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선
가계부를 적다
오랜만에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비로 받은 교통비, 식비, 일비의 합에서 얼마나 남길 수 있을까. 지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오늘 점심은 업체에서 제공한다고 했으니 식비는 들지 않았다. 대중교통으로 가기 힘든 곳이라 자차를 이용해서 고속도로로 가는데 빠르게 가기보다는 유류비를 최대한 절감하기 위해 난생처음으로 가장 끝 4차선에서 평균 시속 70~80킬로로 천천히 운행하였다. 평소에 1차선과 2차선을 넘나들며 평균 시속 120킬로 정도로 다닐 때에 비해서 기름 소모량이 30%는 줄어드는 것 같았다. 천천히 가기에 고속도로에서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은 있지만, 고속으로 추월하면서 달릴 때처럼 사고 나지 않기 위해서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니 마음은 매우 편하고 여유로웠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주변의 경치도 눈에 들어왔다.
살면서 가계부를 몇 번 써보려고 하다가 그만두곤 했었는데 며칠 전부터 가계부 앱을 다운로드하여서 매 순간순간의 지출을 기록하고 있다. 월급여에서 매달 대출 원리금 상환비와 양육비의 고정 지출을 제하면 얼마 남지 않는다. 아끼고 아껴도 수입보다 지출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니 지출을 최대한 줄이지 않을 수 없다.
카드 결제를 할 때마다, 가계부에 지출 금액과 내용을 적으면서 증가하는 지출 합계 금액을 보며 그 금액을 어떻게든 통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고 그 기본은 밖에서는 아무것도 안 사 먹고 안 사 마시기 그리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안 돌아다니고 안 만나기이다.
오늘 오랜만에 보게 될 사람들에게 단정하게 보이고자 17,000원을 주고 어제 머리를 잘랐는데 미용실을 가기 전에 한참을 망설였다. "머리를 꼭 지금 잘라야 하나.. 2주 정도 더 길렀다 잘라도 되지 않을까.. 누가 내 덥수룩한 머리를 유별나게 보는 것도 아닐 텐데."라고 생각하다가 결국 미용실로 향하였다. 예전에는 호감이 가는 여자들이 나오는 모임이 있는 날이면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 전날이나 당일날에 3주 만에 머리를 자른 적도 종종 있었는데 올해는 평균 두어 달에 한 번씩 머리를 자른다. 세탁소에 옷을 맡기는 일도 사라졌다. 드라이클리닝과 다리미질이 필요한 옷들은 아예 입지를 않는다. 세탁비도 큰 지출이다. 남한테 잘 보이는 것보다 나의 내면의 성장과 절약&투자가 최우선이다. 다 할 수는 없다. 무엇이 중요하고 최우선인지를 고심 끝에 선택했으면, 나머지 99.999%는 싹 다 제거해야 하고 그렇게 지금 참 잘하고 있다.
오늘의 모임에 온 사람들은 다들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었고 박사급도 태반이었다. 외국인 연사의 IR에 영어로 질문들을 하는데 표현력이 다들 상당하다. 구면인 이들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또 식사를 같이 하면서 은근슬쩍 비트코인 이야기를 꺼내봤는데 비트코인 투자를 하는 이들은 없었고 다들 부정적이었다. 자기 분야만 깊이 알 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갖거나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전형적인 완고한 지식인들이었다. 자기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언제쯤 깨고 나올까.
부자가 부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부자 마인드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월등히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부자들은 부자의 습관을 따르지 않는 이들 덕분에 부자가 된다. 소수의 생산자는 다수의 소비자가 있기에 돈을 번다. 극소수의 갑부들은 절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크게 거스르는 역행자들이다.
고로 나는 甲富이다.
오늘 오랜만에 본 어떤 지인이 회사를 창업하였다고 한다. 잘 다니던 직장도 퇴사하고 여러 명이 동업해서 창업한 회사인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노동력을 갈아 넣어서 수익을 올리는 구조로 확장성의 한계가 명확해 보였다. 회사를 창업한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함이고 기업은 영리를 추구한다. 직장에서 받는 월급보다 많은 수익이 예상되니까 창업을 했을 텐데 얼마나 성장할지 궁금하다. 직장에만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처럼 아직까지 직장에서 월급루팡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하루하루가 비장하다.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매일 전진하고 있고 거기에는 다른 것들이 끼어들 틈이 조금도 없다. 알랑 드 보통의 책을 계속 보면서 마음의 양식을 얻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