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과 호스피탈리티의 어원
제가 호텔 산업에 발을 들인 지 어언 21년 차가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보내오다 보니 저에게 호텔은 설레는 여행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삶의 터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어 참 아름답지만, 한편으로 익숙해진 대상에 대한 본질과 감사함의 망각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간사한 망각의 증상을 자각할 때마다 저는 스위스 호텔 대학에 입학한 첫 해, 한 교수님께서 해주신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스위스가 호텔경영으로 유명해진 이유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 던져졌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아름다운 풍경이 관광 자원이 되어서요!" "나라가 작아서 관광으로 먹고살았던 게 아닐까요?" 등의 여러 답변을 하였지만, 교수님은 고개를 저으시고 이런 답을 주셨었습니다.
"스위스는 약 70%가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어. 비행기도, 차도 없던 시절에 이 산맥을 넘는 여행자는 머무를 곳이 필요했겠지. 이런 여행자들에게 자신의 집을 내어주는 일이 많았고 이게 곧 호텔 산업 발달의 근원이었다."
4년 반에 걸친 대학 생활에서 수많은 수업을 들었지만, 이 이야기가 가장 제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보통 호텔을 잘 경영한다라는 것은 호텔 방을 잘 팔아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호텔 산업의 근본은 나의 공간을 낯선 이에게 내어주고 환대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자주 통용되지 않지만 외국에서 호텔과 여행업 종사자들은 'Hospitality industry', 즉 '환대산업'에 종사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여기서 Hospitality라는 단어의 어원은 Hospes라는 라틴어입니다.
HOSPES = HOST + GUEST
Hospes는 재미있게도 Host (주인)과 Guest (손님)을 함께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는 환대산업에서 공간을 내어주는 이와 공간을 이용하는 이의 관계에는 상호 간 책임과 신뢰가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 Hospes에서 파생된 단어들은 Hospitality 이외에도 Hospital, Hostel 등이 있습니다. 모두 공간을 낯선 이에게 내어주고 머무는 사람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공간들입니다.
Hotel이라는 단어는 대저택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인 Hôtel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대저택이 외부 손님들을 맞이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프랑스어권 유럽 국가들을 여행하다 보면 시청은 Hôtel de Ville, 그 도시의 대저택/대표되는 건물, 이라고 불립니다. Hotel이라는 단어가 영국과 미국에서 점차적으로 상업적인 숙박시설이라는 의미로 불린 것은 17-18세기 이후입니다.
너무나 익숙하게 남발하는 호텔과 호스피탈리티라는 단어의 어원, 그리고 호텔 산업의 기원을 저는 여러 강의, 언론 인터뷰, 신입 직원 오리엔테이션 등에서 일부러 강조해서 설명을 하곤 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호텔 산업을 돈 버는 수단의 한 가지로만 보지는 않았으면 하여서이고, 두 번째는 매일 하는 일에 대한 익숙함에 잠식되어 있을 수 있는 제 자신에게 초심을 리마인드 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스위스 산골짜기에서 낯선 이방인에게 내 집 문을 열어주는 집주인, 그리고 대저택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중세시대 사람들을 마음속에서 형상화하면 제가 운영하는 호텔의 로비에 계시는 한 분, 한 분께 절로 애정의 마음이 생겨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고객님'이라는 표현보다는 '손님'이라는 표현을 훨씬 즐겨 사용하고요.
또, 제가 손님이 되어 다른 호텔을 방문하였을 때에도 어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본인의 공간을 내어주는 호스트에게 저 또한 배려와 성숙한 책임의식을 갖추어 그곳을 이용하는 것도 진정한 호스피탈리티 정신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죠.
때로는 단어 하나가 마음을 다시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저는 오늘도 그 단어를 품고, 로비의 공기를 다시 살핍니다. 따뜻한 마음이 머물 수 있도록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