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호텔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

유럽인들의 에토스에서 찾아본 유럽의 호텔과 환대 문화

저는 자칭 '유럽 촌년'입니다.

여행계에 종사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아직 미국 본토에 발을 들여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만 16세부터 30세까지 생활했던 유럽은 저에게는 제2의 고향과도 같은 느낌이네요.


호텔경영을 전공한 만큼, 오랜 기간 유럽생활을 하며 많은 국가들을 방문할 때마다 다양한 호텔들에서 숙박을 해 보곤 하였습니다.

코코 샤넬이 사랑한 호텔, Hôtel Ritz Paris


침대에 앉자마자 삐그덕- 소리와 함께 침대가 반토막이 나며 주저앉았던 제네바의 한 1 성급 호텔 경험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부잣집 출신 중국 친구 덕에 묵어봤던 전설적인 '호텔 리츠 파리' (Hôtel Ritz Paris)에서의 황홀한 경험까지.





수많은 장르와 성급의 유럽 호텔들에서 때론 비꼬듯, 때론 감격적으로 했던 말은 "아 정말 유럽 스럽네" 였던 것 같습니다.


아 정말 유럽 스럽네

제 '유럽 스러움'이라는 표현에는 여러 가지 느낌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성급을 막론하고 제가 선택한 유럽의 호텔들은 그 도시의 로컬리티, 즉 그곳의 문화와 역사에 이질감 없이 물들어 있었고, 오래된 건축물을 크게 손대지 않아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되 그만큼의 낭만도 느껴지는 곳들이었습니다.

또, 어떤 기업이 프로토콜에 맞추어 기획했다는 정형화된 느낌보다는 마치 집주인이 긴 세월에 걸쳐 애정을 가지고 만든 장소처럼 손때 묻은 따뜻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조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에서 B&B나 3-4성급 로컬 호텔을 예약해 보신 분들이라면 아마 어느 가정집의 주방에 차려진 듯한 조식 뷔페를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유럽을 떠나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다니며 '유럽 스러움'을 표방한 여러 호텔들을 다녀봤지만, 아무리 멋진 곳도 '아 정말 유럽 스럽네!'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어쩌면 그들의 호텔과 환대문화가 유럽인들의 에토스, 즉 그들만의 정신적인 규범과 행동양식, 과 직간접적인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적 정신, 유럽인의 에토스 (Ethos)의 역사

유럽인의 정신이 무엇인 지 알려면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크세니아 (Xenia)는 고대 그리스에서 '손님과의 우정' 또는 '의례화된 우정'이라는 뜻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호스트가 손님을 환대하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볼 수 있는 콘셉트이기도 합니다.

고대 로마의 하스피티움 (Hospitium)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대 로마인들에게 하스피티움이란, 여행자를 집에 머물게 하고, 음식을 제공하며, 안전을 보장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도덕적 책임과 명예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유럽의 환대문화는 중세 시대에는 종교적인 가치가 더해졌습니다. 중세 수도원에서는 여행하는 순례자를 맞이하는 일은 곧 하느님을 맞이하는 일로까지 간주되었습니다. 즉, 환대가 도덕과 종교의 실천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지요.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에는 고대와 중세시대와는 달리 여행이 드디어 지적, 문화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여관 (inn)이나 궁정의 게스트 하우스와 같은 숙박시설은 사교와 미적 경험의 기원이 되며 주인의 철학이 깃든 예술적인 곳이 많아졌습니다.


19세기 중후반, 산업 혁명 후 철도망이 확장되며 제가 환상적인 경험을 했던 호텔 리츠 파리나 사보이 런던 같은 전설적인 럭셔리 호텔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1889년에 개관한 사보이 런던은 전 객실에 전기와 온수, 엘리베이터까지 투입하며 현대 호텔 서비스의 시초가 되었고, 1898년에 개관한 리츠 파리는 코코샤넬이 거주했던 곳으로도 유명하지요. 이 시기에 드디어 호텔은 사교의 장이 되고, 세련된 부르주아들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20세기에서 21세기의 유럽은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거치며 역사의 산 증인이자 큐레이터가 되었습니다. 두 번의 전쟁을 거친 이 시기부터 유럽에서는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정서적인 교류를 하며 느린 삶을 사는 것이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2차 대전은 그들의 물리적인 기반들과 예술품들의 파괴만 남긴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정체성까지도 무너뜨렸고, 유럽 각국은 이에 대한 회복을 로컬리즘 (Localism)에서 찾으며 지역 고유의 문화와 존엄을 복원하였습니다.


오늘날 유럽의 호텔이 유럽다운 이유

장황하고 지루할 수 있는 유럽의 역사를 설명하였지만, 유럽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유럽의 호텔에서 남다름이 느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방문객의 편의성을 생각한다면 기존 건물을 개조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이 합리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유럽의 많은 호텔은 조금 불편한 동선을 감수하더라도, 도시의 오랜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는 길을 택합니다. 그 선택에서는 단순한 실용성을 넘어선, 정통성과 문화유산에 대한 존중이 느껴집니다.


화려하고 반짝이는 조식 뷔페의 배식대보다, 오래된 수제 원목 테이블 위에 놓인 빵과 잼이 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오랜 시간 손때가 스민 그 테이블 위에는, 그 공간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과의 조용한 연결감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난 인테리어 회사가 큐레이션 한 아트워크들이 규칙적으로 배치된 공간보다, 누군가가 긴 시간에 걸쳐 모아 온 듯한 골동품들이 다소 어설프게 놓인 공간이 더 마음을 끌 때가 있습니다. 어쩐지 아마추어적인 그 배치는, 예술이 누군가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풍경처럼 느껴집니다.


에필로그

'유럽 촌년'인 저는 이런 유럽다움, 그리고 유럽다운 호텔 와 환대 문화에 대한 향수가 참 큽니다.

그런데 그들 다움이 멋진 이유는 유럽인들이 고대에서 지금까지 조상 대대로 물려내려 온 정신과 그로 인한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공간과 손님맞이에 진정성 있게 녹여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다움'을 제가 만드는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 공간 기획자, 그리고 호텔리어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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