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20

<성탄 카드>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는 너무 짜증 나는 날이었다. 12월 즈음 세상이 성탄의 분위기를 폴폴 풍기면 나의 심사는 뒤틀어졌다.

어린 시절의 난 부모님으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고, 그날을 맞아 조금이라도 특별한.. 가령 어떤 체험을 한다던가, 맛있는 걸 먹는다던가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크리스마스가 싫었던 것 같다. 모든 어린이가 행복해진 듯한 크리스마스에 나만이 홀로 튕겨져 나온 느낌이라 그런 어깃장을 부린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향한 분위기는 거의 한 달 내내 고조되어 갔고, 나는 얼른 그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더불어 라디오에서 지겹도록 캐럴만 들어야 하는 것도 한몫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내가 크리스마스와 관련해 유일하게 좋아했던 건 크리스마스카드를 고르고 쓰는 일이었다. 작고 아기자기한 카드에서부터 불빛과 벨 소리가 나오는 카드까지. 방학식 날 친구들과 서로 편지를 교환하고 그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뿌듯했다. 나는 편지를 썼지만 내겐 써주지 않은 친구가 있으면 서운하기도 했다. 

오래 잊고 살았던 크리스마스카드를 쓸 생각을 했다. 조카들 둘 다 이제 한글을 쓰고 읽을 줄 알게 돼서다. 초등학교 근처의 문구점에 들어서며, 나는 어린 시절 기억처럼 빨간 카드가 잔뜩 꽂힌 카드 매대가 가운데 떡하니 놓여있을 것이고, 그중 어떤 게 더 예쁠까 고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카드는 점원에게 어디 있는지 물어서야 찾을 수 있었다. 5가지 종류 중 골라야만 해서 큰 고민은 필요하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은 카드 교환을 하지 않는 걸까? 이제는 예전만 못한 12월 분위기에 캐럴을 자발적으로 찾아 듣게 된다. 살기가 많이 팍팍해져서 그런가? 겨울이 더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