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스키
곤지암 리조트는 LG 계열사에서 만들었다. 수도권에서 가깝고 스키 리프트 비용이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한 번도 안 가본 곳. 하지만 설질 전문관리팀이 따로 있을 정도로 강원도 권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설질을 자랑하며, 사람들이 너무 몰리지 않게 정원제로 운영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가 얼마 전에 막내딸이 스키에 재미를 붙여서 이번 겨울 안 가본 스키장을 검색하면서 곤지암에도 가보고 싶다고 말을 꺼내서 가보게 되었다.
리프트 가격을 알아보니 시간제인데 2시간, 4, 6시간 권이 있고 2시간 가격이 제일 비싸고 거기에 조금 보태면 6시간권이다. 신한카드로 25% 할인이 되고 오전 9시 이전에 리프트 탑승을 하면 시즌 중에 40% 할인 1회를 해주는 쿠폰이 지급된다는 안내를 보니 음.. 이 정도 가격이면 한 번 가볼 만하겠다 싶어서 6시간권으로 예매를 하였다. 강원도 스키장 가는 거리와 시간의 반이라 리프트 가격이 좀 비싸도 그럴만한 값어치가 있다. 신한카드는 주거래 은행도 아니고 평소에 나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없지만 이런 스키 할인을 주는 카드라 없앨 수가 없다. 아 맞다! 나와 아이들의 알뜰폰 할인 요금제도 신한카드 덕을 보고 있지.
그리하여 아직 학기 중인 애 둘은 놔두고 시간 되는 큰 아들과 막내딸과 갔다. 오전 7시 40분경 도착하여 처음 보는 거대한 슬로프의 전경이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하였다. 딱 봐도 폭넓은 슬로프, 이른 아침부터 환하게 조명이 켜있는 모습을 보니 어서 슬로프로 다가가고 싶어졌다.
후아... 스키를 신기 전에 슬로프를 보는데 이런 설질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전부 인공설이지만 다른 스키장의 감자니, 설탕이니 하는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보였다. 완벽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걸까. 곤지암 스키장은 제설기에 무얼 넣었길래 입자가 이렇게 곱고 뭉치지 않을까. 큰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삿포로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스키장을 작년에 가봤지만 설질은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리프트 가격은 한국의 거의 두 배, 먹거리도 기절초풍할 가격이었다.
평일이지만 사람이 정말 없다. 리프트 대기줄이 없어서 내려오자마자 바로 탈 수 있다. 리프트 가격이 상대적으로 다른 스키장보다 비싸서인가, 중국인 스키 관광객을 대규모로 유치한다는 엘리시안, 용평에도 중국인들이 꽤 보이지만 곤지암 스키장은 외국인들이 한 명도 안 보인다. 서양인들조차도. 초급자들도 거의 안 보인다.
굉장히 안전하다는 것을 느낀다. 스키장을 무조건 평일만 고집하는 것은 사람 많은 주말에 혹시라도 아이들이 다칠까 봐 걱정이 되서이다. 그나마 메인 리프트 한 기는 시험 운전만 잠깐 돌려보더니 멈춘다. 굳이 그거를 안 돌려도 그 옆의 리프트 하나만으로도 대기가 거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큰 아들은 신났다. 이렇게 좋은 설질에 광활함과 한적함에 카빙으로 엉덩이가 설면에 닿을 정도로 눌러가며 맘 놓고 고속 질주한다. 상대적으로 운동 신경이 많이 떨어지는 딸도 용평에서보다 훨씬 편하게 탄다. 아무리 가르쳐도 몸턴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오늘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니 드디어 터득하고 재밌다며 내려온다. 이제야 알겠다며. 드디어 A자 벗어났군. 상체를 고정시키고 하체만 돌리며 내려오는 모습에 '엄지 척'을 해줬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내려온다.
두어 시간 열심히 타보니 스키 타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너무 단조롭다. 슬로프가 몇 개 없고 타는 리프트는 계속 똑같고, 스키 기술을 연마하는 차원에서는 최고의 슬로프지만 용평이나 하이원처럼 관광하는 재미는 없다. 잠시 쉴 겸 스키하우스의 카페테리아에서 아들이 14000원짜리 국밥을 시켜봤는데 이게 어떻게 14000원인지 한동안 건더기가 어떤 것들이 들어있는지 젓가락질해본다. 어딘가를 다녀오더니 나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아빠! 여기 공깃밥이 2000원이야, 그런데 반찬이 세가지야. 멸치 호두 볶음과 깍두기, 두 가지 콩조림. 다음에 오면 공깃밥만 시켜 반찬이랑 먹으면 될 것 같아." 그래? 나는 바로 공깃밥만 하나 추가로 시켜서 아점 식사를 푸짐하게? 마쳤다. 아들이 쉬는 사이 딸과 슬로프 정상의 카페테리아에 가봤는데 라면 하나에 7000원이다. 자판기에서 라면을 가져오고 열어보더니 딸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이 가격 실화야?"라며 황당해하였다. 하지만 맛은 먹을 만했다고. 다음에 40% 할인 쿠폰 받아서 다시 올 때에는 먹거리 준비를 잘 해와야겠다. 물만 부으면 뜨거워지는 산악식량을 가져오던지, 아니면 사전에 김밥 집을 알아보던지, 아니면 샌드위치를 준비해 와서 차에서 먹던지.
식당은 별로였지만 시간이 지나도 쉽게 망가지지 않는 내구성 좋은 슬로프에 너무도 만족했고 재미나게 타서 즐거웠던 반나절이 되었다.
다음 주는 용평에 하루, 그다음은 한 번도 안 가본 비발디파크, 옛날에 가봐서 애들은 기억 안 날 웰리힐리, 그리고 휘닉스 파크도 한 번 가볼 생각이고, 오투 리조트도 1월 말 정도에 슬로프를 다 열면 가볼 생각이다.
아이들과 기분 좋게 포옹하고 엄마 집에 데려다주고 나도 집으로 와서 잠시 쉬다가 회사에 출근했다.
스키 타고 저녁에 사무실 나오니 꽤 피곤하다. 그래도 몇 시간 허벅지 터지게 밟고 상하체 분리 운동하니 몸의 느낌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탁 트인 하얀 설원에서 아이들과 스키를 타고 리프트를 같이 타고 올라가면서 잔잔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를 같이 보내는 것이 행복하다. 비용이 좀 들기는 하지만 가족 스포츠로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싶다. 대신 다른 비용을 최소화하면 된다.
스키를 타고 나서 아악, 으윽 소리를 내며 힘겹게 부츠를 벗을 때의 기분이 제일 좋다고 아들은 말한다.
스키도, 폴도, 장갑도, 나와 아이들의 머리를 보호해준 헬멧도 모두 오늘 수고 많았다