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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컬키트 localkit Jun 08. 2024

local.kit 3호선 프로젝트: 충무로

충무로역: 청년, 시간이 만나는 공간에서 쉼을 얻다


서로 다른 시간을 싣고 가는 지하철이 있다. 전통 한복 차림으로 경복궁을 다녀온 이들과 남산에서 반짝이는 야경을 담아온 관광객이 섞이는 지하철. 늦은 밤 대치동 학원가에서 나온 학생과 종로에서 오는 어르신이 만나는 지하철. 수도권 지하철 3호선이다.


1980년대 중반 개통한 3호선은 서울 서북부 지역과 동남부 지역을 이어주는 노선이다. 도심과 강남을 최단거리로 이어주지만 굴곡이 많은 탓에 열차가 천천히 움직여 서울의 ‘느림’을 상징하는 노선이다. 한편 경복궁(경복궁역) · 창덕궁(안국역) · 종묘(종로3가역) 등 조선 왕조의 상징과 도산대로(신사역) · SRT(수서역) 등 현대 한국의 모습을 모두 관통하며 ‘신구의 조화’를 담아내는 노선이기도 하다. 서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곳들을 지나가는 3호선의 특성 덕에 열차 안에서는 서울을 누비는 세계의 여행자들을 만나보기 쉽다.


3호선이 마주하는 전통적인 모습과 현대적인 모습이 서로 교차하는 곳이 있다. 바로 충무로역이다. 1980년대 3호선과 4호선은 서울을 X자로 가로지르도록 계획됐는데, 충무로역은 이들 노선이 만날 곳으로 정해졌다. 설계 과정서부터 충무로역은 ‘서울의 한가운데’로 낙점됐던 셈이다. 그래서일까. 이 역 주변에서는 서울이 가지는 양면성을 모두 찾을 수 있다. 번잡함과 한적함, 전통과 산업화. 충무로역은 신구가 조화롭게 섞이는 3호선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역인 셈이다.


서로 다른 시간이 악수하는 공간. 로컬키트는 이곳 충무로역 주변 1인 가구 청년의 생활 모습에 주목했다. 서울의 심장부이자 정체성인 이곳에서 청년들이 만들어가는 라이프스타일은 어떨까. 충무로역 인근의 공간들을 로컬키트가 걸어 보았다.



남산골한옥마을: 자연과 전통이 만나는 도심 속 쉼터

충무로역 3번 출구 뒤편 매일경제 사옥 앞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면 고즈넉한 현판을 볼 수 있다. 남산골한옥마을이다. 1990년대까지 수도방위사령부의 자리였던 이곳은 서울시의 도시 경관 사업의 일환으로 한옥마을로 조성됐다. 한국의 전통 가옥을 경험하려는 해외 관광객의 발걸음을 불러일으키는 관광지로서의 몫을 다하고 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이 써 있는 대문을 기분 좋게 넘어서면 어린이의 웃음 소리와 여행자의 카메라 소리가 겹친다. 넓은 마당 한켠에서는 태권도 시범단이 박수갈채 속에서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활기찬 경관을 뒤로한 채 한옥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고즈넉한 분위기가 반긴다. 냇물이 흐르는 소리와 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섞여 거니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도심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넓은 녹지공간을 즐기는 시민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가볍게 산책하는 주민부터 연인과 함께 순간을 기록하는 이들까지. 남산골한옥마을은 자연 속에서 전통이 주는 쉼을 누릴 수 있는 곳이었다.

(좌) 입춘첩이 붙어 있는 남산골한옥마을 정문 / (우) 냇물이 안식을 주는 남산골한옥마을


필동문화예술거리 예술통: 회색빛 골목에 더해진 색깔

남산골한옥마을에서 나와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분홍빛 간판이 인사를 건넨다. ‘필동문화예술거리 예술통.’ 예술거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리 곳곳에서 조형물과 벽화 등 예술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필동문화예술거리 예술통은 그저 그런 유휴공간으로만 남을 수 있는 도시공간에 예술을 더해 문화예술공간으로 재창조하였다. 퇴계로의 번화함에서 50미터만 걸어 나오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골목 곳곳에 벽화와 조형물이 자리잡고 있어 마치 골목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거리에 퍼져 있는 스트리트뮤지엄은 거리 자체를 하나의 미술관으로 만들고 있다.


서울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회색빛 골목길. 이곳 예술통은 색깔 없는 골목길에 색채를 더한다. 칙칙한 삶에 주거 공간이 주는 색채감이 일으킬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었다.

(좌) 예술통으로 들어서는 길목 / (우) 퇴계로 노변에 있는 예술통 안내판


대한극장: 한국 독립영화관의 살아있는 역사

충무로역 1번출구와 2번출구 사이. ‘대한극장’이라는 간판을 단 큰 건물 하나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대한극장은 1958년에 문을 연 유서 깊은 독립영화관으로, 1970년대 충무로 주변에 즐비했던 영화사들과 함께 ‘충무로’라는 말을 한국 영화산업을 상징하는 말로 만든 주역 가운데 하나다.


약 20여년 전 멀티플렉스로 새단장을 했던 대한극장은 올 9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 독립영화관의 마지막 숨결로 충무로역 옆에 꼿꼿이 서 있던 대한극장이 사라진 이후에도 이곳은 문화예술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대한극장 정문에 걸린 간판.


인현시장: 옛 모습을 넘어 청년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일요일 오후를 맞아 조용히 쉬고 있는 충무로 인쇄 골목과 웅장하게 자리잡은 진양상가 사이. 인현시장이 묵묵히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을지로와 퇴계로의 빌딩 숲에서 벗어나 전통시장의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980년대에 멈춰있는 것 같은 골목을 지나 시장으로 들어서면 여러 음식점이 활기차게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 인현시장은 주변에서 근무하는 이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곳으로 통한다. 최근에는 청년 예술가와 사업가의 손길에 힘입어 시장 노후화 문제를 넘어서 청년층에게도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주말 낮 한적한 인현시장.


충무초등학교 인근 1인 가구촌

‘살기 좋은 우리 동네.’

동국대학교 캠퍼스 북쪽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1인 가구 청년들의 터전. 캠퍼스 내 체육관 방면의 쪽문으로 나서면 언덕을 따라 1인 가구 건물이 늘어서 있다.


외관상으로 비춰지는 이곳의 장점은 다름아닌 ‘안전함’이었다. 다른 1인 가구촌과 다르게 도로가 넓게 조성되어 있어 교통 안전 문제나 치안 문제에서 다소 자유로울 수 있다. 또한 퇴계로, 동호로 등 주요 간선도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언덕 중턱이라는 지형적 이점이 있어 동네가 조용하고 한적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충무초등학교 인근 1인 가구촌 벽화에 ‘살기 좋은 우리 동네’라는 글이 쓰여 있다.


모두의 거리: 시간의 변화가 만들어낸 ‘같음 속 다름’

충무로역 인근은 대학 주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낮 시간에는 전형적인 대학가의 이미지를 찾아보기는 어려운 지역이다. 하지만 해가 저물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동국대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자 서울 도심 업무지구 근무자들이 모여드는 장소. 동국대학교 앞 모두의 거리는 젊음이 있는 자유로운 장소가 된다. 동국대학교 점퍼를 입은 학생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웃음꽃을 피우고, 40대 남성들도 치킨 가게에 앉아 500cc 생맥주 잔을 서로 부딪친다. 하나의 공간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한 시간이 손을 맞잡는 매력을 가진 곳이다.


필동 서애로: 역사와 특별함이 어우러진 걷기 좋은 거리

충무공 이순신과의 애틋한 우정과 저작 『징비록』으로 유명한 서애 류성룡. 필동에 있는 서애로는 그의 집터가 인근에 있어 붙여진 명칭이다.


서애로는 그런 역사성과 필동만의 문화가 잘 어우러진 거리다. 아스팔트 대신 타일로 포장된 도로 위로는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 보행자가 걷기에 쾌적하다. 퇴계로에서 안쪽으로 걸어들어오면 저 멀리 보이는 남산 서울타워의 모습은 이곳이 서울의 심장임을 절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길거리 곳곳에는 서울 3대 냉면집 가운데 하나인 ‘필동면옥’ 등 이 지역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음식점이 있고, 이색적인 카페들도 눈길을 끈다.

이곳 서애로는 ‘번잡하지 않음’이 매력인 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행자를 배려해 차도보다 인도의 폭이 더 넓게 설계되어 있고, 건물이 도로 위에 그늘을 만들지 않아 동네 자체가 햇볕을 받아 화사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고 차보다는 걷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곳. 서애로 연선의 동네가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필동 인근 서애로 전경.


로컬키트가 둘러본 충무로역 인근 지역의 분위기는 ‘만남’과 ‘공존’이라는 말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남산골한옥마을의 고즈넉함과 필동문화예술거리 예술통의 알록달록함이 어우러진다. 인현시장에서는 노포의 안락함과 청년 장사꾼의 화사함이 조화를 이룬다. 서울의 중추 도로인 퇴계로의 번잡함과 보행 친화적인 서애로의 한적함이 만나 새로운 경관을 자아내고, 산책하기 좋은 낮의 모습과 활기찬 젊음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밤의 모습이 함께 있는 특색을 선사하고 있다.


서울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가장 ‘3호선스러운’ 충무로역. 옛것과 새것, 문화와 예술, 도시와 자연, 빠름과 느림이 함께 있는 이곳에서의 삶은, 빠르게 달려가는 청년들의 일상에 ‘쉼’이라는 주거의 본질을 선사한다.


오후 10시경 충무로역 1, 2번 출구 폴사인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로컬키트 x 웰컴홈즈] 이 콘텐츠는 웰컴홈즈와 함께 제작했습니다.

글·사진: <local.kit> 정회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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