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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cal Park Oct 26. 2021

둠즈데이 북(Doomsday Book)

코니 윌리스(Connie Willis)



코니 윌리스는 타임슬립 물에 특화된 sf 문학의 대가다. 우선 이 책의 빛나는 수상 경력을 보자면 sf 주요 문학상인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모두 석권! 문학상 권위에 약한 나로서는 여기서 이미 혹했다. 또 '옥스퍼드 시간여행 시리즈'라고 불리는 그녀의 타임슬립 물 장편 3부작 중 가장 먼저 나온 책이기도 하고, 유일하게 여성 주인공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책을 가장 먼저 읽기로 했다. 무려 900페이지에 달하는 긴 장편으로 국내엔 '열린 책들'에서 한 권짜리로 먼저 출판이 됐다가, 후에 '아작'에서 두 권으로 분권 해 재 출판했다. 둘 다 최용준 님의 같은 번역이라 어느 버전으로 읽어도 상관없고, 번역은 거슬리는 부분 없이 잘 됐다고 생각한다. 


이 압도적인 900페이지의 독보적인 책 등 너비는 도서관에서 내 시선을 강탈했다. 도대체 저 책은 뭘까? 궁금하면서도 감히 엄두를 못 냈던 책. 나처럼 이 책의 두께에 기죽는 사람이 있다면 전신인 단편 '화재 감시원'을 먼저 읽고 도전해 보길 추천한다. 하지만 분량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책의 전개는 아주 급박해서 남은 분량을 확인하며 한숨 쉴 일이 없으니까!   




<줄거리 소개>


중세로 간 키브린




2054년, 정밀한 설정 아래 시간 여행이 가능해졌다. 중세를 전공한 역사학과 학생인 키브린은 실제 중세로 가서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담당 교수인 던워디는 높은 위험도에 만류했지만 그녀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결국 도우기로 한다. 중세는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때라 이상한 인물로 낙점 찍힘은 곧 화형에 이를 수 있기에 평범한 중세인이 되고자 언어와 생활양식 등을 익히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중세에 유행했던 각종 전염병의 예방주사도 맞는다. 타임슬립은 장소와 시간을 설정해 사람을 보내고, 2 주 뒤 도착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귀환한다. 그러므로 처음 도착했을 때 장소를 잘 확인해둬야만 한다.



하지만 중세에 도착한 키브린은 알 수 없는 병증으로 정신을 잃고, 지나가던 영주의 부하들에 의해 옮겨지며 자신이 도착한 위치를 알 수 없게 된다. 영주의 부인인 엘로이즈와 그녀의 시어머니, 두 딸, 로슈 신부 등과 함께 지내며 중세시대에 차차 적응해가며 한편으론 다시 현대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이 도착한 장소를 찾고자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영주의 집에 온 손님이 흑사병의 증상을 보이고, 그제야 키브린은 흑사병이 가장 유행했던 1348년으로 잘못 온 것을 알게 된다. 그녀가 지내던 마을에도 병이 퍼지며 하나 둘 죽어나가고, 열악한 환경에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키브린은 죽을힘을 다 한다.



 반면 던워디 교수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현대는 불명의 인플루엔자가 유행하는 상황이다. 이 책을 가리켜 '꿈도 희망도 없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몇 년째 지속되는 유행병 상황에 놓인 지금 읽기에 공감되는 부분도 많다. 또 다른 재미는 92년에 상상했던 2054년의 모습이다. 과거에 상상했던 미래에 살고 있다는 걸 새삼 느끼며 스마트폰을 한번 쓰다듬어 본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성적이고 강인한 주인공이다. 간혹 여성 주인공인 책에서 '여성'이 곧 주인공의 정체성이 되어 생사고락을 결정할 때가 많다. 사랑받는 기쁨이 부각되거나, 강간이 주인공의 어둠이 되는 상황은 너무 뻔하고 불편하다. 주인공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저 '인간'으로 존재하는 작품을 가장 선호한다. 그런 면에서 키브린은 뼛속까지 그저 역사학자의 면모를 가진 사람으로 묘사되는 점이 좋았다. 죽을 위기에 놓인 순간에도 자신의 기록을 어떻게 후대에 남길지를 골몰하고, 세상의 연애 가십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나이 든 남자 교수인 던워디 와의 관계성도 좋다. 더러운 추문 없이 그저 학문으로 끈끈하게 연결된 남녀 사제지간은 은근 문학에서 보기 힘든 관계다. 사랑은 안중에 없고 일에 골몰하는 유능한 여성 주인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900페이지를 두려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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