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 장애

건강의 소중함

by Loche


꽤 오래전부터 수영을 하거나 샤워를 하고 나면 유난히도 오른쪽 귀에 물이 들어가서 먹먹해지고 그 물이 빠질 때까지 귀가 잘 안 들리곤 했다. 약 2주 전부터는 샤워 후 귀 막힘 증세가 점점 심해져서 예전처럼 시간 지나도 귀가 뚫리지 않고 계속 막히는 것이었다. 귀에 물들어가지 말라고 삽입형 수영 귀마개도 사용해 봤는데 귀 막힘은 해결될 기미가 안보였다. 그리고 최근 며칠은 오른쪽 귀가 완전히 막혀서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어제 일요일에는 거기에 더해서 아파오기까지 하였으니 덜컥 겁이 났다. ChatGPT와 Gemini 등으로 증상을 알려주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니 돌발성 난청일 수도 있고 그 경우 24시간 안에 병원을 찾아가서 치료하지 않으면 영구적인 청력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는 겁을 주길래 허겁지겁 일요일에 진료하는 병원을 검색하였고 다행히도 집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 문을 연 가정의학과에 가서 귀 안을 볼 수 있었다.


귀내시경으로 들여다보니 고막을 완전히 덮어서 고착된 귀지가 보였고 의사는 딱딱한 귀지를 녹일 용해제가 없기에 이를 제거하려면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찾아가 보라고 하면서 다행히 신경이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혹시나 해서 병원을 나오자마자 가까운 온천사우나에 가서 따끈한 온천탕에 여러 차례 머리를 통째로 집어넣어서 귀를 불리고 냉탕에 들어가서도 불리고 한증막 사우나에 들어가서도 있어보고 다시 온탕에 들어가서 또 머리 집어넣고 불린 후 샤워 하고 나와서 면봉으로 귀를 후벼보는데 별로 나오는 건 없었고 귀는 여전히 막힌 상태가 해소되지가 않았다. 그래도 좀 불리고 나니 귀가 아픈 증상은 사라졌다. 그리고는 월요일 아침 9시가 되자 마자 집 근처의 가까운 이비인후과에 가보았다.


나이 드신 할어버지 의사 선생님이 용해제를 사용해서 긁어내는 전처리를 한동안 한 후에 조금씩 빼내는데 시꺼먼 타르 같은 것들이 나왔고 선생님 말로는 아주 오래된 것들이라고 하였다. 어렸을 때 집에서 엄마가 종종 귀지를 파주신 것 말고는 이비인후과에 가서 귀지를 파본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아마도 수십 년 묵은 귀지인 것 같았다. 어찌나 시꺼멓던지. 꽤나 많이 나왔다. 휴... 귀내시경으로 다시 보니 드디어 아주 얇은 유막 같은 고막이 보였고 용해제와 Suction을 사용해서 남은 딱지들을 제거하니 귀가 뻥 뚫렸고 살 것 같았다. 왼쪽 귀는 비교적 깨끗한 편이었지만 그쪽 귀도 깨끗이 청소해 주시니 양 쪽 귀에서 맑고 청명하게 들을 수 있게 되어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염증은 없냐고 물었더니 "없습니다"라고 단언하는 의사님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기분 좋게 병원 건물을 나올 수 있었다.


염증과 고막 손상으로 인한 비가역적 청력 손상이 아닐까 내심 걱정했었고 한편으로는 설사 그렇게 장애가 생긴다고 해도 꿋꿋하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양쪽 귀가 아주 잘 들리니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건강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오른쪽 귀의 청력이 서서히 안 좋아지는 느낌은 있었는데 그게 청력 손상이 아닌 딱지 때문이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양쪽 귀로 주변의 잔잔한 공기 흐름과 부딪침도 섬세하게 들리니 너무 좋다.


몸은 소모품이다. 귀뿐만이 아니라 치아도 눈도 무릎 연골도 다 수명이 있다. 너무 사용 안 해도 문제이지만 과도하게 소모하는 것은 더 안 좋다. 시끄러운 소음에 노출 안 시키고 음악도 볼륨을 키워서 귀에 때려 박기보다는 내 귀가 음악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크지 않은 볼륨으로 하는 것이 좋다. 오래오래 사용하려면.




한동안 투자 관련 책들만 보다 보니 내 머리가 편독에 질려버려서 인문학 서적으로 방향을 틀었고 몇 달 전에 사놓고 아직 안 본 알랑 드 보통의 「현대사회 생존법 」을 읽기 시작하였는데 내용이 매우 좋다. 그가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작년에 감명 깊게 봤는데 이 책을 보니 사랑론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시대를 이해하고 평온함을 찾는 법에 대해서도 수십 년 고착된 굳은 귀딱지를 용해제로 녹여내는 것처럼 나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고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참 좋은 책이다.

책을 읽음으로써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되고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게 된다. 사람들과의 만남보다 책을 읽는 것이 더 보람이 있다. 세상의 번잡한 소음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기보단 이렇게 조용히 혼자서 책을 읽으며 훌륭한 저자의 지식과 지혜를 얻는 것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나도 언젠가는 내 글로써 남들에게 삶의 지혜와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런 지식인이 되고자 한다.

앤서니 로빈스 저 「거인이 보낸 편지」의 삽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