는 힘은 이상에 있다고 봐요. 사람들은 자꾸 이상을 낮게 보고, 현실적인 문제들에만 급급해요. 현실이 절대 안 바뀌는 이유가 이상이 없기 때문이거든요.극단적인 물질사회에 살면서도, 계속 미래를 지향하기보다 현실에 급급하다 보니까 현실이 정말 안 바뀌는 거죠. 전 이상주의자로서 25년간 책을 한 20건 정도를 썼는데, 그 중에 6권이 시집이고 나머지는 산문집입니다.
백년어서원에 대해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백년어서원은 처음부터 지역문화 운동을 계속해왔어요. 읽기와 쓰기를 비롯해 국제포럼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까지 다른 지역까지 연결되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죠. 2013년부터 부산의 지역운동, 원도심 운동을 쭉 해왔어요. 일단은 백년어서원을 인문학 운동을 하는 곳으로 이해해주시는 게 좋죠. 다들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자기 생각을 쓰는 일에는 다 약하거든요. 자기 뿌리로 생각을 만드는 과정, 그걸 표현하는 과정 이런 것들을 집중적으로 함께 공부하고 있어요.
백년어서원이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뜻이 무엇인가요? 벽에 나무로 조각된 물고기들이 100마리 정도 있는데, 저 물고기들과 관련이 있는 걸까요?
저 나무 물고기들은 원래 충청도 산골에 있는 시골 집이었어요. 다 헐고 남은 나무 조각들이에요. 제 친구 중에 서예가가 있는데, 이걸 깎아줬어요. 이런 오래된 목재들이 아궁이에서 타면 굉장히 아름답게 타거든요. 우리도 숯 타는 것을 가만 보면 그렇잖아요. 자기한테 꽃불이 말을 거는 것 같더라는 거죠. 그래서 이 친구가 하나는 던져넣고 하나는 깎고 한 거죠. 나무토막에 입과 꼬리만 다듬으니까 물고기가 되더라 이거죠.
친구가 저한테 말했어요. 나무가 수목으로 자라려면 한 30년, 집으로 세워져 있으면 한 100년 그렇게 서있는 거죠. 수직으로 계속 서있었던 나무니까, 이제는 수평으로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살아라 해서 물고기를 깎았다는 거죠. 이 수평이 제가 생각하는 이 문학적인 의미에요.
버려지고 아궁이에서 타면 재가 돼서 그냥 사라지잖아요. 사라지는 것도 순환에 의미가 있으니까 괜찮지만, 한 자리에 수직으로 서 있는 게 습관이었던 나무에게 이제 자유롭게 돌아다니라 이러면서 물고기를 깎았다고 (깎은 친구가) 나한테 보여주는 거에요. 내가 의미가 너무 좋다, 문학적이다, 이런게 한 백 마리가 있으면 내가 이 문학 운동을 하겠다, 그랬죠. (그 친구가) 아 그러면 깎아주겠다, 그 다음엔 이름을 지어주어야 되지 않겠나, 하더라고요. 이름을 달리 어떻게 짓겠어요. 내가 생각하는 이 문학 가치들이죠.
영도에서 태어나신 후 2009년도에 다시 돌아오셔서 백년어서원을 차리신 걸로 알고 있는데, 중앙동에 돌아오셨을 때의 이야기를 조금 들려주실 수 있나요?
제가 스페인에서 살았거든요. 제가 배낭여행족 이라서, 스페인서 돌아온 다음에도 오지 여행을 많이 했어요.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도시를 가든지 구도심을 보거든요. 어떤 건물이 있었고, 옛날에는 어떻게 살았고 같은 것들요. 그런데 자꾸 개발론으로 나가다 보니까,사람들이 해운대 등 신도시로 몰리잖아요. 사람들은 사실 놀러오면 해운대로 가는 거죠. 그런데 좀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이쪽으로 와요. 산복도로도 가서 걸어보면 구석구석에 삶이 깊어요. 제가 2009년도에 여기(중앙동에) 올 때는 이 동네가 이런 보도 블럭도 없이 더러웠어요. 예전엔 여기가 시청 바로 코앞이고, 언론사며 방송국이며 다 있던 일제 강점기 때의 금융가였거든요. 지하철 다니는 길에 굉장히 오래된 건물도 많고. 그런데 (그런 시설들이) 다 흩어져버리고 사람들이 빠져나가니까 상권도 죽고 뭐 죽고 하면서 싹 다 여기가 슬럼화된 거예요.
시인도 많아지고 예술가들도 많아지고 하는데 사회는 왜 점점 극단적인 물질주의를 못 벗어나는가 (를 생각했어요). 예술가들이 많고 문학도 많고 다른 장르도 많아지잖아요. 예술가들도 많아지면 이 사회의 감수성도 예민해지고, 사회가 감동 받는 일도 많아야 하는데, 점점 물질 중심의 사회가 되는데 그게 이해가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결론을 내렸어요. 예술가들이 뭔가 책임지지 못하고 있다. 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가. 돈보다도 감동시키지 못하는 문학을 우리가 하고 있구나. 이제 문학이 뭘 잘못하고 있을까.
그래서 인문학 운동을 해야 되겠다 싶었죠. 분명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거니까,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좀 고민을 해봐야 되겠다. 처음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계속 고민하다가 (생각이 들었죠) ‘네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잖아. 책이 있잖아. 책을 가지고 나누면서 이야기를 하자.’
가난한 시인이었지만, 없는 돈에 책만 모았어요. 책이 너무 많아가지고 침대 밑에도 책이고, 옷장을 열면 책이고…그걸 못 버리죠. 그래도 이걸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서 처음엔 도서관에 기증을 했어요. 도서관에서 굉장히 반가워하고, 기증서도 만들어주고 그러더니 어느새부터 헌책을 안 받아요. 그래서 또 지하철에 열심히 갔다 날랐죠. 나중에는 지하철에서도 안 받아 주더라고요. 나한테 남은 책들은 전부 다 철학책 아니면 그런 텍스트들인 거예요. 아무데나 버릴 수 없는. 그래서 제가 그 책을 끌고 이 공간을 만들었죠.
백년어서원은 지금까지 어떻게 성장해왔나요?
이 공간을 열자마자 공부부터 시작했죠. 특강, 인문철학부터 시작해서 그냥 강의를 쉬지 않고 있어요. 토요일도 강의를 했죠. 웬만한 인문대학 한 학기보다도 백년어서원 한 학기가 더 양이 많죠. 공부를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오는 거죠. 이 방에 40, 50명이 들어와서 신문지 깔고 앉아서 했어요. 강사와 칠판 사이에도 사람이 앉아 있을 정도로 촘촘하게 앉아서 공부했죠. 사람들이 굉장히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말이죠. 제가 인문학 공간을 만들겠다고 그러니까 다 원도심을 반대했죠. 이 더럽고 컴컴한 골목에 누가 여기 공부하러 온다고 하느냐, 경성대 앞으로 가라, 대학로 앞으로 가라 어디로 가라 이러죠. 그래서 제가 “부산의 기억이 담긴 곳인데, 기억을 버리고 인문학이 가능하냐. 기억이 중요하다. 부산을 치매에 걸린 도시로 만들거냐. 부산이 갖고 있는 역사는 우리나라 근대사다.” 다들 반대하는데 제가 여기서 했죠.
막상 하고 나니까 사람들이 막 모이거든요. 그러다가 제일 먼저 누가 온 줄 알아요? 경찰서장이 온 거에요. 경찰서에서 우리 관내에 뭐가 하나 생겼는데, 저긴 뭐하는 곳인데 왜 저렇게 복잡한가 해서 신분을 밝히지도 않고 와서 강의를 듣고 간 거예요. 그러고 나서 ‘아, 도와줘야 되겠다’ 이 생각을 한 거죠.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그러니까. 서장이 그때부터 돕기 시작하고 조금 있으니까 또 구청장이 온 거죠. 구청장이 우리 관내에 이런 게 있었는지 몰랐다. 뭐를 하면 좋겠냐 그러더라고요. 그때부터 구청장이 보도블럭도 하나 깔아주고, 가로등도 깔아주고, 하면서 돕기 시작하더라고요. 굉장히 많은 사람이 도와서 지금 15년째 그렇게 해서 이 공간이 되고 있죠.
부산이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부산의 특성은 해양도시이고 피난도시예요. 피난 도시가 부산의 특성을 만들었거든요. 일제 강점기 때 겪은 식민지의 억압과, 한국전쟁은 우리나라 근대사잖아요. 부산의 근대사가 아니라 한국 전체의 근대사거든요.역사의 뿌리가 있고, 공부를 하려면 역사인식을 가지고 공부해야 되거든요. 옛날에는 시청이 여기 있었어요. 시청도 여기 있었고 언론사, 방송국이 다 이 근처에 있었거든요. 서울과 부산의 문화 격차 때문에 불만이 많지만, 서울과 부산의 격차보다 부산 안에서 동쪽과 서쪽은 격차가 더 심한 거죠.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돈이 있거나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 해운대로 가야 되는 거죠. 그쪽에 인구가 자꾸 많아지니까 모든 예산도 더 많아지고, 거기는 계속 고층 빌딩이 올라가고. 사실은 피난도시와 해양도시로서의 부산은 부산항 이쪽에 있잖아요. 우리 부산이 딱 마주보는 바다는 태평양이에요. 그러니까 부산항에 많은 피난민들이 들어오고, 자갈치 쪽에 피난민들이 엄청 들어와서 살고요.
피난민들이 여기서 먹고 살고, 산복도로 쪽으로 올라가면서 산비탈 도로들이 쭉 생겼잖아요. 산복도로라는 게 다른 지역엔 없는 부산만의 특성이거든요. 서울에도 산동네가 있지만 달라요. 여기는 사람들이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까 밑에 도로가 있고, 이만큼 올라가면 또 그 위에 도로를 또 내요. 그래서 또 사람들이 또 올라가요. 그러면 또 위에 도로를 내요. 그러니까 그 위로 다니는 버스들이 있는 거죠. 산복도로라는 게 사전에도 잘 없는 단어였거든요. 부산의 특성이 이쪽에 다 있는데. 역사의 뿌리도 이쪽에 있고요. 부산을 자꾸 신도시로 소비 도시로 만들어 나가니까 답답한 거죠.
백년어서원의 노력으로 중앙동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요?
저는 원도심 인문학 운동이라고 제가 하는 일에 이름을 붙였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원도심 인문학이 도대체 뭐냐고 그러죠. 이제 서울 같은 경우는 인사동이나 이런 데를 잘 찾아놨잖아요. 그런데 이제 부산은 다 버리고 갔으니까 이제 2층 3층이 다 비워져 있어요. 그래서 낸 아이디어가 원도심 창작촌이죠.
시청에서 누군가 와서 이러는 거예요. 원도심 운동은 뭐고 인문학 운동은 뭐냐고. 그래서 제가 말했죠. (그 당시 기준으로) 백년어서원 임대료가 35만 원이었는데 그 35만 원 내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여기 근처 건물들 2층, 3층, 4층 다 비었다. 이 동네 전체가 슬럼화됐다. 저기(저 빈 층에) 작가를 넣어달라고 그랬어요. 가난한 작가들이 살 곳이 생기면 작가도 살고 공간도 살고 문화도 산다. 이 사람이 크게 공감해주었어요.
답이 좀 길어졌는데, 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이 갖고 있는 기억에서 출발해야 되거든요. 우리 안에 내재돼 있는 것들을 회복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자꾸 두꺼워지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원도심 회복이 안 되면 부산의 문화는 없다’라고 항상 얘기하죠.
대표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백년어서원까지 가던 길에 서있던 팻말이 떠올랐습니다. 40계단길의 가운데엔 ‘또따또가 원도심창작공간'이라고 이름 적힌 지도 표지판이 있었습니다. 그곳엔 40계단길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실 위치가 써있었습니다. 문화적 다양성을 뜻하는 프랑스어 ‘똘레랑스'에서 ‘또'를 따오고, ‘따로 또 같이' 활동한다는 의미에서 ‘따또', 그리고 거리나 지역을 나타내는 ‘가(街)’를 붙였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또따또가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 협업하기 시작했고, 커뮤니티 활동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임대료를 지원하여, 창작 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지역 문화를 발전시키고자 했던 취지는 그 이상으로 성공적이었습니다. 단순히 공간만 대여해주는 것이 아니라, 전시·출판·상영까지 돕습니다. 더 나아가 시민을 위한 문화 예술 프로그램, 국내 타 프로그램과의 교류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럼 부산에서 중앙동 말고 원도심 회복이 가장 필요한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보수동 책방골목이 있죠. 역사가 살아있는 공간이죠. 지금 사실은 책방 골목이라는 게 전국적으로 다 사라졌어요. 보수동 책방 골목이 유일하게 지금 전국에서 살아남은 거예요
작아도 좋으니까 10평짜리를 여러 개 만들어가지고, 여기는 시집만 팔고, 여기는 동물에 관한 책만 팔고, 여기는 식물에 관한 책만 팔고, 이집은 음악에 관한 책만 팔고. 이런 식으로 특화시키면 재미있을 거다 라고 말은 하죠. 이런 게 제 이상주의죠. 그런 거를 하려면 시에서 돈을 부어야 되거든요. 쉽게 바뀌지는 않더라고요. 점점 쇠락하여서 개발 중심이 되고 있어 아쉬워요.
부산은 그 역사와 문화적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오, 그래서 너무 아깝고 아쉽죠. 제가 쿠바를 좀 많이 갔거든요.
쿠바는 18세기,19세기 건물들을 그대로 관공서로 바꾼 거에요. 그렇게 남아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요.
부산은 사실 조그만 변방이었죠. 이제 전쟁을 겪으면서 피난민들이 밀려오잖아요. 그런데도 그 사람들이 다 부산에서 먹고 살았잖아요. 부산의 특징은 개방성이에요. 그리고 포용성. 뭐가 들어와도 다 문화를 다 받아들여요. 다들 좀 성격은 급하지만 역동적이에요. 이런 거를 원도심 이런 데에서 적극적으로 키워가지고 청년들 문화도 앞으로 할 수 있게 해야 되는데 말이죠.
해운대를 그렇게 개발했으면 이쪽은 개발하지 않고 옛날 거를 지키는 걸로 하면 좋죠. 그래야 도시의 매력이 나오는 건데 부산은 다 없애버린 거죠. 여기는 해운대 그쪽에 비하면 굉장히 집값도 싸요. 그러니까 작가들이 이제 자꾸 이쪽으로 와요. 여기 있는 작가들끼리 근처에 다시 방을 얻으면서 이제 협동조합도 만들어서 운영하고 그렇게 해요.
(이 근방 지역들은) 다 역사를 갖고 있는 시장이잖아요. 한국 전쟁이 다 만들어낸 시장들이고. 그런데 지금 개성없이 다 똑같이 개발되니까 슬픈 거죠.
이런 지역의 개성을 살린 발전이 꾸준히 이루어지기 힘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산복도로 같은 경우 굉장히 중요한 특성을 갖고 있는데, 그 쪽에서 문화 운동을 하려면 거기에 사는 사람들이 해야 되잖아요. 근데 거기 사는 사람들은 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죠. 결국 하는 사람들은 지식인들이예요. 책상 위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는 멋은 있는데, 생동감이 없죠. 한계가 있습니다.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홍보가 한창인데, 원도심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떻게 다루어질 수 있을까요?
솔직하게 원도심에 대해 엑스포가 크게 다루고 있는 건 없다고 봐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다만 필요하다는 생각은 있죠. 한국 내에서 발전 균형이 안맞으니까. 부산에서도 동쪽 서쪽의 문화 격차가 심한 것처럼, 서울과 부산도 커요. 문화 좋아하는 사람들도 보면 있잖아요, 좋은 작가도 서울에 있고, 그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나 팔 기회도 서울에 있어요. 서울에 가면 출판사가 많아서 책값도 싸고 종이도 좋은 거 쓸 수 있고 막 이런 거죠. 지역 출판은 이게 안되죠.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국민들 반 이상이 중앙에 사는 이런 기형적인 도시가 없다고 하는데도, 그걸 (해결을) 못하고 있는 거죠.
자꾸 서울에만 올려놓으니까 서울 경기 쪽만 커지고 있잖아요. 거기는 거기대로 얼마나 힘들어요. 그러니까 거기는 만약에 행정도시로서 놔뒀으면 상업도시는 흩어져 있어야 되거든요. 가덕도 공항 같은 경우도 균형을 생각하면 필요하죠. 지금은 외국으로 나가려면 인천을 가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관문공항이 하나 더 있어야 된다는 거죠.
중앙동과 같은 원도심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장소성이라고 그러죠. 장소는 공간과 달라요. 장소는 기억이 묻어 있는 곳이에요. 사람이 회복되는 곳이 장소거든요. 예를 들면 뭐 광안대교 좋다 이렇게 하지만, 정말 자기 안에 있는 내재된 그대로가 회복되는 곳은 아니에요. 장자의 철학 중에 무용지용이란 말이 있어요. 당장은 유용하지 않는 것 같아도 그게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우리가 고향을 좋아하는 이유가 뭡니까? 아무리 좋은 데서 산다고 해도, 고향에 가면 사람이 회복이 되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고향을 놓지 않거든요. 그런 거죠.
대표님이 생각하시기에, 인문학과 원도심은 어떤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문학 있잖아요, 별로 유용하지 않아요. 문학 못한다고 취직 못하는 거 아니잖아요. 그런데 문학은 그 사람을 회복시키죠.
장소는 불편해요. 예를 들면 골목길? 골목길은 우리의 기억을 환기시켜줘요. 오히려 관리가 안되는 게 골목이잖아요. 사람은 자기 안에 굉장히 많은 골목들이 있죠. 인간이 어떻게 회복이 될 것인가 그런 거를 고민하다 보니까, 이런 원도심이 중요하고 도시도 기억을 갖고 있는 부분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우리가 왜 시장 같은 데 가면은 괜히 신나잖아요. 그 곳에는 삶이 있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그 기억이 주는 그런 회복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방 불균형 문제’를 논할 때, 우리는 대부분 수도권과 타 지방도시 간의 격차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부산의 경우, 부산 지역 내 불균형 문제 또한 심각합니다. 2019년 2월 기준, 부산시민 348만명 중 해운대구를 포함한 동쪽 8개 구·군에 거주하는 인구는 213만명입니다. 반면 강서구를 포함한 서쪽 9개구에는 135만명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거주인구의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은 문화·주거 환경에서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이겠지요. 지난 2020년 부산에서 실시한 <부산시 균형발전을 위한 불균형 실태분석 지표 개발 연구>를 참고해보면, 주거환경생활 만족도와 지역민들의 자부심을 지표화한 조사에서 해운대구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흔히 ‘동서 불균형 문제’라고 불리는 부산 내의 지역경제 격차는 부산과 다른 도시의 격차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부산의 문화를 다루는 글에서 갑자기 왜 부산의 불균형 발전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들을 할까요? 문화란 그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생활양식’입니다. 그 지역하면 떠오르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삶의 방식을 이야기합니다. 잠시 글을 멈추고, 부산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을 5초 정도만 생각해보세요.
생각해보셨나요? 바다와 해운대, 광안리를 비롯한 부산 동부가 떠오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지 않을까 싶습니다.높게 솟은 고층빌딩부터 빼곡히 들어선 유명 브랜드 프랜차이즈들까지, 서울에 있을 법한 최신 유행들은 다 몰려있는 것만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합니다. 부산이 발전해온 과정에는 우리나라의 근대사가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부산의 정체성을 떠올릴 때, 또는 부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생각해볼 때 부산이라는 장소에 담겨있는 그 시간과 역사를 떠올리지 않습니다.
방금 언급한 조사에서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부산 내 불균형 문제를 단순히 ‘동서 불균형’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부산 서부에 위치한 강서구는 인구활력 종합지표에서 1위를 차지하고, 인구유입률과 출산율 또한 가장 높습니다. 여전히 주거/교육/문화/복지 면에서는 부산 동부가 앞서지만, 부산 서부에 새로운 기회를 찾아 많은 젊은이들이 유입되고 있습니다. 부산 서부와 원도심에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부산 발전의 특징을 꼽으라면 전 단연 난개발을 꼽겠습니다. 부산이 발전해온 과정은 계획 하에 사람들을 모았다기보다는, 사람들이 모인 후에 그들의 방식대로 발전되었다는 편에 가깝습니다. 광복 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정부 부처들과 주요 기반 시설을 부산으로 대거 이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의 피난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배로 늘어난 인구에 도시는 정말 급격하게, 그리고 산발적으로 발전해나갔습니다. 그러한 부산의 급격한 발전은 주로 서부의 원도심을 중심으로 일어났습니다. 그 중심에는 중구가 있었고, 서구, 동구, 영도구, 사하구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부산 서부에 위치한 원도심 지역이 부산의 중심 개발지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줄지어 선 고층빌딩과 번쩍이는 복합쇼핑몰, 그 옆에 위치한 드넓은 해수욕장에 놀러가고 싶어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부산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부산이 담고 있는 한국의 근대사는 원도심에 고스란히 담겨있지만, 정작 원도심은 발전의 뒤안길에 놓여있었습니다.
시작할 때도 이야기했다시피, 문화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생활 양식이나 삶의 이야기를 말합니다. 결국 문화의 형성에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며, 그들이 모일 곳이 필요합니다. 백년어서원은 사람들이 모여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백년어서원은 임대 문의 종이조각이 빼곡했던 중앙동과 40계단길에 홀로 들어서서, 사람들을 모으고 또따또가라는 원도심재생문화사업을 일으켰습니다. 쇠퇴한 원도심의 중심지에서 일어난 도심 활성화 사업을 우린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단순한 지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현대 사회 속 인문학이 자리해야 할 위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문학이라는 것은 꼭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어야만 할까요? 꼭 원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아야 하나요? 인문학은 하나의 구심점이 되기도 합니다. 숫자와 서열에 지친 사람들이 인문학을 매개로 한 진솔한 대화에 목말라있었음은 빈틈없이 채워져 있던 백년어서원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메다가 발견한 중앙동은 그들에게 기회의 땅이 되었습니다.
농사에 쓸 비료가 없을 때, 우리는 타고 남은 재를 흙에 섞어 새로운 식물이 자라날 수 있는 양분으로 삼습니다. 재는 한 때 빨갛게 활활 불탔던 나무였습니다. 누군가는 그 용도가 다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재는 다시 새로운 생명이 피어날 수 있도록 기꺼이 양분이 되어줍니다. 저는 중앙동과 원도심 재생 사업을 보며 재가 생각났습니다. 극단적인 표현일 수 있겠지만, 부산의 원도심은 어떤 측면에서는 재와 비슷합니다. 1980년대 관공서와 금융, 언론이 모여있던 중앙동과 원도심은 말그대로 불타오르던 부산의 활력소였습니다. 이젠 동부로 주요 산업이 이전하고, 중앙동에 남은 것은 거주민도 없는 상업지구 뿐입니다. 하지만 다시 원도심에서 새로운 활력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젊은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꿈을 꾸며 40계단길의 빈 건물에 들어섭니다. 지친 사람들은 사람 사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 백년어서원으로 모입니다. 다 타고 남은 것인 줄 알았더니, 그 곳에서 새싹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글·사진: <local.kit in 부산> 문화팀 배승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