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시인으로 기억되기까지는 그의 사후에도 그를 널리 알리기 위해 헌신한 벗들의 노력이 있었다. 윤동주의 평생지기였던 정병욱 역시 윤동주를 위해 힘썼던 이들 중 하나였다. 정병욱은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입학 전부터 <조선일보>에 실린 윤동주의 글을 보고 그를 동경하고 있었으며, 입학 후에는 함께 하숙 생활을 하며 모든 것을 공유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기념하여 윤동주는 한글 시집을 출간하고자 했지만 당시 한글 출판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윤동주는 손으로 직접 세 부를 필사하여 그중 하나를 벗 정병욱에게 증정했다. 그것이 오늘날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육필원고가 된다.
1944년 1월, 정병욱은 학도병으로 끌려가기 전 광양 집으로 내려와 어머니에게 “동주나 내가 다 죽고 돌아오지 않더라도 조국이 독립되거든 이것을 연희전문학교로 보내어 세상에 알리도록 해달라”라며 유고 보존을 부탁한다. 다행히도 귀환한 정병욱은 마루 밑에 숨겨져 있던 시고를 찾아서 또 다른 윤동주의 벗 강처중과 함께 유고 31편을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간행했다. “인간 윤동주는 북간도에서 태어났지만 시인 윤동주는 광양에서 태어났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광양 집 앞쪽으로는 ‘윤동주 길’이 조성되어 있고 근처에는 ‘윤동주 시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심지어 망덕포구와 배알도를 잇는 다리의 이름은 ‘별 헤는 다리’이다. 이렇게 광양시는 ‘윤동주를 시인으로 부활시킨 역사문화도시’라는 장소성을 강조하며 윤동주와 관련된 흔적들을 남겨 가고 있다.
그러나 ‘윤동주’라는 인물을 제외하고도 정병욱이라는 국문학자는 그 자체로 빛나는 인물이다. 정병욱은 한국 고전문학을 체계화했으며 맷돌, 항아리, 고문서들을 수집하며 보존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 한번 발산하면 공중에 떠서 사라져버리는 판소리, 시조, 창을 보존하기 위해서 소리꾼과 고수를 발굴하고 이들의 소리를 녹음해 LP 판을 만들었다. 이렇게 동결시킨 소리를 악보로 채록하고 가사를 문자화하는 등 소리를 활자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이외에도 해외 연구 학술대회에 나가서 한국의 고전문학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에도 기여하며 전통문화의 재조명에 큰 역할을 했다.
정병욱은 ‘정병욱’ 자체로 우리나라의 문학과 전통을 살리는 데 기념비적인 일들을 해나갔고 ‘정병욱 가옥’은 그 공간에서 쭉 살아온 한 가족의 오랜 역사를 담고 있음에도 윤동주의 시를 보관했던 인물과 장소로만 주목받아 왔다. 로컬키트는 ‘정병욱’이라는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광양의 정병욱 가옥을 직접 찾아갔고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결과, 가옥과 그 주변에 얽힌 정병욱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이제 이 장소에 남겨진 기억들을 공유하며 비교적 기억되지 못하던 이름인 정병욱을 조명하고자 한다.
이야기 1: 광양 망덕포구의 자그마한 집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은 1925년 망덕포구에 건립된 점포형 주택으로 양조장과 주택을 겸용한 건축물이다. 국도변에 위치해 있으며, 앞쪽으로는 망덕포구를 바라보고 뒤쪽으로는 망덕산을 두고 있다. 예전에는 작은 나루가 있어 이 나루터를 중심으로 어촌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지금은 높은 둑과 해안도로가 조성되어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정병욱 가옥은 2007년에 등록문화재 제341호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동결 보존을 원칙으로 하는 지정문화재와는 달리, 소유주가 일상에 지장 없이 생활하면서 사유 재산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현재 가옥의 소유주는 정병욱의 외조카 박춘식으로, 정병욱이 서울로 이사를 간 뒤 이 집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며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는 곧 이 가옥이 여느 집과 다르지 않게 오랜 가족의 역사가 담겨 있는 공간임을 의미한다.
정병욱 가옥이 터를 잡은 곳에서 현재까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에는 소유주 가족의 오랜 노력이 있었다. 만약 이 집이 부수어졌다면 오늘날 망덕포구에 정병욱 가옥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등록문화재이지만 동시에 사유재산인 이 자그마한 집을 둘러싸고, 광양시와 소유주 간 활용 방안에 대한 입장 차이가 발생하기도 하나 개인 소유권을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공익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이 공간을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화유산 개발의 명목으로 이 집에서 줄곧 살아온 한 가족의 일상과 역사가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
이야기 2: 광양제철고 교지
정병욱 가옥 소유주의 딸이 광양제철고에 재학 중이던 시기에 교지편집부 학생들이 가옥의 이야기를 듣고 취재를 진행했다. 2005년, 광양제철고 교지에 이 가옥이 윤동주의 유고를 보존하고 부활시킨 공간이라는 이야기가 실렸고, 지역 신문을 통해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광양시청에서도 이 사실에 주목하여 가옥을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일에 큰 관심을 보였다. 결국, 정병욱 가옥은 2007년 등록문화재 제341호로 지정되어 ‘윤동주 유고보존 정병욱 가옥’이 되었다. 정병욱 가옥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공헌한 광양제철고의 교지가, 윤동주라는 시인이 빛을 볼 수 있도록 헌신한 정병욱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3: 배알도가 품은 윤동주와 정병욱의 우정
• 별 헤는 다리, 그리고 <별 헤는 밤>
배알도는 광양 망덕포구 섬진강 하류에 위치한 섬이다. 망덕포구와 배알도를 잇는 다리인 ‘별 헤는 다리’는 윤동주의 시 제목 ‘별 헤는 밤’을 따서 지어졌다. 윤동주의 여러 시 중 <별 헤는 밤>이 활용된 것에 주목해 볼 만하다.
윤동주는 정병욱에게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로 끝나는 <별 헤는 밤>의 첫 원고를 보여준 적 있다. 이후에는 “어쩐지 끝이 좀 허한 느낌이 든다”라고 넌지시 말한 정병욱의 의견을 받아들여 "지난번 정 형이 '별 헤는 밤'의 끝부분이 허전하다고 하셨지요. 이렇게 끝에다 덧붙여 보았습니다"라며 마지막 네 줄을 추가하였다. 별 헤는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별 헤는 밤>에 담긴 정병욱과 윤동주의 우정을 함께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 해운정에 앉아 내려다보는 산맥
해운정은 배알도의 정상에 있는 정자로, 산맥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망덕포구는 백두산에서부터 뻗어 나온 큰 산줄기의 주요 맥이 남쪽 바다와 만나 끝나는 망덕산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백두산 너머 북간도에서 나고 자란 윤동주 시인과 남쪽 바닷가에서 꿈을 키운 정병욱 선생의 운명적 만남을 가리키는 듯한 산줄기를 두고, 우리는 윤동주와 정병욱을 ‘백두대간이 맺어준 인연’이라 부르기도 한다. 별 헤는 다리를 건너 배알도에 도착해 섬의 정상인 해운정에 앉아 산맥을 내려다보며, 백두산 북쪽 끝자락의 용정 출신인 윤동주와 백두산 최장맥 남쪽 끝자락의 광양 출신인 정병욱의 만남을 상상해 보자.
이야기 4: 산 너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옹벽 뒤의 산마루 평지에서 정병욱이 학병으로 끌려갈 때 마을 사람들이 배웅을 하러 온 적이 있다. 정병욱이 일본 순사한테 동네 사람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하니 순사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에 정병욱은 동네 사람들에게 배웅해 주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잘 다녀올 테니 행운을 빌어달라고 얘기한 바 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나라를 되찾고 나면 이 중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으니 다들 공부 잘하고 있으라 하고 끌려 갔다고 전해진다. 앞쪽의 강가뿐만 아니라 뒤쪽의 산 너머도 정병욱의 삶과 지역의 시간이 흘렀던 곳으로, 정병욱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야기 5: 광양의 인물들을 모아서
‘정병욱 가옥’을 ‘정병욱 가옥’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병욱도 함께 회상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광양에는 정병욱을 알리는 장소와 콘텐츠가 부족하다. 나아가 고향 광양을 사랑했지만 정작 광양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동화작가 정채봉, 광양의 풍경들을 기록했지만 광양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사진작가 이경모와 같이 광양 출신 문화 인물들이 많은데도 광양시는 그들을 제대로 비추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정병욱 가옥을 중심으로 광양 출신 문화인들을 다시 모아서 정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야기 6: 이웃 지역 기념관과의 연계
이웃 지역의 기념관과의 연계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순천 낙안읍성 근처에는 소리를 동결하는 작업을 경제적으로 후원하고 민속 유물을 수집하며, 잡지 <뿌리깊은나무>·<샘이깊은물>을 발행했던 한창기를 기념하는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 있다. 또한, 광양만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남해의 유배문학관과는 대표 유배객 김만중의 <구운몽> 해제를 정병욱이 했다는 사실로 연결될 수 있다. 한편, 섬진강을 건너면 만날 수 있는 하동에는 이병주 문학관과 박경리 문학관, 그리고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이 있다. 이러한 남해안 지역을 문학의 성지로 엮는다면 정병욱을 비롯한 여러 문화인들의 유형과 무형의 자취를 보존하고 전시함으로써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자존적 고유성과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데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광양이 안고 있는 풍부한 자산으로 지역의 학자들, 시민들이 모두 힘을 합쳐 광양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다.
2024년 3월 27일부터 4월 8일까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정병욱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정리함으로써 그가 광양을 비롯한 많은 지역에 소중한 유산을 남긴 인물임을 다시금 체감했다. 이제는 정병욱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의 문화유산을 새롭게 발굴함으로써 ‘정병욱'이라는 불씨를 되살려야 한다. 로컬키트의 정병욱 가옥 이야기 수집 프로젝트가 유물처럼 굳어 있던 정병욱 가옥을 새롭게 바라보는 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글·사진: <local.kit in 전남> 예술팀 김현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