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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cal Park Nov 09. 2021

나의 사촌 레이첼(My Cousin Rachel)

대프니 듀 모리에 (Daphne du Maurier)

대프니 듀 모리에는  서스펜스와 스릴러 장르물에 특화된 영국 작가다. 뮤지컬로 유명한 '레베카'와 히치콕의 영화로 잘 알려진 '새'의 원작자로, '나의 사촌 레이첼' 또한 영화화됐다. 1907년생으로 그 시절 여성 작가가 그리 많지 않다 보니 각별한 데다,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전업 작가로서 활동하기 힘든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다작을 했다는 점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대프니 듀 모리에 작품은 복잡하지 않은 플롯 내에서 음산한 분위기와 긴장감을 내내 팽팽하게 유지한다. 다방면으로 재생산되고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다.


주인공 필립은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부유한 사촌 형  앰브로즈와 함께 살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유일한 가족으로 생각하며 부자관계, 형제관계로 지내왔다. 필립이 성인이 다 될 무렵, 가볍게 병을 앓던 앰브로즈는 다스리는 영지를 그에게 맡기고 따뜻한 이탈리아로 요양차 여행을 떠난다. 편지로 근황을 주고받던 중 앰브로즈는 피렌체에서 곤궁한 처지의 먼 친척 레이첼을 만났다고 하더니, 몇 달 뒤에 그녀와의 결혼 소식을 알려온다.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던 앰브로즈의 느닷없는 결혼 소식에 필립은 크게 놀란다. 결혼 후 앰브로즈의 편지는 점점 뜸해지고, 이상하게 편지의 내용과 문장도 뒤죽박죽 엉망으로 망가져가자 그의 안위가 걱정된 필립은 급히 피렌체로 떠난다. 하지만 그가 도착했을 땐 이미 앰브로즈는 죽어서 장례까지 치렀고, 그의 아내이자 먼 친척인 레이첼은 이미 어딘가로 떠난 후였다.


엠브로즈의 죽음과 레이첼의 연관성을 의심하며 영국으로 돌아온 필립에게 레이첼이 먼저 그의 집에 방문 의사를 보내온다. 앰브로즈는 그녀의 목적이 오로지 돈이라 생각해 단단히 준비를 하고 그녀를 맞는다. 하지만 그녀는 예상 밖의 소박하고 매력적인 여성인 데다, 필립의 재산에도 크게 관심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필립은 그녀의 매력에 점점 매료된다. 그의 구애에 레이첼은 매번 완곡하게 거절하지만, 알아 들어먹지 못하고 혼자만의 사랑을 키워간다. 결국 필립은 레이첼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녀와 결혼하겠노라 공표하고, 크게 화가 난 레이첼이 결혼을 거부함과 동시에 이곳을 떠나겠다고 하자 필립은 큰 충격에 빠진다. 지금껏 그녀의 언행을 모두 자기 입장에서 해석하며 당연히 그녀도 자신을 사랑하리라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무슨 배신이라도 당한 양, 받아 주지도 않을 거면서 친절히 대해 사랑에 눈멀게 한 레이첼이 무슨 악마 마법사라도 되는 양, 가까스로 자신의 한 줄기 이성으로 마법사의 마법에서 풀려난 양 흑화 되고, 느닷없이 사촌 형 엠브로스의 죽음이 이 사람 홀리는 레이첼 탓이 분명할 거라며 분노에 불을 지피기 시작한다. 





사실 책은 필립의 시점이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이 의뭉스럽다 생각되는 부분도 많다. 레이첼의 설명-엠브로즈의 정신병이 날로 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보지 못한 사촌 형의 죽음에 대해 필립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지금껏 여성을 제대로 만나본 적 없던 터라 그녀의 언행을 제 기준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독 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녀는 단 한 번도 필립에게 이성애를 내비친 적이 없다. 이 배경과 시대만 다른 '만나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하는 자'의 입장은 요즘과도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책 표지부터, 영화 표지까지. 또 극 중 내내 지속되는 스산한 분위기까지 더해져 레이첼의 이미지는 침침하고 흑막이 있어 보인다.



572p로 두께가 있는 편이지만, 장르물답게 지루하다 생각되는 부분은 거의 없다. 레베카와 새를 재밌게 즐긴 사람이라면 분명히 재밌을 거라 생각한다. 또, 죽도록 사랑한다더니 돌변해 죽이려고 덤벼드는 '왜 안 만나줘' 부류들 사고의 과정을 이해해보고 싶은 사람... 에게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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