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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문학관에서 예술인 김승옥을 읽다

by 로컬키트 localkit

전라남도 순천만에 위치한 순천만국가정원 내에는 한국 현대문학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 김승옥 작가와 정채봉 작가의 순천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다. 현대문학의 천재로 인정받는 김승옥 작가는 소설 무진기행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며 ‘겨울여자’, ’영자의 전성시대’의 각본가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김승옥 작가님이 직접 거주하시면서 방문하는 관람객들을 맞아 주시곤 하셨다. 지금은 건강 문제로 서울에 계시지만 문학관을 방문하면 김승옥 작가님 옆에서 함께 계셨던 해설사 분들의 설명으로 김승옥 작가의 작품세계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순천문학관에서 문학해설사 두 분에게 김승옥 작가님과 순천에 대한 이야기를 청해보았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참 좋은 공간인 것 같아요

전국에 이런 문학관이 없어요. 지붕은 이 근처에서 나는 갈대로 지붕을 엮어놓고 여기 넓은 마당에서 민속놀이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어요. 지금은 아쉽게도 안 보이지만 목련이 필 때쯤이면 철새도 왔다 갔다 해요.


아까 설명하실 때 두 분께서는 신춘문예로 등단하신 작가님으로 들었는데, 어떤 계기로 여기서 해설을 하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이곳을 알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김승옥 선생님께서 여기 살고 계셔서 선생님 때문에 온 거죠. 초기에는 습지 해설사 분들이 근무하셨는데 그분들이 습지에 대해서는 전문가시지만 문학에 대해서는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문화예술과에서 저희를 뽑게 된 거지요. 저희도 좋아하는 일이라 이제 은퇴할 나이지만 여기에서 활동하게 되었지요. 보통 문학관이라고 하면 기념관 느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선생님이 애정하시고 계속 방문하시니까 마치 집 같고 추억도 많아요. 신기한 인연이죠. 지금은 선생님이 허리 다치신 것 때문에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지만 카톡은 자주 주고받아요.


선생님의 소설을 읽으며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잠깐 버스로 달려들었다가 물러났다.’와 같은 선생님의 섬세한 묘사에 감탄했습니다. 이런 독특한 표현이나 섬세한 글, 문체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대한민국의 책이란 책은 다 읽었다 그러잖아요

작가님께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창작을 하고 ‘소년세계’에다 투고하셨다고 해요. 작가님께 어떻게 초등학생이 투고할 생각을 했냐고 여쭤봤더니 서점에서 잡지를 보고 알았대요. 김헌 평론가께서 다독왕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실 정도로 작가님께서는 대한민국의 책이란 책은 다 읽었다 그러잖아요. 어린 시절부터 서점에서 오줌까지 참고 앉아서 책을 보셨대요. 그러니 가난하고 가진 것도 없이 시골에서 올라간 김승옥을 서울대에서도 무시하지 못했대요, 너무 똑똑하니까. 동네 책방을 돌며 책이란 책은 다 읽은 것이 일찍 글을 쓸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줬다고 하세요. 선생님 소설엔 시적인 문장이 많잖아요. 무진기행 뒷부분에 아내한테서 연락이 오는 장면에서도, ‘전보여, 새끼손가락을 내밀어라. 나는 거기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어서 약속한다.’ 전보를 의인화하죠. 이러한 문체는 선생님의 대단한 상상력과 선생님께서 읽으신 4천 권의 책이 뒷받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때문에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책을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작가님의 글 쓰시는 모습은 어떠세요?

아주 몸을 불사르면서 쓴대요.

여기 신문을 보시면(김승옥 문학관 내부에 전시된 신문) ‘김승옥 작가는 본인의 완벽한 검열 때문에 작품을 더 이상 안 쓰는 것 같다, 그걸 깨고 나와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있어요. 이전에 저희 두 사람도 김승옥 작가님 책의 교정을 보며 꼼꼼히 읽게 되는 과정에서 선생님의 글에 너무 감동한 거예요. 그래서 막냇동생분이 오셨을 때 여쭤봤어요. ‘선생님은 천재니까 소설은 그냥 앉으면 뚝딱 써버리시죠?’ 동생분께선 ‘형이 글을 쓰면 구석에 쓰고 버리는 원고지가 이렇게 쌓여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주 몸을 불사르면서 쓴대요. 단편 한 편도 몇 개월이 걸려 쓰시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피를 갈아가면서 한 편 한 편을 만드세요.


글감옥이라는 말 있잖아요. 써야 되는 글이 있으면 본인을 가두어서 자기 안에서 질문하고 대답하며 완성할 때까지는 본인만의 과정에 잠겨요. 김승옥 선생님께서 70년대에는 영화를 하셨잖아요. 선생님께 소설과 영화 중 어떤 작업이 재미있냐고 여쭤보니 영화를 더 좋아한다고 답하세요. 소설에 비하면 영화는 자유롭고 여러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니까요.

순천에서 김승옥 선생님은 어떤 분이세요?

김승옥 선생님께서 여기 태생이 시기도 하고 작가님께서도 순천 문학관에 많은 애정이 있으시다 보니 김승옥 선생님께서는 순천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세요. 순천문학관을 이곳에 짓고 귀 거를 하실 수 있는 것도 순천의 특별한 배려죠. 그런데 사실 여기로 들어오기가 쉽지 않아요. 관광객들이 오긴 하지만 순천의 학생들이나 연구자들이 도심에서 오기에는 쉽지 않은 위치예요. 김승옥처럼 어린 시절부터 똘똘한 문학 소년 소녀들이 엄청 많을 건데... 또 여기가 무진길 130번지잖아요. 소설 제목을 딴 길이 만들어진 건 좋지만 이곳엔 주차장이 없어요. 멀리서 정말 김승옥을 사랑하는 분들이나 친구분들께 어떻게 들어가야 하냐고 전화가 와요. 차를 가져와도 10분은 걸어야 되는데 80세가 넘으신 분들이 들어오긴 쉽지 않은 곳이죠. 그게 조금 아쉬워요.


작가님께서 무진기행이라는 소설을 통해 이곳 무진을 일종의 피난처로 묘사하셨습니다. 아직도 현대인들한테 고향이란 무진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 저는 태어난 집이 아직 여기에 있어요. 부모님도 두 분 다 살아 계시고요. 그러니까 전 당연히 고향을 피난처라고 말하죠. 저는 여학생 때부터 같이 자란 아홉 명의 친구들과 지금도 모임을 해요. 얼마 전에도 모였거든요. 이곳에 더 이상 살지 않는 친구도 있지만 그 친구에게도 고향은 완전한 피난처일 거예요. 특히 제가 살던 곳은 원형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으니까 저와 제 친구들은 결속력도 있고 여전히 고향이 피난처죠.


B.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저는 아버님은 돌아가셨지만 어머님이 여수에 계셔요.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어머님을 뵈러 여수로 가는데 지금은 ‘여수 밤바다’로 인해 여수가 많이 변했어요. 이렇게 발전하는 것도 좋은데 애틋한 그 어린 시절의 향수는 안 남아있죠. 우리 세대는 그런 것을 아련하게 그리워하고 가만히 기억을 떠올리는데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진정한 고향이 없달까.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여러 고생 끝에 나온 이야기들이라 그 속에 정신적인 힘이 담겨있고 할 말도 많고 다양한 세계가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학원에 다닌다던지 계획된 삶을 살지요. 지금 시골의 마을회관에서 노는 할머니들의 안에 들어있는 정신적인 원형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고 있는 게 너무 아쉬워요. 정채봉 선생님의 ‘초승달과 밤배’ 같은 책들 보면 어릴 적 본인이 자라고 정말 거기에서 산 사람들 밖에 해줄 수 없는 얘기들이 있거든요. 그러한 맥락에서 고향을 그리는 얘기들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해설사님은 특히 무진기행을 읽으실 때 순천이 많이 연상되셨겠어요.

그렇죠. 지금은 좀 많이 바뀌었어요. 내 고등학교 때가 소설 속 무진에 훨씬 가까워요. 지금은 갈대가 바다 가운데까지 자라 가지고 무진기행 안에서 어떤 장면이 어딘지 찾기가 쉽지 않지만 당시에는 선착장 근처도 소설 배경처럼 생겼었어요. 김승옥 선생님께서 이곳을 하나하나 보고 무진기행을 쓴 건 당연히 아니지만 순천이 공간의 바탕이 되어 굉장히 근사한 풍경을 지니고 있다는 건 확실해요. 우리가 아침에 출근할 때 어떤 날은 정말 앞이 안 보일 만큼 안개가 낄 때도 있어요.


문학관에서 작가님과 나누신 대화 중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학생들이 책을 가지고 오면 작가님께서 여기 앉아 사인을 해주고 학생 하나하나 사진 찍어주세요. 학생들을 되게 좋아하셨어요. 최근에는 허리가 안 좋으셔서 못 오고 계시지만 마음으로 몹시 오고 싶어 하세요.

저희는 선생님과 문자나 카톡을 주고받는데 선생님께선 언어장애가 있어서 조사를 잘 못 쓰세요. 그렇지만 명사로만 대화를 해도 그 언어를 골라 쓰는 게 얼마나 섬세하고 적합한지 몰라요.

노인분들은 자신이 정한 스케줄대로 정확히 움직이세요. 우리 부모님도 그러세요. 몇 시에 일어나서 몇 시에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몇 시 되면 기차를 타고 몇 시에 도착하고. 이게 딱 정해져 있어요. 눈이 와도 이 계획은 변하지 않죠. 그럼 저희는 그런 차도 없이 서울로 가신 선생님이 걱정되어 잘 도착했는지 연락드려요. 그럼 답장이 이렇게 오죠.


서울 눈 눈 눈 김승옥 잠 잠 잠


무슨 말인 것 같나요? 서울에 나는 잘 도착했고 서울에 눈이 많이 쌓여 있고, 나 김승옥은 집에서 잠을 자고 있다. 이런 뜻이에요. 그 말을 골라 쓰는 게 엄청 시적이고 정확하고 아름다워요. 작가님의 소설도 그래요. 또 연세가 많고 몸이 안 좋으셔도 되게 공명정대하세요. 우리가 차 한 잔만 대접해도 꼭 갚으려고 하세요. 그리고 멋을 아세요. 아름다운 걸 보면 카메라로 찍어 남기고 저희에게 보여주세요. 특히 그림을 잘 그리시거든요. 그런 걸 보면 타고난 감각이 있으세요.


마지막으로 순천문학관이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좋을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문학은 약자의 언어이자 말없는 자연의 언어예요. 그런 의미에서 이 문학관은 그 장소적으로도 의미가 있어요. 자연을 대표하는 순천만을 들어가기 전 길목에 위치해 도심과 자연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나타내죠. 이곳에서 문학인들이 문학의 의미를 살펴보고 문학을 더욱 사랑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pilogue

순천 문학관은 작가님을 온전히 보여주는 공간이다. 전시관을 들어설 때부터 보이는 글귀는 작가님의 세계관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소설가란 스스로 ‘이것이 문제다.’고 생각하는 것에 봉사해야지 어느 무엇에도 구속당해서는 안 된다. 권력자나 부자의 눈치를 살펴도 안 되고 동시에 힘없고 가난한 사람의 비위만 맞춰서도 안 된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다만 스스로의 가치에 비추어 문제가 되는 것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이어지는 전시관에선 작가님의 그림, 편지 등을 통해 작가 김승옥을 넘어 ‘예술인’ 김승옥을 살펴볼 수 있다. 김승옥 작가님을 애정하고 공유하는 기억이 많은 해설사님 두 분의 설명은 순천 문학관 한쪽을 거닐며 바깥을 바라보시는 김승옥 작가님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게 한다.

작가님께 순천 문학관은 편안함과 위안을 주는 공간이다. 해설사님은 아직 살아 계신 분의 문학관이 생긴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하셨다. 작가가 아끼고 직접 방문하는 문학관이라는 사실은 순천 문학관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이 특별함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하는 코스가 있다. 서울에서 순천으로 내려오는 기차에서 무진기행을 읽으며 여행자의 기분에 몰입하자. 이어 순천 문학관에 방문해 작가님의 작품 세계에 흠뻑 빠지고 순천만으로 이동해 안개 낀 풍경을 감상하면 순천, 여행자, 김승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local.kit in 전남> 예술팀 이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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