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상과 무관심한 감상
표지 그림은 아래 차이콥스키 <1812 서곡> 영상에서 따온 것으로 모스크바 퇴각의 참혹함을 묘사
지난 1편 글을 이어쓰기에 앞서 미학수업에서 배운 바움가르텐(1714~1762)의 표상(Vorstellung, Representation)과 칸트(1724~1804) 미학의 무관심성에 대해 적어본다.
표상은 "마치 ~처럼 보인다, 느낀다, 들린다"이고, 느끼는 주체가 반드시 '나'이다. 개념을 갖고 놀 수 있어야 하고, 표상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것은 책상이다"라는 생각을 "이것은 책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로 바꾸는 연습을 해본다.
1.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가?
2. 성숙한 취미(Taste)는 작품을 일체의 관심 없이 판단(평가)하게 한다.(판단력 비판(1970))
3. 칸트가 음악에서 개념에 관심 없는 판단(평가)이 어렵다고 본 이유는?
사심 없는 예술 감상: Woody Allen의 영화 <to Rome with love(2012)> 가 좋은 예.
칸트의 무관심한 감상이 어떤 것인지를 잘 배울 수 있는 훌륭한 영화다. 우디 앨런의 사돈 남자의 노래실력과 그보다는 체면을 중시하는 사돈 식구들의 반응, 그리고 샤워부스에서 샤워하면서 노래 부르는 것을 보는 관객들의 무관심한 감상 능력의 대조. 관객들은 겉모습보다 노래 자체에 집중했기에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했다.
시돈 식구들처럼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으면 뛰어난 노래 실력도 전혀 안 보인다. 그러므로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무관심 상태가 되어야 한다.
히든싱어에서 이문세의 '깊은 밤을 날아서'
- 다섯 명의 가수가 몸을 안보여주고 노래만 들려주고서 진짜 이문세를 고르는 것. 이는 다른 표상은 다 제거한 상태에서 목소리에만 집중한 케이스. 이문세 발성의 특징이 아니다 싶은 사람들을 제하니 4번만 남았다. 그런데 수강생 중에서 맞춘 사람은 나와 또 다른 분 한 명뿐이었다. 100%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4번이라고 말한 사람은 나였고. 내 감각은 일반인들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복면가왕(MBC)의 어우동과 파리넬리
- 목소리만 들려준 히든싱어와는 달리 어우동과 파리넬리로 얼굴을 포함한 전신을 가린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게임. 변장한 어우동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는데 사람들은 여자 어우동 복장과 여성스러운 발성과 여성스러운 춤사위로 예외 없이 여자로 착각했고 얼굴이 공개되는 순간 다들 말문이 막혔다. 어우동이 떨어진 이유는 여자의 노래를 모방하고 자기 개성을 맘껏 드러내지 못해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한 것 같다는 선생님의 의견이 있었다.
틀에 박힌 사고를 벗어나서 느끼는 상태에 머무는 연습을 수시로 해본다.
뭔가 규정되어 있는 것(또는 선입견)에 갇혀 있으면 있는 그대로의 것을 감상할 수 없다.
나를 규정하는 것들을 벗어나서, 나를 규정하지 않음으로 나의 무한한 확장이 가능해진다.
차이콥스키의 1812 서곡 감상의 두 갈래 길
1. 역사를 알기 전 아무런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음악에 집중해서 들어보기
- 음악 웅장하고 멋지다. 역시 차이콥스키는 대단한 작곡가야.
2. 모스크바 퇴각 참혹함의 표상을 상상하며 듣기
- 먼저 쳐들어온 것은 나폴레옹이었지만 퇴각할 때의 일반 사병들이 겪는 고통의 참혹함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런데 음악은 러시아인의 입장을 대변한다. 어느 편에서 음악을 들을 것인가에 따라 음악 감상이 아주 기쁠 수도 있고 또는 아주 괴로울 수도 있다. 나는 1812 서곡의 작곡의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된 이상 아무런 사심 없이 무관삼하게 음악을 감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https://youtu.be/JX2jTVttUis?si=qsgGhMXYXOdx3WFw
「극한의 경험」 제4부 육체의 눈으로 전쟁을 보다 (1740~1865년)
낭만주의 전쟁 회고록의 특징
감수성 문화가 군사 영역에 흡수되자, 새로운 전쟁 해석이 구체회되기 시작했다. 전쟁은 이제 외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나 명예로운 삶의 길이 아니었다. 전쟁은 다름 아닌 깊은 진리를 드러내고 근본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숭고한 경험이었다.
풍부한 감각 묘사와 신경학 언어의 일상화
18세기에 용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다. 감각주의적 해석은 용기를 정신보다 신경계에 속하는 육체적 힘으로 이해했다.
자연에 대한 낭만적 묘사
근대 초기의 전쟁 회고록을 보면 묘사된 사건들이 텅 빈 환경에서 발생했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회고록 저자들이 전쟁의 자연환경을 설명하는 데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낭만적 계획에서 자연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자연환경에서 기인하는 감각과 경험이 개인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민족 전체의 성격과 대장정의 결과까지 결정했기 때문이다. '자연으로 들어가는 것'의 지혜와 통찰을 획득하고, 개인의 내적 본질과 집단 정체성을 연결하는 지극히 중요한 방법이었다.
9장 전쟁의 핵심 경험
전쟁 문화의 거대담론을 형성한 경험들
낭만주의 전쟁 회고록은 새로운 언어와 장면, 이미지와 더불어 새로운 관점으로 전쟁의 시건들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군사적 영향이나 명예가 전쟁의 사건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었다. 그 대신 사건은 '경험'이 되었고, 개인의 성장 과정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사건을 판단하게 되었고, 자신들이 접한 새로운 감각과 감정, 그리고 이 새로운 감각과 감정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에 주목했다.
전투
낭만주의 회고록은 당연히 전투도 현현으로 묘사했다. 지휘관들도 전투를 체스 게임이 아닌 감정적 현현으로 묘사했다.
부상과 죽을 고비
죽음은 모든 숭고한 경험의 기초였다. 전투원에게 닥친 죽을 고비는 당연히 훨씬 더 새로운 감각과 경험이었고, 중요한 계시로 이어질 수 있었다.
전투 후
전투 전날 밤이 극한의 감각과 감정으로 충만한 현현 경험이듯 전투 후 전장을 둘러보는 것도 전투원들에게는 더없이 처참한 장면을 접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핵심 경험이 되었다. 전투 후 전장 장면에 특히 절절하게 어울리는 개념이 실러의 '격정적 숭고' 개념이다. 격정적 숭고 경험에서 인간은 안전하게 떨어진 곳에서 숭고한 현상을 접하며, 연민과 도덕적 자유를 실행할 기회를 얻는다.
10장 전쟁 경험의 거대서사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종교에서 위안을 찾다.
시심(詩心)
과도한 자극이 초래한 무감각화
비록 지식이 감각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경험의 강도와 지식 습득의 깊이가 직접적으로 상응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이 예민하면 할수록 지식을 얻기 위한 외적 자극의 필요성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주장이 많았다. 극히 예민한 사람은 아주 평범한 일상 경험에 주목함으로써 자신과 세상에 관한 심오한 지식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극한의 경험이 유용하게 적용되는 경우는 자기 감각에 주목할 마음이 없어 강력한 주의 촉구가 필요한 사람들, 또는 미묘한 자극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감수성이 무딘 사람들뿐이다.
게디가 신경계가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해도 인간은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는 법이다. 감수성이라는 것은 대부분 인간의 신경계에 근거하므로, 감수성도 필연적으로 유한하다. 아무리 강하다 해도 신경은 물질적인 섬유조직이므로 과도한 압력을 받으면 끊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과도하게 강력한 감각 자극의 공격을 받으면, 계시보다는 무감각이라는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인간이 과도한 자극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의 감수성을 축소하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무감각화 경험담은 감각주의 기본 공식을 변형한 것에 불과했다. 6장에서 이야기했듯, 감각주의의 기본 공식은 이것이다.
감수성X경험 = 지식
긍정적 계시 경험담과 환멸 경험담은 이 공식을 고지식하게 이해했다. 감수성은 거의 변하지 않는 상수로, 경험은 변수로, 지식은 당연한 결과로 이해했다. 따라서 '경험'이 커지면, 곧 더 극심하고 자극적인 경험을 겪으면 반드시 지식이 증가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무감각화 경험담은 조금 더 섬세하게 접근했다. 감수성과 지식이 모두 변수라고 지적했다. 인간이 극한의 경험에 대응할 수단, 곧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인간은 경험의 양이 증가할 때 감수성 축소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감각화 관점에서 생각하는 공식은 이렇다.
감수성= 지식/경험
이 경우 '경험'이 증가하면, 곧 더 극심하고 자극적인 경험을 겪으면 감수성이 감소하는 결과가 나올 뿐이다. 버크는 숭고론에서 가장 유익한 숭고 경험은 제한된 분량의 위험만 내포한다고 주장했다. 버크는 숭고한 경험은 개인의 감각과 신경계의 힘에 달려 있으므로 목격자의 안전을 보장하도록 한도가 정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으면 목격자가 완화되지 않은 공포만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마쳤을 때 더 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약해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밀착해 압박하는 위험이나 고통은 그 어떤 기쁨도 주지 못하고, 그저 끔찍하다. 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지키고 일정한 완화 과정을 거치면, 위험이나 고통은 기쁨일 수 있으며, 실제 기쁨이 된다."
이외 비슷하게 칸트도 자연 속의 무서운 대상과 관련해 우리가 있는 곳이 안전하다면 그 대상의 모습은 무서운 만큼 더욱더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실러의 설명은 대단히 명료하고 솔직하다.
무서운 것을 숭고한 것으로 경험하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면, 내적인 정신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 극심한 공포는 모든 정신의 자유를 넘어선다. 공포는 고콩과 폭력의 상태다. 우리는 오직 우리 내면의 움직임에 대한 느낌을 통해 어떤 것을 멀리 떨어져서 숙고할 때만 숭고한 것을 즐길 수 있다. 우리가 실제 위험에 빠져 적대적인 자연력의 객체가 되면 우리의 미학적 판단은 멈춘다.
엄청난 위험은 가장 심오한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잠재적인 숭고한 경험이다. 다만 거리를 두고 현명하게 위험을 경험할 수 있는 '고양된 본성'을 미리 갖춘 인간에게만 해당한다. 인간 대다수는 엄청난 위험에 직면하면 오직 완화되지 않는 공포만을 느낀다.
이와 같은 낭만주의 사상의 저변에는 전쟁이 전투원을 계몽하는 대신 공포에 빠트리고 무감각하게 만들 수 있는 과다자극의 경험이라고 보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다. 전투원이 전쟁에서 얻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더 강화된 방어기제와 더 약화된 감수성이다. 거친 사람은 전쟁을 벗어나며 전보다 더 거칠어지기 쉽고, 예민한 사람은 '다 타버린 burnt out' 채로 전쟁을 벗어날 가능성이 많다. (요즘 말로 '트라우마를 안고'나오는 것이다.)
적어도 예민한 사람에게는 과도한 자극의 세례보다는 충분히 숙고할 여지를 두고 제한된 자극을 주는 것이 지혜에 이르는 훨씬 더 나은 길이다.
감각주의 공식에 누락된 변수
무감각 사례는 몸으로 본 목격의 권위를 침식했고, 정치적으로 군인들의 세력을 축소시키는 데 유용했다.
무감각화 논리에 따르면 학대를 받으며 자란 아이가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가 될 가능성이 더욱 크다. 육체적으로 경험한 코통이 크건 작건, 참전용사가 타인에게 고통을 가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 고콩이 그를 무감각하게 만들고, 자신이 가하는 고콩에도 둔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계시를 낳는다는 기대와 전쟁이 무감각을 유발한다는 기대는 동일한 기본 가정을 공유했고, '감수성X경험 = 지식'이라는 기본 공식을 공유했다. 이 두 기대의 유사성을 파악하고, 전쟁 감수성 문화의 객관적 한계를 찾아내는 최선의 방법은 감각주의 공식을 완전히 무너트린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공식이 수용하지 못하는 한 가지 경우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 극한의 경험을 겪고 자신의 감수성을 온전히 지키면서도 지식을 획득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감각주의 공식 어딘가에 누락된 변수가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나의 생각과 판단뿐만 아니라 내 감각과 감정도 내가 있는 시공간의 문화적 배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유발 하라리의 전쟁문화 변천사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근대 후기 이후로 개인의 감각과 감정을 맘껏 느끼고 표현하고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AI 시대에는 과연 그런 솔직함이 나의 사회적 지위와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감각주의 공식에 누락된 변수가 무엇인지 궁금하고 그러려면 유발 하라리의 아직 안 읽어본 책 두 권도 마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 1회 듣고 있는 미학수업과 하라리의 전쟁문화사 이야기가 부지불식 간에 연결이 되면서 상호 보완적으로 도움이 된다. 9월부터 시작할 여러 다른 수업도 궁극에는 서로 간에 연결되어 나의 인문학 소양 습득에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