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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cal Park Dec 06. 2021

벨 자 (Bell Jar)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시인으로 더욱 유명한 실비아 플라스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벨 자. 그녀를 투영한 '에스더'의 1인칭 시점인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여성 작가 책을 훑어보다 처음 알게 됐다. 시는 잘 안 읽는 데다 번역시는 손도 안 대는 편이라 초면인 작가였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우울한 문학' 목록에서 이 책을 다시 발견하며 '맞아.. 아주 우울하지' 새삼 이 작품의 시커먼 수렁이 떠올라 몸서리쳤더랬다. 작품뿐만이 아니라 작가 실비아의 인생 자체가 여성 불행 서사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세상이 똑똑한 여성의 불행 서사를 유독 매혹적으로 생각해서 그럴까? 그녀의 삶은 작품 이상으로 유명하다. 그녀 곁의 남자들 - 아버지는 병으로, 남편은 그 시절의 문인답게 외도로 가정에서 부재했고 그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녀는 추락했다. 그녀의 결혼생활과 죽음은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실비아'로 영화화됐다.





에스더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우등생이었다. 잡지 공모전에 우승하며 대도시 뉴욕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는다. 번쩍이는 도시 속에서 지금껏 만나본 적 없던 다양한 군상의 인간들을 만나고 여러 문화적 경험을 쌓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작은 시골 우물 안 개구리였던 자신에 대한 자격지심과 그럼에도 높고 먼 이상 사이에서 혼란을 느낀다. 그런 먼 그녀의 이상과 달리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1950년대의 그곳이다. 만나는 사람은 결혼 후 그녀가 '여성으로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늘 상기시키고, 인턴 후 돌아간 집에서는 그녀의 엄마가 한없이 그녀를 땅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 에스더의 정신상태는 날로 심각해지고 극심한 우울증과 불면증에 몸부림치다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하지만 그 시절 정신병원은 제 기능을 거의 하지 못했다. 사람을 그저 무기력하게 만드는 약들과 전기충격요법 등으로 에스더의 상태는 점점 악화된다.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고 마치 병에 갇힌(Bell Jar) 고착된 상태의 시간들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책은 끝난다.





 아내가 되는 것, 엄마가 되는 것 말고 내게 세상이 용인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서 어디로 도망칠 수 있을까?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여성에겐 그런 '여성의 역할' 외엔 허용되지 않는 사회는 지속됐다. 하지만 많은 것이 허용되는 현대의 여성으로서도 교집합이 없지 않다. 남성을 보조하는 존재로, 어머니로 존재하길 여전히 강요받는다. 꼭 여성이 아니더라도 애매한 재능과 진로에 깊은 고민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 유리병에 갇혀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에스더-실비아의 상황을 이해하리라 본다.

 

타고나길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피로한 얼굴의 마른 체형이 그려진다. 실비아 플라스의 자전적 소설이기 때문에 작중 화자인 '에스더'를 작가와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작품엔 등장하지 않는 에스더의 과거와 미래에 실제 작가의 삶을 자연스레 대입하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에 9살에 자살 시도를 한 소녀. 그녀가 삶을 살아내는 동안 우울증은 그녀의 육체도, 정신도 서서히 좀먹어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읽길 망설일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332페이지로 얇아서 부담 없고, 우울한 색채와는 무관하게  소설로서 매끄럽게 잘 읽히며 재밌다. 나락의 심연으로 서서히 끌려가는 감정 묘사가 탁월해 읽고 난 뒤 오랫동안 그 이미지가 선명히 남았던 작품이다. 벨 자는 복수의 출판사를 통해 출판됐지만 모두 '공경희' 역자의 번역이라 어느 버전을 읽어도 무관할 것 같다. 번역도 매끄럽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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