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감정, 감수성 1

「극한의 경험」을 읽고

by Loche


이번 글은 내가 관심 있게 읽었거나 밑줄 친 부분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내 생각을 정리하고 생각날 때마다 바로 찾아볼 수 있도록 를 위해 쓴 글입니다. 독자분들이 읽기에 문맥이 끊기거나 매끄럽지 않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책 내용이 아닌 내 생각은 별도의 색으로 표시합니다.



유발 하라리의 책 「극한의 경험」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상황인 전쟁, 삶과 죽음을 가르는 그 경계선에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변화시킨 근현대(1450 ~ 2000년)의 전쟁 문화에 대한 고찰이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중요하고도 빈번하게 나오는 단어 '계시(revelation)'에 대해 저자는 계시가 지식을 얻는 특정한 방법을 의미하며, 종교와 근본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밝힌다. 저자는 본문에서 '계시'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보통 우리는 탐구와 관찰, 연구, 분석이라는 통제된 과정을 거쳐 새로운 종교적, 역사적, 과학적, 개인적 지식을 얻는다. 이에 반해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외부의 힘이 새로운 지식을 우리에게 떠안길 때, 우리는 '계시를 받았다'라고 말한다. 계시로 얻은 지식은 그 어떤 '통제된'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계시를 주는 외부의 힘은 신일 수도 있고, 자연 현상일 수도 있으며, 전쟁처럼 인위적인 경험일 수도 있다. 계시의 내용 또한 종교적일 수도 있으며, 정치적이거나 예술적, 심리적 내용일 수도 있다."


전쟁을 문화적, 정신적 현상으로 간주하고 전쟁 문화를 더 넓은 문화적 맥락에 집어넣어 정신과 육체를 이해하는 방식, 서양의 자아 이상, 권위 개념들과 전쟁 문화의 관계를 살펴본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를 지나는 동안 계몽주의와 감수성 문화,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군인들은 전쟁을 계시의 요인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낭만주의의 '숭고(the sublime) 개념이 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깊은 의미에서 우리의 세계관이 수많은 세계관 중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의 사람들이 세상을 우리와 철저히 다르게 보았다면, 그 세상은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정말' 철저하게 달랐을 것이다.


옮긴이의 글 중에서


중세 시대 선과 악, 옮음과 그름, 미와 추를 판단하는 주체는 신(초자연적 존재)이었다. 유한한 인간의 의견과 판단은 바람처럼 속절없는 것이었다. 인문주의 혁명 이전에는 거대한 우주 계획이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인문주의가 이를 뒤집어, 거대한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 경험이라고 주장했다. 하라리는 <호모데우스>에서 '무의미한 우주의 의미를 창조하라'가 인문주의 인간에게 요구한 제1 명령이라고 이야기한다. 인문주의 혁명을 거치며 인간이 절대적인 의미의 원천이 되었고, 인간의 자유 의지가 최고의 권위를 획득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루소의 다음과 같은 말이다.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나 자신의 의견만 물으면 충분하다.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은 좋은 것이다. 내가 나쁘다고 느끼는 것은 나쁜 것이다." 다시 말해, 지혜와 권위의 기준이 신과 이성에서 인간과 감정으로 옮겨온 것이다.

하라리에 따르면 중세 시대에 지식을 얻는 공식은 이것이었다.

지식 = 성경X논리


그리고 인문주의 혁명은 이 공식을 이렇게 변형시켰다.

지식 = 경험X감수성


저자는 철학의 무게 중심이 이성과 정신에서 감정과 육체로 기움에 따라 전쟁을 계시 체험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 공식에 누락된 변수는 없는지, 혹시 누락된 변수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도록 하려는 의도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멀미를 느낄지도 모른다. 옮긴이도 그랬다. 수백 년 동안의 전쟁 회고록을 겹겹이 이어 붙여 만든 돛단배를 타고 철학과 문학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정치 사회 역사의 망망대해를 항해하면서 세상이 드넓은 것을 몸으로 느끼고, 철학과 문학의 바람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항해의 힘듦과 두려움을 실감하고 그 두려움을 극복한다면 다음에 다시 모험을 떠날 용기가 생길 것이다.




제1 부 극한의 경험, 진리의 문을 열다. 1865~2000년


전투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려는 참전용사들은 종종 전투를 현현(Epiphany)으로 묘사한다. 그 순간 시간의 흐름이 바뀌어 느려지거나 완전히 멈추고, 낯선 감각이 떠오르며, 익숙한 감각은 변화한다. 의식이 그 순간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 전투병은 전에 없이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물리학 법칙이 왜곡되고 변화되며, 전투병들은 그때까지 알지 못하던 층의 현실과 대면한다.


에른스트 윙거는 <내적 체험으로의 전투 (1922년)에서 전투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다시 말해 황홀경이다. 성자와 위대한 시인의 조건, 위대한 사랑의 조건이 위대한 용기를 지닌 사람에게도 허락된다. 사내다운 열정이 차고 넘쳐, 혈관을 솟구쳐 흐르듯 끓어 오른 피가 심장을 통과하며 부글부글 달아오를 지경이다. 그 어떤 도취도 능가하는 흥분이며 모든 구속을 끊는 해방이다. 그때 개인은 격렬하게 몰아치는 폭풍 같고, 요동치는 바다, 으르렁거리는 천둥 같다. 그는 이미 모든 것으로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미군 숀 넬슨은 모가디슈(1993년) 전투 경험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가 느낀 기분을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현현과 비슷했다. 죽음이 가까이 있었지만, 전에는 그토록 완전하게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낀 적이 없다. 살아오는 동안 죽음이 스치고 지나간 것을 느낀 찰나의 순간이 있었다. 급하게 방향을 전환하는 과속 차량과 하마터면 정면으로 충돌할 뻔한 순간처럼 말이다. 이날 그는 내내 그런 느낌이었다. 세 시간 남짓 매 순간 죽음이 바로 눈앞에서 숨을 쉬는 느낌이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의식이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였다. 그 시간 도로에 있던 그는 숀 넬리가 아니었다. 넓은 세상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졌고, 공과금 걱정도 감정적 구속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그저 10억 분의 1초 단위로 매 순간을 살아내는 인간이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한숨 한숨 들이쉬는 인간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현의 순간에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크게 다르다. 무감각할 정도로 일상생활의 단조로운 평시에는 모호하게 숨어 있던 것들이 드러난다.


밀롱가에서 아주 드물게 느꼈던 구름 위에 붕 떠오른 것 같은 황홀감은 현현의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아빠의 흔적들과 체취가 그대로 남아있는 아빠집에서 느꼈던 덧없음과 공허함은 현현의 느낌이었을까. 무더운 여름 저녁에 Chartreuse 산에 올라 아무도 없고 밤안개가 드리운 스산한 적막함 속에서 인간 세상과 분리되어 다른 차원의 세계에 있는 듯한 존재감은 현현이었을까.


2장 전쟁을 해석하는 두 개의 시선


관념론 vs 유물론


나는 한편으로는 문화적 기대가 인간의 경험을 형성하는 데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문화는 아주 복잡하다. 경험 때문에 한 세트의 문화적 기대가 깨어진다 해도 인간이 문화에 의해 형성되지 않은 순수한 경험의 태곳적 영역으로 탈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와 경쟁하는 다른 세트의 문화적 기대들이 기회를 노리며 항상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이미 선택한 문화적 기대 세트가 깨지면 자신이 당면한 경험에 더 적합한 또 다른 세트를 재빨리 채택한다. 사실 인간은 당혹스러운 극한의 경험에 직면하는 바로 그 순간 자신의 문화적 암호에 훨씬 더 완강히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폭풍에 휩쓸린 선원이 죽기 살기로 나침반에 매달리는 것과 같다.


제2부 전쟁, 정신이 지배하다. 1450~1740년


4장 전쟁 회고록, 전쟁 경험을 생략하다.


중세 후기와 근대 초기에 수도원이 상이군인 수용시설로 자주 활용되었고, 적어도 프랑스 왕은 1561년부터 상이군인을 평수사로 받아들이도록 수도원에 명령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 전쟁 중의 부상이 군인을 종교적 은둔자로 변화시킨 직접적인 원인이며, 은둔자는 그럴듯한 허울에 불과했다. 군인들은 강제로 맡겨진 새로운 직업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제도를 약용해 많은 돈을 받고 수도원 평수사 자리를 팔아넘긴 병사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충분한 설명이 될 것이다.


- 그랬구나, Chartreuse 수도원도 예외는 아니었겠지? 유럽 수도원에 대한 역사도 알고 싶어졌다. 밖에서는 잘 안 보이는 그들만의 세계를. 세계사는 알면 알수록 재밌고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준다.


근대 초기 회고록 저자들은 자신이 몸으로 본 목격자로 묘사하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몸으로 목격했다는 귄위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저자가 전쟁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심오하게 변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근대 초기 전쟁 회고록들이 수많은 전투를 묘사하며 많은 경우 장황하고 상세하게 전투를 설명하지만 숀 넬슨이 모가디슈에서 경험한 전투 현현에 비견할 만한 것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저자들은 자기 평생에서 가장 끔찍하거나 가장 흥분된 순간을 묘사하겠지만, 일상적인 현실은 평소와 다름없이 계속 흘러간다. 시간도 멈추지 않고, 물리적 현실의 법칙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며, 전투원들이 비범한 감각과 감정을 얻거나 고양된 각성 상태에 도달했다는 보고도 없다.


마카브르는 민간인의 주제였으며, 마카브르 계시도 전투원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예를 들어 트롬프 제독의 전리품과 백골, 반쯤 탄 양초를 나란히 배치한 피터르 스텐비크의 그림 <트럼프 제독의 죽음에 관한 알레고리>(1653년?)를 전쟁의 공포나 전쟁의 계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면 안 된다. 오히려, 세속적인 성공의 상징을 현세의 무의미함과 덧없음을 연상시키는 상징과 나란히 배치하는 것이 당시 아주 광범위하게 퍼진 미술 전통의 일부였다. 마카브르가 전쟁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은 죽음의 무도에서 훨씬 더 분명해진다. 마카브르의 목적은 죽음을 상기 시키고 덧없는 현세에서 떼어내고 구원의 안식을 찾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마카브르도 부활과 구원의 진리를 가르칠 수는 없었다. 살았건 죽었건 인간의 육체에서는 구원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5장 정신, 육체를 지배하다.


데카르트 철학의 탄생


정신과 육체라는 근대적인 이분법이 영혼과 육체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을 완전히 대체했지만, 종속적인 육체의 지위는 변하지 않았다. 육체/마음/영혼의 삼분법을 받아들이건, 단순하게 육체/정신의 이분법을 받아들이건, 혹은 새로운 데카르트의 육체/정신의 이분법을 받아들이건, 이 세 가지 분류법에서 사상과 이상을 구성하는 것은 육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분석의 궁극적인 토대는 신이라는 개념처럼 모든 육체적 감각 자료와 무관한 본유관념이었다. 따라서 사고 과정은 결국 감각 자료와 무관한 것이었다.


전쟁 문화와 일반 문화가 육체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매장 방식이다. 민간 그리스도교 문화에서는 육체의 부활을 믿기에 죽은 육신의 매장이 중요한 종교행위였다. 가급적 축성된 대지에서 정교한 예식에 따라 매장이 거행되었다. 그에 반해 근대 초기 군인들은 비물질적인 이름과 명예를 영원히 남기려는 욕구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21세기 한국인들이 매장보다 화장을 더 많이 하는 추세는 어떤 역사적 배경일까. 나도 아이들에게 나 죽으면 매장하지 말고 화장해서 강가에 뿌리라고 했다.(처음에는 우주에 뿌려달라고 했는데 애들이 난색을 표하며 "그건 돈이 정말 많이 든다"고 해서 취소하였음.) 번거롭고 돈 많이 드는 매장. 다 의미 없는 짓거리이지. 장의사들 지갑만 두둑하게 해 주고. 매년 관리하는 수고와 비용도 만만치 않다. 마음 속에 있는 게 중요하지 무덤은 짐만 된다. 무덤 찾아간다고 생각이 더 잘나는 것도 아니.


전쟁은 명예로운 삶의 길

명예로운 남자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그의 명예를 의심하는 것이었고,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새로운 흉터뿐이었다. 근대 초기에 가장 흔한 결투 사유가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이었다. - 명예는 허울 아닐까. 다른 말로 남들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 진리 추구와는 무관해 보인다. 명예를 연상하면 갑갑하고 자유가 억압받는 기분이 든다.


근대 초기 회고록은 개인이 군에 지공한 봉사와 지급받은 보상의 모음집이었다. 전투원의 자서전을 구상하거나 전투원의 전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기여한 내용과 지급받은 보상을 차례차례 상기하는 것이지, 봉사와 보상을 모두 모아 유기적인 내적 변화 과정이나 경험적 계시 과정으로 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은 집단적 수단

<모병관>에서 플룸 대위는 자신의 모병 원칙을 이렇게 설명한다. "아는 것이 가장 적은 사람이 가장 잘 복종한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불변의 법칙이다" 바람직한 사병은 전쟁기계의 톱니바퀴와 같은 것이어서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집단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자신과 개인적인 이익을 희생했다.


장교들은 전쟁 경험담을 쓸 때 자연스레 일반 사병을 그저 육체로 묘사한다. 사병들의 주 임무는 지휘하는 장군의 우월한 정신적 자질을 동작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병사들의 내적 경험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18세기 중반에도 일반 사병이 회고록을 쓰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전쟁 문화가 일반 사병들에게 사고하지 않는 육체와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가르쳤기 때문이다. 회고록 어디에도 내면의 느낌에 관해서는 분석하지 않는다.


정신과 육체의 내적 전투

앞으로 살펴볼 텐데 근대 후기 들어 육체가 반란을 일으키고 정신의 통제가 와해됨으로써 힘의 균형이 바뀌었으며, 군인들에게 군사적 이상에서 독립된(하지만 새로운 미학적 이상과 인식론적 이상을 신뢰하는) 경험적 권위가 부여되었다. 전쟁은 경험적인 계시 과정을 통해 육체가 정신에게 자아와 세계의 참된 모습을 가르치는 성장 소설(Bildungsroman)이 되었다.


제3부 전쟁, 육체를 깨우다 1740~1865년


이마누엘 칸트의 숭고 등 복잡한 철학 개념들을 다룰 것이다. 지금까지 철학자와 학자들이 이런 개념들을 명확히 밝히고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려고 강물만큼 많은 잉크를 소비했지만, 이들의 노력으로 혼란만 가중된 경우가 많았다. 이 개념들과 관련해 될 수 있는 한 군인의 입장에서 접근할 것이다.


6장 육체, 억압하는 정신에 반기를 들다


사고하기 시작한 육체

라메트리의 중심 사상은 물질이 사고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라메트리는 물질세계에 생기를 불어넣은 사람으로서 낭만주의의 선구자이자 개척자이다. <인간 기계론>에서 라메트리는 인간 육체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영혼이나 의지는 통치권과 거리가 아주 멀다고 말한다. 육체 속에는 생각하고 기관에 명령을 하달하는 통치권을 지닌 영혼이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육체가 살아 있는 동안 육체에 생기를 불어넣고 육체에 지시를 내리는 것은 육체의 조직이다.


감수성 문화의 도래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홉스까지 세기마다 이런저런 학파들이 등장해 정신의 모든 것은 감각에서 유래한다는 말을 격언처럼 되풀이했다. 하지만 앞선 세대의 철학자들이 논리적 삼단논법을 토대로 그런 말을 한 반면, 18세기 감각주의자들은 근대 생리학의 새로운 연구 결과들을 사용했다. 18세기 감각주의 철학이 이전의 감각주의 철학과 다른 점 중에 중요한 한 가지는, 18세 감각주의는 개울처럼 좁은 학문이 아니라 강처럼 드넓은 문화였다는 점이다. 18세기 후반의 '감수성 숭배'가 유럽과 아메리키 대륙을 휩쓸며 감각주의 사상을 대중화했고, 오늘날까지 서양의 '감수성'을 형성하고 있다. 지금도 흔히 서양인들은 실제 'I think(나는 생각한다)'라는 의미로 'I feel(나는 느낀다.)'을 사용한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느낌이 전부다."라고 주장하며 로런스 스턴은 <감상적인 여행>(1768년>에서 감수성을 신에 비유했다. 장 자크 루소는 새로운 감성 성서인 <에밀>에서 "이성이 우리를 너무 자주 기만하니, 우리가 이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라고 요약했다.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은 이러한 18세기의 유산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종교, 자연 신비주의, 자연주의, 그 외의 다른 이상 등 옹호하는 대상에 상관없이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느낌을 바탕으로 삼았다.


하지만 감수성 숭배가 찬양한 것은 예민함이지 나약함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예민함은 힘이 필요했고, 이 힘은 점점 더 육체적인 힘을 의미했다. 예민한 사람의 이상적인 신경계는 예민한 동시에 강했다. 따라서 세상을 온전하게 경험할 수 있었고, 세상에 압도되지 않았다. 예민하지만 나약한 신경계를 지닌 사람들은 무감각한 야수와 다름없이 세상에 압도되어 심각한 궁지에 몰렸다. - 아주 심오하면서 Key Point이다. 힘이 있는 예민함. 느낌에 나약하게 끌려다니면서 사기당하고 인생 낭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도 작년까지 자주 그랬었고.


감수성X경험 = 지식

지식을 얻고 지혜를 더하려는 사람은 감수성과 함께 다양한 경험도 필요했다. 따라서 감각주의자가 지식을 탐구할 때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가 감수성을 예민하게 연마하는 것과 새로운 경험을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새로운 맛과 풍경, 냄새,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인간의 시야를 넓히고 지혜를 확장하는 열쇠였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새롭고 흥미진진하고 '이국적인' 감각을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감정의 더 넓은 범위를 경험하고 표현하도록 자신을 격려하고 해방시켰다.


헨리 메킨지는 <느낌의 인간>(1769년)에서 고통의 경험에서 얻는 지혜를 강조하며 이렇게 기록했다. "왜 우리는 더 강렬한 감정의 효과를 관찰하며 즐거워하는가? 우리 모두가 이에 관한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가장 진정한 철학자는 아마 타이번(런던의 사형집행장)의 구경꾼들 속에 있을 것이다" 여행도 새로운 경험을 쌓는 수단으로 환영받았고, 그에 따라 특별한 교육 수단이 되었다. - 내가 아이들과 세계 여행을 같이 한 이유이기도 하다.


볼테르의 <캉디드 Candide>에서 캉디드와 퀴네공드의 첫 번째 성적 일탈도 비슷하게 철학적 시험으로 설명된다. -양다리 연애도 철학적 시험이 될 수 있을까?


감수성과 경험이 지식을 만들다.

1. 체험 Erlebnis; 무언가 감지하고 느끼는 살아 있는 순간.

19세기 역사학자들은 과거 인류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체험의 이상을 수단으로 사용했다. 특히 빌헬름 딜타이는 체험을 인간의 현실을 이해하려는 모든 시도와 역사적 이성의 토대로 삼았다. 특히 딜타이는 사고나 이성은 삶의 핵심이 아니며 우리가 삶이라 부르는 것의 핵심은 본능과 정념, 감정, 자유의지라고 역설했다.

2. 성장 Bildung;

경험에 적절히 대응하는 사람은 생생한 경험이 쌓여 성장한다. - 내 경우도 그랬다. 경험이 나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 특히 큰 고통의 경험이.

성장은 경험을 이해하고 경험에서 무언가 깨달아 무지에서 계몽으로 나아가는 내적인 진화 과정을 의미한다. 아주 다양한 지적, 감정적, 육체적 경험을 통해 인간이 자기를 인식하고 세계를 인식하는 잠재력을 온전히 개발하는 것이 삶의 최고 목표가 되었으며, 그 개발 과정, 곧 경험이 이어지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근대 후기 전기의 거대서사가 되었다.


성장의 이상화에 일조한 빌헴름 폰 훔볼트는 가능한 한 많은 삶의 경험을 지혜로 증류하는 것이 인간 삶의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는 또 삶의 절정은 오직 한 번, 인간의 모든 느낌을 섭렵했을 때라고 말했으며, 죽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세상을 파악했고 내 인간성의 일부로 삼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성취한 사람, 더 높은 의미에서 진정한 삶을 산 사람이라고 기록했다.


주목할 점은 이런 과제와 성장 이야기가 계몽주의의 전통적 이야기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계몽주의의 전통적인 이야기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내면을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보기 위해 세상에서 물러나 경험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엄격한 계율이 그리스도교와 불교 수도승의 삶을 통제하며, 그들이 겪을 '경험'의 종류와 수를 의도적으로 제한한다. 근대의 학자와 과학자들은 소독한 도서관과 실험실에 요새를 쌓고, 경험이 아닌 학습과 실험을 통해 진리를 탐구한다. 수도원의 계율처럼 도서관과 실험실과 대학의 윤리적, 전문적 계율이 학자들에게 그 울타리 내에서 낭만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 (성장 소설에서 성관계는 가장 큰 깨우침을 주는 중요한 경험이지만, 수도승에게 성관계는 금기이며, 엄격한 학문적 맥락에서 성관계가 '비전문적'이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성장시대에 불행하고 가장 큰 비웃음을 산 주인공은 이런저런 이유에서 아주 제한적인 범위의 경험만 허락된 사람들(예를 들어 수도승)이거나, 경험이 다가와도 감지하지 못하고 따라서 경험에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거친 사람들이었다.


육체의 감각이 이끌어낸 낭만적 숭고

흔히들 낭만주의는 18세기 계몽주의의 과도한 합리화에 대한 반동이라고 생각한다. 계몽주의가 감수성 문화를 무시하고, 인간의 이성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무엇이든 성취하 수 있다고 믿는 순수한 이성 숭배라고 설명하는 것이 계몽주의에 대한 전통적 해설이다. 전통적 해설에 따르면 낭만주의는 계몽주의의 이런 생각에 대한 반란이었고, 이성의 한계를 강조하고 선전한 것이었다. 하지만 칼로 무 베듯 명쾌하게 규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감수성 문화라는 형태로 이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계몽주의 자체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낭만주의는 이 감수성의 개념을 이어받아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시켰을 뿐이다. 따라서 낭만주의를 계몽주의에 대한 반란이라기보다는 계몽주의의 파생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보았듯 감수성 문화가 주장한 공식은 이것이다.


지식 = 감수성X경험


하지만 이 공식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진정으로' 경험하지 못하거나, 경험이 문화적 선입견에 '오염'된다면, 그 결과는 오염되고 질 낮은 지식일 것이다. 많은 감각주의 철학자가 깨어나는 조각상의 우화를 이용해 감각적 계몽 과정을 설명했다. 대리석 조각상이 생명을 얻고 감각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우화다. 이 조각상은 기억도 없고 문화적 영향도 받지 않았기에 그 감각은 순수한 경험이며, 조각상이 얻는 모든 지식도 마찬가지로 순수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현실의 삶에서는 그런 백지상태를 찾을 수 없었다.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이 강조하듯, 살아 있는 경험의 매 순간은 문화적으로 구성되며, 물리적 현실과 함께 문화적 선입견을 반영한다. - 아주 중요한 포인트이다. 내 경험과 그에 기반한 나의 판단은 문화적으로 오염되어 있음을 늘 지각해야 한다.


7장 생각하는 사병의 탄생

전쟁기계에서 생각하는 군인으로 - 생각하는 군인들이 있었기에 내란을 저지하고 주가가 오를 수 있었다. 가면 갈수록 군인들은 철학자가 되어야 하고, 전투는 로봇이 대신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감수성을 받아들인 군대의 교육 혁명

군사교육의 혁명

문화적 차원에서 볼 때, 군대에서 포섭이 강압을 대치한 것은 감수성 문화의 핵심인 전반적인 교육 혁명과 관련이 있다. 감수성 문화는 모든 지식이 감각적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강조함으로써 새롭고 놀라운 교육의 지평을 열었다. 타고난 관념이나 성향, 지적 능력이란 없었다. 정신 속에 있는 모든 것은 감각에서 온 것이고, 지나간 경험의 산물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 감각주의 신조가 수많은 교육 운동의 주춧돌이 되었다. 어린이와 농부, 노동자, 범죄자, 부랑자, 정신병자, 매춘부 등 거의 모든 계층에서 '교육'하고 '개혁'하고 '완성'하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 요즘 시대에도 강압보다 포섭을 잘해야 한다. 직원들에게도 자녀들에게도. 그리고 자녀들이 수준 낮은 사상과 종교에 포섭당하지 않도록 해야겠지. 잘못 헤까닥 해서 평생 돌머리 꼭두각시로 사는 꼴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1832년)에서 전쟁을 지배하는 것은 심리적 요인이며, 전쟁은 연병장의 수학적 정밀성으로 정리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군대의 정신이 훈련 숙달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18세기말 프랑스 혁명군의 경보명 전문가인 르 쿠튀리에 장군은 글이나 말로 전달하는 현명한 조언 몇 마디가 기술적으로 계획하고 설명하는 책략보다 더 소중하다고 설명했다. 지능으로 규칙을 대체하라는 르 쿠튀리에의 요구는 교육 혁명 전체의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다. - 아.. 갈수록 세세한 규칙이 직장에서 계속해서 만들어지는지 환장하겠다. 그냥 좀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니? 리더면 리더답게 현명한 조언 몇 마디만 하고 입 다무세요 제발. 갈수록 숨이 막힌다고. 이런 게 싫어서 하루라도 빨리 퇴사하기 위해 오늘도 죽어라 공부한다.


밤이 깊어가고 써야 될 글은 아직도 많이 남아서 여기서 1편을 마무리하고 2편은 내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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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